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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迦智山, 1,240m), 도립공원 산행 (1)/ 가지산

ilman 2021. 12. 20. 16:11


가지산 도립공원 산행 Photo 에세이(1)/ 가지산
(2010년 9월 30~31일 무박산행/ 석남터널 -가지산 -운문산 -석골사/고양시우정산악회 따라)

*. 영남알프스 가지산 운문산 구간 종주
  ‘고양 우정산악회’ 따라 가지산(加智山)으로 가고 있다.
가지산도립공원(加智山
道立公園)이란 가지산(1,240m), 취서산(1,092m) 일원에다가 천성산(812m), 원효산(922m) 등을 더하여 1979년에 도립 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공원은 국내 도립 공원 중에서 가장 넓은 공원으로 통도사지구. 석남사지구. 내원사지구들과 그 주위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양시 일산
(一山)에서 가지산까지는 8백리 길(327km)로 오고가는 데만도 10여 시간이 걸려서 수도권에서 어제 밤늦게 무박산행을 떠나 현지에 이르러 간단한 조반을 마치고 새벽 5시경 석남터널 등산로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가지산도립공원 중에서 '가지산에서 운문산'까지 영남알프스를 구간종주하고 있는 것이다.
영남 알프스
(嶺南 aips)는 영남 동부지역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山岳群)이다.
가지산(迦智山, 1,240m), 신불산(神佛山, 1,209m), 천황산(天皇山, 1,189m), 운문산(雲門山, 1,188m), 재약산(載藥山, 1,108m), 간월산(看月山, 1,083.1m), 취서산(鷲捿山=영취산, 1,059m), 고헌산(高獻山), 1032.8m) 등 중요한 8봉우리로 경북의 경주, 청도, 울산과 경남의 밀양, 양산의 5개 시군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이를 영남알프스라고 하는 것은 가지산의 능선에 눈이 쌓이면 그 경치가 알프스의 경관을 보는 듯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알프스산맥은 유럽의 중부에 있는데 동쪽은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독일을 거쳐 서쪽의 프랑스에까지 이르는 산맥이다. 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은 몽블랑 산(4,810 m)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에 있다.

*. 가지산 이름의 유래
  가지산의 원래 이름은 '석남산(石南山)'라 하다가 그 기슭에 있는 석남사(石南寺)가 중건되면서 가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이 산이 화산의 분화구 지대라 해서 '천화산(天火山)'이라 하였고, 이 산에 실혜촌 또는 부요(富饒)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실혜산(實惠山)', 돌이 어지럽게 많다 해서 '석면산(石眠山)'이라고도 하였다.
가지산의 옛 이름은 ‘까치산’이었다.

그래서 이 산을 한자어로는 '작갑산(鵲岬山)'이라 한다. 이 ‘작갑산(鵲岬山)’이 가지산(加智山)이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이두식 표기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식 풀이로는 ’가(加)‘는 까치의 ‘까‘, ’지(智)‘는 ’치‘의 음차(音借)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두(吏讀)이란 신라와 고려 시대에 한자의 음(音)과 뜻(訓)을 따서 우리말의 ‘소리’를 적던 문자이기에 위와 같은 설이 가능한 것이다. 가지산(加智山)의 옛 이름이 ‘가치메’인 것은 까치의 옛말이 「가치」였기 때문이다.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등 참고.

가지산이란 명칭과 연관된 운문사(雲門寺)의 옛 이름인 작갑사(鵲岬寺)의 까치 창건설화를 들어보자.

  -신라 말 보양 스님이 불법을 전하려고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해 용궁에 들어갔다.
용왕이 가사(袈裟) 한 벌과 그의 아들 이목(璃目)을 딸려 보내면서 부탁하기를 "작갑(鵲岬)에다 절을 짓고 살라"하였다.

