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修理山, 489m)은 남한산성(南漢山城)과 연인산(戀人山)에 이어 2009년에 세 번째로 지정된 경기도 도립공원(道立公園)이다. 북동쪽으로는 안양시(安養市), 동남쪽엔 군포시(軍浦市), 남서쪽은 안산시(安山市)와 경계에 있는 군포시(軍浦市)의 진산(鎭山)이다.
수도권의 도심 속에 있어 연간 140만여 명이 찾는 휴식처로 그 녹지(祿地)를 자랑하는 산이다.
그래서 수리산은 자연 개발보다는 그 보전에 중점을 두기 위해 지정된 도시공원(都市公園)이다. 그래서인가 이 산에는 산불조심 포스터가 유난히 많다. 수리산은 슬기봉(469m), 수암봉(398m), 태을봉(太乙峰 489m)과 관모봉(冠帽峰 426.2m)의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수리산(修理山)은 안산시, 군포시와 화성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최고봉 수리산(489m, 태을봉)과 슬기봉(469m)이 군포시 서측에 있어 군포시의 진산(鎭山)이 된다.
*. 수리산(修理山)의 어원
수리산의 어원 유래담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이야기로는 수리산의 빼어난 산봉의 모습이 마치 독수리와 같아 "수리산"이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이에 대하여 1864년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이런 글을 볼 수가 있다.
동오리의 산을 일컬어서 태을산(太乙山) 또는 견불산(見佛山)이라고 한다.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鷲岩峰, 秀岩峰)이 있어 그 수리 ‘취(鷲)’ 자로 인연하여 지방 사람들이 수리(修理)라 불렀다.(東五 一云太乙山 一云見佛山 頗峻高 有鷲岩峯 方言 謂鷲爲修理)
이런 ‘취암(鷲岩)’이란 말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나온다.(本朝因之. 鎭山. 曰鷲岩) 이 ‘취암(鷲岩)’을 ‘대전(大田)’을 순우리말로 ‘한밭’이라고 하듯이 순우리말로 ‘수리 암’이라 하다가 수리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암봉(秀岩峰)이란 이름이 남았을 것이다. 수리산의 어원(語源)으로는 신라 진흥왕(539∼575) 때 창건한 절이 신심(信心)을 닦는 성지(聖地)라 하여 수리사(修理寺)라 하였고, 따라서 산 이름도 수리산(修理山)이라 하였는데 그 후 빼어난 산이라 하여 수리산(秀理山)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설로는 조선왕조의 왕손(王孫)이 수도(修道)한 산이라 해서 수리산(修李山), 산세가 독수리의 부리와 같다 하여 수리산이라 했다는 등 여러 가지 설(說)들이 전하여 온다.
나의 수리산 산행은 1호선 전철 명학역(鳴鶴驛)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11시 넘어 도착한 데다가 종주하고 싶은 욕심에 시간을 아끼려고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이 역에서 가장 가깝다는 소곡안마을(신성고 정문)이 그 들머리였다. 여기서부터 관모봉까지는 1,450m 거리다.
산길은 쭉쭉 벋은 키 큰 소나무가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 길은 잘 가꾸어 놓은 길이요, 정성껏 마련한 이정표와 쉼터가 있어 도립공원(道立公園) 지정 전의 예보던 풍경이 아니다.
진달래는 잎을 활짝 열어 먼 고장에서 찾아온 나그네를 즐겁게 맞고 있다.
군포시가 정성껏 마련해 놓은 로프를 타고 오르다가 나무가 시야의 가림을 멈추는 곳에 관악산 사이의 군포시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군포(軍浦)란 이름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전설이다.
-옛날에는 이 고장 이름을 ‘軍飽(군포)’라 불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왜군에게 패하여 후퇴하여 승려 의병과 관군이 이곳에서 재정비할 때였다. 이때 이 고장 마을 사람들이 굶주린 관군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관군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었다. 이에 힘을 얻은 관군이 의병과 합세하여 왜병을 크게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그 후부터 이 지역을 굶주린 관군에게 배부르게 먹게 한 지역이라 하여 '군포(軍飽)'라 하였으나 시대 변천에 따라 지금처럼 '군포(軍浦)'로 한자가 바뀐 것이다. (출처: 군포시청 홈페이지)
얼마를 더 가니 철 층계가 가파르게 정상을 향하는데 그 정상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있다.
