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상하이(上海) 기행(상)

ilman 2012. 12. 1. 08:56

상하이(上海) 기행
2005. 3. 25~28/야경-홍구공원-임시정부청사-예원-시장/S-투어 여행사 따라)

*. 처음 가보는 상하이(上海)

 중국에서 제일 긴 강이 무슨 강인가?
중국인들이 창강(長江이라 부르는 6,300km 양자강이다.
그 강의 지류인 114km의 황푸강(黃浦江)이 83km의 오쑹강(吳淞江)과 합류하여 다시 장강으로 흘러들고 그 장강 어귀에 상하이(上海)가 있다.
넓이 6,000여㎢, 인구 1,674만 명이 사는, 북경,천진,중경(重慶)과 함께 중국 4대 직할시 가운데 하나인 도시이다.  거기에 관광객, 바이어 등의 유동인구가 연 300만 명이 넘게 드나드는  국제도시가 바로 상하이다.
19C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열강 세력에 의한 남경 조약(南京條約)에 의해 개항되면서부터 발전한 무역항이다.
중국인들은 상상하이를 용두(龍頭)라고도 한다. 창강(양자강)을 지도에서 가만히 보면 한 마리용과 같은 모양으로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데 그 어귀에 있는 상하이가 그 머리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창강(양자강)은 내륙 수운을 발달하게 하여 상하이(上海)에서부터 상류로 가면서 항주(蘇州), 무석(無錫), 양주(揚州), 남경(南京), 무한(武漢), 악양(岳陽), 중경(重慶)등의  발달한 도시가 중국의 커다란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해항(上海港)은 강어귀의 외항(外港)과, 거기서 약 39km 상류에 있는 내항(內港)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수심이 깊어서 1만 톤 급의 외항선이 자유로이 드나들고 정박할 수 있는 양항이어서 오늘날과 같이 중국은 물론 세계 제1의 무역항 공업도시가 되었다.
나는 상하이(上海)에서 항저우(杭州)까지 장장 4시간 이상이나 걸려 천하제일 기산(奇山)이라는 황산(黃山)을 오고 갔는데 산 하나 없는 평지였다. 상해에서 제일 높다는 산이 겨우 98m의 천마산이었다.
평지의 높이가 해발 2~3m 내외라서 상하이의 어느 지역이고 1m 정도를 파면 물이 나온다. 그래서 상하이는 지하철 노선이 한 선뿐이고 수로, 육로, 고가도로가 발달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중국인들이 보기만 해도 재수가 좋다는 자기부상열차가 나타났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 열차는 시속 430km로, 푸동 공항에서 릉창 시내 지하철까지 자동차로 45분 달리는 거리를 단 8분에 달리는 중국인들이 세계에 자랑하는 자존심이고 저력이었다.

*. 상하이(上海)의 관광지
상하이(上海)는 동쪽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약간의 구릉 지대가 있다.
상하이는 아열대에 속하는 해양성 기후여서 4계절이 뚜렷하지만 한국처럼 날씨가 좋고 좋은 고장이 아니다. 기후 변화가 많고 습기가 많아서 여름에는 40도를 넘노는 무더위이고 겨울에는 날씨에 비하여 체감온도가 몹시 춥다. 그래서 상해 여행의 최적기는 지금 같이 꽃피는 봄이나 가을철이라 한다.
상하이 관광 코스는 노신공원(虹口公園), 외탄(外灘), 황푸공원,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상하이 동물원,

예원(豫園) 등이 있지만 이 모두를 보는데 한나절 코스로 적당하다.
 우리는 오늘 저녁 외탄(外灘))의 야경 대신 황푸강(黃浦江) 유람을 하고, 내일 윤봉길 의사의 넋이 어린 홍구공원과, 한국인이면 꼭 들려야 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와 예원 그리고 그 주변 시장을 구경하게 된다.

