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팔라우(Palau) (1)/ 남태평양 섬

ilman 2017. 4. 2. 10:15

  공무원으로 정년 한 후 약간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아내와 약속을 하였다.

'더 늙기 전에,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가급적이면 먼 나라부터 떠나자고-.'
 그래서 지금보다는 비교적 젊던 시절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호주 대륙을 전전하다가 최근에는 아세아의 인도, 네팔,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적지 않은 곳을 다녀왔다. 영어 실력이 짧은데다가 배낭여행을 떠날 나이도 아니어서 우리는 투어(tour)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가이드가 한 번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우리들 늙다기에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면서도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여행 후기를 쓰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 작가라는 명함을 갖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녹음기와 디카, 캠코더를 가지고 기록하며 다니면서,'가 본 사람에게는 추억을', '가 볼 사람에게는 꿈을' 주고 싶어서 오래 전부터 해외 여행기를 써왔다.
  글도 구색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나의 여행은 짐을 싸고 풀며 이곳저곳 다니는 투어 여행이었으니 요번에도 투어여행 따라 아내와 함께 휴양을 겸한 섬나라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그 중에도 이름도 생소한 섬나라 ' 팔라우(Palau)'를 선택한 것이다.
  팔라우는 우리에겐 미지의 나라다.  적당한 모험을 즐길 수도 있는 미개척지로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는 곳이다. 내가 어렸을 적 자란 곳이 바다가가 굽어 보이는 인천의 수도국산 달동내 약우물터이어서 수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도 있고, 아내도 수영장을 10년 이상 다니는 중이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물속의 세계를 넘보고 싶다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파라우를 향하게 된 것이다.

*. 팔라우(Palau)란 나라
  어젯밤 인천공항에서 떠나 4시간 30분만에 일본의 규슈 상공을 지나 팔라우 공항에 꼭두새벽에 도착하였다.
이 정도 거리면 시차를 바꿔야 할 텐데 한국과 시차가 같았다. 적도 바로 위인 이 나라는 한국과 경선[經線, 날줄]이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도 일주일에 목, 월요일만 운항하는 아시아나 소형 비행기였고,  여기에 맞춘 듯이 팔라우의 코롤공항도 한국의 지방 시외버스 터미널 수준 정도의 시설이어서 모든 것을 수작업에 의하여 입국 수속하는 국민소득 3,000불 내외의 가난한 나라였다.
   팔라우 공화국(Republic of Palau)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397.00m)보다 약간 더 큰(508㎢) 섬으로 인구 2만956 여 명(2011년)이 사는 나라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 중 198째로 작은 34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 섬 중 유인도는 12개인데 그중 제일 큰 바벨 투아(Babeldaob) 섬에 공항이 있다. 바벨투아 섬(370㎢)은 강화도(405.2㎢)보다도 훨씬 작은 섬이다.
  섬의 최고 해발 고도라야 서울 남산(262m)보다 낮은 217m이다.
이 나라 인구의 3/5이 산다는 옛 수도 콜롤(Koror)은 이 섬의 남쪽 680m 지점에 있었다.
 이 섬에 제2차 대전 중에 일인(日人)들이 조성한 항구와 TV , 라디오 방송국, 병원이 있다.
지금의 수도는 2006년 코롤에서 멜레케오크로 옮긴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 섬이 '천상의 바다 정원', '천상의 섬', '신의 오아시스', '세상의 모든 바다가 질투하는 섬나라' 등으로 불리며 관광으로 태평양에서 크게 알려진 섬나라가 팔라우다.

  팔라우는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중의 제2위라는 호주의 유명한 '대보초'를 제치고, 세계적인 해양 전문가 단체인 CEAM이 '세계 최고의 해양지역' 세계 1위로 선정한 나라로 다이버와 낚시꾼이 꿈에도 그리는 천국이다. 아직은 문명에 덜 때 묻은 소박하고 자연적인 나라이기에 여행자의 동경의 대상인 섬나라가 되었다.






이번 여행은 지금은 다 큰 양(羊)이 된 옛 제자(김유철 전무)가 내 아내인 사모님의 칠순 기념 여행이라고 우리에게 특별히 주선해 준 팔라우 퍼시픽 리조트(PPR)다.
이 호텔은 팔라우에서는 유일하게 태평양의 산홋빛 자체 해변 비치와 선착장을 가지고 있는 최고급 호텔로 제자 덕분에 VIP 고객이 되어 4박 5일을 여기서 머물다 가게 된 것이다.
좋은 것은 이름값을 하는 법이다. 조식 뷔페식당의 풍성함은 물론 화장실의 비데까지 갖추어진 객실이 있다.  태평양을 향해 뻗어 가는 더할 수 없이 투명한 푸른 바다는 완만한 고운 백사장인데 어떤 처녀는 거기서 커다란 바다거북을 보았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열대 지방이라서 바닷물 수온도 25도 정도다. 이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면 호텔 야외수영장은 민물이어서 샤워장이 따로 필요 없었고 그 옆에는 야외 온천스파가 있어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도 있다. 그 바로 옆에서 큰 타월을 수시로 무료로 빌릴 수가 있어 몸을 가리고 고급 파라 숄에 누어 저 멀리 거북이 모양의 작은 섬을 바라보게 한다.
 먹이 같은 아주 작은 섬을 앞에 둔 거북 모양의 이 섬 등 위에는 환상적인 야자수 한 구루가 우뚝 솟아 있어 유토피아와 같이 멋지다.
이를 바라보며 남국의 정취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그런 고급 레조트였다.

