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雪山) 덕유산 종주 (하)/ 남덕유산
-2007. 2.13~ 15/삼공 매표소-백련사(920m)-향 적대 피소(1박)-향적봉(1614m)-중봉(1,594.3m)-백암봉(m)-무룡산(1,491.9m)- 삿갓재 대피소(1박)-삿갓봉(1,419m)-월성재(m)-남덕유산(1,507.4m)-영각사(700m) 총 26.7km(11:50)/내 아내의 유랑의 남편과-
*. 삿갓봉에서
단독 산행에서 대피소는 어디나 대합실 같다. 초면에 말없이 만나서 소리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대합실 같다.
삿갓재 대피소에서 아침 일찌감치 취사장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보니 주위가 그렇게 텅 비어 있다.
백련사(白蓮寺)로, 아니면 영각사(靈覺寺)나 황점 방향으로 서둘러 떠난 것이다.
- 남덕유산(德裕山)은 옛날에는 황봉(黃峰), 봉황산(鳳凰山)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남덕유산(1,507.6m)과 북덕유산(1,614.0m) 둘을 아우른 이름으로 덕유산이라 한다. 그래서 제1 덕유산 제2 덕유산으로 나누어 말하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북덕유산보다 100m나 낮은 남덕 덕유산을 그 기슭 장수 사람들은 제1 덕유산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런 지도책도 보인다. 왜 그럴까? 남덕유산은 북덕유산보다 첫째 산세가 육산(肉山)이 아니라 골산(骨山)이고, 향적봉과 달리 백두대간의 분수령이고, 논개로 유명한 진주 남강(南江)과 낙동강(洛東江)의 발원이 되는 첫 물길이 시작되는 것이라 그런 것 같다.
삿갓대피소에서는 남덕유산까지가 4.3km여서 빨리 갈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늦게 갈 이유는 더욱 없어서 일찌감치 배낭을 꾸리고 1.0km 옆산인 삿갓봉을 오른다.
설화(雪花)는 어제 향적봉서 삿갓재까지 오면서 보던 우후(雨後) 강풍에 피운 설화보다는 못하였지만 삿갓봉의 북쪽 능선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라 그런대로 아름다웠다.
키로서만 사람을 논하랴?
보다 더 큰 인품과, 인물로도 잴 수 있는 것을
12,000 봉이 개골산(皆骨山)이기에
금강산을 금강산이라 하듯이
너그러운 큰 덕을 북덕유 향적봉에 양보하였으니
황새 늦은 목으로 V자를 긋고
동봉과 서봉으로 서서
700여 철계단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돌산(骨山)으로 치솟은
사나이다운 이 기상을
부디 제1봉 남덕유산이라 불러다오.
삿갓봉 정상에 오르니 사방의 산들이 이리 첩첩 저리 첩첩 멋진 산파(山派)가 나를 황홀하게 한다.
그중 남으로 마주 보이는 산이 남덕유산인데 황새 늦은 목을 안부로 하여 V자를 긋고 있는 두 봉우리는 왼쪽이 남덕유산의 주봉 동봉(東峰, 1,507m)이요, 오른쪽 봉이 장수 덕유라는 서봉(西峰)으로 양쪽으로 우뚝하다. 그 사이 볼록한 작은 봉 이름은 무엇일까?
남덕유산을 월성재 쪽에서 오르는 등산길에 놓인 봉우리가 하봉(1,368m), 중봉, 상봉이라더니 그 중봉이 어디에 있는가 궁금했는데 저게 중봉(中峰) 같다. 여기서 상봉(上峰)이란 동봉과 서봉을 아우르는 이름이었다.
서봉(西峰)을 자세히 보니 멋진 철계단이 정상을 향하고 있다.
서봉은 60령 가는 길로 거기서부터 자수정(紫水晶)의 산지라던데 그것보다 전설에 어린 그 이름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60령이란 어원에 대한 전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고개를 중심으로 안의현과 장수현이 있는데 그 사이의 거리가 60리여서 고개 이름이 60령이다.
-60령을 넘어가려면 60개의 작은 구비를 굽이굽이 돌아 넘어야 고개에 이른다 하여 60령이다.
-이 고개 근처에 도둑들이 있어서 장정 60명이 함께 넘어야 도둑의 위험에서 안전할 수가 있어서 60령이라 한 것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장군동(壯郡洞)'과 도적을 피해 가야 한다는 '피적래(避賊來)' 마을이 그 증거다.
등등의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서상에서 그 60령 고개를 버스로 넘으면서 기사 아저씨에게 듣던 유래가 더 재미있다.
-두메산골 60령 고개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호랑이는 이상하게도 60명이 무리를 지어 넘어가면 잡아 먹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60명이 넘어가는데 호랑이가 달려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닌가. 용감한 사람이 하나 있어 물어보았더니 호랑이가 대답하더란다.
'그렇다. 나는 약속대로 60명이 넘는 사람을 헤치지 않는 범이다. 그런데 오늘 너희를 잡아 먹게 된 것은 너희 60명 중에는 임신한 부인이 있어서다."
남덕유산南德裕山) 오르는 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삿갓봉과 무룡산으로 해서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며 중봉 근처의 송신탑 그 뒤의 향적봉을 향하여 경상도와 전라도를 세로 지르는 눈 쌓인 굽이치는 능선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히말라야 연봉(連峰)을 보듯, 꿈길에서 만난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나는 평생 동안 저 아름다운 경치를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월성재를 지나 1km 남덕유 중턱에 서니 통나무를 옆으로 길게 잘라 세워놓은 멋진 이정표가 서봉이 1.13km라고 60령까지 가지 않겠느냐고 유혹하지만 남덕유산 정상을 오르지 않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거기서 시작되는 덕유산 백미(白眉)라는 철사다리의 향연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하며 동봉을 오르는데 동봉의 이정표가 설화(雪花) 속에 십자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 남덕유산 동봉(東峰, 1,507m) 에서
드디어 1,507m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서 눈으로 치장한 정상석을 보며 하얀 설화 속에 검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그동안 내가 지나온 능선과, 영각사 쪽을 굽어보았다.
그동안 그렇게 소원하던 덕유산 종주를 이 엄동설한에 강풍경보(强風警報)가 내린 위험을 뚫고 단독으로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이 행복으로 엄습해 온다. 해외여행 출발을 일주일 앞두고, 아내의 감기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오면서도 무릎 때문에 어쩌면 종주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한 행복이었다.
감기도 어느 사이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져 버리고 멀쩡했다.
이렇게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네팔 인도 여행을 다녀오면 봄이 시작되는 삼월 중순이라서 겨울산 덕유산을 금년도 지나치고 말 것 같아서였다.
영각사까지는 3.4km로 2시간 거리라지만 여유작작 유유히 하산하였다. 700여 계단이라는 쇠 층계는 끊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수없이 반복되더니 남강(南江) 발원지라는 참샘 터부터는 계곡길인데 거기서부터는 너덜겅으로 계속되는 지루한 내리막길이었다.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영각사 버스종점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함양군 서상까지 가는데 오후에는 1시간 반이나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서상에서도 서울 가는 버스는 거의 없고 전주를 거쳐 가야만 했다.
서울을 향해 가는 버스에서 다시 또 욕심을 내 본다.
젊어서처럼 12 선녀탕으로 해서 귀때기청봉 능선에서 비박을 하고 대청봉에 오른 후 설악동까지 대종주는 못한다 해도, 설악산 종주도 다시 시도해 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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