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

ilman 2022. 1. 3. 20:25

 

*. 해동 용궁사(龍宮寺)

 어제 부산 해운대(海雲臺)에 도착하여서 늦었지만 어둑어둑한 땅거미 무렵 '동백섬'을 찾았다.
동백섬은 해운대 해수욕장 오른편 끝 조선 비치호텔 뒤편에 있는 섬이다.
옛날에는 섬이었던 곳에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모래로 유계도(有界島)가 된 섬이다.
동백섬은 예로부터 경관이 빼어나 유명한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특히 신라 때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발자취가 남이 있는 곳이다.
동백섬은 해안선을 끼고돌며 바다를 굽어보며 도는 산책로가 일품이라지만 나는 그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보고 싶어 우선 정상에 오르니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비가 천리길을 달려온 나를 반긴다.
  고운 선생은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 가서 7년만인 18세에 빈공과(賓貢科) 과거 시험에 합격한 재원이다.
25세 때인 황소(黃巢)의 난 때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중원(中原)에 문명을 떨친 분이기도 하다.
28세에 신라에 돌아왔으나 당시는 신라말이라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구할 길 없어 방랑하다가 가야산(伽倻山)에 들어가 갓과 신발만 남긴 채 신선처럼 사라진 분으로 해동유학(海東儒學)의 시조(始祖)로 추앙되는 분이다.
이 동백섬은 부산 지역의 해돋이의 명소로 부산 광안대교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그 아래 둥근 원형 지붕의 정자와 누리마루 등대가 어둠 속에서도 바다를 향해 우뚝 서있다. 
광안대교(廣安大橋)는 부산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을 이어 주는 순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어 2003년에 개통된 국내 최초의 2층 해상 교량으로 6,3km의 8차로 상하 편도로 차가 다니게 하였다. 그 가운데 부분이 우아한 현수교(懸垂橋) 구간인데 그 양쪽으로 이어져 있는 구간이 트러스교(truss bridge, 결구교)다.

  지금 같은 밤에는 현수교 케이블과 트러스교 구간에 발광 다이오드와 투광 등을 설치하여 시간대별, 계절별로 다양한 빛을 연출하여 부산의 광안대교 야경을 부산의 명물 중의 하나로 만들었다. 이 광안대교는 진도 6의 지진과 초속 45m~72m의 초대형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설계하여 시공한 다리다.

  해운대에서 일박한 우리들은 조반 후 거기서 얼마 안 가 있는 부산 기장읍(機張邑)의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를 찾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절[寺刹]'- 하면 산사(山寺)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절은 파도치는 동해안 갯바위에 세운 절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2번째의 대도시인 부산 외각에 있는 절이라서 그런지 범어사(梵魚寺)처럼 그 절의 규모나 꾸밈이 예사롭지 않다. 이 절은 산사(山寺)처럼 올라가는 절이 아니고 바다로 향하여 108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우리가 용궁(龍宮)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하게 한다.
일주문 두 기둥도 절 이름처럼 용이 승천하는 문양(紋樣)이었다. 거기서부터 좌우에 12지(十二支) 동물 석물상이 자기의 띠를 찾아 사진을 찍지 않겠느냐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입구에서 조금 내려온 층계 우측의 달마대사(達磨大師)는 득남 불(得男佛)이라 쓰여 있어서 그런가. 불뚝한 배는 선남선녀가 하도 많이 만져서 손때에 까맣게 반질반질하다.
바로 그 아래 좌측에 동해의 갓바위라고 하는 약사불(藥師佛)이 조그만 약탕(藥湯)을 들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아래 '日出'(일출)이라 써 있는 곳을 지나니 바닷가 갯바위로 통하는데 깃발이 나부끼는 곳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앉아 있고, 고기를 방생(放生)하며 지내는 '祭龍壇'(제용단)이란 입석이 용궁사(龍宮寺)의 이름을 생각하게 한다.
 대웅전을 향해 올라가는 입구에 커다란 두 마리 '황금 돼지상'도 여기를 찾아오는 선남선녀에게 재복(財福)을 받으라 빌며 웃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 대불(海水觀音大佛)'로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이라 한다. 이 불상으로 '양양 낙산사(洛山寺'), 남해 '금산사의 보리암(菩提庵)'과 더불어 용궁사(龍宮寺)를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觀音聖地)'로 손꼽히게 하였다.
  대웅전 옆에 멋진 탑이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는 탑이다.

  해동 용왕사는 고려 우왕 때(1376년)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懶翁, 일명 惠勤)이 창건하였다는 절이다.
당시 나라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나옹화상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서 현몽하는 것이었다.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우순풍조(雨順風調)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리라'. 이에 나옹화상이 이곳에 이르러 크게 말하기를 "이곳은 아침에 불공을 드리면 저녁에 복을 받는 그런 성지라." 하고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蓬萊山)',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
그러던 이 절이 임진왜란 때와 6.25사변 때 병화로 소실된 되어 버렸다.
그후 정암(晸菴) 스님이 백일기도를 드리다가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 그후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바꾼 후 기도를 드리니 신기하게도 즉시 영험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빌면 소원 하나는 들어준다는 절로도 해동용궁사는 유명해졌다.
그래서인가 입구 달마대사는 득남을 도와 주고, 약사불은 병(病)을 고쳐주고, 황금돼지는 재복(財福)을 주며 대웅전 밑의 지하 생수는 건강을 마시게 하는 절로 구체적인 복을 기원하는 절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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