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투루판(吐魯番)/往五 Silk Road 國傳(2)

ilman 2022. 1. 11. 17:36

투루판(吐魯番)/往五 Silk Road 國傳(2)
*.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아이딩 호수(Aiding Hu: 艾丁湖)

 우루무치에서 남동쪽으로 187km 거리에 인구 24만여 명이 사는 도시 투루판(吐魯番)이 있다. 위구르인이 71%, 한족이 21%가 사는 고장이다.
투루판은 기온이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방이기도 하다.
일조(日照) 시간이 길어 기온이 높고 온도 차가 큰 데다가 연 강우량이 16.6mm 밖에 안 되는 고장이다.
 여름이 길고 건조하여서 시내는 35℃~37℃이지만 분지(盆地) 중심의 기온은 47℃~ 49.6℃나 된다. 그때 지표 온도는 70℃ 이상이 보통으로 최고일 때는 82.3℃나 되어 그래서 일명 '화주(火州)'라고도 하는 실크로드 도시 중에서도 가장 더운 곳이다.
 한 여름에는 35℃이상이 매년 100일이나 계속되고, 40℃ 이상일 때가 40일이나 계속되는 오아시스(oasis) 도시다.
  건조하고 더운 이런 기후는 포도 재배에 적합하여 당도(糖度) 면에서 세계 제1의 건포도 생산국이지만 대다수의 위구르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가 술을 금하고 있는 그 영향 때문에 포도주 생산지로는 유명한 곳이 아니다.  
 이곳에는 바람도 많다. 8급 이상의 바람이 해마다 수십 차례나 불어오기 때문에 투루판을 ‘바람의 고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갔을 때도 도처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투루판(吐魯番)의 어원은 위구르어로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 뜻처럼 투루판 시가지는 해발 18m~106m로 중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데 그중 아이딩 호수(Aiding Hu: 艾丁湖)는 해발 -155m로 지세(地勢)가 낮아서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해발 -396m의 중동의 사해(死海) 다음으로 낮은 호수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낮은 지세에 주위 고산(高山)에서 끊임없이 눈 녹은 물이 호수를 채워주지만 증발이 많고, 사람과 가축과 그리고 분지 내의 유망한 자원으로 인하여 건설적 발전으로 물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 물은 매우 짠물로 염량의 함유량이 많아 제염에 유망한 곳이고, 호수 밑은 석탄과 석유의 매장량이 풍부한데다가 질이 양호한 다량의 광물질이 많아서 신강성은 그 자원으로 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아, 그래서 그랬구나! 투루판에서 명승지로 향하다 보니 도처에 하얀 모래 같은 것이 소금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며 명승지를 찾아가다가 만나게 되는 또다른 승지(勝地)는 나그네를 기쁘게 한다.
오늘 만난 그 기쁨 중에 하나가 '우루무치 10경' 중에 하나라는 세계 최대의 풍력 발전기(風力發電機)였다.
곳곳에서 부럽게도 석유를 뽑아올리는 들판에서 우리가 서울의 자유로를 차로 달리며 난지도에서나, 대관령의 선자령(仙子嶺)에서 보던 풍차 같은 것이 사람 하나도 보이지 않는 황야 사막에서 그 뒤 텐산(天山) 산맥을 배경으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풍차 발전기들이었다.  

