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팔영산(八影山) 산행기
(2006. 3.30/전남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능가사- 흔들바위- 석문- 1봉~ 8봉- 우천리 자연휴양림 )
*. 가 보고 싶던 산 팔영산(八影山) -- 2023. 3 수정
내 젊어서부터 산하(山河)를 사랑하여 여기저기 배회하다 전라도를 넘나들 때, 목포 가는 차 속에서는 월출산(月出山)에 혹하였고, 고흥반도 내. 외 나로도(羅老島)를 가다가는 팔영산(八影山)을 마음에 두고도 그리워만 하다가 오늘 이른 봄을 맞아 팔영산을 향하고 있다.
전남 고흥읍에서 동쪽으로 25km 거리에 있는 팔영산은 소백산맥의 끝자락이 남해를 향하여 마치 공룡의 등처럼 일직선으로 늘어선 8 봉우리를 말한다. 해발 608.6m로 고흥 반도에서는 최고로 높다는 고흥군(高興郡)의 진산(鎭山)이다.
한반도의 끝자락인 전남 고흥반도에 있으니 혼자서는 당일치기로는 다녀올 수도 없는 곳이요, 욕심 따라 무리를 하다 보면 그 경비도 적지 않아서 마음에만 두고 벼르던 산이 팔영산(八影山) 도립공원이었다.
새벽 5시 30분에 고양시 일산(一山)을 떠난 차가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나 곡성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 속에서 여인네의 탄성이 연발한다.
"어머, 목련이 활짝 피었어. 개나리도 노랗게 피웠고-."
'저 닥지닥지 핀 흰꽃은 매화인가 배꽃인가?"
'저 산 좀 봐 산마루로 올라가며 피어 있는 꽃이 진달래지?'
*. 왜 팔영산(八影山)인가
그러더니 6시간만에 우리는 팔영산 안내소에 도착하였다. 도립공원이라 주차료도 없고 입장료도 무료였다.
그런데 왜 이름을 팔영산이라 하였을까?
세수하던 중국 위왕(魏王) 대야에 비친 8봉
어명 따라 고흥서 8봉 산 발견하여
여덟 八(팔)
그림자 影(영), 뫼 山(산)
八影山(팔영산) 이름하다
중국 왕이 세수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산을 보고 찾으라 명하여 고려에서 찾았다는 전설을 가진 산이 한국에 몇 개 더 전하는 걸 보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서 과장하여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만든 전설 같다.
어떻거나 8봉으로 구성된 이 산의 각 봉우리에 어느 때부터인가 각각 이름을 붙였고 고흥군에서는 각 봉두에다가 대리석으로 그 표석을 만들어 놓았다.
팔영산을 불가(佛家)에서는 '능가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늘에 실 가듯이 명산 팔영산에 속한 명사찰이 능가사로, 원점회귀 등산에서는 능가사는 팔영산의 들머리요 종점이기도 한 곳이기 때문이다.
*. 호남 4대 사찰 능가사 (楞伽寺)
지금은 능가사는 송광사의 말사이지만 옛날에는 순천의 송광사, 구례의 화엄사, 해남의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4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大刹)이었다.
능가사는 1,500년 전 신라 눌지왕 때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짓고 처음 이름을 보현사(普賢寺)라 하였다지만 임란 때 불타 버리고 말았다.
그 후에 지리산에서 수도하던 정현 대사(正玄大師) 벽천(碧川)이 90살 되던 어느 날 꿈에서 '이 산에 가서 절을 짓고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의 계시를 받고 신축하고 이름을 능가사(楞伽寺)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능가 (楞伽)'란 인도에서 명산을 '능가'라 하므로 여기에 한자를 차자하여 '능가사'라 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을 위하여 설법하였다는 '능가경(楞伽經)'이란 이름도 그래서 유래한 말이다.
