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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祝靈山) 산행 Photo 에세이

ilman 2007. 2. 11. 11:15

축령산(祝靈山) 산행 Photo 에세이
(2006. 3. 7/경기도가평군상면남양주시수동면/제1주차장-수리바위-정상-절골-임도3거리-제1주차장‘6.0km/고양시 한뫼산악회 ☏031-913-2255)

*. 자연휴양림 축령산

금수강산 Korea에 신령스런 산이 어찌 축령산 하나뿐이겠는가. 그런데 스스로 ‘靈山’(영산)을 자처하면서 거기에 ‘祝’(축)자를 더하여 축령산(祝靈山)이라 하니 어찌 그 유래가 없겠는가. 매표소에 들어서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래담이 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사냥 와서 허탕치고
산신제 지내고야 멧돼지 잡았다 해서
축령산
                 이름으로써            
      
                                   

                                                                                     가평 7경 하나라네

                                                          

산림청의 발표에 의하면 숲이 주는 공익적(公益的)인 가치는 50조원으로 국민 1인당 연간 106만원에 해당하는 이익을 준다고 한다. 대기정화 기능, 수원 함양 기능, 토사 유출 방지 기능, 삼림 휴양 기능 등을 고려하여서란다.  
축령산은 그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자연휴양림으로도 유명하다.
삼림욕(森林浴)이란 치료나 건강을 위해서 숲에서다 온몸을 드러내고 숲의 정기를 쐬는 일을 말한다.
동물은 위험을 느끼게 되면 도망칠 수가 있지만, 식물은 속수무책이다. 식물은 이렇게 아무런 대책이 없단 말인가. 아니다. 식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방향을  뿜어내어 해가 되는 해충의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테르핀(Terpene)이란 향기를 뿜어 식물에게 이로운 곤충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우리가 산에 가서 숲 속에서 느끼는 그윽하고 시원한 향기가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와 테르핀(Terpene)이다. 이 둘은 인간의 몸에는 다 유익한 것이어서 살균, 살충, 진통, 항생, 혈압 강화, 강장, 거담, 이뇨 등의 효과가 있다.
우리가 산을 종합 병원이라고도 말하는 것은 운동적인 면도 있지만 이 두 가지 성분의 삼림욕의 영향이 더 큰 원인이다.
그런데 축령산의 삼림욕 소개가 잘못 되어 있다.

‘삼림욕(森林浴)'이란?으로 써야 할 곳을 ‘산림욕이란?'으로 쓰고 있다.

. 산림욕이란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잘못된 표기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법인데-.

*. 가평 7경 축령 백림(柏林)
 가평군은 84% 가량이 산악 지역으로 농경지는 전체 면적의 9.5에 불과한 곳이다.
그래서 전국 어느 고장보다 정성 들여 산림을 조성하여 놓았다. 그 조림지의 70% 이상이 잣나무여서 전국의 잣 생산의 40%가 가평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가평에서도 잣나무 단지로 유명한 곳이 축령산이라서 가평 7경에 축령백림(祝靈柏林)이 들어간다. 물론 ‘柏’(백) 자는 잣 ‘柏(백) 자이다. 그 잣나무 단지가 총면적 4.358㎢에 이른다.

*. 산의 고장 가평군

 가평은 산간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산이 많다. 동쪽의 북한강 일부를 빼고는 군 전체를 뺑뺑 돌아가며 다 산이다. 경기도의 최고봉인 화악산(華岳山 1,68m), 응봉(鷹峰, 1,436m), 촛대봉(燭臺峰1,125m)이 북에 있고, 나산(628m), 봉미산(856m), 중미산(834m), 축령산(878.5m), 서리산(825m), 청계산 강씨봉(830m), 국망봉(1,168m)이 남양주군과 포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그 유명한 명지산(1,267m)과 매봉(929m) 등이 가평군의 중앙을 가로질러 있다.
옛날 축령산을 올 때는 청량리서 경춘선을 타고 50분 후에 도착하는 마석에 내려서 축령산 행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어렵게 다녀 간 길이었는데 지금은 마석에서 축령산 행 버스가 하루 10회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 수리봉 능선 길

