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瑞山) 가로림만(加露林灣) 이야기
친구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태안(泰安) 일대를 다녀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이 가로림만(加露林灣)이다. 가로림만(加露林灣)이란 말은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서 이슬 맺힌 아침의 숲처럼 고요하고 잔잔하다'라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란다.
가로림만(加露林灣)은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만(灣)이나 곶(串)에 대하여 평소에 무관심했던 나에게는 처음 듣는 생소한 지명이지만 그 이름이 신선한 이국적인 냄새를 풍겨서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만(灣)이란 바다가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바닷가의 큰 물굽이요, 곶(串)이란 바다나 들 쪽으로 곧고 길게 내민 땅이나 지형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만'과 '곶'은 반대 개념이지만 서로 함께 아울러 쓰이는 말들이다.
*. 한국 유일의 해양 보호구역인 가로림만
가로림만은 해양보호구역으로 한국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지정된 여의도 면적의 11배에 달하는 91㎢나 되는 서해안 갯벌이다.
가로림만은 여기서만 서식하는 저생 생물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환경부가 지정한 해양 보호구역(海洋保護區域)이다.
저생생물(底生生物)이란 바다나 강, 호수 따위의 바닥에 사는 생물들을 말한다. 가로림만 모래톱에서는 한국에서 백령도(白翎島)와 가로림만(加露林灣)에서만 산다는 멸종 위기 동물인 점박이 물범(천연기념물 제331) 7~8 마리도 산다.
가로림만은 만(灣)의 입구에 해당하는 태안반도 쪽의 '만대포구(萬垈浦口)'와 바다 건너 서산쪽에 황금산 '벌말포구'가 있다.
그 사이가 불과 2.5m 내외인데 남북의 길이가 25km나 되고, 폭은 2∼3km나 되는 드넓은 갯벌이 가로림만이다.
북쪽의 두 포구 사이를 통하여서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세계 5대라는 '가로림만 갯벌'이 열린다.
그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이가 엄청나서 세계적인 조류발전(潮流發電)의 유망지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이는 무산되고 가로림만 해상공원을 조성하게 되는 것 같다고-.
게다가 이 지역은 한적한 어촌지역이어서 타 지역에 비해 개발에 애로가 비교적 적은 미 발전 지역이라는 이점도 있다.
*. 만대포구(萬垈浦口) 이야기
이런저런 이유로 하여 태안반도 최북단 이원면 내리에 있는 만대포구(萬垈浦口)는 지방 어항(漁港)으로 지정되어 장밋빛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포구이기도 하다.
그 만대포구 입구에 낡은 마을 안내판이 있는데 그 뒤편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게시되어 있다.
조선시대였다. 한 스님이 서산쪽에 황금산에 왔다가 하산하여 태안의 인가(人家)를 찾아 바다 쪽으로 한참을 걷고 있었다. 마침 썰물 때라서 앞길에 멀리 파란 물만이 넘실대었다.
스님이 말하길 “허참, 아까는 분명히 땅이었는데-.” 라며 가다가다 말았다고 한다.
가려던 곳이 지금의 태안군 이원반도의 땅끝 '만대(萬垈)'였다.
'만대(萬垈)'란 한자 뜻 그대로 '만(萬)'채의 집이 들어설 수 있는 '터(垈)'라는 뜻이었지만 스님이 가다가 그'만' 둔 '데'라 하여 '만데'라 하다가 오늘날 같이 '만대(萬垈)'란 한자어 이름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만대항(萬垈港)에서 시작되는 북으로 난 솔향기 길이 아름다운 나무 데크 길로 주욱 이어져 가는데 저기 보이는 저 끝에서는 썰물 때면 해안으로 걸어갈 수 있지만, 밀물 때면 산으로 올라서 가는 둘레길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마을길로 걸어서 가든가.
우리가 간 때는 밀물 때라 좌측 산 고개로 올라가 전설 어린 삼 형제(三兄弟) 바위를 굽어 보다가 왔다.
나는 각 고장에 얽힌 전설(傳說)에 각별히 관심이 많은 국문학도라서 이 기회에 만대포구 부근에 얽힌 전설 몇 가지라도 찾아 정리해 주고 가야겠다.
그리고 만대항 건너편이 황금산이고 거기에 유명한 코끼리 바위와 몽돌 해수욕장이 있다니 찾아 이 글을 완성하고 싶다.
*. 삼형제 바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하나로도 둘, 또는 셋으로 보인다는 바위가 있다. '삼 형제 바위'다.
썰물 때면 바위까지 걸어서 갈 수도 있는 이 바위는 밀물 때면 낚시의 포인트가 되어 주는 고마운 바위다.
남쪽 만대부두에서 보면, 첫째인 큰형이 두 아우를 감싸 보호해서 하나로 보이고, 서쪽 구메에서 보면 첫째가 둘째 아우를 뒤로 숨겨 막내 아우를 드러내어 주어 둘로 보이며, 동쪽 바다 건너 홤금산(126m)에서 보면 삼 형제 모습이 서로 의좋고 다정한 모습이라서 의좋은 '삼 형제 바위'로 이 고장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 '여섬(與島)'의 유래
이 고장에 이원방조제가 생겨 간척지(干拓地)로 변하면서 섬들이 다 없어져서 여섬 앞 전망대 쉼터에서 굽어보면 서해 쪽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오직 하나의 섬이 여섬(與島)이다.
옛 선인들은 이를 어떻게 예견하고 남을 '餘(여)', '여섬(餘島)'으로 이름을 지어 놓았을까. 신기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밀물이 '여섬'에 밀어 오면 폭포에서 파도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관이 연출된다고 한다. 그 여섬 목장이에 독살(毒煞)이 있는데 이 독살이 고기가 잘 잡히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예부터 사람들이 이르기를 '문전옥답 열 마지기 하고도 안 바꾼다고' 하였다. 이곳은 사진작가들에게는 '해넘이 명소'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 용난굴 유래
이 동굴 속으로 18m쯤 들어가면 굴은 양쪽으로 두 개의 굴로 나누어진다. 옛날에 이곳에 두 마리의 용이 한 굴씩 차지하고 승천(昇天)을 위해 도를 닦던 곳이었다는데, 우측 굴의 용이 먼저 하늘로 승천하는 바람에 좌측 용은 승천 길이 막혀 갈 곳이 없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어 용굴(龍窟)을 지키고 있게 되었다.
주위에 곰바위, 거북바위가 있어 이 망부석을 도와 지킴을 함께 하고 있다고-. 이 마을 사람들은 용이 나온 굴이라 하여 '용난굴'이라 부르고 있다니 순우리말로 된 이름이 정겹다.
이외에도 용난굴에서 조금 더 간 곳에 '자연조각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은 이름처럼 인공적이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이 자연석으로 만물상을 이루어 자연 조각 공원이 된 것이다.
- 2019년 크리스마스 이브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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