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鳥(아스카) 탐방(5)/ 일본 속의 한민족사
*.石舞臺(이 시 부타이) 이야기
오사카에서 남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일본인의 고향이라는 飛鳥(아스카)가 있다. 6~7세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대륙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각종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문화를 꽃피웠던 고장이어서 이 아스카지역은 고문화 지구(고문화 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飛鳥(아스카)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石舞臺(이시부타이)'와 '高松塚(다카마쓰고분)'과 아스카지(飛鳥寺)이다.
石舞臺(이시부타이)는 아쇼카천 상류 나지막한 구릉 중간에 이 부근에 드문 커다란 바위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그 돌 위에서 춤을 추며 놀던 곳이라 해서 돌 '石'(석), 춤출 '舞'(무) '石舞臺(이시부타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60여 년 전 비가 몹시 오던 어느 날 돌 근처의 흙이 쓸려 내려가고 남은 돌 틈으로 노출된 것을 보니 위가 둥글고 아래가 네모진 상원하방고분(上圓下方古墳)이었다.
현실(玄室)은 길이가 7.7m, 폭이 3.6m, 높이가 4.7m가 넘는 고분이었다.
그 위를 고인돌처럼 커다란 돌로 얹어 놓았는데 75톤이 넘는 거대한 화강석 30여 개로 만든 석실(石室)이라서 학자들은 이 고분을 왕릉을 능가하는 대규모의 능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굴꾼의 손길이 지나간 고분이라서 피장자의 신분을 밝힐 아무런 흔적이 없어 그 신비함을 더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내부가 우리나라 강원도 지역에서 발굴된 석실고분과 같아서 당시에 세력자인 백제계 호족이 아닌가.
혹시 그중에서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인가 하며 의론이 분분했다.
*.高松塚(다카마쓰고분)과 고구려 벽화
그러던 중 1972년 경 죽순(竹筍)을 캐던 농부에 의해서 高松塚(다카마쓰고분)이 발견되었다. 주변의 대나무 밭 중에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있는 고분이라 해서 사람들은 이를 '高松塚(다카마쓰고분)'이라 불렀다.
이 고분은 직경 18m, 높이 5m의 원분으로 石舞臺(이시부타이)에 비하면 작았지만 석실 내부를 보고는 일본 열도가 놀라며 흥분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고분으로 장식의 수준을 뛰어넘는 예술의 경지의 벽화가 있는 최고의 장식고분(裝飾古墳)이었기 때문이다.
길이 265cm, 폭 103cm, 높이 113cm의 이 조고만 이 현실(玄室)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완벽한 채색벽화의 고분이었다. 한국의 고고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마쓰고분의 천장의 흰점으로 표시된 북두칠성 등 성수도(星宿圖)도 그랬지만, 사방 벽의 사신도(四神圖)가 고구려의 쌍룡총과 덕흥리 수산리고분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高松塚(다카마쓰고분)이 고구려계이며 피장자避葬者)가 고구려 사람인 것은 벽화에 나타난 인물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여인들과 남자들의 복장이 당시 고구려의 것이었다.
남자들은 고구려인들처럼 머리에 모자를 썼고, 바지 위에 긴 두루마기를 입었다. 특히 4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뒤에서 묶었고 상의는 소매가 길고 허리띠를 매었다. 그리고 치마를 땅에 끌릴 정도로 입었는데 그 문양이 세로로 난 색동주름치마였다.
그렇다면 다가마쓰고분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고구려인들을 묻었고 고구려벽화를 그렸다면, 화공 역시 고구려인들임이 틀림없는 일이다.
610년에 다른 승려들과 함께 일본에 온 화승 담징 같은 화공이 있지 않았는가. -'아스카(비조) 지역의 역사와 문화'(동국대 교수 윤명철)
그러나 일인 학자들은 국보로 지정된 이것마저 백제 영향에 이어 고구려의 영향임을 인정하기 싫어서 도당(初唐)의 영향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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