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都(교토) 사찰 순례
*. 京都(교토) 구경
한국의 역사적인 고도(古都)가 경주, 평양, 부여, 개성, 서울 등이었다면, 일본의 고대국가 수도는 奈良(나라)와 京都(교토)와 東京(도쿄)로 이어진다.
奈良(나라)가 794년 京都(교토)로 천도할 때까지 한국의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 최초의 국가인 大和(야마토) 정권의 수도였다면, 京都(교토)는 794년 平安(헤이안) 시대부터 1869년 江戶(에도) 시대 明治(메이지) 천황이 수도를 東京(도쿄)으로 옮길 때까지 그동안 받아들인 대륙의 문화를 일본의 독자적 문화로 형성하게 하였던 시기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나의 일본에 대한 무관심은 京都(교토)와 東京(도쿄)을 구별하지 못하고 '교토- 도쿄'와 같이 지명을 거꾸로도 읽는구나 하는 식으로 착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인구 146만 명이 산다는 일본의 '京都(교토)'란 어떤 도시이던가.
일본을 아는 사람들에게 일본에 가서 꼭 가봐야 할 도시 둘을 꼽으라 하였더니 한결같이 도교와 교토를 소개하였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그 이유는 다음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京都(교토)에는 13개의 절, 3개의 신토오 신사, 1개 성(城)으로 도합 17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뿐인가. 일본 국보의 약 20%와 중요문화재 15%, 24개의 박물관과 146만의 인구에 37개의 대학이 京都(교토)에 있으니 더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京都(교토)에 가서는 100번 이상 '아리가도 고자이마쓰(고맙습니다.)', 100번 이상 '쓰미마센(실례합니다.)' 하는 말을 주고받는 상냥한 일인을 만나게 된다는데, 우리는 오늘도 그런 일본인보다 사찰로 廣隆寺(고류지)와 金閣寺(킨 카구지), 성(城)으로는 二條城(니죠오성)만을 만나 보게 되나 보다.
모두 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의 보물들이다.
*. 廣隆寺(고류지)의 이모저모
일본을 가장 많이 찾는 관광객이 단연 한국인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례로 모든 관광지 입장권에 한글로 그 명승지를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廣隆寺(고류지) 매표소에서 나누어 주는 '廣隆寺(고류지) 안내서' 따라가 본 이야기다.
-廣隆寺(고류지)는 진언종(眞言宗)의 사원으로 推古(스이코) 천황 11년(603년)에 쇼토쿠 태자가 건립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사찰입니다. 廣隆寺는 쇼토쿠 태자가 교토의 야마시로 지방에 건립한 절로 일본 7대 사찰 중의 하나인 이 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입니다.
1165년에 건립된 '강당'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고요.
그 강당에는 높이 약 2m 40cm에 이르는 아미타 여래상(국보)을 중심으로,
그 오른쪽에 지장보살상(중요문화재),
그 왼쪽으로는 허공 장보 살상(중요문화재) 등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강당의 뒤쪽에는 대웅전에 해당하는 上宮王院(조구 오인)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 있는 본존상은 33세 무렵의 쇼토쿠 재자(573~621)라고 전해 내려오는 목조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경내 북쪽에는 국보인 桂宮院(게이큐인)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1층의 팔각 원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로 1 변의 길이가 약 2m 30cm,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인데 일반적으로는 八角堂(핫 카쿠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上宮王院(조구 오인)의 뒤쪽에 있는 新靈寶殿(신레이 호덴)에는 다수의 귀중한 불상이 안치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아스카시대(552~645)에 만들어진 유명한 미륵보살상으로, 1951년에 일본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절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하면 일본 불교의 은인이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의 명으로 한국과 관계있는 진하승(秦河勝)이 622년에 廣隆寺(고류지)를 세웠다
*. 일본 국보 광륭사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
옆 두 그림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좌측은 일본 국보 1호로 목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요, 우측 것은 한국 국보 83호로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다.
- 1920년 대 이후에 발견된 한국의 이 불상[우측]은 삼국시대 7세기 전반의 금동보살상으로 높이 93.5cm의 국보 제83호로 삼국 시대 금동불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머리에 쓴 관은 삼면이 각각 둥근 산 모양을 이루고 있는 관을 쓰고 있어 삼산관 반가사유상(三山冠半跏思惟像)이라고도 불린다.
廣隆寺(고류지)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과 모습이 매우 비슷하여 오랫동안 양국 학자들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본의 기록으로 보면 이 불상은 백제보다는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213쪽
두 미륵의 책상다리 앉음새나, 볼에 오른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나, 머리에 쓴 관 그리고 밋밋한 가슴과 그 아래 드리운 옷과 무늬는 물론, 지긋이 지은 미소와 그 얼굴은 모두가 한국적인 모습으로 둘은 쌍둥이 같다.
