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두륜산(頭輪山) 산행 /(2) 지도에서 대흥사(大興寺)를 찾아 보면 두륜산의 봉우리가 고계봉(638m)에서부터 서쪽으로, 노승봉(老僧峰85m), 가련봉(迦蓮峰 703m), 두륜봉(頭輪峰 630m), 도솔봉(도率峰671.5m), 연화봉(蓮花峰 613m), 혈망봉(穴望峰 379m), 향로봉(香爐峰 9469m) 등 8봉이 이 대흥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런 모습을 어떤 사람은 남한지도(南韓地圖) 같다고 한다. 북으로 주둥이를 둔 주머니가 자루 같다고도 한다. 그 모양이 수레바퀴 모양이어서 두륜산(頭輪峰)의 가운데 자로 '崙' 대신 '輪'(륜)자를 쓴다고도 한다. 수도권에서 해남까지는 천리 길이지만 나의 마음의 거리는 그보다 더 멀었다. 두류산이 보고 싶어 남도(南道)에 올 때마다 수없이 벼르다 끝난 것이 무릇 얼마던가. 두류산 코스를 크게 나누면 3 코스가 있다. -제1코스: 표충사- 삼거리- 북미륵암- 오심재- 노승봉- 가련봉(정상-만일대- 두륜봉-(구름다리)- 진불암- 표충사( 총 7.4km/5시간 소요) -제2코스: 표충사- 삼거리- 북미륵암- 천년수-(만일암터)-만일제- 두륜봉(구름다리)- 진불암- 불텅거리골- 표충사( 5.9km/ 3시간 30분 소요) -제3코스: 표충사- 삼거리- 일지암- 천년수(만일암 터)- 만일재- 두륜봉(구름다리)- 진불암- 표충사( 5.5km/ 3시간 소요) 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등산인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고 싶은 코스가 노승봉, 가련봉을 들러 두륜봉을 가는 제1코스다. 그 길은 세 코스 중 가장 먼 길로 북암(北庵)에서는 국보306 호인 미륵불(彌勒佛)을 친견할 수도 있고, 두륜산의 주요 봉우리를 다른 코스보다 더 많이 원 없이 밟아 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코스로는 두륜산의 명물인 '천년수(千年樹)'를 볼 수가 없고, 제2코스와 같이 한국다문화(茶文化)의 성지(城地)라고도 하는 초의선사의 '일지암)'을 생략해야 한다. 나는 그 일지암(一枝庵)이 보고 싶어 제3코스를 택했다. *. 일지암(一枝庵) 이야기 표충사(表忠寺)에서 완만한 차도를 따라 800m를 오르니 '일지암 3거리' 이정표가 있다. '1.3km←천년수(만일아터)인데 일지암 쪽으로는 거리가 없는 것을 보니 일지암을 보고 다시 원점회귀(原點回歸)해야 할 모양이다. 이정표에서 300m를 올라 모퉁이를 돌아서니 거기가 초의선사(草衣禪師)가 40년간 은거하였다는 일지암이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도,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초의선사를 찾아 왔다는 생각을 하며, 나 ilman도 왔구나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두 분은 초의선사를 만나러, 나는 선사의 유향(遺香)을 만나러 온 것이다. 초의선사보다 다산은 24세 위요, 추사와는 동갑이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기거하던 살림채로, 연못에 석주를 박아 기둥을 올린 자우홍련사(紫芋紅蓮社), 그리고 그 옆에 일지암(一枝庵) 초가가 있다. 그 이름을 보니 그 못에 홍련(紅蓮)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지암과 자우홍련: 한국의 대표적인 차문화(茶文化) 유적인 일지암은 우리나라의 다도(茶道)를 정립해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1786~1866)가 39세에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40년간 머물던 곳이다. 일지암(一枝庵)이란 “뱁새는 언제니 한 마음이기 때문에 나무 끝 한 가지에 살아도 편안하다”(중국 唐의 寒山 詩僧)는 시에서 ‘一枝를 따온 이름이다. 이곳에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같은 당대의 대학자들과 교류하며 끊어져 가던 차문화를 일으키며 ''다선 일미(茶禪一味)' 사상을 확립시켰다. 남긴 저서로는 ‘동다송(東茶訟)’, ‘다신전(茶神傳)’ 등 명저가 있다. 