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북해도 (3)/ 운하(運河)의 도시 오투라(小樽)

ilman 2017. 3. 28. 10:26
*.사포로의 외항 운하의 도시 오투라(小樽)

*. 아이누(Ainu)족 이야기
  오타루 가는 길에 시라오이(白老)에 있는 포로토 호(湖) 가에 있는 '아니누(Ainu) 민속촌'을 찾았다.
입구에 아주 커다란 아이누
노인 상이 있어 물어보았다.
  '당신은 누구신데 이렇게 큰 모습으로 서 계시는가요?'
하니 그 앞에 안내판이 대답한다.
 
'이 사람은 키가 16m, 몸뚱이가 7m  되는 아이누 촌장(코탄 코로쿠루)이지만 몸무게는 아주 가볍습니다. 강화(强化)푸라스틱 으로 만든 것이거든요.' 사람들은 저를 아이누족의 수호자라고 한답니다.
제가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이 막대기는 '이나우'라고 하는 이 마을의 안녕과 방문객들의 행운을 빌어 주는 것이지요.'
 
  이 촌장의 상을 막 지나니 곰의 감방(셋)과 훗카이도 개 울이 있다. 그 옆에 여기서는 가장 큰 아이누박물관에 이어 아이누인들의 고유의 집(치세) 5 채가 늘어서 있다.
이 민속촌의 이름이 '포로토코탄'으로 아이누어로 '큰 호수의 취락(聚落)'이란 뜻이다.
  이 민속촌은 원래 아이누가 모여 살던 시라오이(白老) 시가지에 있던 것을 1965년에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포로토 호반(湖畔)으로 옮겨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아이누(Ainu)란 어쩐 민족인가. 다음은 현지에서 구한 팜플렛에서의 아이누 소개다.

  -'아이누'란 원래 '사람'을 의미하는 아이누어입니다. 훗카이도, 동북지방 북부, 사할린 남부, 치시마 열도에는 和人(혼슈지방 사람)이나 러시아 사람이 살기 전부터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선주 민족 '아이누'가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훗카이도를 중심으로 수만(數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나쁜 사고방식 중에 하나가 '타자 의식(他者議識)' 이라는 차별 의식이다.
아무리 일본에 사는 인종이라도 타민족이면 이를 백안시 하며 일본 민족인 '야마토인'과의 동화시키기 위하여 종족 말살을 꾀한다. 한국 침략 일제 시절 36년 같이-.
이렇게 인종 차별을 하면서도 비겁하게도 이 차별은 약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요, 미국과 같은 강자에 대하여는 그 반대가 된다는 점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것은 동양인이 신처럼 존경하는 관운장(關雲長) 인품의 그 반대가 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다. 그 차별은 다음과 같은 3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재일한국인들에게 가하는 차별
  둘째는 훗카이도와 오끼나와에 원주민에 대한 인종 간의 차별
  세째는 같은 종족이라도 피차별부락민(被差別部落民) 같은 천민계급의 차별.
 

 아이누(Ainu)족이란 유럽의 한 종족으로 거기에 몽고 인종의 피가 섞인 민족으로 옛부터 북해도와 사하린에 살던 민족으로 그 외모부터가 야마토 일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눈이 깊고 우묵하고, 쌍꺼풀의 눈에다 광대뼈가 나왔으며 몸에 털이 많고 흰 피부다.
옛 아이누 여성들은 입가에 잿물로 어릴 때부터 조금씩 문신을 하여 성년이 되면 수염 같이 보이는 검은 문신이 되는데 이는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부적과 같은 의미였다.
이 아이누족은 대대손손 북해도에서 살던 원주민인데도 일인들 사이에서는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은 뉴질랜드의 마오이족과는 반대로, 정부로부터 정식 인정 받지도 못한체 창씨 개명을 강요 당하여야 했다. 그뿐인가. 그들의 고유언어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동족간의 결혼조차 금지하였다.
그래서 아이누인들은 생존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일인과 혼혈의 길로 가면서 그들의 문화는 물론 순수 혈통마저 감추고 살며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현지 아이누인들의 영접을 받으며 억새 같은 풀로 지붕을 한 집(치세)에 들어섰다. 실내에는 우리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일인들이 하나뿐인 커다란 홀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네모진 곳에 장자개비로 모닥불을 지펴 놓았고 그 위 천정에 많은 연어를  매달아 놓았다.
가을이면 많이 잡히는 연어를 소금을 뿌려 햇볕에 말리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집(체세) 안 서까래에 매달아 놓고 불을 지피면 그 연기로 훈제연어가 된다는 것이다.
그 높이가 너무 높은 것이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여기 있는 집은 관광객을 위해서 전시용으로 크게 지은 것으로 실제의 집 (치세)은 그 1/3 정도의 크기로 작다 한다.
아이누인에게 연어는 음식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 껍데기는 옷이나 신발을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이누 마을 관람은 현지 아이누 인(남)의 유머스런 포토고탄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먼저 현악기인 '뭇쿠리 연주'를 감상하였다.
  아이누인들이 입으로 연주하는 죽제품의 뭇쿠리는 한 뼘 크기의 조그마한 죽제품이다.
양손을 이용하여 왼손은 뺨에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 줄을 당기면 나오는 소리를 입을 크고 적게 벌이어 공명으로 음색을 변화시키어 나오는 소리의 연주인데 일본 정부에서 이 고장의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뭇쿠리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면 바람소리 같다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동물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아이누인들은 이 뭇쿠리 소리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으로도 사용하여 온 모양이다.
  다음은 자장가(이훈케)로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불가를 빙빙 돌며 하는 잡단 가무였다.
  '아가야 잘 자라. 자지 않고 울면 큰 새가 날아와 잡아간단다.'
하는 내용인데 그 중 한 여인의 '오르르르, 오르르르' 오호~, 오호!~ 하는 특이한 여음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여인들이 군무와 함께 부르는 가무(歌舞)는 '곰의 영혼을 보내는 춤'(이오만테림세)이었다. 곰이 유난히 많은 이 후카이도에 모든 동식물에도 신(神)이 있다고 믿어온 아이누족이 곰잡이를 하면서 부르는 가무였다. 
   공연이 끝나자 입구에서 500엔에 파는 뭇쿠리를 하나를 샀다. 여기 아니면 살 수 없는 악기이기에. 귀국하면 나의 제자 국악인 문군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우리들 일행은 여기서 아이누인들과 함께 아이누 치세(집) 앞에서 , 그리고 포로토 호(湖) 를 배경으로 촬영대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남는 것이니, 그 추억을 구체적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

