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아! ilman이 살았구나! /북한산 문수사 산행에서
젊어서 산에 흠뻑 빠져 살던 내가 80고개를 넘어서인지 2년 전, 허리를 다쳐서 1년 이상이나 산행을 하지 못하다가 모처럼만에 북한산을 향해 나섰다. 오래전부터 산이 훌륭한 병원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오던 사람이라서 산행으로 허리를 고쳐 보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거기다가 남새스러운 이야기지만 새로 산 1억 5천만 화소라는 삼성 갤럭시 노트 20의 카메라 기능과, 갤럭시 워치 3을 이 기회에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가능하다면 오늘은 구기동으로 해서 대남문(大南門)을 거쳐서 전 주에 날이 저물어 가보지 못한 북한산 행궁지(行宮祉)를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단풍이 산에서 시내로 하산할 무렵인 입동(立冬)을 지난 11월 초순의 가을이요, 나는 85세를 한 달 앞둔 인생의 겨울을 사는 사람인데다가, 평지를 걷다가도 길가 벤치에서 쉬어 가야 하는 병약자여서 이런 나도 산행이 가능한가 시도해 보고도 싶어서였다.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란 생각에 허리복대, 등산 스틱 2, 해드 랜턴, 비상식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내 등산 경험으로는 대남문(大南門)만 무사히 오른다면 거기서부터는 대서문 쪽으로는 평탄한 내리막 하산 길이어서 그리 무리가 아닐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였다.
일산(一山)에서 떠나 옛날에 처갓집이 있던 승가사(僧伽寺) 가는 길로 해서 구기동 북한산 탐방 관리소에 이르니 오전 10시경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대남문까지는 2.5km로 2시간 코스라서 느긋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은 평일에다가 코로나19로 인하여서인지 등산길은 한적하였다.
아주 오랜만에 오는 길이어서인가, 아니면 그때 없던 나무 데크나 층계 같은 새로운 시설 때문인가 길이 생소한데, 옛날에 가깝던 승가사 갈림길이 왜 이렇게 먼가.
아픈 허리 때문인가, 나이 때문인가. 50m 가서 쉬고 또 쉬는 것이 내 걸음은 거북이보다 달팽이 속도의 걸음걸이다. 복대(腹帶)를 해서였는지 허리는 아프지 않았다.
심심할까 봐 틀고 가는 라디오에서 음악 중간중간에 아
운서의 맨트가 “늦게 가는 것보다 멈추는 것을 더 걱정하라고,” 하는 말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이러다간 오늘 나의 산행이 한국 신기록을 또 세우지-.' 하였다. 가장 늦게 가는 신기록 말이다.
이런 걸음으로 탐방지원소에서 0.7km 지점이라는 승가사 갈림길을 지나 1.8km라는 대남문 향한다. 이 코스는 북한산 등반 길에서 돌길이 유난히 많고 가파른 난코스다.
산에서 항상 반가운 이정표가 구기 분소에서 2.2km 갈림길이라며 내게 묻고 있다. 그냥 '0.3km 대남문'으로 직진할 것인가. '0.2kn' 문수사를 들러 대남문을 향할 것인가.
갑자기 옛날 문수사를 들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무렵 어느 정신질환자가 문수사 천연동굴에 불을 지른 후 얼마 안 되던 때의 기억이-. 그때 못 본 그 유명하다는 문수사 천연 동굴이 보고 싶어서 문수사를 향하여 난 보다 가파른 층계를 오르는데 최근에 새로 놓은 나무데크 계단 같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끝에 낙이란 말처럼 드디어 문수사다.
*. 문수사(文殊寺)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三角山) 보현봉(普賢峰,714m)' 아래 해발 645m에 위치한 문수사(文殊寺)는 종로구 구기동 2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로 북한산에서도 경치가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고려(高麗) 예종(睿宗) 때 스님이며 유명한 서예가인 탄연 국사(大鑑坦然國師)는 북한산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북한산 문수사 부근의 기암괴석과 천연동굴(天然洞窟)을 발견하고 그 굴속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목격하고 문수암(文殊庵)이라는 암자를 짓고 약 40평 규모의 천연동굴(天然洞窟)을 문수 굴(文殊窟)이라 명명(命名)하였다.
문수사는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경남 고성 문수사(文殊寺), 충북 반야사(般若寺)와 함께 '한국의 문수보살 4대 성지' 중의 하나다,
그후 천연동굴 속에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어 나한전으로 널리 알려져 예로부터 수많은 고승 석덕(高僧碩德)들이 오래 머물러 도를 닦던 주석처(住錫處)로, 왕가(王家)의 원찰(願刹)로도 널리 알려져 오늘날까지 영험한 기도도량(祈禱道場)으로 선남선녀들이 즐겨 찾는 문수사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이 절을 창건한 탄연(坦然) 국사는 명필로도 널리 알려져 '신라의 김생(金生), 고려의 최우(崔瑀), 유신(柳伸)'과 함께 ‘신품 4현(神品四賢)’의 한 분으로도 널리 알려진 서예가이기도 하다.(이규보의 동국 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어떠한 보살이신가.