   어제 밤 늦게 인천공항을 떠나오면서 기내에서 설친 잠이라 우리는 느지막하게 쉬다가 야자수 우거진 호텔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둘러보다가. 11시부터 팔라우 관광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팔라우 시내 관광은 한국의 70년대를 뒤돌아보게 하는 소박하고 순수한 시골 풍경 같았다.
시내 관광에서는 초등학교 건물 정도의 옛날의 대통령 집무실이었다는 1층집, 아름다운 산호섬, 젤리 피쉬, 희귀 바다 생물 등 팔라우의 해양 생태계 등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아쿠아리움(수족관) 등을 볼 수 있다는데, 이 나라 뭍에서는 볼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이 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이를 생략하고 바다로 향한다. 

*. 아이고 다리(bridge)

 팔라우의 옛 수도 코롤(Koror)을 지난다. 이곳은 UN이 자연보호를 위해 건축을 제한하는 나라여서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코롤에도 2층 이상의 건축물은 호텔 이외에는 거의 없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1940년 대 후반 나의 고향 인천(仁川)을 돌아보게 하였다.
코롤 동쪽 끝에 다리를 지나는데 이곳이 '아이고 다리(bridge)'라는 말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
'아이고'란  아프거나 힘들 때, 놀라거나 원통하거나 기막힐 경우에 나오는 우리들의 한탄의 소리인데 이 이역 땅에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이 생겼는가. 
 이 아름다운 남국 섬나라 팔라우에도 일제 강점기였던 한국처럼 슬픈 역사가 있었는데 그게 우리나라와 공유하던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1543년 에스파냐 항해가 R.L. 비얄로보스가 이 섬에 온 뒤로 300년 동안 에스파냐령이었던 팔라우는 그후 부근의 다른 제도(諸島)와 함께 독일에 팔렸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망한 후 일본이 지배하던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필라우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그 무렵 조선총독부는 1936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15세의 소녀 10여 명을 종군 위안부로,  토목공사를 위해서 전라도에서 200여 명의 노무자들을 이곳에 강제로 징용하여다가 이 다리를 세우게 하였다. 한국노동자들은 이국땅에서 혹독하게 왜놈들에게 시달리면서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며 이 다리를 세우던 소리를 원주민들이 듣고 이 다리를 '아이고 다리'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란다.
그러던 이 팔라우는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격전지가 되어 미군이 공습해 오자 일군은 섬 중앙의 석회암 동굴에 숨어 2개월 보름이나 미군과 격전을 벌렸다.
그때 일군 1만여 명과 1,800명의 미군의 전사자를 낸 댓가로 1947년부터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가 팔라우는 1994년 10월 1일 독립국가가 되어 그해 12월 UN에 185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태평양 당시 왜놈에게 우리의 젊은이 1,000여 명이 강제 징용당해 강제 노역을 하던 곳으로 1995년에 수교한 나라이고 북한과는 수교를 하지 않은 나라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서 쓰는 화폐가 US달러요, 국방도 미국이 지켜 주는 나라여서 군인이  한  사람도 없는 나라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국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로 살게 되었다.

*.낚시의 천국 팔라우
  우리들의 제일 처음의 팔라우 관광은 열대과일 농장 견학이다.
이 농장으로 가는 차는 관광객을 위해 조잡하게 개조한 트럭으로 옛날 '아이고다리'를 놓을 때 한국노무자를 싣고 가던 차를 연상케 한다. 
비포장도로를 한 10분 달려가니 '에밀릭 농장'이 있고 그곳을 관리하는 한국인 최씨가 노니 및 열대과일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그 후 열대과일을 시식하게 하여 주어 아침에 호텔 뷔페에서 먹은 과일이 이 열대 과일 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하여 준다.  시식 후 우리나라처럼 과일을 사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였더니 그게 아닌 것이 고마왔지만 먼 나라에 와서 이런 정도를 견학으로 보내는 2시간이 아깝기만 하였다.
 그 시간에 시내 관광이나 하였으면 오죽 좋을까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혹시나 시내 관광에는 입장료를 내는 곳이 있어서 생략한 것은 아닌지-.'
저녁 식사 후에는 밤낚시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
'
물고기 한 마리가
구름

