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딸의 편지/ 일만의 하루

ilman 2022. 3. 7. 13:12

  아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2주가 되는 토요일 오후 외손녀와 함께 두 딸이 엄마 병문안을 왔다.
아울러 엄마의 병 수발을 하며 홀로 식사를 해결하여야 하는 이 아비를 걱정하며, 요번에는 둘째 딸이 아빠의 일주일 간의 찬거리를 마련한다고 한다.
병원은 큰 딸네가 지키고 있는 사이 둘째가 집에 와서 부지런히 콩나물국, 버섯무침, 장조림, 갈치조림 등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준비한 것은 내일부터 드시라고 하는 생각에서인지 우리들 저녁은 외식을 하러 가기로 하였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사 값은 자기가 해결할 터이니 나더러 우선 내라고 한다.
누가 내던지 우리는 전처럼 저렴하고 맛있는 서민들이 몰리는 음식점을 가기로 하였다. 그곳이 일산에서 갈매기살로 유명한 대화동에 있는 임꺽정 집이었다.
식사 후 우리들은 함께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와서 나는 곧 침대에 누워 TV를 보다가 그만 잠들고 말았다.
자다가 일어나 보니 새벽 2시인데 이 방 저 방 찾아봐도 자식들이 없다. 자고 갈 줄 알고 편안히 잠들었는데 잠든 사이 어젯밤 가버린 것이다. 분명 자고 갈 딸들이 그냥 간 것은 아마도 마련한 찬거리를 온전히 나에게 주기 위한 배려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햇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딸들이 준비해 두고 간 찬거리로 식사를 하려다 보니 식탁에 편지가 있다 딸들의 편지였다.

아빠!
주무시는 것 같아서 말씀 못 드리고 가요.
냉장고 반찬 통에 반찬 몇 가지 해서 넣어 두었어요. 뚜껑 열고 드시면 되니 맛있게 드세요.
참, 냉장고에 갈치 조린 것 냄비에 담아 놓아 두었으니까 드실 때마다 냄비 체 데워 드세요. 다 드시고 꼭 냉장고에 넣어 두셔야 해요. 끓여서 식혀 넣어 두시면 더 좋구요. 압력 밥솥에 쌀 씻어 넣어 두었으니까 아침에 밥 지어 따뜻한 밥 드시고요.

늘 건강하시고 엄마 위해 애쓰시는 울 아빠 감사하고 사랑해요.
* 냉장고에 회덮밥 사다 두었으니 밥 넣고 비닐봉지에 든 초장 부어 비벼 드세요.
콩나물국은 데워 드시고, 꼭! 다시 끓여 두셔야 해요. 안 그러면 금세 쉬어서 못 드실 테니까 꼭 끓여 드세요.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다음 주 토요일, 일요일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시조문학진흥회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어 자식들에게 그날만은 엄마 수발을 하여 달라고 특별히 부탁해 놓은 날이다.
 단양 삼선 구곡천에는 사인암(舍人巖)이 있고 그 강 가운데에 한국 최초의 시조시인 역동 우탁(禹倬)의 시비가 서 있다.
서울서 단양 사인암(舍人巖, '사인'은 우탁의 호)까지 220km 5백 50리를 소석 김영덕 시인이 자전거로 시조 진흥을 위한 깃발을 달고 장도(壯途)를 떠나는 것이다. 무공훈장을 수령할 정도의 해병대 상이군인이 말이다. 나는 그를 차로 에스코트하여 따라가며 캠코더와 디카로 촬영하여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어려운 일 당하여 보면 우리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우리 가족 중에 누가 구체적인 정을 주는 사람인가. 딸과 며느리가 어떻게 다른가 등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남을 향하여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일깨우는 계기도 된다.
아침식사 후 병원에 가서 식사 전의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어제처럼 그랜드백화점의 주위 공원을 산책하다가 아내에게 딸의 편지를 보여 주며 우리는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때 아내가 말하더라.
 "어제 몰래 작은 딸의 지갑을 열어보니 몇 천 원밖에 없어서 몇만 원을 넣어 두었어요. 그런데 여보, 어제 식사비는 얼마 나왔우?"
                                                                                      - 지난날의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