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영화 이야기 Photo 에세이
도시에서 나서 자라서인가. '워낭'이란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또는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을 뜻하는 말이다.
200 만 명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독립영화라는 '워낭소리' 영화를 보고 왔더니 그 워낭소리가 계속 내 귀를 울리기에 두 번이나 극장을 다녀왔다. 한 번은 구경하기 위해서, 또 한 번은 그 사진을 찍고 대사를 녹음하기 위해서다.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 마을에는 30 가구가 살고 있다.
그 중 80세의 최원균 할아버지와 79세의 이삼순 할머니가 외딴 언덕 밑에 울타리도 문도 없는 초라한 집에서 늙은 소 한 마리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할머니는 16살에 가난한 농사군 최 할아버지에게 시집와서 9남매를 낳아 출가시키고 단 둘이 두메산골에서 살고 있다.
최 노인은 젊어서 침을 잘못 맞아서 왼 다리를 잘못 쓰는 장애자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재산목록 제1호 늙은 소는 15년까지 산다는 소의 평균수명을 넘어서 40세나 장수하며 할아버지 같이 무릎이 아파 걷지를 잘 못하는 소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40년이나 장수를 하며 할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며 때로는 자가용 역할도 하다가 죽는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다. 독립영화란 상업영화와 대가 되는 말로 작자가 돈을 대서 집필하고 편집하고 촬영한 영화다.
이충렬 감독의 애초의 목표는 방송용으로 기획 제작 되었으나 방송 3사에서 퇴자를 맞고 스트디오 느림보를 통하여 영화로 재탄생하여 전국에서 겨우 7개의 극장에서 2009년 1월 15일에 개봉한 영화다.
이런 독립영화는 관객 5~6만이면 성공이라는데 3주만에 광고도 아닌 입소문을 타고 '워낭소리'는 관객 200만을 넘는 대박을 터트리며 독립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요즈음에는 이를 상여하는 극장만도 전국에 200여 개가 되는 모양이다.
영화 '워낭소리' 전편에 걸쳐서 이삼순 할머니의 대화와 독백이 이어지며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어찌 보면 푸념이요, 잔소리요, 원망 같아서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비하면 수다꾼 같지만 우리들의 옛날을 사는 분들의 이야기와 같아서 심금을 울리는 내레이션이 되고 있다.
최 노인은 이 짐승과 함께 30년을 함께 농사일하면서 5남 4녀를 대학까지 이 강촌에서 공부 시키고 출가 시켜서 그 중 장남은 52세로 봉화 모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키웠다.
그렇게 최 노인은 80살을 소는 40살을 먹으며 늙었다. 둘은 일복, 장수 복을 갖고 태어났나 보다.
"만날 만날 날만 새면 만날 들에 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끌려가고-."
할머니의 푸념이다.
최 노인은 이 마흔 살의 늙은 소는 농사일도 도와주지만 발이 아픈 최 노인네에게는 자용 같은 운송 수단의 마차를 끌어 주기도 하고 땔감 같은 짐을 날라주기도 한다. 최 노인은 또 기계 농사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옛날 할아버지들처럼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써레질을 한다. 저 뒤에 할아버지보다 아주 젊은이가 농기구를 가지고 논을 매고 있는데도.
최 노인은 이 소중한 소에게 "소 사료 대신 좋은 여물이나 쇠죽을 직접 끓여 먹인다. 소 사료를 먹이면 소 새끼 잘 안 돼 그걸 알아야 돼-" 하면서. 할머니는 "보이소! 농약 치소." 하면서 무기농 농사를 고집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농약 살포를 거절한다. 행여나 늙은 소가 농약 묻은 꼴을 먹을 까봐 주둥이에 그물을 씌우고 농사지으러 간다. 최 노인은 또 기계 농사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옛날 할아버지들처럼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나 써레질을 한다. 저 뒤에 할아버지보다 아주 젊은이가 농기구를 가지고 논을 매고 있는데도.