그 방향에 따라서 보이는 뾰족한 것이 벼슬아치들이 쓰는 관모(冠帽)를 닮았기 때문에 관모봉(冠帽峰)이라 하였다는 봉이다. 나는 웬만한 산꾼이면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올 수 있는 겨우 426.2m 높이의 야산 관모봉까지의 1,450m의 짧은 거리를 수없이 쉬면서 올랐다. 희수(喜壽)를 넘고 보니 나이는 나이라, 수리산도 나에게는 벅찬 산행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는 산이 수리산이라고 하던데 말이다.
관모봉(冠帽峰)에서 이 산의 최고봉이라는 태을봉(太乙峰)은 0.74km 거리에 있었다.
태을봉 가는 길은 능선길이 아니라 아깝게도 내림 길로 시작된다.
두 번째 만나는 노랑바위 갈림길을 지나니 다시 오름길 바로 위가 수리산의 정상인 것 같다.
요란한 흰 밧줄을 부여잡고 오르니 드넓은 마당이 있다 헬리콥터장이다. 그곳에 도립공원 이전에 못 보던 태을봉(太乙봉, 489.2m, =수리산)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있다.
- 옛 기록에 의하면 현재 수리산의 주봉인 태을봉이 옛날에는 태을산이라는 독립된 산으로 불렸다. ‘태을(太乙)’이란 동양사상에서 우주의 본체 즉 천지만물의 출현 및 성립의 근원을 뜻하며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천을봉, 태을봉이라 한다.
옛날에 왔을 때는 돌로 쌓은 탑이 있었고 어느 산악회에서 만든 조그만 정상석만이 있었던 곳이었다.
거기 마련된 식탁과 의자에 앉아 준비해 온 캔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분주히 들것을 들고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119 구조대원이었다. 추락 사고가 난 모양이다.
*. 119 구조대원들의 나라 사랑 , 겨레 사랑
수리산은 육산이지만 도중 도중 돌산이기도 한데 그중 가장 위험한 구간이 태을봉에서 1.86km 거리에 있는 슬기봉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90도의 절벽에 밧줄이 길게 매어진 구간을 막 지내려 하는데 추락한 40대의 여인의 피 묻은 얼굴이 들것에 실려 오르고 있다. 나는 급히 카메라를 열었다. "이 사진, 신문기사에 실릴 거예요." 하면서-.
요즈음 나는 '국제 인터넷 뉴스 신문' 기자로 위촉받아 활동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고마운 우리 119 구조대원들이 한 인간의 목숨을 구하고 있는 지고(至高)한 순간을 취재한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계속되는 길은 너덜겅으로 그 위에 낙엽까지 덮여 길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바윗길을 두 스틱에 의지하여 기다시피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조용한 산중에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다. 아마도 추락한 부상자 여인을 싣고 급히 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헬기 소리 같다. 부디 무사하기를 기원해 본다.
힘들게 힘들게 너덜겅 하산 길을 마치고 슬기봉과 출렁다리 갈림길에서 아점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하산하는 아까 보았던 그 119 대원들을 만났다. 다음은 그중 양(梁) 대원이 내게 보낸 문자 메일이고 이에 답하여 보낸 나의 졸 시(拙詩)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좀 전에 수리산에 출동했던 안양 119 구조대 소방교 양재영입니다. 현장에서 구조업무를 하다 보면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사진도 찍어 주시고 글도 써 주신다고 하니 정말 힘이 납니다. 혹시 그 사진을 메시지나 E-mail로 받아 볼 수 있을까요?~'
*. 아아, 119여
-안양소방서 1‘19 구조대원’ 들에게
내가 젊었다면
나도 119 구조대원 되어 살고 싶다.
나라와 겨레가 위급으로 부르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작은 영웅의 삶을 살고 싶어서다.
나만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너와 우리를 위해 사는 젊음이란
얼마나 찬란한 축복이던가.
옛날 우리 장인(丈人)이 마지막 생명을 다투시던 날
앰불런스로 위급을 도움받던 날,
드린 감사의 금일봉에
가슴을 찌르던 그 말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아닙니다. 우리는 Korea의 119 구조대원입니다."