 지금은 밤이라 검은 황푸강(黃浦江)만 보이지만 상해 푸둥 공항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던 이 강은 누런 황토 빛 물이라서, 그래서 누르 黃(황) 황포강(黃浦江)이라 이름하였나 보다.
황푸강(黃浦江)은 상하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상하이의 한강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이다. '한강에 가서 되져라' 하는 속어가 있듯이 상하이인들이 쓰는 속어에 '跳黃浦(도황포)라는 말이 있다. 황푸강에 뛰어내리다라는 뜻이다. 그런 이들 중에는 남정네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妻菅嚴(공처가)가 많은 곳이 상하이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 낭만적인 선상유람 쿠르즈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국내건 해외건 아름다움이 머문 자리를 찾아나서는 일이다. 그 중 해외여행이란 그 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을 향하는 마음이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유럽이나 중국 같이 유구한 역사 속에 인간이 만들어 낸 유산들도 있지만, 캐나다나 뉴질랜드와 같이 신비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많다. 거기에다가 스위스의 자연처럼 인공미를 더한 아름다움도 있었다.  
그러한 곳을 비행기나 기차나 버스로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교통 기관은 목적지까지 가는 데는 빠르나, 처음이고 마지막이 될 풍광이 한 번 눈앞을 스쳐 가면 그뿐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서운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서서히 미끄러지듯이 파도를 가르며 소리 없이 다가가는 선상 유람이란 것은 언제나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 것 같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산수의 경치를 아울러 즐기게 되는 것이 선상 유람이기 때문이다.
강이나 호수 속의 그 멋진 유람선에 편안히 앉아서, 방금 떠나온 속세를 바라본다는 것은 온종일 산에서 헤매다가 어두음을 밟으며 하산하면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도시의 찬란한 야경을 접하는 기분이다.
지금 나의 눈에는 100만불 짜리라는 홍콩의 야경보다 상해의 야경이 더욱 거대하고 찬란하게 보였다.
황푸강 유람이란 황푸강(黃浦江) 외탄 남쪽 부두에서 창강(長江)과 황푸강(黃浦江) 그리고  바다가 만나는 곳인 우쏭(吳淞)까지 유람선을 타고 갔다가 소위 삼협수(三挾水)라는 것을 보고 돌아오는 코스다. 삼협수(三挾水)란 시가에서 흘러나오는 구정물과, 황포강과 장강의 황토물에다가 바닷물이 합치면서 섞이기 전에 눈으로 보이는 분명한 각각의 세 갈래 물의 모습을 말한다. 지금은 밤늦은 마지막 타임이라 1:30분으로 생략하여 도는 모양이다.
우리는 중국의 맨해튼’이라는 옛날의 조계지였던 외탄(外灘)의 야경을 황포강 선상에서 보고 있다.
세계 건축박물관이라고 하는 상해의 상징이 되는 곳이 외탄(外灘)이다. 상하이를 찾아온 관광객이나 상하이의 연인들이 야경이나 야간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반드시 찾는 곳이 상하이의 명물 외탄(外灘)이고 그 야경을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 황푸강 유람이다.
외탄外灘)은 북쪽으로 외백도교(外白渡橋, 와이 바이뚜 치아오)로부터 남의 금릉동로(金陵東路, 진링동루)까지 거니는 1.5km의 길이라는데 우리는 선상에서 그 외탄(外灘)의 각기 다른 양식인 52개의 건물을 보고 있다.
유람선은 모두 현란한 등불로 그 태를 둘렀는데 저 멀리 보이는 우리나라 LG 간판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유람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세 개의 원형으로 높이 높이 솟아있는 동방명주(東方明珠)였다. 높이 430km, 88층으로 동양 최고요 세계에서는 3번째로 높다는 건물이다.
세 개의 기둥에 아래로부터 둥근 모양의 하구체(何球体), 263m 상구체(上球体) 350m 태공선(太空船)으로 그 위 첨탑의 TV 수신 탑이 구름 속에 가렸다가 홀연히 나타난다.
200원만 주면 저  동방명주탑의 267m의 회전식 뷔페에서 1간에 돌아가는 상해의 야경을 보며 뷔페 식사를 할 수 있다는데, 우리들은 항저우(杭州) 서호(西湖) 유람을 하고  달려와서 늦을세라 이 야경을 보기 위해서 식사도 뒤로 미루고 왔다. 그러니까  오늘은 선상 유람을 하루에 두 번이나 하는 날이다.  
황푸강 가 포동 지구의 대표적인 건물에 이밖에 국제회의중심도 있지만 금무빌딩(金茂大厦)이 있다. 첨탑을 장식한 동양 탑 모양은 현대과학기술과 만난 종합예술 건축물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88층 고층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높이를 자랑하는 빌딩으로 420.5m로 높이만으로는 동방명주보다 약간 낮다.
황푸강 가 포동 지구의 대표적인 건물에 이밖에 국제회의중심도 있지만 금무빌딩(金茂大厦)이 있다. 첨탑을 장식한 동양 탑 모양은 현대과학기술과 만난 종합예술 건축물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88층 고층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높이를 자랑하는 빌딩으로 420.5m로 높이만으로는 동방명주보다 약간 낮다.


 어떤 건물에서는 레이저를 발산하기도 하고, 머리에 금관 모양의 저 찬란한 불빛이 서구에 온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찬란한 마천루의 세계가 외탄의 중심가인가 낮 같은 밤을 연출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국내외 각종 은행 관계 건물들이라고 한다. 이 외탄 일대는 나라에서 저 밝은 야경을 연출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밤 9시까지 불을 켜 놓게 한다고.  
이런 경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으니 이 사람이 정성껏 마련한 다음 그림을 완상 하시라.




