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기

소래포구(蘇萊浦口) 이야기

ilman 2018. 3. 1. 23:47
소래포구(蘇萊浦口) 이야기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포구(浦口)'란 신선한 낱말이다. 
그 포구는 바다, 배, 갈메기 등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자연애, 이국적, 동경적을 낭만의 3요소라 하지 않던가. 게다가 싱싱한 회(膾)는 소래포구를 향하는 우리를 행복케 한다. 술꾼에게 회보다 더 좋은 안주가 있겠는가.
 오늘은 KCCA의 영상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떠나는 Happy Day 사진 촬영 여행을 소래포구로 떠나는 날이다.
4호선 전철을 충무로(忠武路)에서 바꿔 타고 종점인 오이도(烏耳島) 역에서 수인선(水仁線)으로 다시 바꿔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가니 거기가 바로 소래포구역(蘇萊浦口驛)이다.
*. 수인선 협궤열차(水仁線狹軌列車) 이야기 

 

 소래(蘇萊)의 매력은 협궤열차 수인선(水仁線)을 빼 놓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수탈을  받던 태평양전쟁 시절 왜놈들이 전쟁에 쓸 미곡과 소금을 수송할 목적으로 1937년에 완공된 수인선은 수원역서부터 인천역까지 52km,  폭 762mm의 단선 협궤열차(單線狹軌列車)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1995년에 폐선된 것이 수인선이다.
당시 이곳 역 이름은 소래역(蘇萊驛)이었다. 그 동안 도로 교통의 발달로 화물과 승객의 수요가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중단된 지 17년만인 2012년 6월에 최신 시스탬을 갖춘 복선 전철(復線電鐵)로 다시 태어나 소래포구역(蘇萊浦口驛)이 되어 다시 운행하게 된 것이 수인선(水仁線)이다.  
 협궤열차(狹軌列車)란 철로의 간격이 보통이면 1.435mm인 궤간(軌間)인 것을 그림처럼 그보다 좁은[좁을 狹] 궤도로 만등 철로를 말한다.
1937년 무렵 인천과 수원은 인구 30만 미만의 작은 도시여서 화물량과 수요 인원이 적었다. 그래서 짐차보다는 크고 열차보다는 작은 협궤열차(狹軌列車)차가 필요하였기에 생긴 증기열차다.
 소래포구에 가면 지금은 인도로만 쓰이는 옛 협궤 철길이 바다를 가로 질러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다리 위에서 연인과의 굳은 언약은 영원울 약속하게 한다고 한다. 그 때 그 밑을 지나가는 배를 다리 위에서 볼 수 있다면 행복이란 선물이 더해 진다고-. 
 그 다리를 건너면 그대로 재래 어시장(魚市場)으로 연결되어 회집에서 횟감을 떠서 선착장 다리 밑 그늘에서 돗자리를 펴 깔고 바다를 굽어 보며 운치 있게 술잔을 기울릴 수 있는 곳이 소래포구(蘇萊浦口)의 낭만이다.

*. 소래(蘇萊)의 어원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인가 새로운 곳에 가면 지명 유래가 언제나 궁금하다.
'소래 역사관(蘇萊歷史館)'에 들렸더니 거기 명쾌한 답변이 있는데 다음은 그 중 몇 가지 설(說)이다.
  - 이 지역의 지형(地形)이 소라처럼 생겼가 때문에 '소라'가 변해서 '소래'가 된 것이라는 설
  -신라 무열왕 때(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중국 산둥반도 내주(萊州)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서 나당 연합군이 되어 백제를 치러 소래산(蘇萊山)에 도착하였는데 소정방의 '소(蘇)'와 내주의 '래(萊)'를 취해 '소래(蘇萊)'라 하게 되었다는 설.
  - 이 고장 주변 냇가에 소나무가 많아서 내의 이름을 '솔내(松川)'이라 하였는데  '솔내'가 '소래'로 변음되었다는 설. 
  - 높은 곳이나 맨꼭대기를 뜻하는  우리말 '수리'란 말이 '소래'로 바뀌었다는 설.'

 

*. 소래 역사관(蘇萊歷史館) 
소래에 왜 오는가.
김장철에는 새우젓을 사러, 보통 때는 싸고 싱싱한 회를 먹으러 와서, 시장 횟집에서나 아니면 소래 다리 밑 그늘에 앉아 떠온 회로 소일하러 온다. 
 그처럼 먹는 입도 중요하지만,  잘 보는 눈 또한 중요한 법이다. 그 소래의 볼거리를 압축하여 놓은 곳이 옛 어시장 근처에 있는 '소래역사관(蘇萊歷史館)'이다.  소래역사관은 2층으로 꾸며 져 있는데  
1층전시실에는 '소래체험전'과 소'래포구 ZONE'과 2층에는 '소래갯벌 ZONE'과 '수인선 ZONE'과  수인선 옛대합실
 

 

수인선의 건설과정과 협궤열차 등이 있다. 
1층에서는 소래 염전  ZONE으로 각종 염업도구(鹽業道具)의 전시와 함께 국내 제1의 천일염(天日鹽)의 생산지었던  소래염전蘇萊鹽田)의 각가지 경험을 해 불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소금창고, 소금밀대 밀어보기 체험도  있고 바닷물을 퍼내는 수차(무자위)도 볼 수가 있다.  
옛날의 소래염전蘇萊鹽田) 자리에 지금은 자연생태공원을 멋지게 조성하여 관광객을 부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소래포구의 소래어시장을 인형으로 재현하여 놓은 것이다.
소래역사관을 나오니 옛날에 수인선 위를 달리던 협궤열차가 잊어버린 옛날을 일깨워주고 있다.
 소래포구 해안가의 '소래꽃게'를 보며 가다가 지금은 인도로만 사용하는 '협궤열차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과 약속보다 늦게 도착하여 그 철교 위에서 굽어 보니 우리 KCCA 영상 모임 일행이 바닷가 회집에서 바다를 회하고 있는 것이 보여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지금은 밀물 때라서 들어오는 물에 마지막 남은 모래 섬 위에서 고기를 낚고 있는 갈매기의 모습이 멋지다.
여행은 항상 미련을 남게 한다. 옛날 염전이었던 곳에 생태공원을 조성하여 놓은 곳도 가보고 싶지만, 회와 술이 앞길을 막는다. 금강산도식후경(金剛山食後景)이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