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 탐방기
나는 6.25를 인천에서 인천중학교 1학년에, 휴전(休戰)은 고교 시절에 맞았다.
북한의 6.25 무모한 남침은 휴전 무렵까지 우리 국군만도 전사자 14만, 부상자 70만 9천여 명 총 98만 7천여명의 인명 손실을 주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비극이었다. 그 무렵에는 국군묘지가 없어서 수많은 호국 전몰장병의 영현은 절에 모셨다. 그때 우리들은 동인천역(東仁川驛)에 도착한 유해를 스님의 목탁 소리를 들으며 유해를 담은 하얀 네모진 상자를 , 하얀 장갑에 하얀 띠로 목에 걸고 브라스밴드의 장송곡(葬頌曲)에 맞추어 절까지 모시곤 했다.
당시 나라는 조국을 수호하다 몸바쳐 희생하신 장병들을 위해서 국군묘지를 세워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후손들에게 영구히 보존 계승시킬 수 있는 겨례의 성역(聖域) 건설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래서 1968년 말에 동작동 국군묘지의 광장 99.174㎡, 임야 912.400㎡ 및 공원 행정지역 178.513㎡를 조성하여 동작동 국군묘지에 우리 6.25의 영웅인 전사자들을 안장하여 모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국군묘지(國軍墓地)라 하던 이름을 지금처럼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이라 하게 된 것은,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전사한 국군 전사자는 물론 순직한 군인, 군무원,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도자, 경찰관 , 소방공무원과 의사자(義死者)까지로 대상이 확대 되도록 1965년 법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현충(顯忠)이란 나라 위해 받친 높은 충렬(忠烈)을 높이 들어낸다는 뜻이다.
*. 박정희 대통령 부부 묘
우리 한국수필작가회 뜻 있는 일부회원은 2014년의 봄나들이를 국립현충원으로 간다.
그 국립현충원의 묘역은 크게 나누면 맨 위의 대통령들 묘역과 장군 묘역이 있다. 동쪽 탐방길과 중앙에 주로 모여 있는 사병묘역과, 서쪽 탐방길에 독립군, 유공자, 애국지사, 경찰 묘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현충원을 찾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로 향한다. 현충원의 가장 북쪽의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에 오니 지관(地官)이 아닌 나도 감탄할 정도로 좌우에 산이 둘러 싸인 좌청룡, 우백호에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자리다. 그 명당(名堂) 덕분에 한 가문에 부녀(父女)가 둘씩이나 대통령이 나왔구나 감탄할 정도의 위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무렵 다음과 같은 파자가 유행한 적이 있다. 파자(破字)란 한자의 자획을 나누어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며 '劉' 자를 파자 하여 '
卯, 金, 刀 '
유씨라 하는 식이다. 그래서 劉씨를 '묘금 도 유 씨'라 하는 것이다.
'朴正熙 '
를 한자로 파자해 보자.
朴: '十八'
년 동안 독재정치를 했더니 국민 여론이,
正: '一' (
일단)
'止'
그치시오. 그래도 유신(維新)을 앞세워 독재를 지속하니,
熙:
그의 '臣' 신하인 김재규가 '己' 자기를
' ...'
빵빵빵 쏴 죽였답니다.
유신헌법(維新憲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나는 울분을 가지고 그 투표지에다가 도장으로 커다랗게 X자를 찍어서 반대하던 사람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마음 속으로 흠모하고 있다. 사람을 평할 때는 절장보단(截長補短)이란 말처럼 그의 장점이 그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당시 모든 나라가 잠자고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의 예지는 그 잠에서 일찍 깨어나 경제부흥을 내세워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 하는 기적을 이룩하게 된 것은 오로지 당시에는 괴롭던 18년 동안 장기 집권한 덕이라고 생각해서다.
이승만 대통령의 묘 앞에 서니 갑자기 내가 지금보다 젊어서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 난다.
위싱턴 장군은 남북 전쟁 시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다. 전쟁이 끝난 후 대통령 선거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9년 동안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초석을 닦아 놓은 분이다. 세 번째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자 그는 극구 사양하였다. 한 사람이 장기 집권하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한다. 그 후 워싱턴은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삶을 살다가 67세로 사망하였다. 당시의 영국의 황제인 조지 3세는 워싱턴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만약 워싱턴이 그리한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일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헨리 리는 그의 장례식 연설에서 워싱턴을 "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s of his countrymen."이라 극찬 칭송하였으며 역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워싱턴을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한 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어떠했는가.
