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회(膾)

ilman 2017. 4. 9. 15:13

회(膾)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여유가 없어 못 먹는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돈이 있어도 먹고 싶은 음식이 별로 없다는 이도 행복한 측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식도락가(食道樂家)나 미식가(美食家)는 아니라 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길 중에 하나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있을 때라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그때 그 음식에 대하여 알고 먹는다면 그 행복은 배가 될 것이고 그 즐거움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던가.
나는 그중에 하나가 회(膾)라고 생각하여 그 회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회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도 감불청고소원(敢不請固所願)이 회(膾)요, 회(膾)를 안주하여 술잔을 기울일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회(膾)라 하는 것을 일본 사람들은 사시미(さしみ, 刺し身)라 하는데, 사시미의 어원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하여 온다.

옛날 일본 사무라이 정권 시대에 오사카 성의 한 장군이 있었다.
하루는 귀한 손님이 있어 접대 준비를 부하에게 지시했더니, 부하 중에 유명한 조리사가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배운 대로 갖가지 생선회를 산래진미(山海珍味)로 만들어 올렸다.
난생 처음 먹어 보는 생선회를 보고 손님들이 그 고기 이름을 알고자 계속 물어왔다.
그럴 때마다 주방장은 손님 앞에 나가 이를 설명해야 했다
대답이 궁한 장군을 위하여 조리 장은 작은 깃발에 이름을 써서 각 생선회에 꽂아 놓았다. 
일어로 찌르다, 꽂다는 뜻의 '사시(さし)'와 몸이란 뜻의 '미'(み,身)가 오늘날의 '사시미'로 굳어진 것이다.


일인들의 '사시미(さしみ)'와 우리나라 '회(膾)'는 먹는 방법도 서로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장이나 양념초고추장에 와사비를 풀거나 회(膾)를 된장에, 마늘, 풋고추와 함께 야채 쌈을 싸서 양념 맛으로도 먹는다.
그러나 일인들은 양념이 회 맛을 오히려 희석시킨다 하여 와사비와 회 간장으로만 맛을 낸다.
심지어는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뿌린다는 레몬즙도 싱싱한 회에는 쓰지 않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이다.
모듬회(膾)를 먹을 때에는 식초나 생강을 조금 먹어 입을 가시어 내고, 다음의 회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일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술안주로 회나 사시미를 먹지만, 서양 사람들은 건강식으로 먹고 있다.
일본인이 세계 최고의 장수국인 것은 사시미를 먹고 있는 것이 그 원인 중에 하나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생선회에는 인체에 필요한 불포화지방산과, 풍부한 섬유질, 저칼로리, 고담백 식품으로 다이어트와 미용 등 건강 유지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항암 작용까지 있다고 한다.

비 오는 날이나 궂은 날에는 우리들이 회를 먹는 것을 꺼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옛날 비 오는 날에는 배가 출항할 수 없는데다가 요즈음 같이 수족관이 발달한 시절이 아니어서 생긴 말이다.
요즈음도 갓 잡아온 고기를, 수족관에 있는 고기가 신선도에 있어서나 그 쫄깃한 맛에 있어서 따를 수는 없지만 옛날과는 차원이 다르니 과히 염려할 일이 못된다.
그러나 모든 고기들은 환경이 바뀐 수족관 같은 곳에서는 먹이를 잘 먹지 않고 자체의 칼로리를 소화하게 되므로 맛이 떨어지고 육질의 탄력성이 없어지기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회(膾)에는 생선회와 함께 육회(肉膾)와 어채(魚採)와 같이 약간 익혀서 만든 숙회(熟膾)가 더 있다.
육회(肉膾)는 소의 살, 간, 천엽, 양 따위를 가늘게 썰어 양념을 해서 참기름에 소금을 버무려 잘고 길게 썬 배와 함께 먹는 것이다.
숙회(熟膾)란 강회(미나리나 파)나 봄철의 어린 두릅 회를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가을철의 송이 버섯을 얇게 썰어 참기름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생선회를 '?'(회)라 하고 육회를 '膾'(회)로 구별하여 적은 문헌도 전한다.

공자(孔子)가 낚시를 하되 그물질을 하지 말라(釣而不網)는 말을 남긴 것을 보면 공자도 낚시와 회를 좋아한 듯하다.

살생을 금하던 불교가 지배하던 고려 시대를 지나 일 강점기에 들어 와서는 우리 선인들도 회를 즐겨 먹었는데 고추가 들어오기 전인 임진왜란 전에는 겨자 장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우리나라 고대소설 '별주부전'이 신소설로는 '토의 간'으로 거기에 토끼의 간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보다는 훨씬 젊었던 시절 방금 잡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토끼의 간을 오기로 함바식당에서 먹어본 일이 있다. 용왕도 못 먹어 본 토끼의 생간을 내가 먹어본 것이다.
회(膾)란 쫄깃하고 씹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토끼의 간은 물컹물컹한 것이 와락 겁이 나서 마늘을 눈물이 나도록 함께 먹은 경험이 시 한 수를 남기게 하였다.

바다보다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푸른 것이 있다.
바다다.
하늘과 바다가 어우른 횟집에서
우리 모여 축배를 들자.
이 나라
이 겨레
우리로 태어난 것을.

술잔을 높이 들어라, 벗이여.
하늘에선 그리움을
지상에선 천국을
바다에선 우정을 낚자.
바다를 회(膾)하며
하늘을 회하며
우리 다 함께 거북이 시켜
간을 회하는 용왕이 되자.
                                   -횟집에서


*. 회(膾) 먹을 때 유의할 점
회(膾)는 비싼 기호물(嗜好物)이라서 우리 같은 서민으로는 큰 맘 먹고야 횟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고가를 지불하고 횟집에 갔을 때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

* 일본에 가면 회집의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창밖을 볼 수 있는 창가, 홀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횟집에서의 상석이니 우리도 예약할 때는 이를 고려할 일이다.
* 여러 가지 회(膾)를 함께 주문하였을 경우는 가급적 참치(마구로)나, 숭어, 방어 등 붉은 색 회(膾)를, 다음에 흰색 생선을 먹자. 그 사이 생강 등으로 입을 헹궈낸다.
* 마늘, 고추 같은 자극성 있는 음식을 회와 함께 먹지 않도록. 자극성 있는 음식은 혀의 감각을 둔화시켜서 회(膾)의 고유의 맛을 잃게 한다. 이는 마치 마취제를 맞고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 회(膾)의 원 고장 일본에서는 회는 주로 와사비와 회 간장에만 찍어먹는다.
와사비에는 생선회의 고유한 맛을 느끼게 도움을 주는 시니그린이란 성분이 있다고 한다.
* 앞서 말한 것처럼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 레몬즙을 짜서 뿌리는 것은 멋이지 정석은 아니니 삼갈 것이다.
* 회를 상추나 깻잎에 싸서 먹지 말고 따로 따로 먹자.
따져보면 한점에 몇 천원이 넘는 생선회를 쌈의 맛으로 희석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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