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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국망봉 산행기

ilman 2007. 2. 11. 11:14

소백산 국망봉 산행기
(2006. 2.16'목'/어의곡매표소'율전마을'-국망봉-초암사/고양시늘푸른산악회 따라 )

 

*. 설산 '소백산' 사진 찍으러 갔는데
  겨울을 배웅하려 소백산을 갑니다. 파란 하늘 배경으로 눈꽃을 촬영하려고 벼르던 편광필터도 마련했고 어제는 밤늦게까지 디카의 배터리를 5개나 충전하여 놓았습니다.  겨울 산 촬영에서는 몇 장 찍으면 다 소모가 되고 마는 배터리가 생명이거든요. 그런데, 이를 어쩌지요. 새벽 5시 30분 일산에서 떠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소백산을 향하다 보니 아날로그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디카의 후레시 카드를 놓고 왔으니요.
꿩 대신 닭이라고, 핸드폰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제 경험으로는 장난감 카메라 역할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오늘 우리들의 소백산 산행 들머리는 해발 500m의 어의곡매표소부터입니다. 오늘은 능선이 시작되는 늦은맥이재에 올라 상월봉 국망봉 초암사로 해서 배점리까지 14km의 강행군을 할 예정입니다.
산악회를 통하여 산행을 하다보면 떠나올 때도 망설이게 되지만 정작 와서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빨리 걷는 것이 자랑이 되는 산꾼들의 세계에서는 거북이 같은 산행 속도로는 남들의 걱정거리가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산에 가고 싶어 따라나서게 되니 이를 어쩐다지요?
80 넘은 할아버지와 그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하시던 말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등산 올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지-.' 하면서 이렇게 계속 따라 다니지요."
그래서 요즈음은 하산하여 뒤풀이를  하는 산악회를 따라 다닌답니다. 그분들이 점심시간은 내가 행동식 하면서 따라잡는 시간이요, 등산을 마치고 주차장 등에서 하산 주나 뒤풀이 하는 시간은 나의 미안함을 덜어주는 여유로운 시간이 되어 주거든요.
  소백산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미쳤냐고 야단입니다. 고희(古稀)의 나이에 겨울 산이라니 말이 되는 이야기냐는 것입니다.
지리를 배웠으면 지리를 알고,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수학을 배웠으면 분수를 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를 지켜주시는 신이 소백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라고, 사진 찍으면서 더 늦어서 남들의 폐가 되지 말라고 카메라 부속품을 놓고 오게 한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올릴 사진은 퍼와도 탈이 나지 않을 분들의 사진들을 골라다 실어야겠습니다.

*. 국어학의 보물 희방사본 '월인석보’(月印釋譜)
소백산은 40여 년 전 나의 꽃다웠던 나이 30대 시절에 아내와 함께 다녀온 산입니다. 그때도 하얀 눈꽃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소백산에 만발한 겨울이었습니다. 희방사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1,383m)을 지나 피라미드 같이 흰눈이 맨 꼭대기에 쌓인 소백산의 최고봉 비로봉(1439m)을 갔을 때 그 벌거벗은 설원에 어찌나 바람이 심하게 불던지-, 정상에서 바라보던 탁 트인 한국의 산하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비로봉은 직접 가서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욱 아름답던 산이더군요. 그때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국망봉을 엄두에도 두지도 못하고, 캄캄한 한 밤중에 초암사에 내려와서 스님이 주는 따뜻한 동지 팥죽을 먹으면서 잠들었던 곳이랍니다.
희방사는 신라 선덕왕 때 두운대사(杜雲大師)가 계림부의 호장 유석의 딸을 호환(虎患)으로부터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유석이 세운 사찰이랍니다.
그래서 은혜를 갚게 되어서 기쁘다 해서 기쁠 '喜', 두운 대사의 참선방의 '方'자를 붙여 '喜方寺'(희방사)라 이름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오는 1,500년이 넘는 고찰입니다.
이 절은 희방폭포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국어학적으로도 유명한 곳이랍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배웠습니다. ‘國之語音 異乎中國’을 한글로 언해한 것이지요. 앞의 글이 희방사본 “월인석보”에 나오는 글입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란 조선 세종의 명을 받아 고승 10명과 김수온 들이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쳐서 펴낸 석가모니의 일대기로 훈민정음 만든 뒤 처음 나온 불경언해입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것이 우리가 배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이고 그 ‘월인석보’(月印釋譜)가 희방사 당우에 보관 되어 와서 희방사본이라 하는데 불행하게도 6, 25사변 때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 국망봉 가는 길 
  어의곡매표소에서는 2코스가 있는데 국망봉(國望峯)은 7.4km요, 비로봉까지는 5.1km입니다. 국망봉을 가는 길은 보통 늦은맥이재를 넘어야 합니다. 6.1km나 되는 먼 거리이지만 2시간 30분밖에 안 걸리는 것은 계곡을 끼고 완만히 오르는 경사길이기 때문입니다.
길은 초암사까지 내내 눈길입니다. 처음에는 여의계곡 위를 건너다가 벌바위골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 따라 가는 길인데 알려지지 않은 등산로인지 온 종일 우리 이외에 아무도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입춘이 보름이나 지났건마는 수운주가 영하를 오르내려서 그런지, 나무 가지마다 하얀 눈이 그림같이 쌓여있습니다. 가지를 건드리면 어디서나 함박눈이 평펑 쏟아지는 그런 길입니다.
큰나무가 길을 막고 있어 엉금엉금 기어 통과해야 하는 길이 몇 군데나 있었구요. 능선이 가까워질수록 럿셀한 발자국에 내발자국을 맞추어야 하는 그런 길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맨 후미의 수런거리는 소리도 놓쳐버린 깊은 산속 길이 계속 되니까 더럭 겁이 나기도 합니다. 혹여 먹이 찾아 나선 배고픈 곰의 먹이로 내가 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끔직한 생각이 나서지요. 