워낭소리 영화 전편에 걸쳐서 가장 소중한 소도구가 옛날 우리들의 늙으신 아버지가 애용하던 추억의 고물 레디오다. 그것이 고장 난 것이다. "두드려 보소." 할머니가 또 참견한다. 탁 `치는 할아버지를 보며 할머니의 독백이 시작된다. "라디오고 고물, 영감도 고물, 나도 다 됐네. 하하하 하하하." 중고 레디오의 고장은 소의 죽음을 눈치 안채게 넌지시 슬쩍 보여 주는 복선(伏線)이도 하다. 이 라디오는 관객에게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지만 저작권을 염려해서 그 노래가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엉뚱하게 교통방송이 나오는 둥 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 그런 소도구 중에 또 하나가 헌 고무신과 지팡이다. 고무신은 농촌의 고달픈 생활과 가난을, 지팡이는 늘고 병든 것을 상징하는 소도구다.
"아이 아파!" " 그리 아파 우예꼬?" 최 노인은 다리 장애를 무릅쓰고 힘든 일을 하러 나가 다리가 아프고, 늙었으니 온 몸이 욱신욱신 쑤시는데 머리마저 아프다. 그래서 오늘은 할머니와 함께 큰맘 먹고 늙은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병원을 가는데 궂은비가 오고 있다. 읍내에는 맞추어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데모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대모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 눈에는 남의 일 같다.
의사는 그 연세에는 농사일이 무리이니 쉬라 한다. 쉬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올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렀다. 이제 갈 날도 머지않았으니 영정 사진이라도 찍어 놓자 해서다. 간 김에 할망구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할망구가 " 보이소, 웃어! 웃어! " 하지만 아픈 사람이 웃음이 나겠는가. 기다리던 자식들이 손자 손녀를 데리고 차를 몰고 왔다. 와서는 가족회의가 열렸다. 아버지의 소를 팔아 버리자는 것이다.
"아버지 소를 팔아야 되겠어요. 있으면 자꾸 일하시고 자꾸 아파하시니 신경이 쓰여서요. " 자식들의 성화와 할망구의 잔소리에 못 이겨 장날에 소시장을 향하였다. 할머니는 정성껏 쇠죽을 쑤었다. 그러나 소도 이별을 아는지 통 먹으려 하지 않는다. "야, 곱빼기로 했는데 왜 안 먹니? 얼른 얼른 많이 먹고 가. 너나 나나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너는 주인 잘못 만나고 나는 영감 잘 못 만나서-. 자식들의 등쌀에 밀려 소를 팔러 갔으나 너무 늙어 60만원이니 100만원이니 헐값이 아니면 사는 사람이 없었다. "500만원! 500만원! "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막걸리 집에 들어가서 한 잔 먹고 가자 들렸다. " 장에 갔다가 술 한 잔 먹고 마차를 타고 자부렸어. 깨고 보니 집이라. 그 위험한 차를 비켜서 왔던기라. 그런 소를 어떻게 헐값으로 팔겠는가."
대신 새끼 밴 젊은 암소 한 놈을 사왔다. 그래도 농사짓던 소가 아니라서 이놈은 빈둥빈둥 놀면서 먹기만 잘 했다. 그러다가 암송아지 한 마리를 낳았다. 할망구는 그게 못 마땅하였다. "수송아지를 낳아야 할낀데 먹기만 잘하는구나." 외양간이 하나라서 먹이를 주면 젊은 소가 완력으로 밀어 내어 최 노인을 노하게도 하였다. 여기서 젊은 소의 등장은 문학적 기교의 대조법을 구사한 것이다. 최 노인의 발과 늙은 소의 무릎. 늙은 소와 젊은 소, 최 노인의 소를 이용한 재래식 농사와 젊은이의 기계농사. "보소 농양치소." "농약 치다 소 묵고 죽으라고." 하는 등등 .
소가 일어나지 못해 하여 수의사를 둘러보니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최 노인은 급히 코뚜레를 낫으로 끊어 주었다. 30년 전에 한 코뚜레였으나 지금 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 일밖에 없었다. 늙은 소는 그 큰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니 다시 감지를 못하였다. "좋은 데로 가거라. 우리 가거든 같이 가도 될 텐데." 할아버지의 한탄에 할망구가 쌓인 땔나무를 보며 눈시울을 닦는다.
" 소가 아파하면서도 이 걸해 놓고 갔어. 불 때고 살라고 영감 할미 불 때고 살라고 나무 땔감을 저리 많이 해놓고 죽었잖아요."
이듬해 봄이오니 밭 가운데 소 무덤에도 풀이 돋아나고 늙은 소의 발자국이 깊이 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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