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89세의 내 몸

ilman 2025. 1. 19. 16:42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늙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 아름답게 늙는 것이라 한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 Andelsen)의 말이다.  이는 모든 생명체에 다 해당하는 말은 아니고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말은 인간의 가치 기준에 해당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 같은 나이 대를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는 앞으로 나 같이 늙어갈 젊은이들을 위하여 참고가 되는 늙은 나의 몸 상태를 소개하여 보려 한다.

 나를 이렇게 늙게 한 것은 세월(歲月)이지만, 정식으로 '할아버지 세계'에 들어가서 살게 해 준 것은 오로지 우리 큰 딸이 낳은 외손녀 때문이다. 머지않아 나를 증조할아버지(曾祖父)로 만들게 할 사람도 그 외손녀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우리 부모님은 서당과 신식학교인 국민학교가 병행하여 있던 시절의 옛날 분으로, 유학(儒學)을 숭상하던 흙수저 가정에서 사셨던  바람에 국민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분으로 16살에 조혼(早婚)을 하시고 아무 연고 없는 대처(大處)에서 학벌(學閥)이 전혀 없이 세상을 사셔야 했기 때문에 우리 5남매 중 첫째, 둘째 누나는 여자는 자식이나 낳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믿는 당시의 완고한 선조들의 뜻을 받들어 공부를 국민학교만 다니게 하셨고 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나 서울에 와서 고학하며 살아야 했다

 대학 시절에 나는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장수할 것 같다. 우리 5남매는 크게 아픈 적 없던 것은 물론 병원에 입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약에 의지하여 사는 식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평생을 약을 자주 먹지 않고 멀리 하고 살아왔으니 꼭 필요할 때만 약을 쎴기 때문에 웬만한 병에는 단 한 번에 즉효약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것처럼 효과 나는 것을 체험해서 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 89세를 살아 오는 동안 배탈이 나서 평생 20번 이상 약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런 나도 늙는 세월은 어쩔 수 없었는지 나이 먹어 가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40대 후반부터 머리카락 중 흰 새치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70세 이후에는 머리 뒤끝까지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다.

백발(白髮) 다음으로 찾아온 것이 노안(老眼)이었다. 원시(遠視)가 오더니 슬그머니 난시 (亂視)가 찾아와서 지금은 안경알 아래는 반달 모양의 돋보기요, 그 위는 난시인 안경을 쓰고 살고 있다.

  다음에 온 것이 후각(嗅覺) 마비였다. 어려서 기억 나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종이를 말아 코에 대고 우리들에게 이를 자주 불게 하였는데 이제 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후각 마비는 아버지의 유전(遺傳) 같다.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도 평상시에도 콧물이 시도 때도 없이 민망스럽게도 식사 때도 가리지 않고 항상 코를 풀게 하여 큰맘 먹고 이비 인후과에 갔더니 의사는 정식으로 후각 검사를 하더니 후각 마비(嗅覺痲痹)를 진단 내리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물론 남이 방귀를 뀌어도 냄새를 못 맡던 기억이 비로소 생각난다. 아 그래서였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난다.

   나는 어려서부터 누런 앞 이빨 1개가 있어 웃을 때도 항상 손으로 이를 가릴 정도여서 나를 내성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한 것 같다. 하여 부모를 졸라 보기 싫게도 앞니를 금니로 씨워서 지내다가 직장을 다닐 때 큰맘 먹고 치과에 갔더니 상의도 없이 누런 이를 빼고 멀쩡한 양쪽 이를 갈아 연결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앞니가 모두 없어져서 내 나이 80살이 되던 해에  큰맘 먹고 임풀란트 10개를 하고 비로소 마음껏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 가장 애로 사항은 혈압약 복용이다.

어느 날 의사에게  혈압약에 대해 먹어야 되는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약을 지어준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혈압약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부작용 등을 의사에게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게 이상해서 유투브에서 혈압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예로 하여 말했더니 의사는 자기가 다 알아서 약을 조절해 준다며 협박조로 약을  끊었을 시 그 책임을 지을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그 후 나는 열심히 매일 열심히 혈압 측정기로 재보았더니 평균 120~ 140  사이를 맴도는 것 같아서  140이 넘으면 혈압약을 먹고, 그 이하면 혈압약을 안 먹고 있지만 의사 말을 거역하는 것 같아 찜찜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더니 방광(膀胱)에 이상이 왔다. 오줌이 자주 나오고 자다가 두세 번 이상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피부비뇨과에 갔더니 전립선 약을 처방하여 주며 자기 전에 약을 세 알씩 먹으라 한다. 이것도 혈압약처럼 평생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약을 잘 안먹는 것을 자랑으로 살던 나도 이제는 약장을 따로 마련하여 놓고 약을 먹다 보니  이젠  적지 않은 약을 챙겨 먹는 환자가 되고 말았다.  거기에 맑은 항상 콧물이 항상 지나치게  나와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후각마비란 진단을 하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불치의 경지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치매환자가 후각마비라던데 나도 그 두려운 치료의 기회를 놓치고 살아온 치매 환자가 아닌가 걱정이 앞서니 이를 어쩌랴. 나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온 나는 갖가지 질병에 어느 노인 못지않게 약을 먹는 환자였구나 생각하니 늙어 가는 게 두렵고 내일이 오는 것이 무서워지는구나.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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