특히 남종화의 거장인 소치 허련을 가르쳐 추사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자우홍련사(紫竽紅蓮사, 紫竽山房)는 일층 가옥이 일지암 쪽으로 한층 아래의 연못에 네 개의 돌기둥 박고 기둥을 올린 누마루 건물이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가신 후 폐허가 되었던 것을, 차를 사랑하는 모임인 ‘한국 다인 연합회’에서 일지암을 복원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그 비석 앞면에 사립을 바짝 둘러놓아 쓸모없는 비로 만들었으니 세운 이들이 보면 얼마나 섭섭할까 걱정 된다. 그 상류 연못은 돌확 길을 따라 아래 둥근 석축의 연못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그보다 작은 둥근 연못으로 이어진다. 그 뒤 샘에서 흐르는 물은 3개의 돌확으로 반쪽 대나무로 흘러 찻물로 쓰게 하였는데 그 위 자우홍련사 마루에는 차를 끓일 그릇이며 촛불이 준비되어 있고, 벽에 초우선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 천년수(千年樹) 전설 다시 아까의 3거리로 내려오니 거기서부터는 차도를 버린 등산길이 시작되는 돌길이었다. '아래3거리'에 이르니 천년수가 30m 거리 아래에 서 있다. 붉은 플라스틱 2개의 통에 파이프를 박은 생수로 목을 축이고 천년수를 향하는데 바로 위에 돌담이 있고 그 돌담 넘어 5층석탑이 빈 공간에 우뚝 서 있다. 만월암(滿月庵) 터였다. -두류산 가련봉 이래의 만월암지에 조성된 5.4m의 5층석탑(전남문화재자료 제 246호)의 주변에 석등의 잔해가 흩어져 있다. 조성한 연대는 고려 중반기인 13세기로 추정되는 탑이다. 주목(朱木)이나 은행나무도 아닌 천년수(千年樹) 느티나무수가 얼마나 클까 하는 호기심으로 내려가 보니 만월암터 바로 아래에 천년수가 있다. 노인의 얼굴이 나이 들어 보이듯이 회색 빛의 이 천년수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는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1,200년 ~ 1,500년 수령이라는 나무였다. 천년수에는 북암(北庵)과 남암(南庵)의 미륵불과 연관된 전설이 전하여 온다. 천년수: 수종 느티나무(괴목). 흉고 9.6m . 수고 22m -옛날 아주 먼 옛날 천상에 천동(天童)과 천녀(天女)가 살고 있었다. 둘은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루 안에 이 산 바위에다가 불상을 조각하는 일밖에 없었다. 하루만에 불상을 조각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둘은 해가 지지 못하게 만일암(挽日庵:‘당길 挽, 해 日) 앞 천년수(千年樹)에 끈으로 해를 매달아 놓고 천녀(天女)는 북쪽 바위인 북암(北庵) 미륵암에 좌상(坐像)의 불상을, 천동(天童)은 남쪽 바위인 남암(南庵)에 입상(立像)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천녀는 좌상(坐像) 미륵불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입상(立像)의 미륵불을 조각하는 천둥보다 먼저 불상 조각을 완성할 수 있었다. 천동이 조각하는 미륵불의 완성을 기다리다 지친 천녀는 빨리 승천하고 싶은 욕심에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 승천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천둥은 영원히 승천하지 못한 미륵으로 남암(南庵)에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 만일재(挽日재) 전설 속의 천녀가 지었다는 4.2m의 북미륵암 마애여래 좌상은 남성을 상징하는 양각(陽刻)의 불상으로, 그 조각이 섬세하고 우아하여 보물 48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제306호로 승격되었다. 이에 비하여 남암의 천동(天童)의 미완성 미륵은 여성을 상징하는 음각(陰刻)으로 조각되었지만 남미륵암 터에 초라한 전각만 남아있고 미륵은 노천에 방치되어 이끼 낀 체 분간할 수조차 없다 한다. 그보다 남암(南庵)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북암에 가서 북미륵암마애여래 좌상과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도 보고 싶었지만 북미륵암은 거기까지 0.6km를 갔다 되돌아오든지, 아니면 거기서-0.6km- 오심재- 0.8km- 노승봉- 200m- 가련봉까지의 험난한 길을 각오해야 한다. 오늘 같이 홀로 인적 없는 초행길이라서 이를 생략하고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의 안부인 만일재를 향한다. 