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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車) 시집보내며

ilman 2021. 1. 24. 15:48

차(車) 시집보내며

 수석인(壽石人)들은 아끼던 수석을 남에게 넘겨줄 때 시집보낸다고 한다.

강가나 바닷가를 헤매다가 찾아 맺은 인연을 곱게 좌대(座臺)에 모셔두고 보던 수석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것에 비유해서 하는 말일께다.

지금은 사람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 하는 것이 휴대폰이 되었지만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는 자동차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하늘을 나는 동화 속의 알라딘의 양탄자처럼 마음만 먹으면 가고 싶은 어디나 함께 가주던 차주(車主)의 분신 같은 필수품인 차를 처분한다는 것이 요번에 4번째인데도 왜 이렇게 서운할까?
여행 다니며 차에서 잘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간이침대를 겸할 수 있는 레저용 차를 샀는데, 기름 값이 저렴한 가스차여서 구입했던 나의 애마(愛馬)였지만 이 놈을 타고 여행을 다녀온 적은 단 한 번뿐인 것 같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보내기가 서운한 것은 고령(高齡)의 나이의 일이고 다시는 내 일생에 갖지 못할 내 차라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아쉬운 마음에 운전면허증이라도 필요할 때까지 소유하기로 했다. 코로나를 극복하는 내일이 오늘로 다가온다면 내 생애 마지막 저서가 될 '국립 해양공원 섬 여행기' 자료를 위해 아파 오는 무릎을 대신해서 현지에서 차를 렌트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자꾸만 시집보낸 딸보다 차(車) 생각이 더 생각이 간절하다.

 하기는 차를 시집보낼 때도 되었구나 하고 생각되는 것은 나이 먹은 과년(過年)한 차이기 때문이리라.
2006년에 산 차가 16년 가량 탔는데도 주행거리가 28,000 km 정도밖에 안 된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 달 주행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지 않은가.  집이 수도권이라서 MTB와 접이식 고급 자전거를 2대 사서 주로 타고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고이 모셔 두었던 무사고 차여서, 어느 누구의 차가 긁고 지나갔거나 내가 부주의로 벽과 싸운 이력으로 긁힌 흔적을 빼면 차체는 멀쩡하지만 그래도 세월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어서 수리를 여러 차례 하였다.

차도 사람처럼 운동을 자주 해주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최근 2년 사이에 타이어 넷과 에어컨 가스, 차량 배터리를 대형으로 바꾸어 주었고, 가다가 멈춘 적도 있어서 차량 정비소에 들러 마음먹고 일체의 수리를 다해놓은 차라서 그냥 폐차하기에는 너무 아까워하던 차에, 물각유주(物各有主)라 차를 사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산악회 동인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시집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에 얽힌 이런저런 생각이 난다.

 면허를 처음 땄을 때 즐거웠던 일, 자동차를 사고 보름도 채 안되어 아내를 태우고 용감하게도 차를 몰고 자동차로는 넘을 수 있는 한국에서 최고로 높다는 함백산 만항재(1,330m)를 넘었던 일, 거기로 가던 도중 너무 느리게 간다고 교통경찰에게 적발되어 뒤에 100대도 넘는 차들이 내 차를 졸졸 뒤 따라오던 길게 길게 늘어선 차들을 바라보며 쓴웃음 짔던 일, 음주 운전 안 한다고 우리 일산에 사는 직장동료 친구에게 차를 먼저 타고 가 그의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부탁하고 친구들과 거나하게 취해서 일산에 도착하여, '동내니까 괜찮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 그냥 운전하고 가다가 앞차 두 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폐차처분하고 면허 취소당했던 일 등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그해부터 유난히 추운 겨울 동안 처량하게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할 때에, 직장이 강서구 방화동이라서 행주대교를 막 넘어 하차하여서 미타사(彌陀寺)를 지나 개화산을 넘어 출퇴근하면서 무언가를 끼적이다가 시조문학에 '개화산(開花山)' 시조(時調)로, 한국수필(韓國隨筆)'에는 '우리 집 가보(家寶)'로 시와 수필로 문단에 등단하였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음주운전이 문인의 길로 내 인생의 길을 바꿔주는 게기가 된 사건이었다.

다음 글은 당시의 아픈 내 마음의 상처를 엮은 '참회록(懺悔錄)'이란 시다.

 

낯선 이 태워 주며 우리 되거나

초면(初面)과도 흠뻑 취해 허허롭던 낭만(浪漫)들이,

순간의 만용(蠻勇)에

차(車)도 면허(免許)도 돈은 물론

그 알량한 체면(體面)과 술 마시던 명분(名分)마저

일순간(一瞬間)에 다 날려 버리고,

그리고 그리고도 나를 잃었다.

그 대신에

회환(悔恨)과 불편(否便)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가해(加害)와 구속(拘束)과 허영(虛榮)에서 해방되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슬픈 자아(自我)와

밤바다 꿈마다 자결(自決)을 모의한다.

-참회록(懺悔錄)

 

오늘도 동년 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 시집보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의 대부분이 나의 선배들이었다.

                                                                   - 2021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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