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이야기
40여 년 전 젊었을 무렵 가족과 함께 내연산(內延山 710m) 가는 길에 '장사해수욕장'으로 바캉스를 갔다가 멸치 잡이 구경을 한 적이 있다. 해변가에 몇 척의 소형 어선으로 큰 그물을 쳐 놓고 바닷가 모래사장 쪽으로 멸치를 몰아 잡는 것인데 그때는 해안 가에서도 멸치를 잡을 정도로 멸치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그때 뱃사람들이 멸치를 털며 멸치후리는 노래를 부르는 그 진귀한 장면을 보았지만 그보다 생각나는 것은 그때 30원(현 3,000원)을 주고 반 삼태기나 가득 펄펄 뛰는 멸치를 사다가 회로 먹고 구워 먹고 쪄서 먹던 기억이 새롭다.
멸치는 우리나라 연근해서 잡히는 어류 중에 가장 많이 잡히는 어류다.
*. 멸치의 어원
이 멸치를 한자어로 멸아(?兒), 멸어(蔑魚), 이준(??), 추어(?魚), 행어(行魚)라 하였다.
-멸치를 멸아(?兒) 라고 하였고 진해 지방에서는 그 이름을 기(몇 幾), 그 방언을 '멸이'라 하였다.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멸치를 한자어로 추어(?魚)라 하고 그 속명을 멸어(蔑魚)라고 하였다. 이는 멸치는 불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밤에 등을 밝혀 움푹 파인 곳으로 유인하여 광망(匡網)으로 떠올린다. -자산어보(玆山魚譜)/정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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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멸치란 물고기는 제주도 모슬포 연안 수역에 떼를 지어 들어와서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제물에 언덕에까지 뛰어 올라가는 물고기인지라 바다를 잘 헤엄쳐 다닌다는 뜻에서 제주지방에서는 행어(行魚)라고 불렀다
- 멸치가 방어 떼에 쫓겨 몰려다닐 때에는 그 세력이 풍도(風濤)와 같고 어민이 방어를 어획하기 위하여 대망을 치면 어망 전체가 멸치로 가득 차므로 멸치 가운데서 방어를 가려낸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서유구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멸치에 대한 기록이 조선 전기 이전의 문헌에 없는 것을 보면 멸치는 조선 초기 이전의 우리들의 선조들이 즐겨 먹던 해산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멸치를 없신 여길 '멸(蔑)', '멸어(蔑魚)'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는 제대로 생선 대접을 받지도 못한 물고기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일제가 조선을 강점(强占)할 무렵 일인들이 우리 근해에서 본격적인 멸치 잡이를 벌이자 그때야 멸치의 가치를 짐작하고 오늘날과 같은 대접을 하게 된 것이다.
*. 멸치의 왕자 '죽방멸치'
백화점 어물전에 갔더니 죽방멸치는 다른 멸치와 달리 상자에 곱게 포장하여 팔고 있는데 10만원에서 25만원을 호가 하는 고급 먹거리다.
같은 멸치인데 죽방멸치는 왜 이리 비싼값에 팔리고 있는 것일까? 우선 죽방렴(竹防簾)이란 말부터 알아보자.
자고로 원시 어구(漁具) 중에 '돌발'이라 하는 '석방염[石防簾]'이 있었다. 밀물 때 고기 떼가 들어왔다가 직진만 할 줄밖에 모르는 고기의 성질을 이용하여 썰물 때 못나가게 V자형으로 돌담으로 바닷물을 막은 개막이 돌발과 마찬가지 원리인 원시 어구가 바로 죽방렴(竹防簾)이다.
그림처럼 바다 속에 V자 형으로 참나무 말뚝을 박고 그 끝은 둥글게 한다. 그 사이를 대나무 어살(漁箭)로 부채꼴 모양으로 막고(竹防) 이를 통해 멸치를 잡는 전통 방식이 죽방렴(竹防簾)이다.
죽방렴의 장소는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수심이 얕은 바닷속이다.
그곳에 밀물 때는 저절로 열려 있다가 썰물 때는 저절로 꽉 닫히는 문짝을 만들어 놓고 그 문을 통하여 통에 갇힌 멸치를 하루 두 번씩 물 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떠올리는 고기잡이가 죽방렴이다.
그렇게 잡은 죽방멸치는 어망으로 잡아서 그물에서 떼어내기 위해서 그물을 터는 바람에 몸에 상처 투성이인 멸치와는 달리 비늘이나 몸에 손상이 거의 없는 말쑥한 모양의 멸치를 얻을 수가 있다.
남해안 청정지역 중에 물살이 13m~15m로 흐르는 부근에 서식하는 양질의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는 멸치여서 일반 멸치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적은데다가 비린내가 나지 않아 그 맛으로 인하여 고급멸치로 툭별 대우를 받는다.
우리가 '참멸치'라 하는 것이 '죽방멸치'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죽방렴이 남해에 23개, 삼천포 등지에 21개로 전국에 총 44개뿐이고 죽방렴 신설이 제한 되어 있어서 죽방멸치는 그 희소성으로 인하여 고급 멸치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 멸치의 종류
멸치의 종류로는 크기에 따라 나뉘는데 아직도 멸치 업계에서는 우리나라말보다 일어(日語)를 주로 쓰고 있다.
