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끼리의 여행에서 향일암은 이번 여행에서는 생략하기로 하였다. 여수 여행 중에는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향일암이어서 우리 자식들은 젊은 나이니까 살다 보면 저절로 기회가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럴 경우 기억하라고 이 아비가 옛날에 향일암에 가서 쓴 향일암 기행을 여기에; 올린다.
*.. 돌산대교의 야경
여수나르샤 호텔에서 저녁 식사 후 나는 사진작가 Y교수와 돌산대교(3경)의 야경을 구경하러 나섰다.
여수 야경(夜景)으로는 '여수산단 야경(여수 7경)'도 일품이라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게 어디 바다와 어울린 돌산대교 야경만 하랴 해서였다.
그 야경의 명소가 다리 건너 돌산도 우두리에 있는 돌산공원(突山公園)이었다. 돌산공원은 여수만과 한려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여수 시민들의 휴식처로 신혼 신부 결혼사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 수에 밤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색깔을 달리하는 돌산대교와 장군도(將軍島)의 야경을 보러 모여드는 곳이다. 돌산공원에는 ‘돌산대교 준공 기념탑’, ‘어민 어민의 상'이 있다.
공원의 가장 높은 광장에 1999년에 여수의 로고를 형상화하여 만든 타임캡슐이 있다고도 하지만 절전을 위해서인가 불을 밝히지 않아 자세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
돌산대교(突山大橋)는 1984년에 완공된 여수시 남산동과 돌산읍 우두리 사이를 연결한 다리로 길이 450m, 폭 11.7m, 높이가 62m인 국내 최초의 사장교다.
사장교(斜張橋)란 교각 대신 높이 세운 버팀 기둥 위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쇠줄에 매달아 놓은 다리를 말한다.
그런데 왜 돌산도라는 지명을 얻었을까?
나는 '돌산은 돌이 많은 산이라서 돌산[石山]이라 하겠지-' 하면서도 지명에 '우리말 + 한자어'인 것에 의아해 하다가 '突山'(돌산)의 어원과 관계된 전설을 찾아보곤 무릎을 쳤다.
이럴 때 나는 이런 낭만적인 조상을 둔 한국인의 후예인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突 '자를 파자하면 '山 + 八+ 大= 突' 이기 때문에 突山(돌산)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그 여덟 산 중에 가장 남쪽에 향일암(向日庵)을 품고 있는 산이 금오산(金鰲山)이다. .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은 선덕여왕 13년(AD644년) 원효대사가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다. 고려 광종 때(AD958년)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鰲庵)으로 개칭하여 불러 오다가, 남해의 수평선에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하도 아름다워서 조선 숙종때(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向日庵)이라고 명명(命名)하여 오늘에 이렀다.
임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군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향일암은 해안가 수직 절벽 위에 건립 된 사찰이다. 이 향일암에 봄이 오면 일출이 기암절벽 사이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식물들과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이룬다. 버스 주차장에 하차하니 향일암 가는 길은 언덕길이요, 길가에 갓김치 맛을 보고 가라고 아주머니가 손짓한다. 갓김치는 여수의 특산물이니 맛보고 내려 올 때 기념으로 챙겨 갈 일이다..
거기서 암자를 향해 돌층계로 오르는 곳에 커다란 돌거북 한 쌍이 하늘을 우러고 있고 꿈틀거리는 두 마리 용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金鰲山向日庵’이란 현판의 멋진 일주문(一柱門)이 있다.
지금 시각은 6시 20분 언듯언듯 보이는 바다는 막 해가 뜨려는지 아침 노을을 거느리고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진)돌문을 지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불타고 새로 짓고 있는 대웅전과 종각이다. 그 대웅전 마당에 선착객들 30여 명이 카메라를 들고 밝아오는 동해를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어제 여수 돌산에서는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閑麗水道海上國立公園)을 보고, 오늘 향일암에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多島海海上國立公園)을 보고 있으니 여정의 기쁨과 안복(眼福)도 두 배를 누리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의 일출명소(日出名所)로는 이 향일암과 함께 동해의 추암(錐岩), 강릉 정동진(正東津), 포항 호미곶(虎尾곶)이 유명하다.
