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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健忘症)

ilman 2020. 6. 29. 15:56

건망증(健忘症)

 

젊어서도 물건을 잃고 찾는 일이 많았다.

찾다 찾다 보면 '지금 내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 거지?' 할 때가 퇴근 시간인 적도 있었다.

지갑, 핸드폰, 안경도 그렇지만 틀니까지 두어 번이나 잃고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잠자리에서나 차를 타고 가다가 거북해서 벗어 놓거나 주머니에 넣었다가 잃은 것이다.

집에서 종일 물건을 찾다가 하루를 보낸 일도 있다.

그런 내가 80고개를 훌쩍 넘겨 살고 있으니 건망 지수(健忘指數)가 전보다 더 높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가급적이면 휴대하는 물건을 옷에 붙들어 매다는 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건망증이란 지닐총이 없어 잘 잊어버리는 병증(病症)이라 한다. '지닐총'이란 한 번 듣거나 보거나 한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래 지니는 총기(聰氣)를 말하는데 그 지닐총이 부족하니 혹시나 치매가 아닐까 겁이 더럭 난다. 지닐총을 기억상실증(Amnesia)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치매(癡呆)란 심한 건망증이라 하지 않던가.

걱정이 되어서 전문병원을 찾아갈까 해서 물어보니 그 검사비가 120만 원을 넘는다 하여 간단한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는 보건소를 찾았더니 직원이 몇 가지 항목의 검사를 하더니 안심하고 내년에 다시 보자고 해서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 두려운 치매와 건망증은 어떻게 다를까. 다음은 유명한 소올 한의원의 자료다.


기억이 저장된 창고(해마)에서 필요한 기억을 꺼내 내는 것이 원활하지 못하여 시간이 걸리는 것이 건망증(健忘症)이라면, 치매(癡呆)는 저장 과정에 문제가 있어 시간을 두는 것은 고사하고 나중에도 기억을 꺼내지 못하거나, 아예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것이다.

내 경우로는 서재에서 물건을 가지러 거실로 나갔다가도 찾는 물건이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서재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을 되찾으니 나는 치매가 아닌 노화로 인한 건망증 같다.

그래서 물건을 잃고 찾지 않는 하루는 나에게는 행복한 하루요, 물건을 잃지 않고 다녀온 여행은 성공적인 여행이 되어 버렸다.

잃는 것이 많으니 사는 것도 많다. 안경은, 모자, 휴지는 물론 요즈음에는 코로나19 마스크 등을 사고 또 산다.

그중 잃고도 가장 난감한 것은 카드(Card) 분실할 때였다. 집에서, 밖에서 잃었는가가 헷갈리니 말이다. 집에서 잃은 카드를 은행에 신고하였다가 잃은 것을 집에서 찾았을 때의 허망함이란-.

카드를 분실하고 다시 발급받으려고 찾아간 은행 여직원이 또 잃어 버리셨군요!”할 땐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다음은 그래서 생각해 낸 내 나름대로의 묘책이다.

 

자주 입는 옷은 일정한 한 곳에 걸어 두고, 자주 쓰는 차키 같은 것은 정해 놓은 주머니에 넣어둘 것.

집에서 자주 쓰는 물건은, 쓰고서 꼭 제 자리에 놓는 습관을 기를 것.
자주 쓰는 TV 리모컨 같은 것들은 찾기 쉽게 줄로 매어 놓고 쓸 것.
가급적 외출용 작은 백을 꼭 메고 나가되 현관에서 교통카드, 전화기, 지갑을 꼭 확인할 것.

카드는 BC 카드보다 안전한 현금카드나 체크카드로 하여 분실 시의 위험을 줄일 것.

카드를 어디서 잃었는가 모를 경우 통장으로 현금 전액을 찾아두고 나서 느긋하게 찾아볼 것.

외출 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앉은 좌석을 한 번 더 살펴보는 습관을 가질 것.


잊고 찾고, 잃고 찾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보니 이런 생각도 난다.
찾는다는 것은 고도의 뇌를 쓰는 과정인데, ()은 이런 찾는 행위를 통하여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여 주시는 것이로구나!’

다음은 안경을 잃고 찾다가 쓴 시() 한 편이다. 오죽 많이 잃었으면 이런 글도 썼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안경이 눈이 되어 살던 어느 날.

눈을 잃고

근자지소행(近者之所行)으로

침대(寢臺)에게 죄를 물어

칠흑처럼 어두운 침대 밑을 더듬다가

술래처럼 꼭꼭 숨어서 저를 찾는 소리를 즐기던

그 눈을 찾기 전에

건망증(健忘症)으로 고마운 파란 돈도 낚았다.

어느 누가 보고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어하랴.

나의 이 초라한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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