예서 200m 거리밖에 안 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두륜산(頭輪山) 구름다리 두류산 모습을 멀리서 보면 두류봉(頭輪峰)은 부처님의 얼굴이요, 천년수는 부처님의 심장 같다고 한다. 가련봉(703m)은 부처님의 오른손이요, 노승봉(685m)은 왼손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고계봉(638m)은 부처님의 발이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목에 해당하는 것이 만일재일 것이다. 만일재에 오르니 비로소 다도해가 까마득하게 열린다. 만일재는 가련봉과 두륜봉 갈림길이다. 어디로 간다? 만일재에서 500m라는 가련봉(703m)에 올라 노승봉을 향하면서 남동서로 확 뚫린 굽어보는 다도해가 될까? 아니면 두륜봉의 구름다리가 될까? 욕심 같아서야 두륜산의 정상이라는 가련봉을 올라갔다가 다시 두륜봉으로 갔으면 좋겠지만 만일재에서 보는 가련봉의 주봉은 너무나 까마득하다. 올라갈 길도 없는 수직의 직벽의 바위산이다. 그래도 올라갔다가는 다시 내려와 두륜봉을 향한다는 것은 여간한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두륜봉에 올랐다가 뒤돌아 가련봉을 시도할 수 있으면 그때 오르기로 하고 두륜봉을 향했다. 서울에서부터 벼르던 것이 젊은 시절에 보고 간 두륜산의 랜드 마크라는 '두륜산 구름다리'를 꼭 카메라에 담아 가자고 벼르며 왔기 때문이다. 동쪽 능선으로 두륜봉을 오르다 보니 만일재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높아 보이던 두륜봉 길은 빙빙 나선형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어서인지 생각보다는 아주 평탄하였다. '두륜봉 정상입구'까지가 만일재에서 300m 거리밖에 안 되었다. 드디어 벼르고 찾아온 '두륜산 구름다리' 가 보인다.
눈썹 같기도 하고, 무지개 같기도 한 5m 가량의 돌다리까지 오르는 길은 쇠층계를 올라야 헸다. 바닷가에서는 바위가 뻥 뚫리면 코끼리 바위라고 하던데, 여기는 산이라서 구름다리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구름다리에서 100m에 두륜봉 정상석이 가련봉이 노승봉을 업은 모양으로 솟아 있었다. 지도에서 보던 두륜산의 가련봉으로 다시 되돌아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다음 일정을 핑계로 0.8km의 진불암(眞佛庵)으로 하산하는데 위험한 돌길이 계속된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이었을까? 애써 찾아간 진불암(眞佛庵)은 암자치고는 무언가 빠진 듯 엉성하다. 대웅전 대신 16나한을 모신 응진당(應眞堂)과 요사채인데 그 절마당 끝에 세워놓은 몇개의 자연석이 비석 같기도 하였고 마당에 누워있는 돌은 평상 같기도 하다. 이 절에 또 무엇이 있나 해서 그 옆 층계를 올라가 보니 진짜 요사채인데 둥근 돌을 3개의 조약돌을 받혀 쌓은 탑이 멋지다. 층수를 세어보니 무려 11층 탑이다. 진불암부터는 아스팔트 길인데 질러 가는 길이 있어 가다 보니 '물텅거리3거리'가 나타난다. 물텅거리3거리부터는 도솔봉이 .3km, 남암1.1km, 관음암1.4km인데 지내놓고야 남미륵암이나 보고 갈 걸 하고 후회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서부터는 상수도원인데 이정표의 이름값이나 하려는듯 요한한 계곡물 소리에 정신을 팔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온 탓도 있겠지만 등산 내내 등산길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 두륜산은 물이 많은 산이로구나 하였다. 계곡은 보이지 않는데 등산길을 따라 죄측으로 흐르는 그 물소리는 다른 어떤 산에서 듣던 소리보다 우렁찼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등산객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탓일까. 그 소리가 하두 커서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낙엽에 털퍽 주저 앉아 그 소리를 스마트폰에 글자로 담았다. 어허, 저 물소리 물과 물이 부딛는 소리 돌을 굴리는 소리 낙하(落下)는 폭포가 되고 폭포(瀑布)는 하얀 포말(泡沫)을 낳는가 뒷물에, 뒷물에 앞선 물 떠밀려가 흐름이 되어 소리가 되어, 소리가 되어 나도 그 하나가 되어 두륜산의 물 소 리 되는가 -물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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