보양이 이 말을 믿고 작갑(鵲岬)이 어딘가를 찾던 중, 한 산등성에서 내려다보니 여러 마리의 가치 떼가 땅을 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작갑사(鵲岬寺)라 하였다, ‘鵲(작)’은 까치 ‘작’, ‘岬(갑)’은 산허리 ‘갑’이다.
후삼국을 통일할 무렵 태조 왕건은 운문사에 있던 보양국사의 계책으로 이 일대를 평정할 수 있었다. 그 후 왕건은 그 보답으로 태조 20년(937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과 함께 전답 500결을 하사하였다. 그 후 작갑사(鵲岬寺)는 운문사(雲門寺)로 개칭하였다.                                            - ‘삼국유사’의 운문사 창건설화 ‘보양이목조’
                                                                               
*. 가지산 가는 길
  우리는 어둠이 짙은 석남터널 앞을 들머리로 하여 해드 랜턴을 하고 산을 오르고 있다.

등산로 안내판을 보니 ‘현 위치(석남터널 입구) → 가지산→ 쌀바위→ 운문재’. 여기는 운문재에서 올라 성남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의 들머리인 모양이다.
안내도를 보고 “가지산 35분→ 쌀바위 30분→귀바위 30분→운문재 40분→ 석남사”는 못 보겠구나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희수(喜壽)가 가까운 나이라 언제 다시 오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능선에서는 맑은 날이면 가지산 가는 도중에서 울산 앞바다를 볼 수 있다던데. 부처님의 귀 같다는 귀바위흫 지나는 코스라던데-. 전설어린 가지산의 명물 쌀봉산 가는 길이라이던데-.
등산은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산이 높음을 자랑하듯이 산꾼은 준족(駿足)을 자랑하는 신선 같은 사람들이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신선은 '뻥-' 하고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한 마디로 발이 빠른 사람이란 말이다.
그에 못 미치는 내가 나이 먹어 산에 대한 욕심만으로 산악회를 따라 나서다 보니 언제나 후미(後尾)다. 후미도 둘째보다 아주 먼 후미가 된다. 후미의 기척은 물론 그 모습조차 볼 수 없는 한참의 후미가 된다.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하지만 나는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따라갈 걱정으로 오늘도 다른 분의 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으니 어찌 심심할 시간이 있겠는가.  
  석남터널에서 정상까지는 3.0km/ 1시간 30분 코스여서 그동안만 무리를 하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따라왔더니 그게 아니었다. 댓듬 가파른 비탈길이 정상까지 계속된다. ‘여보, 다른 분들에게 부담이 돼요. 이제 등산을 고만 다니세요.’ 하는 아내의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처음 만난 이정표가 ‘←배내봉/간월산’ 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배내봉’이 배내똥, 배냇병신처럼 ‘타고난’, ‘갓난아이’를 뜻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마을 계곡 주위에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동내 이름을 ‘이천동(李川洞)’이라 하듯이 산과 골짜기 이름을 ‘배내봉’, ‘배내골’이라 부른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
석남터널에서 1km를 기진맥진 올라서니 ‘←능동산 3.5km’ 라는 이정표가 있다.
능동산(982m)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가지산(1,240m)과 둘째로 높은 신불산(1,209m)을 남북으로 잇는 중간 지점에 서쪽으로 천황산(1,189m)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산이다. 산 이름 중 ‘陵(능)’ 자가 능과 언덕을 뜻하는 말인 것임을 감안해 보면 정상이 둥그스름한 왕릉처럼 생긴 모양 같다. 가지산과 천황산의 중간에 있어 배내봉 능선의 갈림길이어서 영남알프스 종주 길에 들어선 사람은 누구나 거쳐야 중요한 산이기도 하다.



가지산 220m를 남긴 지점에 ‘가지산 석남재대피소 , 매점’이 시원한 검은콩막걸리(6,000원), 소주(4,000원) 등으로 술꾼인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날 새기가 멀어 사면이 칠흑 같은 어둠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간판에 중간점이 있는 것을 보니 종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피소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사위가 밝기 시작하더니 6시가 가까워지더니 동녘 하늘에 아침 노을이 시작되고 있다. 가득이나 더딘 걸음이 동녘하늘을 자꾸 뒤돌아보는 바람에 더욱 느려진다. 나뭇가지가 그 모습을 가려서 겨우 겨우 그 사이로 일출을 보며 사진에 기록한다.
가지산은 암산이라 일망무제의 정상의 해돋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내 걸음으로는 1시간은 더 가야 정상일 것 같다. 우리 산악회 선발대는 벌써 정상이 되었을 것이다.
해가 뜨자 산에 불이 난 것 같이 온 천지가 불바다다. ‘희다’라는 말이 ‘해’에서 나온 것 같은데 지금 보니 해가 온천지가 붉게 물들어 놓았다. 산의 나무가 훨훨 타는 것 같구나. 날이 밝으니 울산시 울주군의 상북면 마을이 보인다.

