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운주사(雲住寺)(1)

ilman 2017. 6. 7. 19:25

운주사(雲住寺) 이야기

 

 운주사(雲住寺) 향하고 있다.

천불 천탑(千佛千塔)의 사찰 화순군(和順郡) 운주사(雲住寺)를 가고 있다.  
운주사 한자 표기로는 '雲住寺, 運舟寺, 雲柱寺, 運住寺' 등으로 쓴다.
운주사 일주문(一柱門)에는'靈龜山雲住寺(영구산운주사)' 라 쓴 현판이 있다.
그 운주사를 각 문헌에서 '천불산(千佛山) 기슭에 있는 사찰'이라는 기록을 접하다가 일주문을 보니 천불산의 또 다른 이름이 '영구산(靈龜山)'인  모양이다.

이 운주 사지(寺祉)를 1979년과 1984년 발굴조사를 하다가 '順治八年 雲住寺丸恩(순치팔년운주사환은)'이라 쓰여진 기와 조각[瓦片]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일주문 현판처럼 운주사(雲住寺)라 하는 것 같다.

 

*. 운주사(運舟寺) 전설 

200m 내외의 고산이 아닌 천불산을 두고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운주사(雲住寺)란 이름이 이상하듯이  '운항하는 배'라는 '운주사(運舟寺)'란 기이한 이름도 그렇다. 여기에는 풍수지리학의 개조(開祖) 도선대사(道詵大師)에 얽힌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여 온다. 
 

- 영암 월출산이 고향인 도선대사(道詵大師)는  한반도의 모습을 행주형국(行舟形局)으로 태평양을 항하여 나아가는 배 모양으로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동쪽은 태백산이 뻗어 있어 산이 많은 영남은 무거운데 서쪽 호남은 평야가 많아 가벼워서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리서 그대로 둔다면 배가 심히 흔들리고 드디어는 국운이  쇄할 것이라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운주사 계곡에 천불천탑을 하루낮 하룻밤에 조성하여 균형을 맞게 하기 위해서 운주사를 세우고 돛대에 해당하는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세웠다. 이 절에서 멀지 않은 춘양면(春陽面)에 '돛대봉'이 있는 것이나, 신(神)들이 해가 지지 않게 해들 묶어 놓았었다는 '일봉암(日封岩)'이 있는 것이 이 전설을 뒤받침해 주고 있는 증표다.

 

*천불 천탑(千佛千塔) 

운주사에 대한 가장 오래 된 문헌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천불(千佛)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雲住寺 在千佛山 寺之左右 山脊石佛石塔各一千"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1,000여 기가 있다 . 

그런데 내가 막상 와서 운주사 사지(寺祉)나 골짜기의 규모를 보니 천불, 선탑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숫자 같다. 우리가 100만 장자라 하듯이' 천'은 많다는 뜻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역대로 그 문화재 보호가 제대로 된 것 같지도 않다.

 

 

  -운주사( 雲住寺 )를 개창한 후 후대에 와서 절의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서 이곳 주민들이 탑을 뜯어서 제집 뜰을 꾸미거나 울타리를 만들기도 하였고, 무덤의 상석이나 구둘이나 주춧돌로 쓰기도 하였다. 
돌부처는 머리를 잘라 버리고 몸통을 개조하여 다듬이 돌이나 가구로 만들어 쓰는 바람에 일제 강점기에는 240기쯤이던 것이 지금은 크고 작은 돌부처 70개, 석탑이 18기가 남았을 뿐이니 나머지는 망실(亡失) 된 것이다.
그뿐인가 남은 돌부처마져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이가 없거나, 병에 걸린 경우에는 불상의 코를 떼내다가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으로 돌부처의 코까지 떼어 가 코없는 불상이 많다. 
                                                                                                   -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152쪽 -뿌리 깊은 나무사

 

*. 운주사 구경 

 일주문- 0.6km- 운주사- 0.3km- 공사바위- 0.5km- 와불-0.6km- 주차장 

일주문을 들어서니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운주사9층석탑'인데 바로 그 뒤에 '7층석탑'이 있고 그 뒤에 또 탑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계곡 건너 즐비하게 늘어선 불상과 언덕에 기대선 불상들이 즐비하다.