겨울을 배웅하려 소백산에 왔습니다.
가지가지 쌓인 눈 눈, 거북이 걸음걸음.
솜사탕
목을 적시며
국망봉 가는 길.


가는 길은 완만한 오름길이지만 뒤돌아보는 전망도 없어 답답한 길이요, 능선 하나 밟아볼 수 없는 소백산 등산은 무엇보다 체력과의 싸움입니다. 반가운 것은 그래도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뿐이었습니다.

등산양말 속에 한 켤레 더 신은 발이 시려 옵니다. 등산 초입에서 너무 덥다고 벗은 옷을 하나하나 입습니다. 땀에 젖은 등산 스카프를 벗고 모자를 써야 했습니다.
계곡물 소리가 그치고부터는 오름길이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가팔라지는 오름길과 함께 내 숨소리도 더욱 거세어 지는데 윙윙- 바람소리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능선이 보이는가 싶은 곳 아무도 없는 이 산길에서 나는 그만 탈진상태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아이젠 한쪽이 언제 벗겨져 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저는 지쳐있었습니다. 배낭 속에서 핸드폰이 울려대다가 그칩니다. 오늘이 마지막 교정보는 날이라는 잡지사의 전화였습니다.
오늘은 잡지사에 가서 교정보는 날이기도 하지만, 48세로 유명을 달리한 나를 몹시도 따르던 우리 생질의 장례식 날이기도 합니다. 체했다고 소화제로 하루 이틀 버티다가 차츰 몸에 이상이 와서 비로소 병원에 갔더니 폐열증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급히 수술하다가 도중에 유명을 달리한 조카입니다. 지금까지 고생만 하다가 간 우리 큰 누나의 둘째 아들 '이규섭이'가 마지막 가는 날이 오늘입니다. 나보다 21살이나 젊은 나이입니다. '지금도 삼춘! 하고 부르는 소리와 그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를 화장터로 보내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파서, 다른 조카들의 말에 밀려 산을 찾아온 것이었지요. 지금은 1시경이니 화장터의 연기로 바뀌었을 그런 시간입니다. 삼촌의 마음이 이러한데 82세의 우리 큰 누님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아무데도 걸터앉을 수 없는 외길 눈길이라서, 좁은 눈 바닥 길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김밥을 먹다 보니 시장기가 서서히 가시면서 원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능선 길에 들어서서도 한참이나 오름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나무 가지 사이로 전망과 이웃 봉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일망무제로 탁 트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모든 것이 보상 받는 순간입니다. 순간에 펼쳐지는 시원한 전망 앞에 그 심한 바람을 느낄 사이도 없습니다. 내가 오른 길은 늦은맥이재가 아닌 상월봉(1,394m)과 국망봉 사이의 등산지도에도 없는 샛길이었습니다.
서쪽으로 보이는 봉이 상월봉과 신선봉(1,389m)이고 ,서쪽으로 국망봉(1,420,8m), 그 뒤가 비로봉(1,439.5m)입니다. 그 비로봉 뒤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이 보입니다.
또 전화가 울립니다. 저 멀리 국망봉 지나 초암사 내려가는 길에서 우리 '고양늘푸른산악회' 일행이 모여서 나에게 확인 전화를 하는 모양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다시 또 일기 시작합니다.

'산경표'(신경준 저)에서 말하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일부인 태백산- 상월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에서 죽령으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며 제가 서 있습니다. 여기가 산은 물를 가르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우리들의 백두대간 능선입니다.