일본 국보 광륭사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을 본 독일 실존 철학자 야스퍼스는 이렇게 감탄하고 있다.
- 나는 지금까지 철학자로서, 인간 존재를 최고로 완성시킨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뛰어난 예술 작품을 접하여 왔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조각한 조상도 보았고, 고대 로마시대에 만든 수많은 기독교적인 예술품도 보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어느 것에도 아직 초극되지 못하는 단순한 지상의 인간적인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광륭사의 불상에는 진실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있다.
그것은 이 지구 상에 있어서의 모든 시간적인 것에서의 속박을 초월하고 도달된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표정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이는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석가가 출가하기 전에 고민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미소는 고민보다는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해탈의 경지가 엿보인다.
그 사유는 시작이 아니라 사유 속에 깨달음이 막 열리는 경지다.
여성 같기도 하고 남성 같기도 하지만, 성(性)을 초월한 그 얼굴에의 목까지 드리운 귀는 덕과 원만이 주렁주렁 열린 것 같다. 다음은 이 불상에 어린 일화(逸話) 한 토막.
-1960년에 있었던 일이다.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에 도취된 일본의 한 여학생이 뛰어들어 미륵을 얼싸안았다가 그만 미륵의 가녀린 새끼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불상사에 전 일본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떠들썩한 매스컴에 놀라 자수한 이 학생은 그 정상이 참작되어 풀려났다.
국보를 훼손시킨 자신의 죄를 크게 속죄하기 위하여 그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여 고등고시를 통하여 변호사가 되어서 평생을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의 대변인으로 살고 있다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학문 세계에서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되어 역사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수구에서 발견된 부러진 새끼손가락을 자세히 조사해 보니 그 불상의 목재는 당시 일본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적송(赤松)으로, 당시 적송의 산지였던 신라에서 만들어 전해진 불상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광륭사 영보전(靈寶殿)을 들어가는 입구에 광륭사의 역사를 알리는 석물이 있는데 그중 일부를 누군가가 훼손시켰다.
이 불상이 한국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어느 일인 관광객이 지워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되었다고 일본이 자랑하고 있는 자기네의 국보 1호가 평소에 '조센진'이라고 얕보며 괄시하던 한국인의 조상이 만든 것이라는데 분개한 어느 일인이 행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얼굴 같아 쌍둥인가, 모습 닮아 쌍둥인가
반목하는 두 겨레 내일을 위하여서
미륵도
쌍둥이 되어
' 나무아미타불'로 미소하네!
*. 십선계(十善戒) 유감
일본의 국보 제1호가 있다는 영보전을 나서며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 영보전에 들어가기 직전 벽에 걸려 있던 '십선계(十善戒)'가 생각나서였다.
기독교에 십계명(十誡命)이 있듯이, 불교에는 십선계(十善戒)가 있다.
십선계는 보살(菩薩)이 행하여야 할 계율이지만, 불계(佛界)에서는
불교에 정진하면 누구나 다 보살이 될 수 있는 일이므로
십선계(十善戒)는 불교신자라면 모두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더구나 불교 국가인 일본인이면 누구나 지켜야 할 덕목이다.
그런데 이걸 보고 왜 나는 갑자기 분개하여지는 것일까?
1.不殺生(불살생): 생명을 존 귀히 하라
2. 不偸盜(불투도): 훔치지 말라
3. 不邪淫(불사음): 사음하지 말라
4. 不妄語(불망언): 허망한 말을 하지 말라
5. 不兩舌(불양설): 이간질하지 말라
6. 不惡口(불악언): 악한 말하지 말라
7. 不綺語(불기어): 꾸밈 말하지 말라
8. 不口貪(불구 탐): 탐하는 말 하지 말라
9. 不嗔恨(불진한): 만사에 감사하라
10.不邪見(불사견): 사견을 일으키지 말라
조선과 일본을 조금이라도 아는 일본인들에게 묻고 싶다. 십선계(十善戒)를 다시 보고 답하여 달라.
임진, 정유 양란과 35년 간의 일제 강압기 시절만 두고 보더라도, 일본이 우리 조선에게 십선계(十善戒) 중에 어느 하나라도 지킨 것이 있었나?
임란의 코무덤은 독일의 나치보다 더 무서운 살생(殺生)의 만행이요, 왜구들의 노략질은 도둑질(偸盜)이요, 종군 위안부는 사음(邪淫)을 범한 것이요, 창씨개명의 강요는 투도(偸盜), 양설(兩舌), 망언(妄語)을 뛰어넘는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없던 잔혹한 행위다.
