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106

남해도 여행/남해 가족 여행

남해도(南海島) 여행/ 가족 여행 알뜰 아내가 큰 결심을 하였다. 2018년 78세의 생일을 맞아 가족 남해여행 비용 경비로 거금 300만 원을 내겠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어머니 8 순 여행을 위해 적금을 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쓰겠다고 나서서 내가 그 진화 작업으로 자식들에게 만류하는 문자를 보냈다. '이 번 여행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 주고 가족이 다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엄마의 순수한 소원이니 도와 드리게나. 경비가 남으면 불참한 손주들에게 한 5만 원 정도씩 나누어 주고 싶다네. 허니 왈가왈부 말고 엄마의 마음 받아 드리는 게 효가 된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아빠가. 자식들이 그러하기로 하고 아들은 토요일부터 2박 3일로 월요일은 직장에 월차를 내고 가족 13명 중 4명이 빠진 9명이..

국내여행기 2018.05.23

육신사(六臣祠)를 찾아서

육신사(六臣祠)를 찾아서 /           -사육신 자손으로 유일한 순천 박 씨 박비(朴婢) 이야기  우리 창녕 성씨 계당공 종중(昌寧成氏 溪堂公 宗中)에서는 봄가을 매년 2회씩  성씨(成氏)  선조 유적지 순례 참배 행사를 갖는다. 10여 년을 하다 보니 웬만한 곳은 다 가본 곳이라서 새로운 유적지를 찾다가 금년 봄에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의 육신사(六臣祠)를  찾아간다.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삼대 멸족(三代滅族)한 사육신(死六臣) 중 유일의 생존 후손을 둔 순천 박 씨 충정공 박팽년(朴彭年) 후손들이 고맙게도 우리 매죽헌 성삼문 할아버지를 위시해서 여섯 분의 사육신(死六臣)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祭)를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해서였다.가마귀 눈비마자 희는 듯 검노매라야광명월(夜光明月)..

국내여행기 2018.04.22

올림픽 공원과 몽천토성(夢村土城)

올림픽 공원과 몽천 토성(夢村土城)   서울에서 올림픽공원을 가려면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올림픽역 3번 출구, 몽촌토성(夢村土城)은 8호선 몽촌토성역 1번 출구로 나오는 것이 정식 코스이지만, 우리들은 잠실역(蠶室驛)에서 만나 한국에서 제일 높다는 롯데타워(123층)를 휘돌아 잠실 올림픽공원 정문을 통하여 간다. 올림픽공원과 몽촌토성을 아울러 보고자 함이다. 잠실 올림픽공원은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대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서 1986년에 조성된 약 145만 ㎡의 부지에 세워진 당시 체육관 시설들로 우리들은 이를 바라보며 그 중심부에 있는 백제 유적인 몽촌토성을 향하고 있다. 몽촌토성(夢村土城)은 한성 백제시대의 토성으로 지금의 송파구 올림픽로 자리에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길이 2,383m, 높..

국내여행기 2018.03.27

해맞이 여행 / 호미곶[영일만] 가는 길

해맞이 여행 / 호미곶[영일만] 가는 길*. 해동 용궁사(龍宮寺)      어제 부산 해운대(海雲臺)에 도착하여서 늦었지만 어둑어둑한 땅거미 무렵 '동백섬'을 찾았다.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 오른편 끝 조선 비치호텔 뒤편에 있는 섬이다.옛날에는 섬이었던 곳에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모래로 유계도(有界島)가 된 섬이다. 동백섬은 예로부터 경관이 빼어나 유명한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특히 신라 때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발자취가 남이 있는 곳이다. 동백섬은 해안선을 끼고 돌며 바다를 굽어보며 도는 산책로가 일품이라지만 나는 그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보고 싶어 우선 정상에 오르니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비가 천리길을 달려온 나를 반긴다.  고운 선생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

국내여행기 2018.03.11

소래포구(蘇萊浦口) 이야기

소래포구(蘇萊浦口) 이야기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포구(浦口)'란 신선한 낱말이다. 그 포구는 바다, 배, 갈메기 등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자연애, 이국적, 동경적을 낭만의 3요소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싱싱한 회(膾)는 소래포구를 향하는 우리를 행복케 한다. 술꾼에게 회보다 더 좋은 안주가 있겠는가. 오늘은 KCCA의 영상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떠나는 Happy Day 사진 촬영 여행을 소래포구로 떠나는 날이다. 4호선 전철을 충무로(忠武路)에서 바꿔 타고 종점인 오이도(烏耳島) 역에서 수인선(水仁線)으로 다시 바꿔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가니 거기가 바로 소래포구역(蘇萊浦口驛)이다.*. 수인선 협궤열차(水仁線狹軌列車) 이야기   소래(蘇萊)의 매력은 협궤열차 수인선(水仁線)을 빼 놓고 말할 ..