 


수천 년간이나 우리를 위에서 군림하여 오던 대국인 중국이란 나라에 와서, 그들보다 더 잘 사는 이웃 나라 한국인으로서 서구 열강들이 조계지(租界地)의 잔재인 상해의 야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유럽이나 캐나다에서나 나일강의 선상유람보다 사뭇 다른 감흥을 주었다.
조계지(租界地)란  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기 위해 중국 정부로부터 일정한 동안에 빌린 상해, 홍콩, 마카오와 같은 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를 말한다.
조계지(租界地)는 치외법권 영역이라서 외국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였는데 이러한 조계지(租界地)는 많을 때는 28개소에 이르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폐지된 제도다.
황포강 가의 황포공원(黃浦公園)은 조계지(租界地) 속에 영국인이 세운 공원이다. 그래서 조계지라서 중국인들은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공원에 쓰인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한다. "狗與華人不進入來(구여 화인 불진입래) 중국인과 개는 황포 공원에 진입하지 말라는 말이다.
상하이에는 16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4천 동 이상이나 되어 시민들의 시야를 콘크리트로 숲으로 하늘까지 가린다고, 푸동 금융지역인 경우에는 과도한 지하수 사용과 새로 들어서는 건물 등의 무게로 매년 지반이 12mm~15mm씩 낮아지고 있다고 개발을 억제하고 있는 모양이다.

*. 루신공원(魯迅公園) /虹口公園, 홍코우공원)에서

상해 중심가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는 루신공원(魯迅公園) 의 옛 이름은 홍구공원(虹口公園)이다.
이 공원 안에 중국인들이 스승으로 숭배하는 루신(魯迅)의 묘와 기념관이 있다. 묘비에는 모택동이 쓴 魯迅先生之墓(노신 선생 지묘)’라는 글씨가 유명하다.
조국이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을 때 루신(魯迅 )은 의학 공부를 하다가 중국 국민성을 개조하는 길은 문학의 힘을 빌어야 한다고 인생행로를 문학의 길로 바꾸었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형식적인 가족 제도의 예교(禮敎)를 폭로하고, 대표작인 ‘阿Q正傳’을 현대 세계문학 수준에 올려놓음으로써 중국인들의 긍지를 높여 중국의 영웅이 된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상해에 오기만 하면 루신공원(魯迅公園)을 찾게 되는데 루신(魯迅) 아닌 우리의 윤봉길 의사를 만나보기 위해서다.  
윤봉길 의사는 중국에 망명하여 한일구국단(韓日求口團)에 가입하였다.
거기서 만난 김구 선생의 지시로 대한 남아의 정기를 세계만방에 고하기로 결심하였다. 드디어 1932년 4월 29일 일본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 날에 일인들이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을 거행하는 곳에 들어가서 폭탄을 투하하여 당시 일본의 전쟁 영웅들이라는 작자들을 죽여 버렸다.
이때  상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와,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라까와 대장이 살해돼고 제3대 사령관, 제9사단장, 주중공사 등에게 중상을 입혀 무력으로 조국을 강제 합방한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을 때 중국인들은 얼마나 고소해 하였을까.
그 현장이 루신공원(魯迅公園)이라 한국인들은 지금도 그 당시 공원 이름대로 '홍구공원(虹口公園)이'라 부른다.
아침의 공원은 노인들에게 입장이 무료라서인지 중국인 특유의 태극권을 중심으로 한 각가지 운동에 열심하고 있었다.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에는 기념석에다가 윤의사의 일대기를 바위에 기록하여 두었고 거기 매원(梅園)기념관(윤의사의 호는 梅軒)을 두어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고 있었다.
2층으로 된 매원 기념관에 들어서면 한국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용한 묵념으로 의사의 충절을 기리게 된다.

윤봉길기념관

윤의사 서한

김구와윤봉길

당시의윤봉길

폭격현장

체포 현장

동아일보기사 
나는 몇 년 전에 대련(大連)에 있는 여순 감옥에 갔을 때 안중근 의사께서 마지막 계셨던 감방을 둘러본 일이 있다. 거기서 일인들이 우리 독립투사와 중국의 애국 투사들을 작은 나무통 속에 담아 생매장하여 죽인 여러 통의 시신을 보고 온 사람이다.
우리의 윤봉길 의사가 거사하고 체포되어 사형 당할 때까지를 헤아려 보니 7개월 20일이었으니 , 그동안 얼마나 인간으로서 참기 어려운 혹독한 고문을 당했을까? 생각 만해도 치가 떨린다.
그때 순국하시던 당시 연세가 겨우 만 24세이셨으니 뒤돌아보면 이렇다 하는 일 없이 고희(古稀)를 앞둔 나의 인생이 안 의사 앞에 서니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 대한민국 임시 청사에서


중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던 자리는 상해의 여기 한 곳뿐이 아니다. 왜놈들의 눈을 피하여 상해, 항주 등 여러 도시로 전전하였는데 우리가 찾아간 곳은 마당로(馬當路, 마땅루)에 있는 3층짜리 벽돌집으로 ‘한국민족 동립운동의 성전’이라는 곳으로 가장 오랫동안  임정(臨政)이 있었던 곳이다.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있었다는 곳이다.
일층에서 당시의 모습을 10여분 동안 동화상으로 관람하고 대부분 임정 요인들의 단체 사진이나 독립군의 사진으로 꾸며진 어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피난살이 모습이었다.
모스크바에 가면 러시아인들은 전승기념관을 짓고, 프랑스인들은 파리에 개선문에서 저들은 전승을 구가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악독한 일제에서 드디어 풀려난 해방의 광복(光復)이나 기념하는 겨레였구나 생각하면 우리들의 과거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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