이로 보면 과거의 일본은 십선계(十善戒)의 중죄(重罪) 중에 중죄(重罪)에 해당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100-1=0'
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 아닌 남끼리는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인데, 과거 일본인이 우리 민족에게 한 악독한 일들을 십선계(十善戒)로 따지면
'10-10=-10'
이니 어떻게 우리 조상의 한(恨)을 잊을 수 있겠는가.
*. 金閣寺(킨 카구지, 鹿苑寺)
-金閣寺(킨 카구지)는 사리를 모신 '金閣'으로 특히 유명하기 때문에 '金閣寺(킨 카구)'라고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鹿苑寺(로쿠온지)'로 선종(禪宗) 사원이다.
이곳은 北山(가타 마야)의 저택이었으나 室町(무로마치) 막부의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물려받아 1397년에 北山殿(기타야마 젠) 별장으로 개축한 것을, 義滿(요시미쓰) 사후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鹿苑寺(로쿠온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그의 법명인 '鹿苑院殿(로쿠 온 인전)'에서 유래했다 한다.
매표소를 지나니 숲 사이로 鏡湖池(교 코치)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몇 개의 섬 중에 가장 큰 섬에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3층의 순금박으로 장식된 '金閣寺(킨 카구지)'가 현란한 몸매를 드러낸다.
1층은 침전실(寢殿室), 2층은 무가식, 3층은 중국식 선종 불당으로, 2층과 3층 바깥 벽에는 옻칠을 한 위에 금박을 입힌 건물인데, 관광객에게는 개방되지 않고 있다.
金閣寺(킨 카구지)는 일본이 자랑하는 정원 문화 중에도 室町(무로마치) 시대의 대표적인 지센 카이 유식 정원으로, 이밖에도 연못 속에 있는 작은 섬 가운데의 낙락장송과 탑 등이 유명하다.
그 주위의 소나무 조형미 또한 일품이다. 그래서 일본의 특별사적, 명승지로 지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 같다. 이곳은 金閣(킨 카구)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으로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하였다고 한다.
호숫가에 있는 건물은 주지(主持)의 방장(方丈)이고, 거기 멋진 소나무는
義滿(요시미쓰)가 직접 심었다는 '교토 3대 소나무' 중의 하나로 배의 모형을 본뜬 陸舟之松(쿠슈노마쓰)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원은 어떠한가.
나의 산행기의 일절을 소개한다.
'
청평사 산행 Photo'
- 강원도 춘천의 청평사(淸平寺)에 가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의 일부라는 '영지(影池)'를 만나게 된다.
그림자 '影(영)' 못 '池(지)'로 옛날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청평산의 모습이 비쳤다는 못이다.
이 정원은 사찰 청평사의 정원으로, 고려조 이자현은 청평사 위 청평 선동(淸平仙洞)에서 거북바위까지 1km에 달하는 9,000여 평 자연적 친환경에다가 최소한의 인공만을 가하여 자연의 멋을 한껏 살려 주위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정원을 꾸몄다.
정원도 집과 같이 가꿈에 따라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를 가지고 막상 가서 보니 그 설명 표지판뿐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 '가꿈의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이게 뭐야!' 하는 실망을 갖고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정원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정원은, 일본이 오래되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경도(京都)의 사이 호사(西芳寺)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서는 우리 민족의 자랑이 되는 것이 청평사 영지(影池)인데, 무심히 지나치는 이름만 남은 일개의 평범한 연못이 되고 말았다.
어디서인가 무심한 우리들에게 청평 거사 이제현 님이 '예끼 놈!' 하는 호령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오후였다.
뒷산에 있는 다실풍(茶室風) 구조의 夕佳亭(셋 카이 테이亭子)에 가보니 싱겁게도 그 속에 '나무아미타불'이란 글자만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곳은 夕佳亭(셋 카이 테이 亭子) 이름처럼 여기 앉아 차를 마시며 금각사 쪽 지는 해를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특히 아름답다는 곳이다. 정면의 장식 기둥이 '남천의 장식 '기둥이요, 우측의 삼각형 선반이 '싸리로 만든 선반'이고 중앙의 고목이 '鸞宿梅(오슈 쿠바가)'라니 유념하고 볼 일이다.
거기서 내려오니 不動堂(후도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여기 모신 본존이 서민 신앙의 대상으로 영험하기가 그지없다는데 그 본존은 石不動明王(이시후도묘오)이라고 하는 고보(弘法) 대사의 작품이라 전하여 오는 불상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정원인 金閣寺를 보며 나는 줄곳 한국의 비원(秘苑)을 생각하였다.
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비원 포함)에 金閣寺가 감히 비교의 대상이나 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일본의 金閣寺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승지가 되어 있고, 한국의 비원(秘苑)은 창덕궁에 포함된 한국인에게만의 명승고적지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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