이 절을 들어가다 보면 특이한 것이 있다. 산기슭에 세운 산사(山寺)가 아니라 평지(平地) 사찰이란 점이 그렇고, 사천왕문을 향하여 북향하고 있는 대웅전이 그러하다.
그래서 일주문을 겸한 사천왕문을 통하여 마주 보이는 대웅전이 유난히 아름다운 절이 능가사다.
이 절에서 꼭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 곳으로는 사천왕문에 모신 '목조 사천왕상'( 木彫 四天王像, 전남 유형문화재 224호)과 '대웅전(보물 1307호)에 모셨다는 350년 전에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도금하였다는 불상 8위와, 157cm의 '범종'(전남 유형문화재 69호)과
5.1m의 고색창연한 '사적비'(事績碑, 전남 유형문화재 70호)다. 그래서 나는 사천왕문의 고목 느티나무부터 이를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다 보니까 일행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절의 모든 곳에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등산로가 어디로 났는지 물어볼 사람 하나 없다.
도대체 우리 일행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절 탑 앞에 있던 것을 덕목이란 스님이 도술로 절 뒤로 옮겨 놓았다는 귀부(龜趺)라는 유명한 '사적비' 근처에도, 단청을 하지 않아서 더 멋져 보이는 '응직전'(應直殿)에도 일행이 없다. 산(山)만을 향하는 것이 산꾼의 습성이어서 절을 그냥 지나가듯이 통과해 버린 모양이다.
내가 시큰거리는 무릎을 끌며 체력의 한계를 무릅쓰고도 정상에 오르는 것이나, 그 산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품고 있는 사찰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언제 다시 오랴?' 하는 나이를 의식해서이기도 하였지만, 다시 올 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 팔팔한 젊음과 그보다 산을 우선하는 마음이 부럽다.
하릴없이 동백꽃과 개나리가 만발한 절을 둘러보고, 샘가에서 수통에 물을 바꾸어 담아가지고 '어느 곳으로 가야 팔영산 길일까?'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보니 능가사 왼쪽으로 통하는 큰 길이 팔영산을 오르고 있다. 팔영산에서 흘러내리는 만 공골 옆 등산로인데 봄 가뭄 때문인가 물이 완전히 말라있었다.
*. 팔영산 가는 길
절을 막 벗어나니 부도군(浮屠群)이 있다. 조선 후기의 승려로 사제간이었던 추계당과 사영당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이었다.
거기서 첫 번째 만난 이정표가 '1봉 유영봉/2.7km, 8봉 적취봉/3.2km' 어느 봉으로 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 버스에서 나누어 준 지도에 1봉에서부터 8봉을 타고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간다고 하여서 왼쪽 1봉 길로 들어섰다. 이런 속도로 가면 우리 일행이 점심이 끝난 다음에야 만나겠지-. 그래서 나는 버스에서 미리 이동식을 먹고 왔다. 점점 팔영산의 봉이 가까워지더니 원시림 같은 숲이 앞길을 막아선다.
오솔길 양쪽으로는 아직 봉오리를 맺지 못한 철쭉나무와 잡목들의 무성한 돌길로 완만한 오름길이라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뒤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있더니 대구에서 왔다는 일행이 떠들썩하게 지나간다.
능선이 가까웠는가. 바람소리가 심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곳은 다도해 바닷가 산이라서 남쪽 바다에서 달려오는 바람이 병풍 같은 팔영산에 부닥치는 소리였다. 오늘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바람 소리가 요란 한 곳인 것 같다.
쌍무덤부터는 가지 사이로 두 봉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이정표가 있다. '유영봉 0.3km/ 흔들바위 0.5km'. 조금 아까 두 갈래 갈림길이 있어 리본이 많은 왼쪽 길로 올라왔더니 오른쪽으로 갔어야 흔들바위를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올라온 이에게 흔들바위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설악산 울산바위 계조암의 흔들바위와는 비슷도 아니하고, 흔들리지도 않는 이름값을 못하는 덩치만 큰 평범한 바위라 한다.
