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향일암(向日庵) 산행 *. 여수 10경(麗水10景)
10여 년 전 가을 나는 통영에서 엔젤호를 타고 여수를 향할 때 본 남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감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 일이 있다.
솟았는가, 떠 있는가, 수석(壽石) 같은 새들의 고향(故鄕) 고기들의 천국(天國), 낚시꾼의 꿈
섬, 섬, 섬, 섬-.
파도(波濤)는 육지를 그리는 교향곡 노을은 내일을 꿈꾸는 이별의 노래. 끄덕이며, 끄덕이며 카메라의 눈을 활짝 열고 있었네. -여수를 향하며 여수(麗水)는 물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여수(麗水)라 하였을까? 우리는 그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종착역, 여수에 어제(10월 5일)부터 개통된 KTX를 타고 왔다. 새마을호로 5시간 13분이나 걸리던 여수를 KTX로 3시간7분만에 여수에 온 것이다. 엑스포가 열리는 내년에는 2시간 57분으로 단축된다는 급행열차다. 2012년에 열린다는 여수엑스포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위해 여수 시민이 온몸을 다해 준비한 쾌거다. Expeo 란 세계국제박람회를 말한다. 세계역사와 문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 그동안 엑스포의 위력이다.
세계최초의 증기 기관차(런던엑스포, 1851년), 전화기(미국 필라델피아 엑스포, 1876년), 자동차(벨기에 인트베르펜, 1885년), TV(미국 뉴욕엑스포)가 모두 세계박람회에서 처음 탄생한 것들이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여수에서 내년(2012년) 여수 엑스포(Expeo) 가 열린다는 것에 무관심해 온 내가 죄스럽다. 누가 산천은 의구(依舊)하다고 하였던가. 오히려 인걸(人傑)은 유구(悠久)한데 여수는 너무 아름답게 변해 있었다. 역사(驛舍)의 이름이 ‘여수엑스포역’으로 개명한 것처럼 오동도와 건너편의 해안이 하나가 되어 천지개벽한 아름다움이 되어 있었다. 평범하였던 연안을 살아 숨 쉬는 연안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만큼 현대의 1년은 옛날의 10년 이상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 우리들은 여수 거북선체육관에서 거행되는 ‘전국민속공연대회’에 초청 받아 8명이 왔다. 그러나 여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천리가 넘는 거리라.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이 기회에 여수 몇 곳을 둘러본 후 나 홀로 따로 떨어져서 순천의 조계산(曹溪山) 산행을 하겠디는 것이 나의 계획이다. 지도를 유심히 보면 여수 반도는 한 마리 게가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돌산을 잡으려고 집게를 약간 벌린 모습처럼 생겼다. 그 집게발 오른쪽에 그 유명한 동백섬 오동도(梧桐島)가 있다. 오동도는 조선 시대에 수군 연병장으로, 거기서 나는 대로 만든 화살대가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10만 명의 왜군을 물리칠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보다 오동도는 동백섬으로 유명한데 거기에 몇 가지 전설이 전하여 온다. 다음은 그중의 하나다. 귀양 살던 어부가 고기잡이 하러간 사이 겁탈하려는 도둑떼 피해 달아나다 그 아내 죽었다네. 어부가 울며 묻은 무덤 가 피어났다네, 붉은 동백꽃이
여수에 가서 꼭 보아야 할 산이 여주의 진산(鎭山)인 종고산(鐘鼓山)이고, 그 중턱에 있는 진남관(鎭南館, 국보 304호)이다. 종고산(鐘鼓山, 219m)은 임진왜란 무렵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승전고를 울릴 때 이산에서도 은은한 종과 북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순신장군이 몸소 '종고산(鐘鼓山)'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는 산이다. 그 중턱에 진남관(鎭南館,, 국보304 호)이 있다. 전라좌수영 객사로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鎭海褸)가 있던 자리에 진남관이 세워진 조선 400년 간 수군의 중심 기지였던 곳이다. 진남관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단층목조건물 규모가 가장 크다는 건물이다. 그 기둥만도 68개 나 된다. 그러나 종고산에는 좋지않은 고약한 전설도 전하여 오고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고장은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의 강을 품지 않은 지형이다. 