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奈良)의 대동사(東大寺, 도요다이지)
어제 우수키의 묘를 보고 오이타항(大分港)에 오니 우리가 규슈를 탐방하는 동안 우리가 타고 온 쿠르즈 '후지마루호'는 해로(海路)로 하카타항에서 오이타항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배는 오이타항을 떠나 저녁 식사 후 우리가 선상대학(船上大學) 강의를 듣고 잠든 동안 밤새도록 달려 瀨戶內海(세토나이카이)를 지나 다음날 아침 오사카항(大阪港)에 기항(寄港)하여 있었다. 이것이 선상크루즈의 매력인 것 같다. 나는 어젯밤에는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자랑하는 '세토대교(瀨戶大橋)'를 사진으로 남긴 것이 보람이었다.
야경의 세토대교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였으나 일본도 유류파동으로 절전을 위해 교각의 전등을 거의 꺼버렸지만 밤에 보는 다리는 낮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 위를 달리는 차가 아니라 그 다리 밑으로 통과하며 보는 이국의 다리라서 더욱 신비로웠다. 세토대교는 한국의 삼천포와 남해를 이어 주는 다리처럼 일본 세토 내해(內海)에 떠 있는 다섯 개의 섬을 징검다리로 하여 오카야마현의 고지마와 가가와현의 사카데까지 여섯 개의 다리로 연결하여 주는 12.3km의 대형 교량이다.
*. 나라(奈良)의 절 동대사(東大寺)
인구 37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奈良)'를 '나라'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 최초의 국가를 세우고 국가를 뜻하는 우리말 '나라'를 빌어 그 지명으로 한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奈良)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한국 경주(慶州)와 결연을 맺은 도시로, 나라(奈良) 역시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그래서 나라(奈良)에는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이 무려 8곳이나 있다.
나라 시내 동쪽에 있는 나라공원(5.25㎢)에는 '興福寺', '東大寺', '春日大寺', '若草山' 등 나라의 대부분의 명소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동대사( 東大寺 )를 가는 길에 사슴들이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진귀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여기도 동대사가 아니라 '나라공원(奈良公園)'인가 보다.
이 공원에는 1,200마리의 사슴이 있는데 그 역사도 깊어서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다는데 그전에는 사슴을 '신의 사자'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수없이 많은 사슴들이 시카 셈베이(사슴 비스킷, 150엔) 먹이를 파는 가게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마음 좋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당부한다.
종이나 책을 들고 다니지 말라. 종이도 나무로 만든 것이어서 사슴이 달려와 뺏어 먹어버린다고.
東大寺(토오다이지)는 원래 백제 이주민의 후손인 양변(良弁)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절로 1180년 소실된 두어 차례 중건한 사찰이다.
東大寺(토오다이지) 들어가는 길에 일본에서는 가장 훌륭한 목조 조각이라는 南大門(난다이 몬)을 지난다.
大佛殿(다이부츠덴)을 멀리서 보면 사무라이 투구 같이 양쪽 용마루에 꼬부라진 노란 소뿔 한 쌍이 물씬 일본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 건물은 세계에서 제일 큰 목조 건물이라는데 지금 것은 크기가 옛날의 2/3 밖에 안 된다니 그 원래의 옛 모습은 대불전 안에 만들어 놓은 모형으로 볼 일이다.
대불사에 모신 大佛(다이부츠)는 세계에서 제일 큰 청동상 중 하나로 16m 높이에, 437톤의 청동과 130kg의 금으로 만들었다는 불상이다.
-쇼오무(聖武) 천황이 천연두에 대한 부적의 의미로 이 불전을 세우도록 하였다는데, 이 대불을 향하여 향을 피우고 참배하면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불상이다.
이 대불상의 뒤를 돌아가면 이 대불의 콧구멍 크기 만한 뚫린 기둥 하나가 있어 이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득도한다는 전설도 있다. 나도 그 굴을 통과하였는데 언제나 득도를 하려나?
*. 담징 벽화의 法隆寺(호류지)
法隆寺(호오류 우지)는 나라 공원에서 아스카로 가는 도중 논 가운데 있는 사찰이다. 그 장소가 斑鳩(이카루카)이므로 斑鳩寺(이카루카지)로 불리기도 하는 절이다.
