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丈人이 돌아가신 날 葬禮式에는 가득한 問喪客 중에 ilman의 친구로는 신문을 보고 달려온 고등학교 친구 1분이 고작이었습니다.
젊어서부터 그때까지 내가 찾은 남의 丈人 丈母喪에 가본 적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일부러 알리지 않은 탓이었습니다.
그때 찾은 많은 同壻의 친구를 보며 처가에 어찌나 죄송하고 부끄러웠던지-.
그래서 실례가 되더라도 우리 丈母님 葬禮式 때에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부끄러움을 덜하게 하고 대신 크게 대접하여 은혜를 갚으리라 별러 왔었지요.
그러나 요번에는 설 連休가 시작되는 3일 저녁 8시에 돌아가시어 發靷 날이 설날 5일로 겹친데다가 靈安室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一山이어서 妻家 식구들과 상의 끝에 요번 喪事에는 일체 손님께 연락을 생략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준비된 장례에대가 다행히 妻家 妻男들에게는 親父母 喪이었고, 성공한 사람들이어서 많은 花環과 弔問客들에 의해 무사히 三虞祭까지 마쳤음을 알려 드립니다.
故人은 1920년 생으로 금년 당 100세까지 長壽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90살까지는 아주 건강히 사시다가 10년 전부터는 예쁜 치매로 모시고 살게 되었는데 큰 아들이 이를 외면하는 바람에 딸 또래 도우미 할머니에게 모시게 하였는데 그 도우미를 장모님은 '엄마! 엄마!' 부르시며 사시다가 돌아가시던 날에는 저녁 식사를 하시고 엄마(?)의 젖을 만지며 주무시다 편안히 가셨습니다.
도우미 엄마는 손이 차서 이상하다 해서 보니 숨을 멈추셨다는군요. 살아 생전 늘 자식에게 부담을 주며 가시 싫다고 사시던 장모님은 생전에 저축하여 둔 당신의 돈만을 쓰시며 사셨고, 낮에는 돌보미 요양원에 가셨다가, 저녁에 찾아오는 一山 사는 제 아내와 둘째 아들의 지극한 孝를 받으며 즐겁게 사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가실 때에도 당신이 남기신 資産만으로 葬禮까지 치르게 되었고 자식들에게도 적지 않은 돈을 遺産으로 고루 남기시고 자식만을 사랑하시다 가신 멋진 삶이셨습니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벽제를 거쳐서 서현공원 봉안당에 임시 안장을 했구요.
명복을 빌어 주신 우리 KCCA 회원님들께 감사 감사 喪事 말씀 드립니다.
-큰 사위 ilman 성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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