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고향문인협회 33명은 새벽을 달려 2시간 30분에 서산 해미읍성 (海美邑城)에 도착하였다.
해미읍성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아치형의 남문이 진남문(鎭南門)으로 해미읍성(海美邑城)의 정문이다.
이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하여, 육군인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영성(營城)으로 쓰다가 효종 때 청주(淸州)로 옮겨간 후 읍성(邑城) 으로 이용되어 왔다.
처음 축성할 때에 성 주위에 해자(垓字, 도랑)를 파고 성벽과 해자 사이에 가시가 많은 탱자를 심어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탱자성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 서문의 이름도 탱자 枳(지), 성 樓(루) 지성루(枳城樓)라 하였다.
둘레는 1,498m요, 높이가 5m인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서 성 위로는 사람 한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폭으로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읍성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관 된 성이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이다.
이 해미 읍성은 평시에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다가 비상시에는 방어기지로 이용하던 곳이다.
그래서 공사를 처리하던 동헌(東軒)이 있고, 왕명을 받아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대접하는 객사(客舍)와, 관리와 그 가족들이 살던 내아(內衙)가 있다.
그러나 이 성은 읍성으로보다는 2,000명 내외나 되는 천주교의 박해(迫害)와 학살(虐殺)로 인하여 천주교의 성지로서 더욱 유명해 진 곳이다. 이름도 상서로울 瑞(서) 뫼 山(산) '서산(瑞山)'이라 하는 곳에 이런 상서롭지 못한 역사가 있었다니-.
정조(正祖) 대왕은 사헌부(司憲府)(司憲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어명을 해미현에 내렸다.
"서산군 양반들이 천주학을 전수하여 윤리에 위반되는 언행이 다분하다 하니 읍졸(邑卒)로 하여금 엄중히 다스리어 서학(천주교)의 뿌리를 뽑게 하라"
그래서 동족이 동족을 국민의 절반이나 그 중에서도 폴포드의 급진 정책을 반대하는 지식인들을 학살한 캄보디아 킹스필드에서처럼, 1790년에서 1880년 동안 나라 읍졸 군사가 천주교 신자인 읍민을 2,000명이나 학살하는 불행한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 민족도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를 가졌던가.
이런 천주교 신자들을 가두어 두었다는 움푹 패인 감옥 터에는 돌무더기뿐인데 순교한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듯 오석으로 '순국기념비'가 서있고 거기에 그 무렵 잔인했던 어두운 역사의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앞에 충청도 사람들이 호야나무라 부르는 수령 300년 이상 된 회화 나무가 서있다.
이 회화나뭇가지에 철사를 매고 거기에 신자들의 상투를 묶어 매달아놓고 고문을 한 동그란 흔적이 흉하게도 하얗게 그 슬픈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명 인사인 경우였고, 이름 없는 서민들의 경우에는 서문 지성루(枳城樓)를 이용하였다.
부정한 것은 서문 밖으로 버린다는 전해오는 말 따라 서문으로 시체를 실어 날랐고, 천주교 신자를 색출할 때에는 서문 통로에다가 십자가, 묵주, 예수, 마리아의 사진 같은 성물(聖物)을 두고 이를 밟고 가는 자는 살려주고, 성물(聖物)을 피해 가는 자는 죽였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은 천주에 대한 믿음으로 피해 가는 것으로 죽음을 태연히 맞았다니 신앙심이, 종교가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죽이는 방법도 주리를 틀고, 돌로 치고, 목을 베기도 하고, 서문 밖 돌 위에 해골이 터지도록 메치거나 참수하거나 겨울에는 얼려 죽이는 만행을 어명이란 미명하에 자행하였다.
그래도 관아에 죽음으로 맞서서 평화로운 표정으로, 옥 같은 맑은 영혼으로 배교(背敎) 대신 죽음을 택한 곳이 바로 이 해미 읍성이다.
서문 밖 그 자리에 하늘을 바라 우뚝 솟아 있는 '순교현양비'와 그 옆에 다리에 있었던 피 어린 길다란 바위를 두고 기념하고 있다.
어찌 천주(天主)님을 버릴 수 있을까.
육신은 찢어지고 고문으로 사라져도
신자들
천주님 부르며
이 몸을 주고 영혼을 찾았네
-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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