  산에서 굽어보는 세상은 언제나 천국 같다. 그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저 큰 산이 능동산 같다.
 드디어 가지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우리 회원 사오 명이 그 정상 위에서 서성대고 있다. 나는 30분이나 뒤쳐져 있는 것 같은데 안부에 내려가서도 ??km나 더 올라야 정상이다. 드디어 정상이 나타나는가 보다 하였더니 커다란 하얀 쥐라기 화강암 바위봉이 우측에 보인다.

드디어 드디어 가지산 두 정상석이 ‘加智山, 1240.M'란 명찰을 달고 앞뒤로 서서 물끄러미 나를 굽어 반기고 있다.
하나는 직사각형의 오석이요, 그 위 또 하나는 둥그스레한 자연석인데 그 옆에 ’낙동정맥‘이란 또 하나의 표석이 서있다. ’낙동‘이란 낙동강이란 말이렷다.
이 加智山(가지산)을 등산 서적에서 ‘迦智山’이라고 쓴 곳도 있지만 앞서 말한 것 같이 한자를 빌어 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이두(吏讀式) 표기이니 ‘迦’나 ‘加’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정맥이란 무슨 뜻이지?

*.대간(大幹), 정간(正幹)과 정맥(正脈) 이야기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에 산경표(山經表)가 있다. 필사본으로 이 분야에서는 일본인들보다 앞선다는 중요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산을 대간(大幹)과 정맥(正脈)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산(山), 봉(峰), 영(嶺), 치(峙) 등으로 구별하였다.
산경표(山經表)는 대한민국 산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흐르다가 어디서 끝나는지를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정맥(正脈)으로 구분하여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圖表化)한 책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금강산을 거쳐 총연장 1,470km(남한 : 670km)로 동서(東西)를 크게 가르며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이 대간(大幹)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를 정간ㆍ정맥으로 분류하여 대한민국의 산줄기를 1대간ㆍ1정간ㆍ13정맥으로 체계화하였다. 여기서 다시 갈라져 나간 산ㆍ고개ㆍ일반 지명을 산 줄기별로 분류하여 도표로 족보처럼 체계화한 것이 산경표(山經表)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참조)
  낙동정맥(洛東正脈)이란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시작하여 동해안을 따라 부산직할시의 '금정산'까지 남쪽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산줄기를 말한다. 그 능선의 직선거리가 약 410㎞이고 실제거리는 약 700㎞나 된다. 그 선상에 가지산이 있다는 것을 가지산 정상석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山自分水嶺]는 말에 따라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 쌀바위 전설
  산의 정상에 서면 알게 되는 것이 한국의 아름다움이다.

그중에 가지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1.3km 지점에 북한산 인수봉 같은 하얀 큰 바위산이 있는데 중간 중간 나무가 푸르르다.
쌀바위였다.
그 쌀바위산에는 백양사국립공원의 백학봉 기슭에 있는 영천굴의 샘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 옛날 수도승 한 분이 지금의 쌀바위 밑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불경을 염하며 살았다. 스님은 며칠마다 한 번씩 마을로 내려가서 탁발하여야 하는 고행하는 스님이었다.
하늘이 수도승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중이 염불을 하다 바위틈을 문득 보니 이게 웬일인가. 쌀이 소복이 쌓여 있지 않은가. 이날부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매일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흐르듯 또닥또닥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중은 ‘쌀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내면 더 많은 쌀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그 구멍을 크게 뚫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쌀은 간곳없고 쌀 대신 물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米岩]라 불렀다.

  이런 이야기는 옛말로 ‘메’는 먹이로 쌀을 뜻하는 말이었다.  ‘메’는 전라, 충청 사투리에서 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쌀과 물의 음이 ‘메’와 같아서 우스갯소리로 생긴 이야기라는데 나도 동감한다.

                                                                                         -다음  '운문산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