출처: 똘배/


우리들의 오늘의 목적지 국망봉은 커다란 몇 개의 바위가 모여 된 봉입니다. 정상석이 1,420.8m 높이를 말하며 서 있고 그 옆에 국망봉의 슬픈 지명 담이 나를 숙연하게 합니다.
망국의 아픔으로 베옷에 한을 새겨
경주 바라 통곡하던 마의 태자 넋을 실어
지금도
서라벌 향하여 
                                                       북서풍으로 울고 있나

*. 엉덩이 썰매 하산 길

  초암사로 하산하는 길에. '국방봉0.3 km/비로봉2.8 km/ 초암사 4.1 km'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 옆에 눈에 써 놓은 글이 있습니다.
'일만님, 화이팅!'
일행이 길 안내겸 격려하는 것 같지만 실은 초암사 길이 이곳이라는 앞선 자의 걱정 어린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60도 경사 길이 눈으로 덮였는데 아이젠 한쪽을 잃었으니까요. 스틱 두 개를 가지고 와서 다행이지만 뒤늦게 가는 사람은 앞선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서두르게 하니까요. 이런 경우 체면보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옷아, 젖을 테면 젖어봐라 '하고 엉덩이로 미끄럼을 탑니다. 눈은 방금 온 건설(乾雪)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눈길이라 물기가 가득하여서 금방 속옷까지 적시어 척척해 지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럴 때 앞서간 사람이 나같이 아이젠 한짝만 잃어 주는 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아를 피식 웃게 합니다.
'오늘 이후로 겨울 산이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되는 거다.' 하는 생각이 입가에 맴도는 그런 하산 길입니다.

 일행들은 봉두암 광장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하산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봉두암(鳳頭岩)은 높이 10여 미터가 훨씬 넘는 우뚝 선 바위로 바위 끝에 봉황 같은 물형 바위가 앉아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맛있는 나면을 준비해 왔지만 '아까 먹은 김밥이 행동 식으로 먹은 오늘의 점심이었구나.' 하면서 나도 하산 길을 재촉합니다.
하산 길 우측에 석류암 터가 있다는데 지나쳐 버렸고 그 석류암골은 백운동으로 흘러가는 죽계천이 됩니다.
나의 어려운 하산길이 안쓰러웠던지 산우 정 사장이 아이젠 한쪽을 벗어주는 바람에 초암사까지 7.3m 길을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내려올 수가 있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만난 것 같이 고마웠습니다.
소백산은 봉우리마다 그 기슭에 하나씩의 사찰을 보듬고 있습니다.
비로봉 아래 비로사, 연화봉 아래 희방사, 국망봉 아래 초암사 등이 그것입니다.
초암사(草庵寺)는 신라 때 의상대사가 부석사(浮石寺)를 짓기 전에 이곳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였다는 데서 유래된 절입니다.
4.1km나 되는 지루한 하산 길은 초암사매표소에서 배점리 주차장까지 3.5km나 아스팔트길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나그네를 위해서 초암사에서부터 5리 사이에 제1곡에서부터 9곡까지 이어지는 죽계9곡이 있습니다.

*. 죽계9곡의 아름다운 경치 따라

                                              

복사꽃 흩날리는 풀빛이 고운 때에는
하루 종일 술병 앞에서
녹음이 짙은 그윽한 서당에서
훈풍에 거문고나 타리라
국화와 단풍이 봄 산처럼 수놓고
기러기 날아간 뒤에는
아, 눈빛과 달빛이 함께 비친
그 경치가 어떠합니까
시절 좋은 때에 길게 즐거움 누리시고
아, 사시사철 노닐어 봅시다.
-죽계별곡 5장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을 기억해 보세요. 최초의 경기체가(景幾體歌)가 무어지요? '한림별곡'(翰林別曲)입니다.
근재 안축이 쓴 경기체가(景幾體歌)에는 무엇 무엇이 있지요? '광동별곡'과 '죽계별곡'입니다. 위 글은 '죽계별곡' 5장의 내용을 현대어로 바꾼 것입니다.
근재 안축 선생은 죽계별곡 5장을 썼지만 이곳에는 죽계9곡이 있습니다. 그 이름 하나하나를 퇴계 이 황 선생이 풍기 군수로 왔을 때에 죽계천의 아름다운 9 곳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곳입니다.
1곡은 백운동 취한대, 2곡은 금성반석, 3곡은 배우담, 4곡은 이화동, 5곡은 목욕담, 6곡은 청련동애, 7곡은 용취비폭, 8곡은 금당반석, 9곡은 중봉합류이랍니다.

소백산은 지리산 설악산 다음 세 번째로 큰 국립공원입니다. 한 번 등산으로는 그 변죽도 울릴 수 없는 한국의 명산입니다. 이 겨울이 가고 낮이 긴 여름이 오면 혼자서 카메라를 둘러메고 구인사에서 희방사까지 종주해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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