세멸(細-, 지리멸치 1~2cm), 자멸(가이리 1.5~3cm, 도시락 반찬용 등), 소멸(小-,ごば ,고바, 3~4.5cm 술안주 ), 중멸(中-,ずゅば,고주바,4.5~7cm 국물 등 고급형), 대멸(大-, ずゅば ,주바, 7cm이상, 다시 국물) 등으로 나뉜다.
이중 죽방렴 멸치 같은 참멸치'를 제외한 모든 일반 멸치는 작은 세멸 등이 비싸고 대멸은 저렴하다.
- 사진 출처:네이버카페 Rhtop 블로그
*. 좋은 멸치 고르는 법
멸치는 부산 '기장멸치'가 유명하다지만 청정해역에서 어획한 무공해 자연식품인 '남해안 마른 멸치'는 미국 FDA(미국 식품의약국)가 승인한 멸치로 그보다 더 유명하다.
멸치도 좋은 멸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좋은 멸치 고르는 법을 찾아 요약해 본 것이다.
- 등이 약간 굽은 것이 신선한 멸치다. 살아있는 멸치를 삶은 후 건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은백색의 윤기가 돌고 등이 미색이며 비늘이 맑은 은색이며 배 부분에 기름기가 있는 노란색을 띠는 것이 상품 멸치다. 멸치를 잡은 즉시 신선한 상태에서 삶았기 때문이다.
- 너무 짠맛이 나는 멸치는 하품이다.
짠맛이 강한 것은 멸치를 건조할 때 날씨가 좋지 않아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 배나 머리가 부서져 나간 것은 멸치를 잡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요, 지나치게 마른 것이나, 덜 말린 것 , 누렇게 찌든 것은 건조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다.
- 색깔이 푸른색, 붉은색, 검은색이 섞인 것이나 기름기가 도는 것은 기름치라고 부르는 하품이다.
*. 영양 보고인 '멸치 똥'을 먹자
멸치를 잡아 내장을 살펴보면 까만 똥뿐이다. 다른 고기들처럼 자기 보다 작은 물고기를 먹지 않고 오로지 플랑크톤(Plankton)만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플랑크톤(Plankton)이란 바닷물에 떠다니는 식물이나 동물을 말하는 것인데 동물플랑크톤보다 식물플랑크톤이 아주 많다.
미생물 크기의 아주 작은 식물인 이 플랑크톤은 고래류를 비롯한 어류들의 주 먹이가 된다.
인간의 몸은 산성인데 플랑크톤은 알칼리성이다. 그 알카리성을 먹고 자라는 멸치라서 우리가 멸치똥이라고 하는 멸치의 내장은 알카리성으로 우리 몸을 위한 영양의 보고다.
일반적인 물고기의 항문은 배 밑에 붙어있지만, 멸치의 항문은 꼬리 부근에 붙어있다. 장(腸)이 길기 때문이다.
쌉싸름하기에 제거한다지만 그 까만 멸치똥이라고 하는 것이 멸치의 내장이다. 그러니 멸치는 통째로 먹어야 좋다고 하는 것이다.
멸치는 큰 것이라야 10cm 내외로 아주 작은 물고기여서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여 멸치보다 큰 고기의 먹이가 되는 게 멸치의 운명이다. 그 중에 멸치를 가장 많이 잡아 먹는 동물이 고래다. 고래가 잡아 먹는 멸치는 전 세계 인간이 잡아 먹는 것보다 많다고 하니 말이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이 동물세계에서 약한 동물이 맹수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좇아오는 맹수보다 더 빨리 도망치는 방법밖에 살길이 없다. 그래서 약한 생명체는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새끼를 많이 나야 한다. 태어나자마자 걸어서 적들로부터 멀리 도망 갈 수 있어야 한다.
바다고기인 경우에는 그 생장 여건이 육지 동물보다 열악하여서 그 알을 수십만 개씩 다산(多産)하여야 한다. 그 알은 빠른 시기에 부화(孵化)되어야 하고 조기 성숙(早期成塾)하여야 하는 것이 특히 멸치 같은 작은 어류의 삶이다.
그렇게 자란 멸치는 큰 고기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 수십만 마리씩 몰려다녀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게 된다.
*. 멸치의 효용
우리가 먹는 식사 중 멸치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멸치의 쓰임은 다양하다.
국거리 양념에, 술안주에, 멸치 회에, 노인이나 아이들의 영양식에, 멸치젓갈에 오늘날 우리는 식탁에 매일 멸치는 없어서는 안 될 양념의 식재료다.
멸치는 빈혈, 고혈압과 골다공증을 예방하여 주고 무엇보다 뼈를 튼튼하게 하여 주는 칼슘의 보고라는 말로 멸치의 효용을 대신하며 이 글을 맺고 싶다.
그 멸치의 효용은 식품영양학의 분야로 우리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척추동물인 인간의 뼈에 가장 필요한 칼슘이 우유보다 10배나 많다는 것이 멸치라는 말을 전하여 주고 싶다.
'멸치도 뼈대 있는 가문이다.' 라는 말처럼 멸치도 척추가 있는 어류여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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