게다가 종고산의 모습은 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고, 소리가 쉬 날뿐더러 쉬 끊기는 종을 닮았다. 그래서 여수에서 돈을 많이 번 이는 종이 울리기 전에 재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덕보다는 수산업의 투기성의 이야기 때문에 생긴 이야기라고 식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춘천의 봉의산이 삼태기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어서 돈을 벌면 떠나야 한다는 전설과도 비슷하다. 여수 구경을 쉽게 하는 방법으로는 몇 가지가 있다. -‘여수시티 투어’: 여수역(10:30):- 오동도(10:40)- 박람회홍보관(12:05)- 진남관(12:30)- 해양수산과학관(14:20)- 향일암(15:10)- 수산시장(17:20)- 여수역(18:10)”<성인 3.000원> - 열차 투어: 여수역- 오동도- 진남관- 수산시장- 숙박- 보성녹차밭- 낙안읍성- 순천만- 순천역(여차운임 49,200원 랜트카 <성인 50,000원> 위 투어가 혹 중단 되거나 변경 될 수도 있겠지만 나그네는 그 코스만이라도 알아두고 여수 여행에 참고할 일이다.. 여수를 제대로 보려면 여수10경 을 보아야 한다. (사진 출처: 여수시청 홈페이지) 그러나 제한된 시간에 그 10경을 어찌 다 볼 수 있으랴. 여행은 생략의 예술이니 나는 그 10경 중 돌산대교(突山大橋, 3경)와 향일암(向日庵, 2경)만은 꼭 보고 서둘러 조계산이 있는 순천(順天)으로 떠나야겠다. *. 돌산대교의 야경
여천 나르샤호텔에서 저녁 식사 후 나는 사진작가 Y교수와 돌산대교(3경)의 야경을 구경하러 나섰다. 여수의 야경(夜景)으로는 '여수산단야경'도 일품이라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바다와 어울린 돌산대교 야경 만하랴 해서였다. 그 야경의 명소가 다리 건너 돌산도 우두리에 있는 돌산공원(突山公園)이었다. 돌산공원은 여수만과 한려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여수 시민들의 휴식처로 신혼 신부 결혼 사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수에 밤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색깔을 달리하는 돌산대교와 장군도의 야경을 보러 모여 드는 곳이다.. 돌산공원에는 ‘돌산대교 준공 기념탑’, ‘어민의상’이 있다. 공원의 가장 높은 광장에 1999년에 여수의 로고를 형상화하여 만든 타임캡슐이 있다지만 절전을 위해서인가, 불을 밝히지 않아 너무 어두워서 자세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 돌산대교(突山大橋)는 1984년에 완공된 여수시 남산동과 돌산읍 우두리 사이를 연결한 다리로 길이 450m, 폭 11.7m, 높이가 62m인 국내 최초의 사장교다. 사장교(斜張橋)란 교각 대신 높이 세운 버팀 기둥 위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쇠줄에 매달아 놓은 다리를 말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니 보시라, 그 모습을.
*. 금오산 향일암의 일출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러 돌산도의 향일암을 향한다.
그런데 왜 돌산도라는 지명을 얻었을까? 나는 돌산에 돌이 많은 산이라서 돌산[石山]이라 하였겠지- 하면서도 지명에 '우리말 + 한자어'인 것에 의아해 하다가 '突山'(돌산)의 어원과 관계된 전설을 찾아보곤 무릎을 쳤다. 돌산에는 대미산(大美山, 395.3m), 봉황산(鳳凰山, 460m), 금오산(金鰲山,323 m), 등 큰 산이 8 이 있다. 그래서 '突 '자를 파자하면 '山 + 八+ 大= 突' 이기 때문에 突山(돌산)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그 여덟 산 중에 가장 남쪽에 향일암(向日庵)을 품고 있는 산이 금오산(金鰲山)이다. .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은 선덕여왕 13년(AD644년) 원효대사가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광종 때(AD958년)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鰲庵)으로 개칭하여 불러 오다가, 남해의 수평선에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하도 아름다워서 조선 숙종때(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向日庵)'이라고 명명(命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군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향일암은 해안가 수직 절벽 위에 건립 된 사찰이다. 이 향일암에 봄이 오면 일출이 기암절벽 사이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식물들과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이룬다.