지금까지 팍팍한 돌길은 능선이 시작되면서 육산의 길이더니 다시 또 돌길이 시작된다.
세 번째 이정표가 좌측 '암벽등반(절벽 위험), 노약자, 어린이 우회'란 표지로 서있다.
'나는 적당한 모험을 즐기는 노강자(路强者)'라 하면서 암벽등반 길로 들어섰더니 혼자만의 초행길이라 휘휘한 생각도 들었지만, 고흥군에서는 고맙게도 위험한 구간마다 안전시설을 하여 놓았다는 귀 소문을 들어서였다.
석문(石門)을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어주는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이었다.
산과 바다를 아우르면서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인자(仁者)와 지자(智者) 경지를 넘보고 싶어서 새벽을 가르고 수도권서 한반도의 끝 고흥까지 우리들은 달려왔다. 그 고흥반도(高興半島)가 품고 있다는 175개의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우리가 올라온 성기리 마을과 평지 사찰 능가사가 멀리 별세상 같이 아름답다.
*. 아름다운 제1봉 유영봉(儒影峰)
팔영산 유영봉은 대구에서 온 분들과 함께 올랐는데 어찌나 떠들던지-.
중국인들이 떠든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로만 듣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보니 경상도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 이상이다. 경치가 아름다울수록 그 똑똑 끊어지는 무뚝뚝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는 고함이 되고 악을 쓰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은 안복(眼福) 때문에 그 소리가 꽹과리나 징소리 같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유영봉 평평한 암반에서 약간 빗겨 난 운치 있는 곳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도 신기해서(?) 물어보았다.
"어디서 오셨지요?"
"충청도 충주에서 왔시유."
제1봉이 유영봉(儒影峰)이라면 선비 '儒'(유), 그림자 '影'(영)이니 선비 되기를 그리워하며 살던 옛사람의 마음을 봉의 이름으로 가져온 것 같다.
우리들은 가까이에서는 못 느끼던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헤어지고야 발견하고 그 인품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있다.
제1봉 유영봉이 그랬다. 유영봉을 지나서 2봉, 3봉을 올라서 멀리 보고서야 8봉 중 가장 아름다운 봉이 1봉 유영 봉이로구나 하였다.
팔영산 8 봉을 타다 보니 남쪽 바다 쪽으로 안부에 헬리콥터 장을 걸쳐 두고 우뚝 솟아 봉황처럼 고고하게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봉우리가 있다. 신선대(神仙臺)였다.
신선대가 있어 다도해(多島海)가 더 아름다웠고, 다도해해상 국립공원(多島海海上 國立公園)이 있어 신선대(神仙臺)가 더욱 돋보였다.
*. 팔영산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사물을 보거나 들을 때에 기쁨과 만족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대상에게 주는 말이다. 그것은 원만 과 조화에서 시작되어 감동으로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되는 갸륵하고 훌륭한 경지를 말한다.
산하 같은 자연에서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인간의 아름다음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언행이 예쁘고 고운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아름다움이 8 영산에는 8번 이상이 있었다.
제1봉에서 시작되는 봉우리는 조금씩 점점 더 높아 가며 남해의 비경을 열어주고 있다. 491m 유영봉(儒影峰), 2봉 538m 성주봉(聖主峰), 3봉 564m 생황봉(笙簧峰), 4봉 578m 사자봉(獅子峰), 5봉 오로봉(五老峰, 579m), 6봉 두류봉(頭流峰, 596m), 7봉 칠성봉(七星峰, 598m) -.
7봉 칠성봉(七星峰, 598m)을 지나 8봉 591m 적취봉 (積翠)峰)부터는 하산길로 높이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한다.