‘완전한 지혜를 가진’ 보살로 석가모니(釋迦牟尼) 불보다 먼저 성불한 고불(古佛)이다. 속세에서는 각가지 모양으로 현신(現身)하는데, 보통 사자를 타고 오른손에 지검(智劍), 왼손에 연꽃을 들고 나타나는 보살이다.
문수사 대웅전(大雄殿)에는 삼존불(三尊佛)을 모셨는데 가운데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妃)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그 왼쪽의 협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고종(高宗)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모신 불상이요, 오른쪽에 모신 협시불(挾侍佛불은 보현보살이다. 대웅전(大雄殿)의 '대웅'은 불가에서는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다. 아름다운 곳에 전설이 어찌 없을까.
-조선조(朝鮮朝) 후기에 암행어사(暗行御史)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도 그의 아버지 박항한(朴恒限)이 오랫동안 후사(後嗣)가 없어서 이곳에서(울산 보문사란 설도 있음) 기와서 기도(祈禱)로 얻어진 인물(人物)이다. 그래서 이름도 문수(文秀)라 했다는 것이다.
-운암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前大統領)도 그의 어머니가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이곳까지 올라와 기도로 얻어진 위인이었다. 이 인연(因緣)으로 1960년 4.19 직전 82세의 고령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노구를 이끌고 친히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등정(登程)하였을 때 '文殊寺'’란 사액(寺額)을 남기고 사내 대중(寺內大衆)과 함께 기념사진(記念寫眞)도 찍어 현재 보존하고 있다 한다.
천년 사찰 문수사는 오랜 세월 동안 6,25 등을 겪으며 소진(燒盡)되었던 것을 재건 중창하여 현전 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500 나한을 모신 응진전(應眞殿)과 삼성각(三聖閣), 굴법당(窟法堂) 등이 남아 있다.
응진전(應眞殿)은 부처님의 제자인 16 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이지만 문수사는 암자가 바위 위에 있어 좁은 경내인지라 경내가 협소하여 500 나한까지 함께 모시고 있다.
보통의 경우 부처님의 제자 500 나한을 모신 전각을 나한전(羅漢殿)이라고 부른다.
500 나한(五百羅漢)이란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제자 마하가섭(摩訶迦葉)이 부처님 생전에 설법하신 내용을 모아 불경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인 비구(比丘)가 500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문수사 웅진전을 보니 16 나한과 500 나한을 함께 모셨는데 응진전 속에 500 나한을 함께 모신 것 같다.
나한(羅漢)이란 아라한(阿羅漢, Arhan)의 준말로 성자(聖者)를 의미하는 말이다.
아라한(阿羅漢)들은 응공(應供). 응진(應眞)의 자격을 갖춘 분들이다.
응공(應供)은 공양(供養)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을 의미하고, 응진(應眞)은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 있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나한전에는 주존불 석가모니 불을 봉안하는데 협시보살 좌우에 16 나한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을 봉안하여 놓는 것이다.
가섭(迦葉)은 석가가 죽은 뒤 제자들의 집단을 이끌어 가는 영도자요, 아난(阿難)은 석가의 사촌 동생으로 기억력이 특출하여 석가가 열반하신 후에 생전의 대부분을 기억하여 경권(經卷)을 완성한 16 나한 중 한 분이다.
*. 대남문(大南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뒤돌아 보며 문수사에서 150m 오르니 대남문(大南門)이었다.
웬만한 산꾼들이 2시간이면 오를 대남문을 나는 5시간도 더 넘게 올라온 것이다.
허리도 허리지만 내 나이 또래는 오르지 말아야 할 산을 올랐구나 하는 후회가 엄습한다.
대남문 벤치에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나를 기웃 보고 날아간다.
이곳은 사람들이 쉬면서 점심을 먹는 곳이어서 먹거리를 찾아온 놈인가 보다. 김밥과 고기 몇 점을 남겨 놓고 생각해 보니 오늘의 코스를 바꿔야겠다.
계획한 대로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행궁지- 중흥 사지- 중성문- 대서문- 북한산성 분소'로 하산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벌써 4시에 가까이 가고 있지 않은가.
'산꾼들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렷다.' 하면서 하산길을 물어 물어 평창동길로 접어 들어섰다. 그 길은
'대남문 - 대성문 - 일선사 - 0.7km/- 정릉 탐방지원센터 2.3km-/ 북악 공원 지킴터 2.6km'로 가야 하는데 행길이라 걱정이 앞선다.
일선사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고 일선사를 향하다 보니 넓은 광장에 화장실이 있고 포대화상(包袋和尙) 석상이 너그럽게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그보다 그 근처에 경고의 글이 눈에 띈다.
야생 유기견(들개) 출몰 주의 안내
1, 야생 유기견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고 산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2. 들개와 마주친 경우 등을 보이지 말고 뒷걸음으로 응시하면서 천천히 벗어나세요.
