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탐방기 나는 6.25를 인천에서 인천중학교 1학년에, 휴전(休戰)은 고교 시절에 맞았다. 북한의 6.25 무모한 남침은 휴전 무렵까지 우리 국군만도 전사자 14만, 부상자 70만 9천여 명 총 98만 7천여명의 인명 손실을 주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비극이었다. 그 무렵에는 국군묘지가 없어서 수많은 호국 전몰장병의 영현은 절에 모셨다. 그때 우리들은 동인천역(東仁川驛)에 도착한 유해를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유해를 담은 하얀 네모진 상자를 , 하얀 장갑에 하얀 띠로 목에 걸고 브라스밴드의 장송곡(葬頌曲)에 맞추어 절까지 모시곤 했다. 당시 나라는 조국을 수호하다 몸바쳐 희생하신 장병들을 위해서 국군묘지를 세워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