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詩) ** ☎ 146

참회록(懺悔錄)

누워서 대장검사를 하면서 모니터에 나타난 나의 창자 대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50년 이상 마셔온 술이 할퀴고 간 그 통로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얼마나 많은 술이 저 길을 통과하였을까?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는가.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추태를 부렸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의 내장에 술이 흘러가지 않은 날은 어렸을 때나, 아니면 이렇게 몸을 아파하는 때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술을 마시다가 부끄럽게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운전면허증을 다시 따던 날 울면서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낯선 이 태워 주며 우리 되거나 초면(初面)과 흠뻑 취해 허허롭던 낭만(浪漫)이 일순의 만용(蠻勇)에 차(車)도, 면허(免許)도, 돈도 술 마시던 명분(名分)과 그 알량한 체면(體面)마..

건망증(健忘症)

젊어서도 물건을 잃고 항상 찾는 일이 일과였다. 찾다 찾다 보면 ' 지금 내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 거지?' 할 때가 퇴근 시간인 적도 많았다. 그래서 휴대하는 물건들을 옷에 붙들어 매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갑, 핸드폰은 물론 안경 등 줄로 매어달 수 있는 모든 것을 옷에 고정시키곤 했다. 그런데 고희(古稀)를 넘기고 보니 그 건망증 지수가 더욱 높아져서 젊은 시절보다 하루의 몇 분의 1을 더 찾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서재에서 물건을 가지러 거실로 나갔다가도 찾는 물건이 생각이 안 나서 다시 서재로 들어 오는 경우도 하다해 졌다. 안경이 눈이 되어 버린 어느 날. 눈을 잃고 근자지소행(近者之所行) 으로 침대에게 죄를 물어 칠흑처럼 어두운 침대 밑을 더둠어 술래처럼 꼭꼭 숨어서 ..

운주사(雲住寺)

운주사(雲住寺) 눈보라 천년 세월, 1천 불(佛) 이 얼굴은 아름다움 이전의 아름다움 아닌가. 이 절집에 머물었다가 가는 구름이 천불천탑(千佛千塔)이 아닌가 1천 불탑(佛塔)은 한 많은 남북(南北) 민초(民草)들이 꿈에도 소원이 아닌가. 와불(臥佛) 서는 날이 이 겨레 얼싸 안고 우는 날이 아닐까. 신비(神秘)가, 수수께기가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이렇게 궁벽한 골짜기에 누가 누구를 위하여 왜 나를 심어 놓았는가를 운주사(雲住寺) 불상들은 묻고 있다. -2013. 4. 27

거여동에 갔다가

거여동에 갔다가 여보세요. 거여동 아줌마. 우리 엄니 사시던 데가 어디쯤일까요? 기다림에 지친 후에야 다가오던 버스 타고 코 끝 쏘는 때 절은 땀내 속 시골 비포장 길에 죄 없이 시달리던 착하디 착한 이들이 오다 오다가 종점에서 우르르 내리면 마주치던 난민촌 달동네가 우리 엄니 사시던 동네였어요. 그 골목만 들어선다면 눈을 감고라도 우리 엄닐 찾을 수 있었답니다. 맑은 공기만 마시고 천당 같은 이들이 살던 여기가 그 옛날 거여동이 아니던가요. 여보세요. 거여동 아줌마. 우리 엄니 살던 옛날 골목이 도대체 지금의 어디쯤이나 될까요? 전철 타고 찾아오다가 눈물 말아 쓴 시가 내 마음을 찌르네요. "영안실 다녀오다 우리 엄니 살던 동네 물어 물어 찾았더니 막아서는 아파트들. 난민촌 옛 동네 이름이 내 마음을 ..

응봉동 주민들에게

응봉동 주민들에게 세상이 산(山)을 우러르면 산(山)은 지상의 천국(天國)이더니 정상(頂上)이 굽어보는 세상은 펼쳐놓은 천당(天堂)입니다. 굽어보는 강(江)을 끼고 달리는 도로(道路) 그 강을 넘는 다리가 봄마다 개나리로 몸 단장(丹裝)을 하고 밤이 문명(文明)을 만나 찬란한 빛과 멋으로 야경(夜景)을 여는 곳이 도시(都市) 한 가운데에 있다면 그런 산(山)이 응(鷹) 봉(峰) 산(山)이랍니다..

쌍 우물 가

쌍 우물 가 나이가 고향이 되어버린 설날 무렵, 가슴속 깊숙한 마음을 열어봤더니 까맣게 잊고 살던 학창 시절 쌍 우물 가 겨울이 겨울 답던 눈 익은 골목 속에서 하나도 춥지 않게 밤을 서성이던 젊디 젊은 내가 보인다. 백발을 이고 사는 지금 눈을 감아도 그 우물 속에 세월처럼 잠든 반짝이던 별들의 이야기를 두레박 가득 가득히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쌍우물을 두고도 수돗물을 사 먹던 그 시절에 약 우물 터를 바라보는 바다와 함께 듣던 기적 소리 때문일까. 그 하얀 구름 속에 풍겨 오던 그리움을 억지로 지워 버리려던 하얗게 부서지던 밀물과 썰물 때문이었을까.

안테나

안테나 바람이 몹시 불고 간 날아침 고층 옥탑에 올라갔더니 조망성(造網性) 거미가 안테나에 거미줄 드리우고 스쳐 가는 바람 속에 풍겨오는 먹이를 사냥하면서 서툴게 떠들대던 나의 미숙을 감청하고 있었다. 먼 소식 낚으려 욕심부리던 나를 훔쳐 지켜보던 더듬이가 없어 서럽던 거미는 비로소 안테나를 얻어 빨아먹을 소리들을 이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