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팔영산 능가사

ilman 2017. 6. 18. 11:43

 

팔영산 능가사
세수하던 중국 위왕(魏王) 대야에 비친 8봉
어명 따라 고흥서 8봉산 발견하여
여덟 八(팔)
그림자 影(영), 뫼 山(산)
八影山(팔영산) 이름하다


중국 왕이 세수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산을 보고 찾으라 명하여 찾았다는 전설을 가진 산이 한국에 몇 개 더 전하는 걸 보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서 과장하여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만든 전설 같다. 어떻거나 8봉으로 구성된 이 산의 각 봉우리에 어느 때부터인가 각각 이름을 붙였고 고흥군에서는 각 봉두에다가 대리석으로 표석을 만들어 놓았다.   팔영산을 불가(佛家)에서는 '능가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늘에 실 가듯이 명산 팔영산에 속한 명사찰이 능가사로, 원점회귀 등산에서는 능가사는 팔영산의 들머리요 종점이기도 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능가사는 송광사의 말사이지만 옛날에는 순천의 송광사, 구례의 화엄사, 해남의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4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大刹)이었다.
능가사는 1500년 전 신라 눌지왕 때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짓고 처음 이름을 보현사(普賢寺) 하였다지만 임란 때 불타 버리고 말았다. 그 후에 지리산에서 수도하던 정현대사(正玄大師) 벽천(碧川)이 90살 되던 어느 날 꿈에서 '이 산에 가서 절을 짓고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의 계시를 받고 신축하고 이름을 능가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능가'란 인도에서 명산을 '능가'라 하므로 여기에 한자를 차자하여 '능가사'라 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을 위하여 설법하였다는 '능가경'이란 이름도 그래서 유래한 말이다. 이 절을 들어가다 보면 특이한 것이 있다. 산기슭에 세운 산사(山寺)가 아니라 평지(平地) 사찰이란 점이 그렇고, 사천왕문을 향하여 북향하고 있는 대웅전이 그러하다. 그래서 일주문을 겸한 사천왕문을 통하여 마주 보이는 대웅전이 유난히 아름다운 절이 능가사다.

이 절에서 꼭 놓치지 않고 보아야 할 곳으로는 사천왕문에 모신 '목조사천왕상'(전남유형문화재 224호)과 '대웅전('보물1307호)에 모셨다는 350년 전에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도금하였다는 불상 8위와, 157cm의 '범종'(전남유형문화재69호)과

5.1m의 고색창연한 '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70호)다. 그래서 나는 사천왕문의 고목 느티나무부터 카메라에 담다 보니까  일행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절의 모든 곳에 인기척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등산로가 어디로 났는지 물어볼 사람 하나 없었다. 도대체 우리 일행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절 탑 앞에 있던 것을 덕목이란 스님이 도술로 절 뒤로 옮겨 놓았다는 귀부(龜趺)가 유명한 '사적비' 근처에도, 단청을 하지 않아서 더 멋져 보이는 '응직전'(應直殿)에도 일행이 없다. 산(山)만을 향하는 것이 산꾼의 습성이어서 절을 그냥 지나가듯이 통과해 버린 모양이다.
내가 시큰거리는 무릎을 끌며 체력의 한계를 무릅쓰고도 정상에 오르는 것이나, 그 산에서 가장 깊은 역사를 품고 있는 사찰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언제 다시 오랴?' 하는 나이를 의식해서이기도 하였지만, 다시 올 수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 팔팔한 젊음과 그보다 산을 우선하는 마음이 부럽다.  

하릴없이 동백꽃과 개나리가 만발한 절을 둘러보고, 샘가에서 수통에 물을 바꾸어 담아가지고 '어느 곳으로 가야 팔영산일까?' 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보니 능가사 왼쪽으로 통하는 큰 길이 팔영산을 오르고 있다. 팔영산에서 흘러내리는 만공골 옆 등산로인데 봄 가뭄 때문인가 물이 완전히 말라있었다.  절을 막 벗어나니 부도(浮屠)군 있다. 조선 후기의 승려로 사제간이었던 추계당과 사영당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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