매표소를 막 지나서 있는 제1주차장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갈래 갈림길에 친절한 이정표가 있다.  좌측이 서리산, 우측이 축령산 가는 길로 축령산 정상에서 절고개로 해서 제1주차장으로 내려오면  6km/3시간 30분, 서리산까지 다녀오면   8.7km/5시간 30분의 거리이지만 둘 다 주차장을 향한 원점회귀 산행이다.
 오늘은 3월초,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벌써부터 진달래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고, 우리 동내 호수공원의 수양버들은 하루하루 그 노란 빛을 더해 가고 있다.
나는 선자령과 소백산에서 금년 가는 겨울을 배웅하였고, 오늘은 축령산으로는 봄맞이를 하러 왔다.
그래도 산에 가면 춥겠지 하고 두툼히 입고 온 겨울옷을 등산길에 하나하나 벗다 보니 소매 없는 러닝샤스 차림이 되어버렸다. 오름길은 얼음길이었고 암벽 약수는 하얗게 꽁꽁 얼어 있었지만 그래도 봄바람은 훈풍처럼 시원하기만 하였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통나무 길로 150m밖에 안 왔는데 이 마음 착한 산은 능선을 벌써부터 펼쳐 준다.   수리 능선이었다. 왼쪽은 하얀 눈이 그대로인데 오른쪽으론 수동리의 시원한 전망이 시작된다.
저 산 기슭으로는 산 속 깊숙히까지 올라오고 있는 아스팔트길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산을 둘러 오르내리고 있고  마을 넘어서는 첩첩이 산들이다. 공연히 장난기가 동한다.
"저 산들이 무슨 산인지 아십니까?"
하였더니 일행이 반색을 하며 되묻는다.  나 왈,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세상에는 실없는 말이 더 재미있는 말일 수도 있다. 

축령산은 암산이었다. 행여나 수리바위를 그냥 지나칠까 해서 바위 무리가 보일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으나 그 뒤에 바위가 자꾸 자꾸 계속된다. 로프를 타고 오르는 길도 있고 얼어붙은 위험 구간도 있어서 조심조심하기도 하였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더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오른쪽 허공을 향하여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수리바위였다. 그 수리바위 안내판에 이런 글이 써 있다.

"예부터 축령산은 골이 깊고 산세가 험해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독수리가 많았다고 하며, 이 바위를 멀리서 바라보면 독수리의 두상을 닮았다고 하여 '수리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이 바위틈에 독수리 부부가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 남이(南怡)바위

수리바위에서 950m 수리능선을 오르니 남이바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관리소 안내판은 다음과 같이 남이바위를 소개하고 있었다.

"조선조 명장 남이장군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방 조망이 좋은 이곳 축령산에 자주 올라 지형을 익혔다는 전설의 '남이바위'가 있으며 앉았던 자리가 마치 팔걸이의자와 흡사하다."

축령산에서 가까운 춘성군에 남이섬이 있고 그 섬에 그가 묻혔다고 전해오는 돌무더기가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남이 장군이 어렸을 때 이 근처에 살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남이(南怡) 장군은 어떤 사람인가.
남이의 어머니는 조선 3대왕 태종인 이방원의 넷째 딸 정선공주이니 태종의 외손자다.
17세가 되던 세조 3년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고 대장으로 이시애의 난과 여진을 토벌하는 공으로 26세에 병조판서(현, 국방부장관)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젊은 나이의 출세는 많은 정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궁궐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데 혜성(彗星)이 나타나자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除舊布新象)"라고 말했다. 이를 엿들은 그의 부하 유자광이 남이장군이 역모를 꾀한다고 모함하며 남이 장군의 시(詩)를 증거로 제시하였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가는데 다하였고

頭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 먹이는데 다하였다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가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 어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이 7언 절구에서 원문의 전구(轉句)의 "未'를' 유자광이' 得'으로 고의로 바꾸어 '得國'으로 무고함으로써 국문 끝에 능지처참을 당한 분이 남이장군이다. 능지처참이란 사지(머리, 몸, 손, 발)를 토막토막 쳐서 죽이던 극형이었다. 그때 나이가 28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남이 장군은 갔지만 그가 무술을 연마했다는 남이바위가 남아있고, 그가 호연지기로 지은 시조 3수가 남아 있으니 그분의 시조라도 낭송하여 남이 장군의 넋이라도 기려야겠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도 나오던 시조가 아닌가.

