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도교 도(東京都)(5)/일본 크루즈

ilman 2024. 10. 31. 16:33

 네덜란드계 미국의 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 교수는 세계 3대 도시를 뉴욕, 런던, 도교라 하였다.
2020
년대 기준으로 인구를 따져 보니 뉴욕(Newyork)은 약 870만 명, 도쿄 도는 일본 인구의 1/10이나 되는 약 1,400만 명, 런던은 약 940만 명이었지만, 이 분류는 단순한 인구 수만의 분류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서로의 영향 관계 등을 고려한 분류였다.

Korea 서울에서 2 시간이면 도착하는 이렇게 가까운 동경을 내 나이 901년 앞둔 나이에야 첫발을 올려놓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반나절이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에 마음이 착잡하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 가이드가 묻는 말이 “도교에서 어디부터 안내할까요
?”.


그 물음에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어제 크루즈 선상에서 들은  'Korea의 경사(慶事)'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받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소식 말이다.

‘여류 소설가 한 강, 첫 노벨 문학상!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갈망해 오던 겨레의 소원이여! 변방의 한국어 문학이 세계문학 중심으로 진입한 Korea의 자존심(自尊心)이여! 
노벨수상 문학 작품을 원어(原語)로 읽고 있는 우리들의 영광이여!
 
 하여 노벨상 
16개 수상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동경 제국대학교로 발길을 돌렸다. 영어로 ’The University of Tokyo‘로 말이다.

 19세기 이토 히로부미가 근대국가 일본 제국에 봉사할 소수 정예를 양성하기 위해 독일을 답사(踏査) 한 후 이를 참고하여 제국대학(帝國大學)’을 건립하였다는 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는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말이다.

'Tokyo 대학교'는 청일전쟁(淸日戰爭) 승전 후 청나라로부터 받은 그 전쟁 배상금을 활용해 1877년에 도교에 연구 중심으로 설립한 일본 최초의 제국대학으로 당시 그 캠퍼스는 5개였다.

이 제국대학(帝國大學)은 국내외 대학평가에서 일본의 최고 대학으로 인정되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일본 최고의 연구기관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런 국립대학 9개를 일본 국내에 지었는데 그 10번 째로 지은 대학이 식민지 조선 서울에 세운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이요, 그 후신이 서울대학교였다. 당시에 고대, 연세대의 그 전신이 '연희전문학교'와 '고려 전문학교'였던 시절이었다.


이 대학은 2022년 기준으로 동문(同門)과 교수 등이 받은 노벨상 수상자는 16명(동문 10명)이고, 일본 총리(總理) 17명과 우주인(宇宙人) 3명을 배출한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기도 하였다.

이 학교에 학생이 입학하려면 일본 제국(帝國) 시기에 소학교(6) - 구제 중학교(5) -구제 고등학교(3) 도합 14년에 걸친 입시 경쟁에서 승리한 학생들만이 가는 학교로, 오늘날 제국대학의 후신들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이를 통과한 제국대학 학생들만이 학사 및 박사 학위(學位)를 취득할 수 있던 대학이었다. 당시 고려대, 연세대가 전문대학 수준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의 일정에 없던 대학 탐방이라서 가이드도 대학에 대하여는 손방(巽方) 인지- 가이드를 못하는 것 같아 정문 주위를 맴돌다가 왔다. 여기서는 그 건물 몇 개의 사진으로 소개를 대신한다.

동경제국대학 강당

*.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せんそうじ)

점심은 일본 민물 장어로 입호강을 시키고, 우리는 가이드 따라 나카미세 상점가(浅草仲見世商店街)의 인파 속의 하나가 되었다. 이 상점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가 중 하나로, 센소지사 (浅草寺) 입구에 줄여서 '뇌문(雷門)'이라 하는 '프라이 신문(風雷神門)'까지 계속되고 있다.

호조 몬(寶藏門) ,  카미나이 몬(雷門)까지 양쪽으로 늘어선  상가가 나카미세 상점가(浅草仲見世商店街)다. 

뇌문(雷門) 양 옆에는 일명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하는 금강역사가 안치되어 있고, 문 상층에는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寶藏門'(호조문)이라 하는 문이 있다. 그 문 뒤쪽에는 불교 수호신 금강역사(金剛力士)의 커다란 짚신 오와라지(鞋)가 걸려 있는데 그 무게가 무려 2.5톤이나 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상점가에는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이나 가벼운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이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3,000 만여 명이나 된다는  이곳이 일본에 오는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지다.  카미나리몬, 호조 몬까지 260m의 오모태산도(表參道)에는 관광 상품 같은 기념품이나, 간식거리 등을 파는 89여 개의 이 점포들이 즐비하다.

센소지(浅草寺 せんそうじ)는    일본 도교도 다이토 구 아사쿠사에 있는 도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로 일본 국보 중에 하나다.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어 관음당(觀音堂)이라고도 불리는데  센소지 건물은 2차 대전 공습으로 소실되어 1958년 콘크리트로  재건된 건물이다. 바다에서 건졌다는 관음상 진본(珍本)은 뒤쪽에 안치되어 있고, 일반에게 공개된 앞쪽 관음상은 복제본이다.

 센소지 본전 앞에는 연기를 풍기고 있는 커다란 향로(香爐)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 연기는 신통하게도 병자의 아픈 곳을 치유해 준다는 전설이 있어, 그 연기를 손으로 모으며 그 앞은 언제나 인산인해(人山人海)로 사람이 몰린다.
다음은 이 절에 관음상 (觀音像)을 모신 유래다.


옛날 628년 경 아사쿠사에 사는 어부 키노쿠마(竹成) 형제가 스미다 강(隅田川)에 그물을 던졌더니 그 그물에 '
황금관음상(黃金觀音像)'이 걸려 나와서 강에 다시 넣었지만 그 물을 던질 때마다 계속 걸려 나와서  형제는 이를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이 관음보살을 모시기 위해 사당을 지었다고 전하여 온다. 그 후 승려 쇼카이(勝海)가 이곳을 지나다가 꿈속에서 게시를 받아  645년에 절을 세운 것이 센소지(浅草寺 せんそうじ)라 한다.

그 후 옛 건물은 관동 대지진(關東大地震)2차 세계 대전 당시 대부분의 건물과 함께  소실되고, 현재의 건물들은 1960년 이후에 재건한 것들이다. 상가가 즐비한 곳을 지나니 커다란 붉은 등과 함께 나타나는 절이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せんそうじ)다. 

다음에 들린 곳이 '메이지 신궁(新宮)'이라는 곳으로 일본 천황의 무덤이 있는 일인들의 성지(聖地)인데 얼떨결에 가이드 따라갔지만 혹시나 이 신궁이 그동안 한국인이면 백안시해 오던 신사참배와 관계있는 곳이 아닌지 우려된다. 다시는 또 오지 못할 일본에 와서, 제한된 시간에 다른 일본의 이곳저곳을 다 제쳐 두고 그 비싼 가이드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돼 다. 그런 저런 생각이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せんそうじ)그 기행문을 여기서 접게 한다. 혹시나 해서다.  내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  가정한다면, 임란으로 우리 민족을 살상하고, 나라를 강제로 송두리째 앗아 식민지로 만들지 않았었다 하더라도,  제한된 시간에 남의 나라 한국의 단군왕검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것이 온당한가를 생각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