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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에 만난 청각장애인(聽覺障碍人)

ilman 2019. 1. 16. 14:37

세모(歲暮)에 만난 청각장애인(聽覺障碍人)

 

  기축(己丑) 년 설날이 멀지 않은 세모(歲暮)에 우리 일산(一山) 동네 함바식당에 가서 점심에 반주(飯酒)로 술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맥주, 소주, 막걸리를 3,000원씩 마실 수 있는 실비 집으로, 식사 한 끼에 5,000원을 받는 부페식 함바식당이었다.
거기에 메뉴가 따로 있어 그 음식 값을 내면 부페식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서민 실비 음식점이었다.

내 자리 등 뒤에서 두 청년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하도 조용하길레 뒤돌아보니 청각 장애자 청년 둘이서 점심 식사를 하며 열심히 수화(手話)를 주고받고 있었다.

동내에 새로 짓는 38층 아파트 공사에서 막일을 하는 청년 청각장애자였으니 얼마나 고생을 할까.
비장애인들과 같은 대우나 받고 있는지, 이것저것 궁금해서 불현듯 오늘이나 내일 저녁 일을 끝낸 후 두 청년에게 술 한 잔을 사주며 고단한 그들의 삶을 위로하여 주고 싶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농아(聾啞)라 한다. 두 청년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을 보니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유전적으로 시각장애를 물려받았거나, 출생 당시 모체(母體)에 이상이 있었거나 병이나 약물 중독 또는 사고 같은 후천적인 원인으로 한창 말을 배울 나이에 귀머거리가 되어서,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배우지 못한 불행한 이들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런 청각장애인들은 자신은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농아(聾啞)라는 불구의 몸을 가지고 평생을 오로지 자신 혼자 책임지며, 친구들의 괄시와 놀림 속에 서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커서는 사회적 차별과 냉대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한 사람들인가. 그동안 벙어리라고 얼마나 업신여김과 따돌림을 당했을까.

지난 어느 해 어느 날이었던가. 세모(歲暮)에 전철에서 만난 시각장애자(視覺障碍者)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에다가 오늘의 청각장애자(聽覺障碍者)와의 만남으로 나의 삶의 영역을 더 넓히고 싶어서 내가 말을 걸려 하던 차에 그 중 한 청년이 내게 담배 있으면 달라는 손짓을 한다.

담배를 일찍이 끊은 사람이라 가볍게 거절하였지만 담배 가게에 달려가서 한 갑씩 사주고도 싶었다.

저희는 듣지 못하는 자요, 나는 수화(手話)를 익히지 못한 사람이라서 서로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서는 메모지와 볼펜이 팰요하여 이를 주방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우리는 필담(筆談)으로 생각을 나누기로 하였다농아(聾啞)자와 평생에 처음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 , 이 동네 주민인데 저녁에 술 한 잔을 두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은데-."

그는 앞의 동료와 수화를 하더니 거절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험한 세상에 어찌 낯선 이의 호의를 말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생각되지만 '말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지-' 하는 생각에 지갑을 열어 1만원을 주면서

" 나 빼고 둘이서 막걸리 한 잔 하는데 썼으면-."

했더니 한사코 거절한다. 그래서 내 명함으로 신분을 밝히니 그제야 내 순수한 진심을 알았는지 우리는 웃음을 나누는 우리가 되었다.

  그들은 충븍 청주(淸州)에서 일거리 찾아 경기도 고양시 일산(一山)까지 왔다 하였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내게 전화를 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여행 중이나 전철에서 만나는 사람을 다시 또 만난다는 것은 공연한 시간과 금전의 낭비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동안 터득한지라 바쁜 사람이란 핑계로 가볍게 거절하면서 "문자로는 OK!" 하였더니 반색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벙어리가 어떻게 전화할 건지 두고 볼껄 그랬다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오후 일을 하러 먼저 일어서면서 함바집에서 주는 커피를 타 마시기에 나도 한 잔 달라고 하였더니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에게서 대접 받던 그 이상의 정성으로 차를 타 주며 새해 인사를 필담으로 대신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도 그랬다 " 그대들과 가정이 복 받는 새해가 되시라고-."

건강을 위해서도 1만원만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마시자고 내 ID'ilman"이라 하였으니 1만원을 시각장애자에게 주던 옛날처럼 세모(歲暮)에 건낸 것이렷다. 그 돈으로 당장 그들이 원하던 담배라도 한 갑 살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하니 날아 갈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향하였다.

집에 와서는 밤늦도록 농아(聾啞)에 대하여 그 등급, 국가적인 복지 혜택 등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며 나는 장애없이 80고개를 넘어 3년이나 더 살았구나 하는 것을 감사하며 잠들었다. 

                                                                                       2019.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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