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시제(時祭) 이야기

ilman 2013. 11. 19. 23:17

시제(時祭) 이야기 

이젠 이 자리에 우리 아들이 나 대신 지며 주겠구나.!

우리 후손들이 조상의 신령을 받들어 모시는 제사(祭祀)에는 네 가지가 있다.

조상의 사당(祠堂)을 집안에 모시고 있는 집에서 지내는 사당제(祠堂祭), 철따라 지내는 사시제(四時祭), 묘에서 지내는 묘제(墓祭),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忌祭)가 그것이다.

기제(忌祭)를 사대부들은 사대봉사(四代奉祀)라 하여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모셨지만 옛날 서민들은 2대나 3대까지만 모셨다는 기록도 보인다. 오늘날에는 이를 따르는 가정이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된 것은 부모 제사에는 형제가 모이듯이, 조부모 제사에는 삼촌들이, 증조부 제사에는 친할아버지 형제들이 제사를 지내러 오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2대나 3대까지먼 제사를 모시게 된 것 같다.

  이 외에 설날이나 추석날 아침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원래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을 맞아 간략하게 지내는 제사였다.

 그 차례의 현대적인 뜻은 기제(忌祭)로 집에서 받들지 않는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이기에 의의가 더 크다 하겠다.

외손봉사(外孫奉祀)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제사는 아들이 받드는 것이어서 옛날에는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는 양자(養子)를 들여서라도 대를 이어 자손봉사(子孫奉祀)를 하였다.

  옛날에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허물을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였는데 그 중에 두 번째가 아들이 없는 것이 그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우리 둘째 딸 같이 딸 둘을 낳고 태연히 사는 시대가 되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중요한 효(孝)와 제사(祭祀)나 시제(時祭)가 오늘날에 와서 이렇게 소홀이 된 것은 기독교의 보급도 그렇지만 그보다 한국이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바뀐 탓이 더 큰 것 같다.

 농경사회에서는 서민들에게는 논밭이 직장이요, 그 논밭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아야만 했다.
그런 세상에서는 효(孝)는 생활의 방편이며 삶의 목적이 되었겠구나 생각에서다.

 서민이 아닌 양반이나 선비들의 세계에도 당시 출세 길인 한문의 세계는 도달하기 어려운 심오한 경지라서 자식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세계라서 효와 함께 제사가 중요시 되었다는 생각이다.

  음력 10월은 각 성씨(姓氏) 종중(宗中)의 자손들이 모여 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이를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시제(時祭)도 사시제(四時祭)로 한해에 춘하추동 각 계절 따라 네 번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오곡이 무르익는 10월 상달에 1년에 한 번씩 지낸다.

시제(時祭)는 선조(先祖) 원조(遠祖)의 무덤에 모여 거행하는데 상중(喪中)에 있는 이나 부녀자들은 참례하지 않은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 종중(宗中)에서는 남녀 구별을 하지 않는다.

 다음은 내 직계 우리 성씨(成氏) 시제 일람표다. 
 

10월 1일/ 경남 창녕/인보(시조)

10월 1일/ 경기 포천/ 이헌공(여완)

10월 7일/ 연기, 금남, 달전리/ 정제공(담년), 강호공(몽선

10월 8일/ 대전 유성구 둔곡동/ 하산군(몽정). 장성군(예웡) 창산군(수익) 등

10월 10일/충남 옥천/ 보공공 (달선), 장봉공(하경), 봉덕공(초거), 계당공(준동)

 

나는 객지에서 나서 객지에서 자란 몸이라서 시제의 중요성을 생각지 않고 별로 다니지 않다가 이제 철이 들어서 금년에는 음력 10월 10일에 충북 옥천을 다녀왔다.

작년 내 조부모와 부모 묘소가 따로따로인 것을 그동안 안타까워 하다가 충북 옥천 우리 성씨 종중 납골묘(納骨墓)를 한 기 마련하였다.

충남 연산(連山)에, 충남 대덕(大德)에 각각 모셨던 조부모와 부모를 충북 옥천 종중묘 납골묘에 모시고, 거기 네 자리가 남아 우리 형제 내외도 가묘를 만들어 놓고 둘레석과 묘비도 세워놓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죽을 준비를 완전히 해 놓았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젠 죽는 일만 남았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금년 추석이 가까워 지자 아들 성낙준에게 영상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부모님께 이렇게 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 아들 철용입니다. 금년부터 제가 죽은 후에도, 부모님이 부모님 모시고 계신 것처럼 저도 죽으면 부모님 곁에서 만약 자식 손자, 후손들이 오지 않아도  외롭지 않게 우리 형제가 곁에서 지켜 드릴게요. 조부모님 부모님.

 

금년 2021년 추석 성묘도 둘째 아들의 성낙준 내외가 성묘를 다녀왔다. 든든하게 아들이 내 사후에도 손자 자식하는 든든한 모습을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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