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ilman 둘째 누님 가시는 날

ilman 2013. 8. 6. 08:36

우리 작은 누나 테레사 성차용 가시던 날

 

누님이 가셨다. 나의 둘째 누님이 84세를 일기로 우리 5남매와 유명을 달리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정이 많고, 우애가 유달리 깊고 자애로운 누님이기에 5남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누님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인은 고향(故鄕) 같은 여인인데 그런 분이 바로 우리 둘째 누나였다.

  젊은 시절 여름 어느날 나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

몸이 유난히 약해서 둘째 아들을 찾아온 아내에게 형네를 대신하여 치매에 중풍든 아버지를 차남인 우리가 모시고 살 던 때. 아내가 산고로 최소 3일간만이라도 친정에 가서 피접하기 위해서의 부탁이었다.

그걸 망설이던 형제 대신에 병든 아버지를 며칠만이라도 내가 모시겠다고  자청하여 나선 분이 둘째 누님이셨다.

그 누님은 우리 형제 중에서 가장 가난을 사시다가 가신 분이어서 우리들의 애통은 더욱 컸다. '아아 불쌍한 우리 누나' 하면서.

남편복, 자식복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난과 역경을 디디고 세상을 열심히 사시다 가신분이기 때문이었다. 

 

염(殮)을 할 때 준비된 수의(壽衣)가 고인이 생전에 손수 마련한 것이라는 말에 우리는 더 한 번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나 죽으면 어려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덜어 주겠다.'는 생각을 읽어서였다.

우리 누님은 가난을 운명처럼 순종하고 살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느 누구보다 부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누님은 생전에 여러 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며 생사 길을 헤메시다가 천주님께 빌고 빌던 모든 것을 보고난 후에야 떠나신 것 같다.

말썽꾸러기 둘째가 50 살이 넘도록 총각으로 살다가 이제는 넉넉한 돈을 벌며 러시아 여인 나타샤와 혼인하여 살면서 못다한 효도를 하겠다는 둘쩨아들과 그 며누리의 효도를 보시다 가셨다. 
못배우고 자식을 더 못 가르친 것을 한(恨)하며 살다가 그 맏손자 권회수가 그 좋다는 '삼성(三星)'에 입사하여 작년말 모범사원으로 뽑혀 승용차를 한 대 상으로 받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년째나 취직 못하던 외손자 이재민이 공기업인 '한국전력회사'에 떠억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얼마 전 병상에서나마 듣고 가셨으니, 우리 누나가 생전에 천주님께 빌던 것을 다 보고 가시려고 누나가 사경을 헤메면서도 눈을 이제야 감으시는구나 하였다. 

 

생전에 우리 누님이 제일 잘하신 일 중에 하나가 천주교에 귀의(歸依)하신 일이라 나는 생각하여 왔다.

천주님를 모시고 의지하며 거기서 사귄 당신과 비슷한 또래끼리 어울려 사시는 것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좋아 보여서였다. 

천주교는 장례문화가 발달한 종교다. 성도들이 장례식 처음부터 끝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그랬다.
세째날 마지막 '테레사 성차용' 누님을 위한 아침 성당미사에 참께하신 성도들도 그랬다.

그 미사를 집전한 키가  2m 10cm 나 되는 거인 신부님을 바라보니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 주신 행복의 사자와 같았다. 
이 성당에서 우리 누님이 생전에 앉았던 의자에 우리도 앉아 그 명복을 축원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누님을 생각해 보는 감격은 우리를 행복한 생각에 잠기게도 하였다. 

 

우리는 생전에 고인의 뜻에 따라 수원시  수원시 영통구 동탄원천로 1420번지에 있는 수원연화원에 왔다.

 

승화원(화장장), 추모의 집(봉안당),유택동산내 (자연장, 합동유골처리장, 산골장)의 최신식의 시설을 완비한 곳이다. 

옛날에 화장터라고 하던 이름을 장묘문화 차원에서 이름을 바꾼 현대적시설들이다.

 거기 7호 추모실에 영정 사진을 모시고 예배를 보는 사이 승화원에서 1시간 30분부터 2시간 내에 우리 누님은 승화원(昇華院)에서 화장되는 모양이다. 그 화장하는 모습이 가린 브렌드 너머에서 진행되는 모양이다.

 

 

이제 장지인 안성시보개면북가현리 49에 있는 안성천주교묘원을 향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인 납골당마져 이 가난을 살던 누나가 생전에 몸소 투자하여 준비해 둔 것이란다.

 

아아, 작은 누나 테레사

 

불행을 운명처럼,

가난을 숙명 같이

감사와 미안으로

열심을 살던 여인

우리 작은 누나 테레사는

사랑을 심고 가신

행복한 자식의 엄마이었네

 

 

 

 120년간 이곳에 있기로 계약한 납골당.

 

이 납골함은 나타샤(러시아 며느리)가 거시기 빨래 하며 병을 수발하던 시어머니께 바친 사랑이랍니다.

 

다음은 텔레사 성차용 우리 둘째의 작년 2012년 8월 83세 생신 잔치의 이모 저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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