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도피안사(到彼岸寺)

ilman 2017. 6. 12. 05:31

 *. 도피안사(到彼岸寺)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철원군 동송읍(東松邑) 관우리(觀雨里) 화개산(花開山) 기슭에 있는 신라 경문왕 5( 865)년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는 비보사찰이다.

비보사찰(裨補寺刹)이란 이름난 산천(山川)에 절을 세우면 국운(國運)을 돕는다는  불교신앙에서 생긴 말이다.

 -당시 도선 국사(道詵國師)는 철제 비로자나불 좌상(鐵造毘盧蔗那佛坐像)을 철원읍  율리리에 있는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불상을 암소 등에 싣고   제자 향도(香徒, 상여꾼) 1,000명을 거느리고 고갯마루(지금의 암소 고개)에 이르러 쉬다가 다시 떠나려 하였더니 불상이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닌가. 
도선 대사와 제자들은 사방을 찾아 헤매다 보니 현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다. 
이를 부처님 뜻이라 생각한 도선국사는 이곳에 암자(庵子)를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도피안사(到彼岸寺)였다.
 
다음은 이 절의 당우가 불타고 재건되었다가 다시 6.25동란에 불탄 절을 1959년 제15 단장 이명재(李明載) 소장이 꿈의 계시를 받고 중건할 때의 이야기다.

 

-전방 시찰을 나가던 중  갑짜기 갈증을 느낀 장군이 민가에 들렸더니 그 집 안 주인이 어젯밤 꿈속에서 본  보살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꿈에서 본 절을 생각하고  "혹시나 근처에 여하 여차한 절이 있는가?"라고 물어 그 대답을 듣고 그 절을 찾아서 4일 동안 사단 병력을 동원하여 절을 지을 때였다. 
그동안 사라졌던 철제 비로자나좌불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불상이 발견된 자리에 삼각 돌을 그 표시로 세워 두었다 한다. 
이때 지은 대웅전은 안양사(安養寺)의 칠성각(七聖閣)을 그대로 이건(移建)한 것이라고- 그래 그런가. 내가 도피안사를 찾았을 때는 새 대웅전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후 부임한 사단장 정명환 준장도 독실한  불신도(佛信徒)였다. 

도피안사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법당 문을 막 나오다가 제2땅굴이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이는 필시 이 절  비로자나불 좌상의 가호(加護) 때문이라고 생각한 정 준장은 1973년 11월 14일 법당 앞 좌우에 석등(石燈)을 세우고 이름을 '필승등(必勝燈)'이라 명명하였다.  

'도피안(到彼岸)'에서 '到(도)'란 이르렀다는 뜻이요, '彼岸(피안)'이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사바세계를 떠난 열반상락(涅槃常樂)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니, 도피안사(到彼岸寺)란 한 마디로 '극락세계에 이르는 절'이란 뜻이다.

도피안사가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 절이 민통선 북방에 있어서 그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군승(軍僧)인 군법사(軍法師)가 관리하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민간 주지에게 넘겨 주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절이 있는 화개산(花開山)은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형국으로 산세가 연약한 모습이다.

그래서   철불과 석탑으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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