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절미 이야기
32년 만에 닥친 12월 추위와 폭설이라는 눈길을 걸으며 귀갓길에 일산의 인절미 집을 지나다 보니 갑자기 인절미가 먹고 싶어서 들려서 주인과 인절미 이야기를 나누다 왔다. 찹쌀을 4~5일 흠씬 불려서 시루에 쪄내어 고두밥(지에밥)을 짓는다.
이를 절구나 떡판에 놓고 떡메로 밥알이 으깨어 흔적이 없어지도록 오래 힘써 친 다음 젖은 도마 위에 놓고 갸름하고 네모지게 썰어 고물을 묻힌 떡을 인절미 또는 인 절병이라 한다.
고물로는 거피한 팥. 녹, 노란 콩, 파란 콩을 볶아 만든 고물로 묻히는데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인절미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담이 전하여 온다.
- 인조 2년(1624년)에 인조 반정(仁祖反正)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평안병사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한양을 침공해 와 인조가 부득이 공주로 옹진 할 때의 이야기다. 인조는 두고 온 한양이 걱정이 되어 자주 공주 공산성(公山城)에 올라 멀리 북쪽을 근심스레 바라보곤 하였다. 하루는 왕이 민간인 복장으로 나갔다가 인근 우성면 목천리의 한 민가에서 한 광주리에 가득한 떡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 맛이 절미였다.“맛있구려, 그런데 이 떡 이름이 무엇이오? 왕이 산하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 없었다. “임 씨라. 임 씨 집 떡이라. 이 떡 맛이 절미(絶味) 하니 그 성을 앞에 두어 절미(絶味) 임 절미(任絶味)라 하는 게 어떻겠소?
그 임절미가 음편(音便)에 따라 인절미가 되었다.이런 이야기도 있다.
-병자호란 때 호란을 피해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가다가 떡 장수 할머니를 만나 떡을 먹었더니 그 맛이 절미(絶味)였다. 인조가 그 떡 이름을 물었더니 아는 이가 없었다.그래서 인조의 '인'에 인조가 말한 '절미'를 더하여 '인절미'라 하게 되었다.
인절미란 이름은 그 이전 고려 때의 제사식(祭祀食)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보면 이 인절미 이야기는 민간어원설(民間語源說)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도로묵이란 어원담도 인조와 연관되어 전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