*. 볼거리가 Silk Road 중에서 가장 많은 투루판
  투루판은 실크로드 여행 도중에서 가장 더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볼거리가 가장 많은 오아시스 도시로도 유명하다.
이 투루판에는 다음과 같은 15 승경(勝景)라는 승경이 몰려 곳이다. 이 중 9개가량을 우리는 보게 되나 보다.
-交河故城, 高昌故城, 蘇公塔, 阿斯塔娜古墓群, 柏孜克里千佛洞(베재크리크천불동), 火焰山, 칼징, 艾丁湖, 沙山公園 , 葡陶構, 양房, 博物館, 吐속構大狹谷, 투위 거우(吐속構)千佛洞, 托克孫雅丹地貌
 버스로 사막을 달리다 보면 오아시스가 나타나고 그러면 붉은 흙벽돌로 쌓은 구멍이 숭숭 뚫어진 건물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양방(陽房)이다. '양'자가 말릴 '陽'자이고 보면 포도를 말려 건포도를 만드는 곳인데 이 지역은 하도 더워서 일주일 이내에 건포도가 되는 모양이다.
 화염산(火焰山)을 깊숙히 계곡의 강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강가에 넓은 푸른 초원이 열리는데, 여기가 바로 투위 거우(吐속構大狹谷)로 1,000여 년 전 고창국(高昌國)부터 있었던 위구르족이 10여 가지 이상 종류의 포도를 생산하며 사는 포도구(葡陶構) 마을이다.
 이 대협곡에 있는 천불동(千佛洞)도 옛날 이 고장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투루판은 포도의 고장으로 그 중 청포도의 나라였다. 시내에 투루판의 상징탑으로 '포도 소녀(Grape Girl)'상이 있는데 세 소녀가 포도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등을 마주대고 서 있는 모습이다.
 건조한 기후에 많은 일조량은 이 투루판 포도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건포도의 고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대개 그 모두가 청포도(靑葡萄)인데 맛도 좋고 특히 건포도의 당도는 설탕을 깨물어 먹는 것 같이 달고 그 값도 싸서 여행에 피로한 몸을 달래기에 아주 좋은 과일이었다.
  투루판 투어여행에서 '민가 방문'이란 항목이 있다. 포도를 파는 곳인데 들어가면 무성한 포도나무 아래 평상(平床)에 둘러앉아서 푸짐한 포도와 건포도를 공짜로 마음껏 먹을 수가 있다. 곁들여 민속춤까지 아울러 감상한 후 포도를 파는데 농약을 안 쓴다는 말과 함께 그 값이 매우 비싸다. 일행은 미리 그 소문을 들었는지 부지런히 열심히 먹고 한 수 더하여  청하여 더 먹은 후에 안면 몰수하고 그냥 다 나가 버린다.
어찌 나까지 염치없이 그냥 갈 수 있는 무리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마트에 가서도 사지 않을 것을 절대로 먹어본 일이 없는 순진한 나의 체면에-.
할 수 없이 부르는 대로 가장 좋다는 건포도를 함께 간 우리 중에는 그래도 늙수그레한 이웃과 함께 그걸 사 왔는데 아내는 후회막심이다. 알고 보니 시중가보다 10배 이상이나 비싸게 샀다는 것이다.
후답자들이여,
행여 방문하게 되거든 일행끼리 나누어 반씩만이라도 사 주시라. 

*. 柏孜克里千佛洞(베재크리크 천불동)
   투루판 지역은 동굴이 가장 많은 곳이요, 柏孜克里 千佛洞(베 재크 리크 천불동)이란 그 건축 형식이 다양하고, 벽화(壁畵)가 가장 풍부한 석굴군 중의 하나다.
 베제크리크는 위구르어로 `그림으로 장식된 장소'라는 뜻으로 원래 83개의 굴 중 현재 남아 있는 석굴 사원은 57개이지만 그중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은 6개뿐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굴 안은 텅 비어 있고, 부처의 눈은 대부분 예리한 칼날로 눈알을 도려내어 움푹 파여있다.
서구인이나 일인들(英의 스타인, 獨의 르콕, 日의 오타니 등)이 약탈하여 갔기 때문이요, 유일신(唯一神)이라는 이슬람을 믿으며 다른 종교를 우상 숭배라고 매도하던 배타적인 이슬람교도들의 손자국들이다. 문화와 종교와 신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편견이요, 어찌 보면 야만의 흔적 같다.
 그뿐인가 중국보다 먼저 고미술품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외국인 수집가들이 굴속의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갔음은 물론, 무자비하게도 칼과 톱으로 중요한 벽화까지도 뜯어가 버렸다.
그게 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독일인 르콕이 가져가서 독일의 민속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던 것은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불타버렸지만, 우리나라 국립 용산 박물관 3층 '중앙아시아 실'에 그 일부가 남아 있다.
 그 당시 일인(日人) 오타니가 가져간 것은 일본에 보관되어 오다가 1945년 8.15 직전에 한국에 와서 순회 전시를 하다가 해방이 되어 한국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이 중에는 투루판 천불동 것뿐만 아니라 둔황 막고굴(莫高窟)의 유물까지 300점이나 된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애통해할까. 통쾌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 천불동의 벽화는 10~11세기의 위구르 불교 예술 중에 가장 중요하다. 그 보존이 다른 곳보다 완벽하고 그래서 위구르인 대표적인 예술의 보고(寶庫)가 되기 때문이다.

*. 서유기(西遊記)의 무대였던 '화염산(火焰山)'
 
우리들은 그중에 먼저 베제클릭 천불동(柏孜克里克千佛洞)을 보러 가고 있는데 좌측에 길게 누운 붉은 산맥이 우릴 따라오더니 문득 그 산이 길을 막아선다. 표지 석을 보니 붉은 글씨로 '화염산(火焰山)'이라 음각되어 있다.
여기가 투루판에서도 가장 덥다는 화염산이었다.

