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ilman 2017. 7. 25. 18:18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 선운사 가는 길
어제 서울서 여수(麗水)에 함께 온 우리 일행과 헤어져서 나홀로 순천(順天)에 와서는 찜질방 신세를 졌다.
수도권에서는 좀처럼 오기 힘든 여수에 왔던 길에 ‘조계산도립공원’ 산행을 하며 선암사 송광사와, 거기에 더할 수 있다면 낙안읍성, 순천만의 자료까지 구하고 싶어서였다.
나와 같이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에서는 동반자를 구하기가 불가능하다.
팔순(八旬)을 향하여 가는 나이는 마음이 몸을 부려 먹는 젊은 시절과 달리, 몸이 마음을 부리는 연령이다.
그래도 끝까지 내 마음을 따라 주는 고마운 내 몸 혼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고장 초행 산길에 고령(高齡)의 나 같은 늙다리의 단독 종주산행이란 어쩌면 목숨을 건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다가 만약 어떤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최선을 사는 몸짓이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나와 같은 나이가, 홀로 먼 낯선 고장에 와서, 여행에서는 피와 같이 소중한 자금을 아끼려고 하루 저녁 6,000원 짜리 찜질방에서 뒹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낭만인가를-.
순천에서 조계산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역전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송광사로 가든지(1시간 20분, 40분 간격),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선암사에 가는 것이다. (45분, 30분 간격)
순천역 앞 버스 정류소 전자 게시판이.행선지 버스와 그 시간표 그리고 간격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려 주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발전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선암사 가는 내일 새벽 첫차는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는 모양이다.

*. 승선교(昇仙橋, 보물 재 400호) 이야기 
  선암사 버스정류소 널찍한 광장에 이르니 조계산이 멀리서 나를 반긴다.
선운사를 향하여 계곡 따라 조금 오르다 보니 좌측 계곡 넘어에 상가가 즐비하다.
그 근처에 ‘남도 300리길 안내판’ 이 있는데 300리 길은 어디서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300리 길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시구(詩句)에서 따온 것이다.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그 안내판 지도를 보니 서쪽에 송광사와 주암호, 동쪽에 선암사와 상사호가 있다. 선암사 뒷산이 조계산 장군봉(884.3m)이요, 송광사 뒷산이 조계산 연산봉(851m)이다.
현수막이 요란하여 살펴보니 .“선암사, 승선교 ‘한국 최고 여행지’ 선정”(국내 유일'사찰 관광지 2관왕')이란 내용이 가슴을 뛰게 한다. 내가 드디어 이런 곳을 찾아 천리 길을 이른 새벽에 찾아왔구나 하는 감격이었다.
동 부도군(東浮屠群)을 지나니 우측에 있는 ‘순천전통야생차 체험관’ 은 이른 아침이라서 굳게 닫쳐 있다.
매표소 근처는 어디나 산과 절의 정보가 가득하다.
'이 절에서 제일 유명한 선암사의 랜드 마크라는 승선교(昇仙橋)가 어딜까/' 하는데 저 멀리 무지개 같은 다리가 나를 부른다.

- 선암사 승선교는 조선 숙종 때에(1713년) 호암대사(護巖大師)가 화강암으로 축조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반원형 아치형 홍예교(虹霓橋)입니다. 여름에 이 계곡에 물이 차면 물에 비쳐진 모습과 어울려 완벽한 하나의 멋진 원을 이룹니다. 교각은 자연 암반 위에 설치하였으나 세월은 바위도 이길 수 없어 290년이 지난 2004년에 암반부에 석재를 보충하는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습니다.
 (사진: 대원사 발간 "선암사"에서)
그 승선교 왼쪽 옆에 긴 돌들이 있어 보니 수리할 때 147개의 홍예석 중 노후하여 교체한 30개를 전시해 놓은 것이다.
이 승선교에는 호암대사와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숙종 24년 호암대사(護巖大師)가 이곳에서 관음보살 뵙기를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 몸을 던지려 하였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여 주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신을 구해준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으니 이것 바로 승선교(昇仙橋,昇仙橋, 보물 재 400호)다.

 아름다움에도 동반자가 있는가. 그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어 운치를 더하여 주고 있다. 이를 지나고 보니 후회가 난다. 계곡 물가로 내려가서 승선루의 아치형 문을 통하여 보면 강선루가 반원 안에 들어오고, 그러면 강선루 위에 파란 하늘에 걸린 무지개가 걸린 듯이 보이는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데-.