나는 지금까지 담징의 벽화 때문에 유명한 절인 줄로 알았더니, 막상 가서 보니 法隆寺(호류지) 때문에 담징 벽화가 더 유명해진 것 같았다.
-지진과 화재가 많은 이 땅에서 무사히 세월을 이기고 세계 목조사원 건축물로는 최고(最古)라는 기록을 가진 건물이 法隆寺(호류지)였다.
이 절은 크게 西院(사이인)과 東院(토오인)으로 나뉘는데 서원에는 탑, 金堂(금당), 강당, 못이 있다.
동문을 경계로 하여 있는 東院에는 중궁사(中弓寺)와 전시실 등 부속건물 이 있다.
이 절에는 국보만도 50여 점, 문화재가 150여 점이나 소장되어 있어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그 法隆寺(호류지)를 607년에 창건한 분이 일본 불교 수호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쇼오토쿠(聖德) 태자다. 이 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도 유명하다.
-쇼오토쿠(聖德) 태자는 예수님처럼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곧 말을 하고 사물을 분별하였으며, 3세 때에는 동쪽을 향하여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읊었다.
자라서는 일시에 열 명이 하는 호소를 듣고도 이를 분간했다 한다.
이 절은 남쪽 가로수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南大門(난다이 몬)과 中門(츄우 몬)을 지나 西院(사이인)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본존을 모신 대웅전에 해당하는 金堂(콘도오)이 경내 오른쪽에, 왼쪽에는 오중탑(五重塔)이 있다.
-말로만 듣던 담징의 벽화 앞에 서니 korea에 태어난 것이 새삼 가슴 벅차다. 담징은 고구려 스님으로 일본에 건너가 활략하던 화승(畵僧)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10년 영양왕 21년에 백제를 거쳐 일본에 가 채색과 종이, 먹, 맷돌 등의 제작 방법을 전하였다. 일본 승 법정(法定)과 함께 나라(奈良)에 있는 호류지(法隆寺)에 기거하면서 오경과 불법 등을 강론하고 금당의 벽화를 그렸다고 전하여 오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이설(異說)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이 귀한 벽화는 1949년 전기공사를 하다가 화재로 소실되어 버리고 지금은 그 모사화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벽화는 금당삼존불 뒤에 가려져 있는 비천상 아래라서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한국인의 그림이라 하여 차별을 받은 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위 그림의 좌측은 담징 벽화의 전경이요, 오른쪽 그림은 그 일부분이다.
일본의 모든 문화재는 모형물이 아닌 한 촬영을 금지하였었고 촬영을 허한다 하여도 일반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는 조명과 시설이 구비된 것이라야 촬영이 가능하였다.
관광 책자를 사면되겠지만 한글판이 적었고, 있다 해도 고가(高價)였다.
이런 경우 매표소나 휴게소에 비치하여 매어둔 관광책자를 이용하여 자료를 구하려 하였는데 그마저 제지당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래도 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일반인이 구할 수 없는 사진 등을 이 페이지에 싣는다.
쇼토쿠 태자를 위해 주조하였다는 호류지 금당의 금동석가삼존상(金銅釋迦三尊像)도 그렇게 하여 구한 것이다.
호류지를 나서면 우측에 쇼토쿠 태자를 모신 성령원(聖靈院)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法隆寺(호류지)의 멋은 金堂(금당) 왼쪽에 목조 5 중탑에 있다.
32m 높이의 기와집이 위로 가면서 조금씩 좁아지면서 5층에 이르러 날아갈 듯이 멋진 첨탑을 뽑아 올리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이 절을 지을 때 백제로부터 와박사(瓦博士) 조사공(造寺工) 등 수많은 사원 건축 기술자들이 건너왔다는 기록을 보면, 이 절의 배치 양식 등으로 보아 우리 옛 선조들의 손길을 통한 얼이 어리어 있었음을 생하며, 이국 일본 땅에서 위대한 korea 조상의 얼을 기리게 되는 우리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다음 아스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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