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도 가는 여객선은 두 군데서 출발한다.
통영항(統營港)과 거제도 저구항(猪仇港)이다. 저구항에서 매물도까지는 40분으로 통영에서 오는 것보다 25분이나 빨랐다. 배는 푸른 바다를 하얗게 헤치고 대 매물도(大每勿島)를 거쳐서 소 매물도(小每勿島)에서 내렸다.
대 매물도에는 볼거리가 적고 소 매물도가 볼 게 더 많다 해서였다. 섬 여행을 하면서 항상 꿈꾸는 나의 세상은, 섬의 포구에 도착여 부둣가 노점상 아줌마를 만나 그 섬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을 안주하여 그 고장 토속 막걸리로 여정(旅情)을 푸는 것이다. 홍도에서도 흑산도 가거도에서도 그랬다.
그 아주머니들은 이 섬에서 태어나서 자란 토박이거나 해녀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이 고향의 소식통이기 때문이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1904년 뭍에서 가난하게 살던 김해 김 씨가 섬에서는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소 매물도에 정착하였는데 이 섬은 다른 섬과 달리 식수가 일찍이 발견되어서 그 후손들이 현재 14 가구 약 34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중 10 가구 19명만이 원주민이라고 했다. 이 섬에 뭍에서 투기꾼들이 쳐들어 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소 매물도의 귀한 모든 것을 다 사버려서, 지금은 객이 주인이 되고 원주민은 객이 된 비정의 소 매물도가 되었다 한다.
그래도, '산(山)의 주인이 나무이듯이 이 섬의 주인은 갈매기요, 현지 사람임을 어찌 부정하랴.' 하는 마음으로 들었다.
옛날 젊었던 시절 이 소 매물도를 배로 한 바퀴 돌고 갔던 당시에 들은 말로는 이 섬에는 수세식 변소도 없고, 전기는 발전기로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밤에는 11시까지만 전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하였는데 북 쪽 500m 지점에 있는 대 매물도에 한전 발전소가 생기면서부터 소 매물도도 대처 같이 밤이 밝아졌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하루에 두 번 열린다는 등대섬의 바닷길인 몽돌 길 '열목개'가 열렸다니 어서어서 가 봐야겠다.
먹던 회를 주섬주섬 담아 싸들고 먼저 숙소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 25kg의 가방을 맡기고 가벼운 가방을 메고 등대 섬을 가기 위해서였다. 물병에 스틱에 카메라 등등 가방은 꼭 챙겨 가야 해서다. 외지 사람들이 지어 놓은 멋진 펜션이 10 여체가 민박을 못하게 하였는지 소 매물도에는 민박 집이 한 채도 없었다. 언덕 위에 지어 놓은 멋진 펜션의 주인을 찾아 아무리 주인을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할 수 없이 그 아래 식당가를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펜션 주인들이 식당, 매점, 찻집도 함께 운영하는 모양이다. 1박에 5만 원에 흥정하고 등대 길을 향하다 보니 벌써 숨이 차다. 한 시간 가까이 여러 채의 언덕에 있는 펜션을 주인 찾아 오르내렸으니 벌써 지쳐 버렸나 보다. 거기에다 지난 3일간을 가족과 함께 부산(釜山)의 요지 요지를 여행하며 쌓인 노독에다가, 나의 몸은 50년 전에 36살의 디스크 환자의 신체인 사람인데다가 30도의 한여름 날씨라서 산에 오르기가 이렇게 버거워진 것이다.
10여 걸음도 못가서 쉬고 또 쉬어 쉬어 가며 동화에 나오는 거북이처럼 가다 보니 초등학교 폐교 분교(廢校分校)가 나타나더니 이어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타나는데 거기부터는 나무 데크가 시작되는 것을 보니 이제 거의 다 왔구나 하는데 큰일이 벌어졌다. 아주 큰일이-.
쉬다 쉬다 어디엔가 가방까지 벗어 놓고 쉬다가 그냥 몸만 올라온 것이다. '가방 벗어 놓은 곳이 제발 이 근처 이어다고-.' 하면서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이를 어쩌나 펜션 가까이에 벗어 놓은 가방이 보이지 않는가.