도움이 필요한 경우 02) 909-0497
그러고 보니 대남문 주위에서 보던 개 무리가 바로 들개였구나. 유난히 개를 좋아하는 나라서 불렀더니 큰 개 서너 마리가 올까 말까 망설이던데- 내가 큰일 날 번하였구나 하였다.
나 홀로 산행에서 하마터면 굶주린 개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지 아니했던가.
그러다 보니 힘이 쭈욱 빠지는 게 갑자기 피곤감이 몰려온다.
발길을 돌려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날은 저물어 가고 있는데 반갑지 않은 돌길의 연속이다. 보통 산길 같으면 돌길이나 층계가 있으면 그 옆에 흙길도 있으련만 그런 게 전혀 없다.
가끔 시큰 거리던 무릎에 이상 신호가 오며 돌길을 걷기가 벅차다. 게다가 운동화 차림이라서 걱정이 앞선다.
돌의 모양에 맞추어 바닥이 굽어져서 울퉁불퉁한 돌길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해는 벌써 졌고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벨이 요란히 울린다. 아내의 걱정하는 소리다. 등산 스틱을 양손에 든 처지에 돌길 위라서 전화를 앉아서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전화다. 벨은 몇 번 울리더니 요번에는 이 산 아래 구기동에 사는 동서의 걱정 어린 전화가 갈길을 막는다. 전화를 10여분 받다 보니 걱정하던 어둠이 오고 말았다. 이런 때에 전화는 오리려 훼방이요, 방해가 되는 일이었다. 급히 헤드 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가다 보니 비로소 느껴지는 탈진감! 기진맥진한 것을 비로소 깨닫겠다. 고령에는 암보다 낙상(落傷)이 더 무섭다는데 이를 어쩐다.
평지 오솔길이 전혀 없는 돌길에다 컴컴한 밤이요, 게다가 초행길이니 얼마나 남았는지 등산객도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달이라도 밝았으면 좋으련만 보름달은 벌써 지나 밤하늘에는 하현달도 지나 그믐달로 가고 있었다.
한 젊은이가 후라쉬도 없이 늠름하게 나를 제치고 씩씩하게 앞서 달려간다. 한참 있다가 해드 랜턴을 쓴 한 처녀가 나를 제치고 앞서 사라진다. 젊음은 저렇게도 좋은 것을 그 청춘은 나를 벌써 지나쳐 간 것이다.
그래도 오기가 앞선다. 내가 누군가. 백두산(白頭山)의 서파에서 북파까지 종주한 사람이요, 강풍경보 속에 한국에서 5번째로 높다는 덕유산을 향로봉에서 남덕유까지 단독 종주한 사람이요, 루사 태풍을 뚫고 지리산을 종주한 산꾼이요, 눈 내리는 설악산을 홀로 종주하다가 죽을 고비도 넘긴 산꾼이 아닌가. 따르릉 전화기가 또 울린다. 걱정하는 아내의 전화가 또 나를 주저앉게 한다.
어둠을 뚫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가다 보니 요번엔 작은 사위 전화다.
집에서는 걱정을 하고, 나는 위험한 초행 산의 밤 돌길을 걸어 내려가야만 하는데 그러다 보니 배터리가 고맙게도 나가 버리고 만다. 카메라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배터리가 다 된 것이지만 오히려 위험한 산길에서는 고맙게도 나가 버린 것이다.
아무리 느린 걸음이지만 저 아래 인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모처럼만에 평탄한 흙의 오솔길이 나를 행복하게 하더니 섭하게도 다시 돌길이다.
그러다 환한 불빛이 보인다. 평창동 지킴터 화장실 불빛이지만 지킴터는 불이 꺼진 지 오래 같다. 그러더니 '북한산 야간산행 금지'라는 등산 바닥에 설치해 놓은 원형 구조물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갑자기 피곤하던 몸과 정신이 말똥말똥 살아나는 것을 보니 아, 아아 나는 살았구나!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이렇게 완전히 살아 있구나!!
세상에 평지 길이 고마운 줄을 안 밤이었다. 아스팔트가 이렇게 고마운 줄을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을 또 한 번 느끼겠다.
아, 아아 나는 살았구나!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겨우 645m의 북한산 문수사를 다녀와서 왜 이렇게 호들갑 떠느냐고-'
그런 분이 있다면 묻고 싶다. 허리를 다쳐서 119 타고 병원 신세를 진 80대 중반의 늙다리가 한 달 이상 침대에서 일어나는데만 1시간 반 넘게 고생 고생하던 몸을 이끌고 험한 돌산을 올라 캄캄 칠야에 위험한 돌길을 어둠을 뚫고 하산해 보았냐고-.
그래서 하는 거다. 아, 아아! ilman은 살았구나! ilman 만세, 만만세다!!
ilman이 누구누구냐고? 이 사람이 너무 술을 좋아해서 건강을 위하여 1만 어치만 먹자고 붙인 자호(自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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