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莞島)에는 60여 개의 유인도와 143개의 무인도가 있다.
그 유인도 중에는 완도에서 41km, 청산도에서는 약 25km 떨어져 있는 남동쪽 해상에 제주도를 향하여 완도의 끝 섬인 외로운 섬 여서도(麗瑞島)가 있다. 그래서 작은 제주도라 불리는 섬이 '여서도'다.
이 섬은 해방 이전에는 '태랑도(太郞島)라 하다가 해방 후부터 '여서도'라 불린다. 천혜의 '곱고(麗)', '상서(瑞)로운' 섬(島)이라 하여 '麗瑞島(여서도)'라 하였다는 섬이다.
섬 모양이 원형으로 생긴 이 섬은, 면적 2.㎢, 해안선 길이 10km의 작은 섬으로 섬 중앙에 있는 352m의 산이 최고봉인데, 섬 전체가 경사가 급한 편이다. 두 개의 제방 위에 빨강 하양 등대가 있는 북쪽의 유일한 작은 포구에 한 개뿐인 여서마을이 있고, 섬 도로는 가파른 해식애(海蝕崖)를 피하여 산 능선길을 향하여 나 있다.
여서마을에는 1985년 경에는 300여 가구에 403명이 살았다는데, 지금(2022년)은 35 가구에 70여 명이 어업과 밭농사로 살아가고 있다. 비탈길 계단으로 마을에 오르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가 TV에서 남미의 마스피치에서 보던 신비의 성터를 연상케 하는 돌담길이 시작된다.
견고하고 높게 싸인 성벽은 초가 지붕 높이인데 그 돌담 길을 끼고 좁은 비탈 오름길이 계속된다. 이 섬의 집들이 흙과 이영, 나무로만 된 집이어서 아무것도 막아 줄 데 없는 이 섬에 몰아치는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하여 쌓아놓은 돌담 같다.
집터뿐이 아니라 농사 짓는 밭도, 외양간도, 돼지우리도 모두가 높은 돌담이 지켜 주고 있다,
옛날 흑산도(黑山島)를 거쳐서 가거도(可居島)에 갈 때 목포에서 비금도와 도초도까지는 섬이 많아 비교적 바다가 잔잔한 곳을 내해(內海)라 하고, 거기부터 흑산도까지는 바람을 막아줄 섬이 거의 없어 풍랑이 험한 곳을 외해(外海)라 하던 것이 생각난다. 가거도 방파제는 풍랑이 심하여 태풍에 무너지면 다시 고쳐 쌓기를 30년 넘게 계속되었다더니 여서도가 가거도와 같은 처지인 모양이다.
우리가 여서도에 올 때 청산도부터는 여서도까지 바람을 막아 주는 그 많은 다도해의 섬들이 거의 없더니 태평양의 그 무서운 거센 파도와 홀로 맞선 절해 고도(絶海孤島)가 여서도라 그런 것 같다.
여서도(2.㎢)는 가거도(9.18㎢)보다 넓이가 1 /4 정도보다 더 작은 섬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여서도도 가거도처럼 한 번 풍랑에 묶이면 본의 아니게 하늘을 바라보고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오갈 수 있는 그런 절해고도였다.
사람들도 철새처럼 바람이 부리는 대로 머물고 바람이 허하는 대로 떠나야 하는 '바람의 섬'이요 '바람의 마을'이다. 그 바람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이나 변한다는 것이 여서도의 바람이다. 그래서 여서도는 교통이 최고 문제가 되는 외로운 섬이다.
여서도의 삶은 바람과 더불어 공존하며, 바람 그대로가 숙명인 바람의 섬이라서 바람과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어야 하는 섬이다. 그래서 돌담이 없었으면 여서도 사람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주민이 사는 섬이다.
담길 따라 집도 밭도 이어지는 섬 돌담은 돌담을 넘어 성벽 같은 신비로운 돌담의 왕국이었다.
70여 마리 방목(放牧)하는 소도 새끼를 낳으면 돌담 외양간에서 살아야 한다.
여서도의 모든 돌들은 화강암이다. 이 여서도의 돌들은 여서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보배 같은 자연의 재산이다.
섬의 비탈길, 계단길, 인가는 물론 밭을 지켜 주는 것도 돌담이다. 그래서 주민의 명단까지 비석에다 새겨 놓았나 보다.
돌담의 높이는 보통이 3~4m요, 축대 까지 따지면 10m 높이의 처마와 키를 재고 있는 것 같다. 해풍이 센 섬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 오면 주민들은 여서 마을 섬 반대 북쪽으로 미역 채취를 간다. 오직 둘만 남은 70대 해녀와 함께
김, 미역, 파래 등과 소라 성개 등을 채취하러 간다.
이 근해는 해식애(海蝕崖) 단애(斷崖)로 옛부터 알려진 어장으로 멸치, 민어, 도미, 방어, 전어, 쥐치, 갈치, 문어 등이 잡히는데 봄에 장어, 여름에는 문어 등이 잘 잡힌다 한다. 거센 파도에 시달리며 자란 해초는 어느 섬에서 나오는 미역보다 맛이 일품이란다. 무성한 거북손과 따개비를 따고, 가사리와 XX를 전복껍데기로 긁어오면 선착장은 이를 말리는 덕장이 된다.
이 돌담의 역사가 언제 부터인 줄을 아무도 모른다. 큰 바위 위에는 움푹 팬 서너 곳이 있는 것을 이 섬사람들은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선사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여서도(麗瑞島)'에 가고 싶다. 가고 싶은 맘 자료 찾아 달래며 이 글을 다녀 온 곳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벼르던 가거도도, 거문도, 백도도 다녀왔다. 내 작품에 이미지를 놓을 꿈을 안고 가고 싶은 여서도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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