통영 8경 중 5 경이라는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은 물 건너간 것이다. 나는 그걸 볼 복이 없는 사람이었어!' 하며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패잔병처럼, 낙오자의 마음으로 펜션에 돌아와 아까 선착장에서 먹다만 회를 먹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조금 전 오르면서 찍은 소매물도 등산 안내 지도에서 등대까지 가는 코스를 보니 선착장에서 등대섬 가는 길은 두 코스가 있었어-.
하나는 조금 전 오르던 소매물도 폐교를 통하여 오르는 길이요, 또 다른 코스는 선착장에서 좌측으로 해안선 따라 소 매물도 폐교까지 가는 코스로 그 해안 길에는 슬픈 전설 어린 남매탑(男妹塔)이 있었지-.
이런 일은 떠나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하지 않고 온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거제동 구 항에서는 서두르다가, 배에서는 없다 하여 구할 수 없었지만, 소 매물도 선착장 사무소에는 아예 직원조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 남매탑 전설
남매탑은 선착장에서 조금 올라 '국립공원 안내도' 표지에서 한적한 바닷가 길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골짜기 중간에 집채만한 큰 바위가 오빠 바위고, 그 아래 30여 m 해안 가에 있는 약간 작은 바위가 누이 바위다..
쌍둥이 자매가 어릴 때 헤어져 살다
오누이인 줄 모르고 열렬히 사랑하다
부부의
연을 맺으려다
벼락 맞은 남매 바위
펜션에 돌아와 보니 막 낙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처럼 태양도 홀로 지고 있었다. 태양은 소 매물도 선착장을 보며, 나는 선착장에서 지는 해를 보며 잠자리에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간다 간다 그렇게 별러 오던 소 매물도에 이렇게 와서 1박까지 하면서, 통영 5 경이라는 '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을 안 보고 그냥 갈 순 없지-. 내일 새벽에 다시 시도해 보기로 하자. 하면서 잠들었다.
다음 날 날새기가 무섭게 등대섬을 향하여 등산길에 나섰다. 새벽 기운에서인가. 피곤이 풀려서인가 쉽게, 어제보다 너무나 쉽게 '한려 해상 바다 100리 길' 게이트를 지나 남매 바위와 마을의 갈림길인 소매물도 폐교까지 거뜬히 올라왔다.
- '매물도 초등학교 소 매물도 분교'는 1969년 4월 29일 개교하여 총 졸업생 131명을 배출하고 27년만인 1996년 3월 1일에 헌생 감소
로 폐교된 학교다. 그 후론 관광객들의 쉼터로 이용되다가 이정표가 등산길에 세워지면서부터 후곡 나무와 동백나무 숲이 무성한 원시림 속에 그 흔적을 파묻히고 말았다.
*. 신의 걸작 소매물도(小每勿島)
드디어 이 섬에서는 가장 높은 망태봉에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등대섬을 굽어보며 나는 오히려 슬퍼하고 있다.
높이가 겨우 154m로 서울의 남산(271m)보다 낮은 소 매물도 망태봉을 이렇게 힘들게 올라오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백두산(2744m)을 종주한 내가, 73세에 돌아가신 공자가 .登東山而小魯 (등동산이소노), 登泰山而小天下 (등태산이소천하)라 호연지기(浩然之氣)하던 그 태산을 내 나이 78세에 5,000개의 돌계단을 밟고 거뜬히 오른 내가, 겨우 154m의 망태산을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오르다니 나이가 무서운 줄을 이제야 실감하겠다. 플라톤도 늙으면 허수아비가 된다는 말이 이데야 실감 난다. 갑자기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늙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것은 아름답게 늙는 것이다.' ilman(나의 호)도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는 생각이-'.
통영에도 통영8경(統營八景)이 있다. 8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소 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이란다.
이 등대섬은 한국의 3,300여개 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도 한다. 무엇이 이 조그마한 등대섬을 그런 명칭을 갖게 하였을까? 한 마디로 하루에 두 번 바닷 길이 열목개로 열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안 것 같다.