세계에 유래없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일본에는 절대로 강경한 대통령이었다. 6.25의 국란을 미국과 UN과 함께 극복한 영웅이었다. 워싱턴대, 하버드대, 피버드 대학을 졸업한 당시에는 조선 최고의 인텔리였다.
그러나 자기를 종신제 대통령으로 하는 3선을 위해 4 .4오입과 부정선거 4선 등의 무리수를 쓰다가 4.19를 맞아 하와이로 망명하여 외롭게 돌아가신 분이다.
그분이 만약 와싱턴 대통령과 같이 노욕(老慾)을 버리고 노후를 살았다면 역사적으로 길이 추앙 받는 위대한 민족의 대지도자일 텐데-, 지금 같은 정치의 난맥상도 없는 정치 풍토였을 텐데- 하는 유감스런 생각이다.
*. 김대중 대통령 묘소
김대중 대통령 묘소에 갔다.
호남의 우상으로 85세를 파란 만장의 인생을 살다가 서거하신 분이다.
김대중 태통령은 7, 8, 13, 14대 국회의원,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였다, 1997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나라를 오늘날처럼 선진국으로 발전시킨 준비된 대통령,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학벌사회에서 고등학교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호남의 영웅이었다.
호남 사람들이 100%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경상도 사람들은 그 반대라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인가. 그 묘에는 다른 대통령 묘에 없는 초소가 있고 거기에 경비원이 상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사병 묘역(士兵墓域)에서
대통령들 묘역과 장군들의 묘역을 참배하고 내려오다 보니 무심코 지나친 사병묘소 (士兵墓所)에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일행과 함께 오지 않고 홀로 왔다면 "월남 전에서 함께 싸웠던 사랑하는 부하 곁에 묻히고 싶다."고 널따란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부하 사병들의 곁에 묻힌 '참군인의 사표 채명신 중장'의 묘를 제일 먼저 찾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교보(敎保)로 1년 단축 근무하고 일등병으로 제대한 사람이라서 그 즐비한 사병들의 묘들에 감회가 없을 수 없어서 시(詩) 한 수 남기고 간다. |
||
국립 현충원(國立顯忠院) 사병 묘소에서 용서하소서 살아서 부귀영화 맘껏 누리다가 죽어서도 우러르는 이들만 둘러 보고 온 ilman을-. 겨레 위한 삶과 죽음은 하나인데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서도 높은 사람의 묘(墓)만 찾다가 무심히 지나치고 온 이 무례함을-. 천국(天國)보다 아름답다는 이 세상(世上)을 고진고래(苦盡苦來) 사시다가 피어 보지도 못한 꽃, 맺어보지 못한 열매로 한(恨)이 되어 그 짧은 젊음을 겨레와 조국 위해 받친 호국(護國)의 영령들이신데-. 영령(英靈)들이시어! 우리들은 그 고귀한 희생의 유지(遺志) 받들어 세계인이 부러워 하는 Korea이 되었나이다. 세계에 활짝 꽃 피우는 Korea를 만들고 있나이다. 머지 않아 우리 겨레 하나 되어 영령들의 순국의 보람을 노래하며 살게 도와 주소서. '함께 싸웠던 사랑하는 부하들 겉에 묻히고 싶다.'는 - 어느 장군의 유언처럼, 영령들 앞에서 남북(南北)이 얼싸 안고동서가 어깨동무하고 통일의 영광을 노래하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들 대한(大韓)의 영웅 사병(士兵) 영령들이시어! -전, 5사단 35연대 11중대 1소대 1분대 8번 소총수 일병 성철용 - 2014. 4. 7 |
||
|
'국내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원 화성(水原華城) 이야기 (0) | 2014.04.25 |
---|---|
하우재 이야기 (0) | 2014.04.12 |
성북동 북정마을 이야기 (0) | 2014.02.17 |
수안보(水安堡) 온천 이야기 (0) | 2014.02.07 |
대한민국 (大韓民國)은 이런 나라다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