*. 운하와 오르겐의 도시 오타루(小樽)
  오타루는 사포로의 외항으로 한국의 인천(仁川)과 같이 사포로의 현관이 되는항구 도시이다. 인천보다 약간 큰 '오타루'(小樽)에는 15만명이 살고 있는데 '훗카이도의 월가(Wall Street)'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아이누어로 '모래사장 가운데 있는 강'(오타루나이)이라는 뜻의 오타루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사포로보다 더 큰 도시로서 금융가와 무역상들이 모여 있어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하여 온 곳이기 때문이다.
  그 역할 때문에 일본에서는  세 번째로 철도가 개설된 곳이기도 하다.
  오타루(小樽)의 상징은 '오타르운하(運河')다.
1914년에 착공하여 9년만에 길이 1,300m, 폭 40m 규모로 완성된 것을 그후 1,140m로 확대하였다.
지금 운하의 산책로는 1986년에 남쪽 해안을 매립하여 만든 것으로 그 주변의 석조나 붉은 색 건물은 당시의 창고였지만 지금은 운하의 이용도가 낮아져서 일부를 매립하여서 운하는 그 일부분만 남아 있고 그 건물은 상가 건물로 쓰고 있다.  
  그 산책로에 있는 63개의 개스등은 유리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기타이치가라스 공방 거리, '오르골 전시장' 등으로 바뀌어 특히 야간에 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오타루(小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하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인력거꾼이다.
수건으로 동이거나 원모양의 모자를 쓰고 날렵한 차림에 지까다비를 신었다.
지까다비란 엄지발가락을 중심으로 발가락이 둘로 갈라진 농구화 같은 신발로 일본인들을 비하하는 우리 말로 '쪽발이'란 말의 근원이 되는 신발이다.

 오르골(Orgol)이란 자동 음악연주기로 태엽을 감아주면 음악이 들리는 장난감 같은 악기 다.
일본에서 최대의 오르골 전문점은 1912년에 지은 '오타루 오르골 당(堂)'으로 실내 높이가 9m나 되는 커다란 건물이다.
여기에 들어가면 19세기 골동품을 위시해서 5,000여 점 상품들이 우리들의 눈을 놀라게 한다.
이 건물은 오타루 메르헨 교차점에 옛날의 창고를 개조한 것인데 그 바로 입구에 캐나다 벤쿠버의 개스타운에서 보던 그와 똑같은 높이 5.5m '개스시계(증기시계)'가 있어 15분 간격으로 증기를 뿜어 도시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또 다른 오르겔당에 들어서니 오르겔 연주를 하고 있는데 연주자는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겔 음악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은은한 것이 100년 전의 음악으로 오늘날 CD의 원조라니, 옛것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소중히 간직하고 감상하며 오히려 현재에도 그 오르겔을 제작하여 오는 모습이 우리들의 버리는 문화를 되돌아 보게 한다. 
 
*. 훗카이도의 3대 먹거리 
 
후카이도에 와서는 반드시 먹고가야 할 먹거리 세 가지가 있다.
  '사포로맥주', '아이스크림' 그리고 '라멘'이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장 불편한 것이 식수다. 그 식수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 한국과 일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를 금수강산(錦繡江山)이란 말보다 금수강산(金水江山)이라는 말을 즐겨 써왔다.
한국에 '포천막걸리'가 유명한 것은 포천 백운산 계곡의 물이 좋아서다. 술맛은 물맛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못지 않게 물이 좋은 나라가 일본이요, 그중에서도 후카이도 물이다. 그 물로 맥주를 만든 것이 사포로 맥주이니 그 술맛이야 더 말하여 무엇하랴.
 노보리베쓰 호텔에서는 호텔 복도마다 자판기가 있어 나 같은 술꾼을 행복하게 하였지만 사포로 일원에서는 호텔에도 시내에도 곳곳에 있는 그 편리한 자판기에도 없었다.
그래서 호텔 룸의 냉장고의 캔맥주를 600엔(6,200원 )에  마실 수밖에 없었다.
  후카이도는 드넓은 대지로 인하여 방목하는 낙농업이 발달한 곳이어서 그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특히 유명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입맛에  맛는 것을 골라서 입에 넣으면 스스르 녹는 감칠 맛이 평생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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