버스 주차장에 하차하니 향일암 가는 길은 언덕길이요, 길가에 갓김치집 아주머니가 맛을 보고 가라고 손짓한다. 갓김치가 여수의 특산물이니 맛보고 내려 올 때 기념으로 챙겨 갈 일이다.. 거기서 암자를 향해 돌층계로 오르는 곳에 커다란 돌거북이 한쌍이 하늘을 우러고 있고, 꿈틀거리는 두 마리 용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金鰲山向日庵’(금오산향일암)이란 현판의 멋진 일주문(一柱門)이 있다.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이 문은 사바세계의 번뇌를 털어 버리고 부처님의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문이다. 지금 시각은 6시 20분 언듯언듯 보이는 바다는 막 해가 뜨려는지 노을을 거느리고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타고 새로 짓는 건물 그림) 돌문을 지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불타서 새로 짓고 있는 대웅전과 종각 이었다. 그 대웅전 마당에 선착객들 30여 명이 카메라를 들고 밝아오는 동해를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여수에서는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閑麗水道海上國立公園)을 보고, 향일암에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多島海海上國立公園)을 보고 있으니 여정의 기쁨과 안복(眼福) 두 배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출명소(日出名所)로는 이 향일암과 함께 동해의 추암(錐岩), 강릉 정동진(正東津), 포항 호미곶(虎尾곶)이 가장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 향일암 일출은 바다가 아닌 산의 암자에서 굽어보는 일출이니 그중에도 으뜸으로 꼽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해가 뜨고 있다. 붉은 해가 뜨고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은 조국 광복을 생각하며 일출을 노래하였다는데, 오늘 나는 삶의 기쁨과 환희로 그의 시를 읊고 있다. 그 먼 수도권 일산(一山)에서 남쪽나라 향일암의 일출을 보고자 달려온 우리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행의 행복과 그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금년 새 아침 거가대교(巨加大橋)를 지나 호미곶에 갔을 때 눈보라로 보지 못한 일출을 오늘 향일암에서 드디어 보고 있으니 그 감격이 남달랐다. '"산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햐야 솟아라.~'
대웅전을 지나 수많은 작은 거북군 앞 석문을 지나 올라가면 두 동자가 우러러 보는 곳에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이 일출을 향해 지긋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 그 마당 끝 난간 아래의 네모진 바위에 복을 비는 동전이 수북히 쌓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원효대사’가 참선 하던 곳이 원효대(元曉臺)요, 참선하다가 관음보살을 뵈온 그 자리에 세웠다는 불상이 바로 해수관음보살이었다.
바다를 향한 돌담에는 거북이들이 해를 향해 도열한 모습이 또한 인상 깊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로는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남해 보리암은이요,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여 ‘4대 해수관음성지‘라고 한다.
(좌: 불타기 전의 향일암 한국산하에서 퍼온 사진 어느분 사진이던가?) 그런데 그런데 이 관음성지인 향일암에 안타깝게도 2009년. 겨울 원인 모르는 화재가 발생하여 황금으로 단청한 그 멋진 대웅전과 종무실, 종각이 전소되고 말아서 그 재건이 아직도 한창이었다. 그 원인으로 불타기 그 전 해에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광신도 정씨(43세 여)의 난동으로 대웅전 불상 등이 훼손 된 일로 하여 이 번에도 툭정 종교가 그 누명을 쓰게 된 것이 안타깝다. 이것은 사찰입장료를 수많은 관광객에게 2천원씩이나 받아 거금을 챙기면서도 CC TV 하나 설치해 놓지 않은 향일암 측의 과실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 금오산(金鰲山) 가는 길 해가 중천에 뜨는 것을 보고 금오산을 오르려고 향일암에서 110m 거리를 내려 가니 그 들머리에 금오산 정상이 410m라는 이정표가 있다. 멋진 나무 층계가 쇠층계로 바뀌더니 그 층계가 계속 구불구불 정상을 향하고 있다.
정상을 향할수록 돌아더 보는 경치가 더 넓어지는데 향일암의 지세가 흘러내린 바다에 접한 모습이 거북이 얼굴 형상이다. 거기서 반대로 우러러 정상을 보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거북의 등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그래 그런가. 바위에 새겨진 무늬가 오각형 무늬거북 등의 무늬다. 금오산(金鰲山)이란 이름의 ‘鰲(오)’가 자라 ‘鰲(오)’ 자이니 그래서 옛 절 이름이 ‘금오암(金鰲庵)’이요, 산 이름이 ‘금오산(金鰲山)’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좌: 동행한 윤경태교수)
굽어보니 바다와 접한 연안이 활처럼 굽어진 곳에 임포(荏浦)마을이 있다. 임포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큰 인물의 장사(壯士)가 태어날 지형이었다. 그래서 일본강압기 시대 이를 염려한 일인들이 거북이가 잘 먹는 콩 ‘荏'(임)자를 써서 지명을 임포임포(荏浦)라 했다 한다. 드디어 드디어 그동안 그렇게도 벼르던 금오산 정상에 섰다. 젊었던 시절 향일암은 친구 따라 왔지만, 택시비를 아낀다고 향일암까지도 오르지도 않고 발길을 돌린 곳이라서 그동안 내 얼마나 오고 싶어 벼르던 산이요 암자이던가.
이곳에 함께 가자고 굳게 약속하던 일행이 여독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여수에 있어 서둘러 주차장에 가보니 여수를 가는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1,100원이면 올 곳을 3만원이나 들여서 왔던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향일암을 오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그 버스 시간표를 여기에 남긴다. 자꾸 하산길 현수막에서 본 부처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오시는 길에 부처님 마음을 배워서 가시는 길에 부처님 마음을 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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