장검(長劍)을 빼여 들고 백두산(白頭山)에 올라보니
일엽제잠(一葉제岑)이 호월(胡越)에 잠겼에라
언제나 남북풍진(南北風塵)을 헤쳐볼까 하노라

적토마(赤兎馬) 살지게 먹여 두만강(頭滿江)에 씻겨 타고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선뜻 빼쳐 둘러메고
장부(丈夫)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시험(試驗)할까 하노라

*. 축령산 정상석

멀리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왼쪽 꼭대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니 저기가 정상 같다. 그 정상 못 미쳐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에서 150m 더 가니 정상이다.
그런데 헬기장 가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환자후송용' 이 글이 함께 한 우리 등산회원을 위한 표지가 되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들었다.
심장마비로 헬기까지 동원된 모양이다. 등산회 채 회장 이 사단법인 고양시입주자대표 회장이라 생각하이 이런 경우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던지-. 지도자는 위기에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드디어 축령산 정상이다. 탁 트인 정상에서 바라보면 빙빙 둘러있는 산들이 눈을 시리게 하한다. 일순간에 애써 땀 흘려 올라온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정상 한 가운데에는 사람 키만한 돌무덤이 있고 그 앞에 까만 오석의 정상석 위에 또 하나의 한자로 음각한 하얀 화강암 이 놓여 있다. 아마도 옛날에 있던 것을 다시 만들고 버리기 아까워서 그 위에 얹어 놓은 것 같다.
태극기는 남양주시와 크낙새산악회, KBS가 함께 협찬하여 6.25 사변에 축령산 산 아래 동내수동면 외방리, 내방리의 반공 희생자 24명의 넋을 기리며 애국, 화합, 전진을 위한 나라 사랑으로 태극기를 게양한 것이라는 설명을 보다 보니 중학교 시절에 6.25를 맞아 공산 치하에서 살던 일, 인천 상륙작전, 9.28 수복 시절이 주마등 같이 흘러왔다가 흘러간다.
축령산을 관할하는 가평군에 감사하고 싶다. 오는 길 내내 위험한 구간마다 밧줄을 설치하여 놓았고, 명소마다 설명은 물론 이정표가 있는 위치는 물론 오고 가는 거리를 상세히 표시하고 있다. 내 젊어서부터 적지 않은 산을 누비고 다녔는데 내가 다닌 어떤 지방산보다 훌륭하였다.
정상에는 그 친절이 모여 있는 듯, 방향 따라 산을 그려 놓고 그 이름을 설명하고 있다.

*. 절고개 하산 길

절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잔디광장으로 해서 2.18km 제1주차장 가는 길이고,  직진하여 2.19km를 가면 서리산 정상인데 이 절고개가 너무 멋지다.
서리산 쪽을 향하여 오른 쪽으로 ‘잣향기 푸른 교실’ 조성사업이 한창이었다. 숲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산림의 자연 생태계를 이해하고 숲에 대한 체험기를 제공하는 자연학습장 조성을 위해서 고산수종인 주목, 구상나무나 유실수, 약용수, 밀원수 등 16종을 8,000여본이나 심은 모양이다.

서리산으로 앞서간 분들도 있으나 정상에서 사고가 있는 모양이어서 뒤에 많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어서 왼쪽 잔디광장 쪽의 하산 길로 들어섰다가 그래도 서리산길로 갈 걸 하고 후회하고 말았다.
절고개에서 720m 내려간 곳에 잔디광장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1.5km는 아스팔트길이었고 모이는 시간 4시를 2시간 저에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절골에서 직진했으면 억새밭이 나올 것이고  그 억새밭 4거리에서 내려오기만 했어도 나무로 만든 멋진 전망대를 보고 거기서 점심 식사를 할 수가 있었는데 하는 후회였다.
잔디광장은 야생초 화원이라지만 지금은 이른 봄이라 시설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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