나는 적지 않은 산을 다니면서 그 산록에 수 많은 사찰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은 절을 찾았는데 한국에서 운주사 같은 이런 절은 처음 본다.
 한국의 사찰은 일주문을 지나 멀리 떨어진 곳에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고 그 문을 지나면 대웅전(大雄殿)이 있고 그 마당에 탑이 한 둘이 있는 법인데, 운주사에는 사천왕 당우도 없던데 길가에 웬탑 이 이렇게도 많은가.

내가 보아온 모든 절의 불상은 전각 속에 곱게 모셔 놓은 부처다운 모습의 불상들이었는데 운주사에는 1,000 불 중 현재 남아 있다는 거의 모든 불상들은 불상의 격식을 한참이나 벗어난 모습에다가 그 조각마저 고졸(古拙)뿐인 것이 그마저 야외에 방치(?)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을 보러 왔으면서 놀라는 나 또한 이상하다. 

  대웅전 200m 앞에 있는 운주사 구층석탑(雲住寺 九層石塔, 보물 제796호)은 높이가 10.7m로 운주사에 남아 있는 탑 12개 가운데 가장 높은 탑이다. 거대한 암반이 그대로 지대석(地臺石)인 이 탑은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대웅전을 향하는 길 좌우에는 보이는 것이 불탑이요 불상인데, 불상은 몇 군데로 모여 있는 것이 많아서 이 절에서는 아예 '불상군 가,나, 다,라, 마, 바'로 구별하고 있었다. 

내가 만난 첫번째 불상군은 내 건너 20여 개 불상으로 좌상, 입상, 와상 등 각가지 부처로 내(川) 건너 길로 갈 걸 하다 보니,

 내 마음을 알아서인가 길 우측 언덕의 바위를 기대고 서 있는 그보다 더 멋진 불상군이 나를 맞는다. 그 언덕 위에 '오거지석탑'이 우뚝 서서 그 멋을 더 해주고 있다. 

 운주사에 석불 가운데 마래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있는 '광배석불좌상(光背石佛坐像,전남유형문화재 제274, 우측사진)의 불상군을 지난다. 광배(光背)란 후광으로 불상 뒤의 둥근 빛을 말한다.  

 '석조감실앞7층석탑'을 보니 이름만 보아도 그 뒤에 있는 '석조불감배불좌상(石佛龕雙背佛座像, 보물 제797호)'이 더 귀중한 보물인지를 알겠다.

이 '석조불감(石造佛龕)'은 이 운주사 골짜기 중심부에 있고 그 탑 앞 뒤로 탑이 1기(基)씩 있어서그 감실 속의 쌍배좌불(雙背坐佛)은 운주사 야외 불당(野外佛堂)의 주존불(主尊佛) 구실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솔직히 말해서 문화재에 대하여 문외한인 우리네 같은 이들이 명승지를 감상하는 길은 국보나 보물, 문화재, 유형문화재를 만나면 유심히 살펴 보거나 사진촬영을 하는 길이 고작이다. 이 운주사에는 국보(國寶)는 없고 운주사 보물(寶物)로는 3점이 있는데 앞서 말한 '운주사9층석탑'과  '원형다층석탑'과 '석조불감' 이 그것이다.  
 '운주사원형다층석탑(雲住寺圓形多層石塔, 보물 제798호)'은 높이가 5.71m 인데 탑신부와 옥계석이 모두 원형인 것은 우리나라 탑 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이 희귀하여 운주사에 온 것이 별천지(別天地)에 온 것 같다.

 

 

- 다음 회 '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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