해가 뜨고 있다. 붉은 해가 뜨고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청록파 시인 박두진은 조국 광복을 생각하며 일출을 노래하였다는데, 오늘 나는 아름다운 조국에서의 삶의 기쁨으로 그의 시를 읊고 있구나.
금년 새아침 새로 건설되었다는 거가대교(巨加大橋)를 지나 호미곶에 갔을 때 눈보라로 보지 못한 일출을 오늘 향일암에서 드디어 보고 있으니 그 감격이 남다르다.
'"산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햐야 솟아라.~'
이럴 땐 내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적지 않은 시와 시조를 읊욀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림)그 마당 끝 난간 아래의 네모진 바위에 복을 비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원효대사’가 참선 하던 원효대(元曉臺)요, 참선하다가 관음보살을 뵈온 그 자리에 세웠다는 불상이 바로 해수관음보살이란다.
바다를 향한 돌담에는 거북이들이 해를 향해 도열한 모습이 또한 인상 깊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는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남해 보리암은이요,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여 ‘4대 해수관음성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이 관음성지인 향일암에 안타깝게도 2009년 겨울 원인 모르는 화재가 발생하여 황금으로 단청한 그 멋진 대웅전과 종무실, 종각이 전소되고 말아서 그 재건이 아직도 한창이었다.
그 원인으로 불타기 바로 그 전 해에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광신도 정씨(43세 여)의 난동으로 대웅전 불상 등이 훼손 된 일로 하여 이 번에도 툭정 종교가 그 누명을 쓰게 된 것이 안타깝다.
이것은 사찰입장료를 수많은 관광객에게 2천원씩이나 받아 거금을 챙기면서도 CC TV 하나 설치해 놓지 않은 향일암 측의 과실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 금오산(金鰲山) 가는 길
해가 중천에 뜨는 것을 보고 금오산을 오르려고 향일암에서 110m 거리를 내려 가니 그 들머리에 '금오산 정상 410m'라는 이정표가 있다.
멋진 나무 층계가 쇠층계로 바뀌더니 그 층계가 계속 구불구불 정상을 향하고 있다.
정상을 향할수록 돌아다 보는 경치가 더 넓어지는데, 향일암의 지세가 흘러내린 바다에 접한 모습이 거북이 머리 형상이다.
(그ㄱ림)그래 그런가. 바위에 새겨진 무늬가 오각형으로 거북 등의 무늬다.
금오산(金鰲山)이란 이름의 ‘鰲(오)’가 자라 ‘鰲(오)’ 자이니 그래서 옛 절 이름이 ‘금오암(金鰲庵)’이요, 산 이름이 ‘금오산(金鰲山)’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굽어보니 바다와 접한 연안이 활처럼 굽어진 곳에 임포(荏浦)마을이 있다.
임포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큰 인물의 장사(壯士)가 태어날 지형이라 해서 일제 강점기에 이를 염려한 일인들이 거북이가 잘 먹는 콩 ‘荏'(임)자를 써서 마을 이름을 임포(荏浦)로 개명했다 한다.
(그림)드디어 그동안 그렇게도 벼르던 금오산 정상에 섰다.
젊었던 시절 향일암은 친구 따라 왔지만, 택시비를 아낀다고 향일암까지도 오르지도 않고 발길을 돌린 곳이라서 그동안 내 얼마나 오고 싶어 벼르던 산이요 암자던가.
아까워라, 우리는 일인당 1,100원이면 올 곳을 거금 3만원이나 들여서 택시로 왔던 것이다.
자꾸 하산길 현수막에서 본 부처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오시는 길에 부처님 마음을 배워서, 가시는 길에 부처님 마음을 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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