각종 등산 서적에 608.6m를 최고봉이라 하였으니 정상석의 기록으로만 따진다면 8봉 중에서는 598m인 칠성봉이 제일 높으니, 남쪽으로 뚝 떨어진 무선중계소가 있다는 깃대봉이 팔영산의 최고봉인 것 같다. 그렇다면 구영산(九影山)이라고 하여야 할 터인데 팔영산에는 섭섭하게도 그 깃대봉이 빠져 있다.
팔영산은 고흥군에서는 어린이나 노약자도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봉과 봉을 오르내리는 곳이 직벽이요, 아슬아슬한 암릉은 40년 이상의 산행을 한 나도 식은땀을 흐르게 하는 험산이다. 유격훈련을 받는 것 같이 힘들고 위험한 코스가 많았다.
봉을 오를 때는 어느 봉이나 손을 발처럼 네발을 써야 했다. 봉마다 곳곳에 쇠줄이 있지만 너무 반질반질하여 몇 번이나 손에 침을 뱉어 쇠줄을 잡아야 했다. 장갑을 차에 놓고 온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이 봉들은 험준하기가 도봉산의 포대능선과 같고,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월출산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지경이지만 위험한 곳마다 철책과 층계와 철제 디딤판과 문고리 같은 쇠고리 잡이까지 완벽하게 안전시설을 갖추어 놓아서 고흥 사람들의 정성과 고흥 사랑에 감동ㅎ게 한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험준한 산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팔영봉은 꽃들이 꽃밭에 모여 살듯이 봉우리 봉우리는 짧은 거리를 두고 모여 있어서 험하고 아기 자기한 길을 열어주어 온종일 단독 산행인데도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심심함을 모르게 하였다.
*. 고흥군(高興郡)의 어원이 된 류 정승 피난 굴
깃대봉은 저만치 두고 저 산록에 아름다운 자연휴양림 휴양관을 향하여 하산을 한다. 일산까지는 5시간 이상을 가야 하니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쉬워서 얼마 가지 않아서 아스팔트가 나오고 휴양관에 이르렀다.
아스팔트 길은 구불구불한 것이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차로는 환상적인 코스 일지 모르나 걷기에는 운치가 없어서 도중 도중 직진하여 길 아닌 언덕으로 질러 내려오다 보니 휴양림 입구 안양동 계곡 건너에 굴이 있고 그 건너 세면장 옆에 그 기념비가 있다. '류정승(柳靑臣) 피난 굴'이었다.
10 살의 류 도령이 난을 피해 굴에 살 제
겁탈하려는 왜구 맞서 죽음으로 호소하니
왜구도
그 효심에 감동해
스스로 물러났다네.
고려 말 어진 정승이었던 류청신(柳淸臣)의 어렸을 때의 이러한 효행이 나라에 알려지자 조정은 그 갸륵한 효를 기려 정려(旌閭)를 내렸다. 유청신은 자라서 과거에 급제하여 29번이나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니면서 공을 세웠다. 어렸을 때 배운 몽고어 덕분이었다. 나라는 유정승의 공을 기려 고흥군(高興君)에 봉하여 그 공을 치하하여 주었고 장승현에 속하였던 그의 출생지 고이부곡(高伊部曲)을 승격시켜 고흥현(高興縣)으로 그의 봉작을 관명으로 바꾸어 주어 오늘날의 고흥(高興)의 이름을 있게 한 분이다. 그러나 아뿔싸 그분은 용두사미라(龍頭蛇尾) 인생이라. 원(元) 나라에 아첨하여 고려에 반역하다가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73세 고령으로 원 나라에서 객사한 불행한 재상이기도 한 분이다.
벼르고 벼르던 고흥의 팔영산 등산을 마치고 다른 분들이 잘 모르는 있는 고흥군의 어원과 능가사의 어원을 밝히 것에 지금 나는 무지 행복하다. 한 동안 팔영산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쏟은 고흥 사람들의 정성에 감동한 마음으로 일상에 돌아가면 이렇게 묻고 다닐 것 같다.
"팔영산에 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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