사는 세상 보고 싶어
춘하추동
하늘

그리다가
강을 열고 나왔네.
             -월척 

 1998년 일산에 수로에서 월척(越尺)을 하고 쓴 나의 시다.
소년 시절 나는 망둥이가 커가는 인천 앞바다에서 자랐다. 젊어서는 청평에 가서 견지낚시를 하며 지냈고, 노년에는 서해로 우럭을 잡으러 다녔고, 정년 후로는 일산 수로(一山水路)에서는 참붕어를 잡던 시절이었다. 거기서 월척을 다섯 수나 하여 낚시꾼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그러다 생명체인 고기를 먹지도 않으면서 취미로 잡는 것이 죄를 짓는 듯하여, 취미를 산행(山行)으로 바꿔 소일하는 산꾼이 되어 금년에는 '국립공원 산행 Photo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곳 낚시배는 최소 6명 이상이어야 출조하는데 우리들은 남성 5명 여성9명 총14명이었다. 여성들은 바다낚시보다 자연산 회나 맛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낚시는 축구공 만한 도르래에다 돌잡이 손가락 만한 커다란 낚싯바늘에 미끼로 한치 머리만한  크기의 미끼를 끼는 것이었다. 
 다음은 사이판에서 낚시로 소일하다가 이곳에 와서 6년째 낚싯배를 운영한다는 김씨의 말이다.
"팔라우 바다는 343 개  섬으로 둘려 쌓여 있어서 파도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아울러 밀물 썰물 이외에는 조류가 없이 잔잔한 바다로 낚시꾼의 천국이랍니다. 이곳은 태풍이 생기는 곳이어서 태풍의 피해가 없은 지역이기도 하구요.
여러분들은 바다를 향해 양반다리하고 앉아서 10m 정도로 낚시 줄을 바다 깊이 넣어서보세요. 뽕이 개펄에 닿거든 팽팽하게 하여 고패질을 하지 말고 그냥 두고 기다리세요.
고기가 입질해도 그냥 두세요. 여기는 큰 고기를 잡는 곳이지 작은 고기를 잡은 곳이 아니거든요. 여기서는 입질할 때 재빨리 채는 고기가 아니라 물고 달아날 때 끌어 올리는 낚시랍니다. 이곳 고기들은 한국의 바다 고기와 같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지 않은 순진한 고기들입니다. 이곳에서 낚시 배, 그것도 밤낚시를 띠우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거든요."
  이 배에는 우리들 이외에 현지인 5명이 더 탔다. 운전하는 이, 포인트를 찾아 배가 이동하면 닻을 올리고 내리는 이, 낚시 미끼를 끼워 주고 빼주는 이, 회를 뜨는 사람과 낚시 지도를 하는 캡틴이다.
포린트에 이르자 배가 시동을 끄고 낚싯배가 닻을 내리어 고정되자 이곳저곳에서 '우- '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어를 잡겠다는 꿈을 안고 고국에서 릴대와 바다 낚시용 프랑스제 미첼까지 준비해온 나에게도 입질은 오지만 캡틴의 말처럼 끌고 가는 대어가 없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채 보아도 바늘이 커서 허탕이었다. 

잡는 이가 적으면 15분 간격으로 배를 옮기는 것이  반복되는 동안 밤하늘에 별은 팸플릿에 있는 것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아니었다. 달밤이어서 그런 것도 같고 아니면 흐린 날씨여서 그런 것 같았다.
20cm급 고기를 3마리를 잡았는가 했을 때 고함을 지르는 이가 있다. 59cm급 대어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큰 고기를 잡는 것을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다음은 우리가 잡은 고기로 회를 떠서 소주와 캔 맥주와 함께 마시는 시간이다. 점심 전에 다녀온 슈퍼에서는 카스 맥주는 1.3불이지만 소주는 6.95불 하는 진로 소주였다.

팔라우에는 한국교민이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이 경영하는 한국 식당은 4개다. 거기서 12,000원에 팔고 있는 우리의 술 진로 소주도 여기서는 푸짐하였다.
이곳의 모든 물건은 거의 다 수입품이고 주 수입원이 관광수입이어서 물가가 아주 비쌌다.

 오늘 저녁을 먹고 온 곳의 한국 교민 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드시고 있는 것 중 팔라우산은 고추와 오이뿐이랍니다."
감불청고소원(敢不請固所願)하던 회(膾), 그것도 자연산에다가 목숨을 걸고 마시던 술을 남태평양에 밤배를 띄우고 먹고 마시고 있으니 술꾼에게 이보다 더한 행복도 있을까. 
그러나 내가 대어(大漁)나 다어(多漁)를 하지 못했구나 하는 낚시꾼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낚시를 하는 동안 아내는 코코넛 오일마사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향기로운 코코넛 오일을 사용하여 남국의 전문 마시지에 의해 피로를 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억울한 것은 전신 마사지를 US 35불이라 해 놓고 발마사지를 하려면 추가 요금 20 달러를 더 내라 한다. 동남아 어디에서도 없는 제도다.
이 나라 사람이 전신이라 하는 말이 다리와 발은 제외하는 말이 아닐 터인데.
 
회먹는 것도 그렇다. 이젠 그만 드실까요? 하고 캡틴이 꼬시는 말을 하니 순진한 여인들이 '네!' 하니 섭섭하게도 그냥 회를 거두어 버린다. '나쁜 놈들_" 속으로 하는 나의 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