국내여행기 2018.03.01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선생 묘 문학기행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선생 묘 문학기행 *문학(文學)의 힘 시조(時調)는 한국 고유시의 정형시다. 국민들이 애송하는 그 대표적인 시조(時調)는 무엇일까? 그중에 하나가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와 함께,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의 권농가(勸農歌)일 것이다. 남구만 선생은 호가 약천(藥泉)으로 의령 남씨(宜寧南氏)다. 23세에 사마 시(司馬試)를 거쳐서 관찰사, 어사, 형조, 병조 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 이어 영의정까지 출세 가도를 달리며 인조 때 나서 숙종 무렵을 살다 가신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그러나 약천 선생이 가신 지 300년 후를 사는 우리들의 기억에는 그분의 성공적인 삶보다 ‘동창이 밝았느냐~’란 단 한 수의 시조로 인하여 남구만 선생을 기억할 뿐이다. 유명한 분의 작..

국내여행기 2018.02.20

포은 정몽주 선생 묘

포은 정몽주 선생 묘/‘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219’ 작약 꽃 필 무렵 내가 오랫동안 활동한 (사) 시조문학진흥회 따라 문학기행으로 용인에 있다는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 선생묘소를 참배하러 간다. 5월의 무성한 신록 속에 뜸뿍이가 우는 청명한 아침이었다. 가던 김에 그 부근에 ‘동창이 밝았느냐~’의 시조작가 약천 남구만(南九萬)의 묘소와 용인공원 묘지 내에 박목월(朴木月)의 묘소를 찾는 것이 우리들 오늘의 일정이다. *. 포은 정몽주 묘(圃隱鄭夢周)중고등학교 시절에 우리들은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야은 길재(吉再)를 배웠다. 이 삼은(三隱) 세 분은 같은 시대를 살던 분들로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스승이 목은 이색(李穡)이요, 길재(吉再)의 스승이 야은..

국내여행기 2018.02.18

하회마을(河回-)(상)

하회마을(河回-)(상)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마을이 어디일까? 지금까지 나는 경주 가는 길에 들렸던 양동마을인가 했더니 그보다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회마을(河回-)'임을 알았다. 화회마을은 전통적인 한옥과 초가집이 정자(亭子)와 정사(精舍)와 서원(書院)과 한데 어울려서 풍산 류씨(柳氏)들의 집성촌으로 600년 간 대대로 오늘날까지 옛날 삶을 그대로 이어오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씨족마을이요, 전통적 문화를 간직한 전통마을이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UNESCO는 이 하회마을을 한국에서 10번째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다음과 같이 그 등재 이유를 밝혔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

국내여행기 2018.02.18

하회(河廻) 마을(하)

하회(河廻) 마을(하)   *. 하회(河廻) 마을 어원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 지류인 화천강(花川江)이 'S' 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이 하회마을을 '물돌이동(-洞)'이라고도 하였다.동쪽에 화회 마을의 진산(鎭山)인 화산(花山, 327m)이나 서쪽의 부용대(莩蓉臺)에서 하회마을을 굽어 보면 마을 모습이 태극기 모양과도 같고,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과도 같고, 한 척의 돛 단 배가 떠 가는 형국(形局)이다.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에서 말하는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 모양으로 태극형(太極形)으로  행주형(行舟形)이요, 연화 부수형(蓮花浮水形)인데 이는 하회 마을이 연화(蓮花) 같다 해서 생긴 말이다 그래서인가. 이곳은 ..

국내여행기 2018.02.18

정서진(正西津) 이야기/인천광역시 서구

*. 정서진(正西津) 이야기/ 인천광역시 서구 광화문 동아면세점 뒤 우리은행 앞 도로에는 대한민국의 도로 원표(道路元標)가 있다.도로 원표(道路元標)란 도로의 기점, 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표지다.우리나라에 도로원표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광화문 광장 지금의 이순신 장군 동상 자리에 있었다. 높이 70㎝의 화강암을 깎아 서울에서 전국의 18개 도시까지의 거리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후 광화문 가로가 확장되면서 교보빌딩 앞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전’ 안으로 옮겼다가 1997년에 다시 그 건너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경국 대전(經國大典)에 "도로의 기준점은 대궐문으로 본다."는 기록에 의거 경복궁의 남문 광화문을 기준으로 하여 도로원표에서 동서 남북 국토의..

국내여행기 201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