스마트폰과 스틱에 매단 호루라기로 무장하고
희수(喜壽) 나이 지나서도
내가 이렇게 홀로 전국의 산을 누빌 수 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부르면 달려오는
다정한 형제와 가족 같은
든든한 우리 119 구조대원이 있어서인가 보다.
- 2014년 수리산 사고 현장에서
*. 출렁다리로 가는 길
출렁다리로 가는 길은 애써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야 했다. 그러나 조금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연 그대로의 너덜겅이 내게 준 교훈 때문이었다. 인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통나무로 곱게 만든 오름길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길이 길 다우니 마음도 편안하였다. 그 길에는 진달래가 더 만발하여 있었다.
슬기봉 코스를 생략하고 구태여 출렁다리를 택한 것은 새로운 것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슬기봉은 오르지도 못하고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하산하는 길이 아니던가.
통나무 길을 올라 방금 핀 진달래 길을 지나 고운 산길을 가다 보니 나를 막아서는 정자가 있다. 제3전망대였다.
전망대는 말뿐 그 전망을 나무들이 모두 막아서 있다. 그 틈 사이로 수리터널과 슬기봉의 군부대와 수암봉이 겨우 보인다. 전망대이니 그 이름값을 위해서라도 소나무 가지를 전지(剪枝)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제3전망대서 출렁다리까지는 200m 거리에 있었다.
수리산 출렁다리는 2012년 12월에 안양시 만안구에서 2~3 전망대 중간에 설치한 길이 25m의 다리다.
일명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리산 출렁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이벤트 표지가 있다. 빨강(사랑), 노랑(가족), 파랑(건강) 그중 버튼 하나를 누르면 다리를 건너는 동안 관련 멘트와 어울리는 감미로운 음악을 스피커를 통해 청취할 수 있게 방송 시스템을 설치한 것이다.
노란 가족 버튼을 눌러보았더니 묵묵부답이다. 운영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이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출렁다리란 구름다리를 말한다. 구름다리란 한길이나 철길 등을 건너질러 공중으로 놓은 다리다. 산속의 그 구름다리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데 거기에다가 안양시는 멋을 보텐 것이다. 그 등산객을 위한 구체적인 사랑에 박수를 보내지만 '출렁다리'란 이름을 '흔들 다리'로 바꿨으면 좋겠다. '출렁'이란 말은 물과 관계된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멋있는 진달래 산길을 지나 아름다운 나무 층계를 지나니 넓은 마당이 있다. 바로 그 위가 6각 정자가 있는 제2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는 오늘 가기로 했던 슬기봉 군부대와 안산(安山)의 진산이며 안산천(安山川)의 발원지라는 수암봉(395m)이 보이고 바로 오른쪽에 다녀온 태을봉이 나를 굽어보고 있다.
바로 그 아래가 철쭉꽃 만개한 제1전망대였다. 맑은 날에는 안산 시화공단, 시흥시(始興市)와 공명시(光明市)까지 보인다는데 요즈음은 미세먼지의 날씨라 속절없이 전망 안내판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 병목 석탑
이 '병목 석탑' 아래가 '병목안 시립공원'이다. 광장에 폭포도 있고 시민들의 쉼터도 있다.
'병목안'이란 이 아랫동네인 안양9동의 마을의 옛 이름이다.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 입구는 좁으나 그 안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 하여 생긴 마을 명칭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안양시에서 1990년에 수리산 산림욕장과 함께 준공한 탑이 '병목 석탑'이다. 높이 7m, 폭 3m의 이 탑은 병목안의 5만 6천여 개의 자연석들을 모아 쌓은 탑으로 한국 최대의 자연석탑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제1만남의 광장을 지나 숲 속 교실 등 병목 시민공원을 둘러보며 병목캠푸장을 지나 귀가를 서둘러야겠다.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이 어디겠는가?
이 시간에 나만을 다리고 있는 오직 하나의 여인인 아내가 사는 일산(一山)으로 향한다. 명학역까지 15번 버스를 타고. 오늘의 행복을 주던 수리산의 사진을 한 아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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