*.선암사(仙巖寺) 이야기
  (아도화상과 도선대사)
-선암사(仙巖寺)는 순천시 죽학리 조계산(해발884m) 장군봉 기슭에 위치한다. 
백제 아도화상(阿度和尙, 도선국사(道詵國師라고도 함) 창건하였다는 절이다. 고려시대 대국국사 의천(義天)이 대각암(大覺庵)에 머물면서 중창할 때에는 법당 13동, 전각 12동, 암자가 19암자에 이르렀다 하나 정유재란, 두 차례 화재, 6.25, 여순사건 등으로 옛 건물은 거의 다 소실되고 현재 선암사 안내도에는 암자와 부도 등을 다 포함해서 48개 건물이 있을 뿐이다. 송광사에는 승선교를 비롯하여 지정문화재(국가지정 18점, 도지정 9점, 문화재 자료) 3점이 있다. 대웅전 옆 성보박물관에는 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다음은 선암사의 어원에 대하여 전해 오는 두 가지의 이야기다.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도선대사에게 말하기를 “만일 세 개의 암자를 창건한다면 삼한(三韓)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따라서 도선(道詵)이 세 암자를 창건하였는데 그 암자가 仙庵, 雲庵, 龍庵이어서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

-선암사 서쪽에 높이가 10 장(丈: 1장은 어른 키)이나 되고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그 바위 위에서 옛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여 선암(仙巖)이라 하였다. 그 바위 이름이 선암사(仙巖寺)라는 절 이름이 되었다 한다.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니 한 연못이 있는데 그 앞에 ‘삼인당(三印塘)’이란 설명이 있다.
삼인당이란 건물이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아보다가 그 연못이 삼인당(三印塘)이었던 것을 후에야 알았다. 한자 ‘못 塘’ 자를 건성보아 집 ‘堂’자와 혼동하였던 것이다.
도선국사가 축조했다는 삼인당(三印塘)은 긴 연못 안에 섬이 있는 한국에서는 유일무이한 양식의 연못이라는데 그냥 지나친 것이다.

‘삼인(三印)’이란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르는 것이 없고(諸行無常印), 나(我)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므로(諸法無我印),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涅槃靜寂印)라는 오묘한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라는데-.
  (위 사진: 대원사의 '선암사')

이 선암사에는 다른 절과 다른 두 가지 특색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불교수호신인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없는 것이다.
‘曹溪山仙巖寺’란 현판의 일주문(一柱門,지방문화재 제96호 조선시대)을 지나면 누하진입(樓下進入)문인 범종루(梵鐘樓)가 나타나고 거길 지나니 대웅전(보물 1311호) 앞 두 개의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통일신라시대)인데, 이상하게도 모든 절에 있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없다. 이는 조계사 주봉인 장군봉(將軍峰,884.3)의 호위를 받기 때문이라 하여 그 장군이 어떤 장군을 뜻하는지 선암사 스님께 물어 보기도 하고, 문헌을 아무리 뒤져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다. 장군봉의 장군은 특정 장군이 아닌 것 같다. 장군이  나라를 지키듯이 절을 시키는 사천왕 같은 불교의 수호신의 하나로 보아야겠다.
  두 번째 선암사의 특색은 대웅전의 어간문(御間門)으로는 어느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이다.
드나드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온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과 같은 분이라니 어느 누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문이겠는가.
여기서 어간문(御間門)이란 대웅전의 전면의 문을 말하는 것이다.
금년은 고려 시대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크게 중창한 의천(義天) 대각국사 탄신 956주년이라서인가. 그 다례(茶禮) 및 만등(萬燈)불사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보니 선암사가 천년 사찰이란 말이 실감난다. 

선암사의 곳곳을 나름대로는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아 가지고 조계산 등산길에서 잠간 쉬면서 거기서 입수한 자료를 보다가 또 한 번 후회하였다.
이 절에서 측간(厠間)을 그냥 지나친 것이다.
뒤ㅅ간’ 이라는 옛 표기도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을 따로따로 분리하여 놓은 조선시대의 해우소(解憂所)로 '문화재자료 214호'가 되는 특이한 재래식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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