- 바다 갈라짐 현상이란, 바닷물이 빠지면 높은 해저면이 수면 위로 노출되는 자연현상으로 우리나라 남서해안과 같이 해저 지형이 복잡하고 조수 차(潮水差)가 큰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간혹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진도 무창포, 사도, 제부도, 서건도, 실미도, 변산반도(하섬), 웅도, 소야도, 진해(동섬) 등지에서 일어난다.
다음은 이 등대섬의 약력이다.
1917년 일본 강점기 무인 대로 설립했다가 1940년 유인 등대로 바뀜, 쪽빛 바다와 어울린 높이 16m의 우람한 등대는, 48km까지 등대 불빛을 비추어 주는 등대다, 국립공원 경관지원 100호에 선정, 2006년 명승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바닷물이 하루에 2번씩 열리는 곳으로 이 등대섬까지 몽돌 길이 150m, 폭 80여 m의, 불길이 열리는 멸목개가 소 매물도의 하이라이트 같다.
소금강 등대섬은 주위에 대 매물도 이외에는 섬이 없는 외로운 섬이라서 태평양의 거센 파도와 그 무서운 태풍을 홀로 막아내며 지내온 섬이라서 등대섬 전체가 돌로 된 해안 단애(海岸斷崖)요, 갖지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들의 나라다.
30여 년 전 내가 왔을 때만해도 섬에 내리지 않고 등대섬만 둘러보고 그냥 갈 정도로 유명한 경치를 자랑하는 바위섬이다.
소 매물도 선착장에 그 유람을 권하는 버스에 광고가 있는 것을 보면 여름 한 철에는 등대섬을 둘러보는 유람선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열목개의 물이 열리는 시간은 오후 4시경인데 지금은 물이 가득 들어와서 등대섬과 소매물도 사이 열목개 길이 바다에 깊이 잠겨 있는 새벽녘이다. 그래서 그 열목개까지만이라도 가 보고 싶어 등대섬을 향하려는데 나무 데크로 곱게 조성된 멋진 길이지만 40도 이상의 급경사 길이라서 망설여진다. 이를 무릅쓰고 차츰차츰 내려가다 거의 다 왔는가 싶은데 다시 올라갈 급 경사 길을 생각을 하니 더럭 겁이 난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내려가다가 그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어제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였다.
모퉁이만 돌면 열목개 입구인 것을 후에 알고 후회하였지만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지나간 일을 탓하여 무엇하랴.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등대섬을 바라보는 천연 전망대라는 망태봉에 다 올랐다. 나 혼자라서 그랬던 것 같다.. 망태봉 천연 전망대에서 굽어 보니 소매물도 북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지점에 큰 섬이 보인다. 하산하여 가보려는 대 매물도다. 남쪽으로 70여 km 거리에 일본 쓰시마(對馬島)가 있다고 한다.
아침에 지나쳤던 하얀 돔 지붕의 건물은 관세 역사관(關稅歷史館)이라 쓰여 있는데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부터는 해상 밀수가 대마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무렵인 1970년대 후반 남해안 해상밀수가 극성을 부릴 무렵 이를 근절하기 위하여 소매물도 정상에 관세청을 두고 지키다가, 첨단 시설을 갖춘 감사정(監査艇)을 투입하면서 1987년부터 이를 폐하고, 그동안의 각종 시설을 복원하여 그 시설, 기구 등과 선박 모형을 전시한 곳이다.
그런데 '열목개'의 어원은 무엇일까? 사전에다 물어보니 '열 목'은 '여울'의 전남 사투리라 한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에 물살이 세게 흐르는 얕은 곳이라 한다. '개'는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고-. 그렇다면 '열목개'는 여울이 드나드는 바다의 조수가 세게 흐르는 바다의 얕은 곳이라 한다면 바다 물길이 '열린다'는 뜻이 해석되지 않는다.
고심하며 여러 곳을 찾다 보니, '물을 여는 목'이라고 간단히 설명하는 곳이 있다. '목'은 길목처럼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곳'이니 '물을 여는 목이 되는 조수가 드나드는 개'란 뜻의 말이 '열목개'인 것 같다.
-2022. 7. 5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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