 화염산(火焰山)은 하나의 산처럼 투루판 분지에 있는 붉은 사암(沙巖)으로 이루어진 높이 800여 m, 길이 98km로 길게 누워있는 산맥과 같은 산이다.
 투루판 시내에서 30m 거리에 있는 이 화염산을 위구르 인들은 '쿠즈고다고(Kzgodargo)'라고 하는데 '붉은 산''이란 뜻이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이 산이 바로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중국의 4대 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인 '서유기(西遊記)'의 무대가 된 곳이다.
삼장 법사(三藏法師) 일행이 불경을 구하기 위하여 천축국(天竺國)을 가고 있었는데, 화염산 요괴의 방해로 불길에 막혀 길을 갈 수 없었다.  제자 손오공이 철선공주(鐵扇公主)라는 나찰녀(羅刹女)가 갖고 있는 파초선(芭蕉扇)을 싸워 뺏어가지고 비를 오게 하여 뚫고 가게 된다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곳이다. 그 손오공 때문에 지금은 그때보다는 덜 덥다고 현지인들은 믿고 있다고 한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는 물론 새 한 마리도 없는 아무 구경거리도 되지 않는 이 화염산이 서유기(西遊記)로 인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이 고장 사람들이 서유기에 나오는 각종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챙기고 있으니 예술의 영원성과 대중성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중에 섭씨 60도를 오르내리는 이곳 기온을 알려준다는 탑같이 거대한 대형 온도계가 있는 곳도 볼만하다지만 '여행이은 생략의 예술'이라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입장료 때문인 것 같다.
  옛날 실크로드를 가던 나그네들이 얼마나 더웠으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을까.
이렇게 무더운 화염산을 우리는 좋은 세월을 만나 그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넓은 아스팔트 도로로 에어컨으로 무장한 버스를 타고 유유히 달리고 있다.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덕이다.

  우리들은 먼저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3 제자를 거느리고 천축국을 향하는 조각이 있는 강가 절벽 위에, 구멍이 숭숭 뚫어진 베제클릭 천불동(柏孜克里克千佛洞)에 왔다.
투루판 시내서 40km 되는 거리로 그 밑에 살던 농군이 밭을 갈다가 우연히 ㅜㅠ발견하였다는 유적이다.
'베제클릭'이란 말은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란 말이요, 천불동(千佛洞)이란 천 개의 부처를 모신 곳이란 말보다 많은 부처를 모신 사원이란 말이다.
천불동에는 붉은 사암의 절벽에 벌집 모양의 굴이 있는데 지금까지 54개의 석굴이 발굴되었다.
굴속에는 화려한 벽화가 있지만 내부 촬영을 할 수 없어서 일찌감치 사진 찍을 마음을 접었다. 눈에 불을 켜고 돈 벌기 위해서 사진 찍는 사람을 색출하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에게 들키면 적어도 100 위엔(13,000원)은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면 1달러가 1만 원 같고, 10위엔(13,00원)이 1만 원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건성 보고 온 동굴 내부의 그림이 보고 싶어서 CD를 하나 샀다. 이럴 때 한국어판이 없다고, 아니면 더 싸게 사고 싶다거나 흥정이 안 된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나그네에게는 여기 아니면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이기에 하는 말이다.

*. 효심으로 쌓은 '소공탑(蘇公塔, Emin Ta)'

 투루판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2km 거리에 신강성 내에서는 가장 크고 높다는 소공탑(蘇公塔)이 있다.
13세기 이후의 유일한 고 건축으로 그 높이가 44m, 아래 직경이 10m로 위로 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탑이다.
산이 적은 이 사막에서는 '사막의 등대'로 이용되기도 한 탑이었다.
 이 탑은 청조(淸朝)의 명장 투루판 군왕 액민화탁(額敏和卓)이 청 왕조 은혜와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자 은화 7천 량을 들여 짓기 시작하였다 하여서 '액민탑(額敏塔, Emin Ta )'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사후인 1777년에 그의 둘째 아들 소래만(蘇來曼) 왕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완성하여 소공탑(蘇公塔)이라고 부르게 된 탑이다.
이 탑을 세울 당시는 철강이 없던 시절이어서 흙 80%에 계란과 꿀, 찹쌀을 20%로 씩 섞어 시멘트를 대신하였다 하는데 지금까지 저렇게 잘 보존된 것을 보면 시멘트보다 더 단단한 모양이다. 소공탑은 특히 14개의 채광을 위한 창(窓)과 위구르의 문양(紋樣)이 독특하였다.
 내부에 들어가면 나선형으로 72개의 층계가 있어 꼭대기에 오르면 백설애애(白雪皚皚)한 천산(天山)과 붉게 타오르는 화염산(火焰山) 그리고 녹색의 바다 포도밭과 투루판 시내를 눈 아래 굽어 볼 수가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요즈음은 입장이 금지되어 있어 헛걸음을 하게 되다니 이를 어쩌랴.
그 밑에 1,000명이 동시에 예배 볼 수 있다는 모스크(mosque)가 있어 금요일 아침이면 이슬람 교인들이 모여든다.
그때 이 꼭대기에 올라가서 교인을 불러오게 하는데도 이 탑이 쓰였다 한다.
                                                                   -다음 투루판의 생명수인 지하수로 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