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詩) ** ☎ 146

드러눕기

드러눕기 호반(湖畔)에 벤치가 누워 있다. 그 위에 길게 누웠더니, 온통 다 하늘이다. 굴러가는 구름이 누워서 물끄러미 나를 굽어보고 있다. 머리 돌려 호수(湖水)를 보니 호수도 누워서 나를 흘겨보고 있다. 드러눕기는 알파[α]와 오메가[Ω]인가. 우리 엄니도 호수처럼 누워서 나를 낳았고, 거기서 일어나 아등바등 사시다가 더는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누워 앓다가 어디론가 가셨다. 드러눕기는 가장 편한 자세일 텐데-, 세상은 왜 저리 바삐만 굴러만 가며 방황하다 이렇게 편안히 누운 나를 왜 자꾸 세우려 하는가. 앓지 않고 누우면 천당(天堂)이 열리고, 일어서면 세상(世上)이 시작되던데-.

5,000원

5,000원 -아저씨 담배를 피우세요? 새벽을 쓸고 있는 아저씨에게 5,000원을 주었다. -막걸리 좋아하세요? 개화산(開花山) 층계를 만드는 아저씨에게 5,000원을 주었다. -중풍(中風) 맞은 후 한 푼도 못 벌었다고요? 개화산 약사사(藥師寺) 물 뜨러 가는 할아버지에게 5,000원을 드렸다. 우체부 아저씨에게 점심 값으로 5,000원을 주었다. -아줌마, 지금 막걸리 한 잔 드시고 나가신 할머니가 오시면, 한 잔씩 그냥 드리세요. 단골 '춘천 순댓국집' 아줌마에게 5,000원을 맡겼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밤새 걸었다고요? 유난히 추웠던 제야(除夜)를 이겨낸 집 없는 천사에게 5,000원을 주었다. 어느 미친놈이 5,000원 주더라고 5,000원이 작다고, 욕먹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마음을 주는 ..

주막(酒幕)에서

주막(酒幕)에서 여봐라, 곡차(穀茶) 있느냐? ilman(一萬) 왔다 여쭈어라. 텅 빈 가슴에 가득히 담을 객기(客氣)를 찾아왔다 일러라. 잊을 만한 나이까지도 버리지 못한 신기루(蜃氣樓)나 찾아 헤매는 주책이라 해도 괜찮다. 허물어져 가는 가쁨을 거느린 나에겐 단 한 번만의 반김이라도 보러 왔다 하여라. 맞춰 주는 시선(視線) 하나 안주보다 그리워서 나를 투자하러 왔다 일러라. 여봐라, 냉큼 곡차(穀茶)를 가져오지 못할까.

난(蘭)과 소나무(松)

조회 : 601 그저께는 일산 키퀸텍스의 난 전시회에 갔더니, 어제도 난 전시회에 또 갔다. 오늘은 백운대에 올랐는데 왜 청련거사 이백(李白)의 글이 춘산에 아롱거리는가. 난(蘭)과 소나무(松) 爲草當作蘭(위초당작란): 풀이 되려거든 난초가 되고 爲木當作松(위목당작송): 나무가 되려거든 솔이 되려무나 蘭幽香風遠(난유향풍원): 난초는 그윽하여 향풍이 멀리 가고 松寒不改容(송한불개용): 솔은 추워도 그 모습을 아니 바꾸나니 -李白 오늘 새벽에 Korea의 자랑스런 딸 김연아가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TV로 보았거니,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제왕산 산행

제왕산 산행 Photo 에세이 (2010. 1. 7(목)/ 구 대관령 고속도로 휴게소→제왕산 →하제 민원→원울이재→대관령박물관→주문진/고양시 늘 푸른 산악회 따라/홈 http://cafe.daum.net/greenalpine2030?t__nil_cafemy=item) *. 대관령(大關嶺) 이야기 나의 2010년 새해 첫 산행지는 강릉의 진산(鎭山)인 대관령(大關嶺)에서 시작되는 제왕산(帝王山)이다. 103년만에 새해 첫 출근길에 내린 서울지역에 25.7cm의 폭설을 바라보면서 미안하지만 나는 이 기회에 올겨울에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눈을 실컷 밟아보리라 벼르다가 드디어 가는 길이다. 젊어서 강릉을 갈 때는 신설동에서 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13km의 아흔아홉 구비 길을 내려갔는데, 지금은 인천서 강..

횟집에서

공자(孔子)가 낚시를 하되 그물질을 하지 말라(釣而不網)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공자님도 낚시와 회를 즐겼던 모양이다.. 살생을 금하던 불교가 지배하던 고려 시대를 지나 일 강점기에 들어와서는 우리 선인들도 회를 즐겨 먹었는데 고추가 들어오기 전인 임진왜란 전에는 겨자 장을 많이 썼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고대소설 '별주부전'이 신소설로는 '토의 간'으로 거기에 토끼의 간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보다는 훨씬 젊었던 시절 방금 잡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토끼의 간을 오기로 함바식당에서 먹어본 일이 있다. 용왕도 못 먹어 본 토끼의 생간을 내가 먹어본 것이다. 회(膾)란 쫄깃하고 씹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토끼의 간은 물컹물컹한 것이 와락 겁이 나서 마늘을 눈물이 나도록 함께 먹은 경험이 시 한 수를 남기게 ..

태백산(太白山)에서

저승과 이승을 오가다 오른 태백산 태백산은 나에게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산이다. 직장에서 정년할 무렵 갑자기 백혈봉동(白血病棟) 무균병실(無菌病室)에 입원하여 죽음의 높은 고비를 오르내리다가 퇴원하였다. 퇴원 후 친구가 못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붓고 자유롭게 걷기조차 어렵던 1998년 여름의 '나의 병상일기'가 그 사연을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나는 지금 이승과 저승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인가. 머리를 빡빡 깎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환우(患友)들을 바라보니 각가지 두려운 생각이 엄습하여 온다. 무균병실에서는 며칠마다 죽음을 찾아 퇴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생 처음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을 때 울면서 염불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의 감회를 정리하여 보는 것으로 공포를 잊고자 노력하였다. 하나, 둘, ..

가지산(迦智山)

가지산(迦智山) 운운산(雲門山) 정상은 또 하나의 봉을 이루어 두고 막 피어난 억새풀 우거진 사이로 놓인 통나무 길이 끝난 곳에, 천국의 계단 같은 나무 층계가 정상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 앞의 가지산 능선이 점점 낮아지더니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나 ilman도 오늘 가지산 정상에 내 키를 더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너르고 굳고 맑고 올바른 기운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하지 않던가. 갑자기 살아있다는 보람에 시흥(詩興)에 겨워 감격의 노래를 불러 본다. 친구야! 어느 산에 누구와 다녀왔냐고 물어 주지 않을래? 몸이 마음을 부리는 나이에 마음이 몸을 부리며 산악회 건강한 젊음 따라 천리 길을 왔지만 온 하루는 우리 마누라의 남편과만 함께였다네. 오름길의 거친 숨은 진한 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