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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방산(碧芳山) 산행기

ilman 2007. 2. 11. 11:16

 

통영 진산(鎭山) 벽방산(碧芳山) 산행기
(2006. 4. 6'목' 통영시 벽방산/ 안정사 -가섭암-의상암-벽방산-탑- 안정사/고양시 늘 푸른 산악회 따라)

*. 통영시(統營市)와 충무시(忠武市)는 어떻게 다른가

 통영과 충무는 어떻게 다를까?
일제 강점기에는 통영군, 통영읍이라 하다가, 광복 후에는 통영군에서 충무시가 나뉘었다가, 19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을 통합하여 통영시가 된 것이다.
‘통영’(統營)의 어원은 조선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이라서 통영(統營)이라 이름 한 것 같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이 이곳 ‘당황포 한산도해전’에서 왜놈의 수군을 섬멸한 곳이 바로 통영이다. 충무(忠武)란 이름도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통영시는 동쪽이 거제시, 서쪽이 남해시, 남쪽으로 남해, 북쪽으로 고성군과 접하고 있는 한국의 나폴리라 자랑하는 한국의 미항(美港)이다.  젊었을 때 이탈리아 나폴리를 가봤더니 우리 통영보다 아름답지가 않았다. 나포리는 이태리의 통영이고 해야 할 것 같다.

*. 한국의 나폴리 통영
노산 이은상 시인이 노래하던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내 눈에 보이네~♬ ♪ ♩” 그 남쪽 바다인 한려해상 수도를 가장 잘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통영의 진산 벽방산 정상이다. 벽방산(碧芳山)은 작년 고성의 진산(鎭山) 거류산을 찾아갔다가 처음 본 통영의 진산(鎭山)이요 조산(祖山)이다.
푸를 ‘碧’(벽), 꽃다울 ‘芳’(방) 碧芳山(벽방산)이니 ‘碧’(벽)은 소나무도 그렇지만 한려수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 ‘芳’(방)은 4월 중순이면 만발한다는 진달래와 연관된 이름 같다.
 벽방산은 옛날에는 碧鉢山(벽발산)이라 했다. 푸를 ‘碧’(벽), 스님 밥그릇 ‘鉢’(발)이니, 이 산의 모양이 석가의 제자 가섭 존자가 스승인 부처의 밥그릇을 받쳐 들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것이 일제에 의해 본의 아니게 바뀐 이름이 벽방산(碧芳山)이다.
수도권 사람들에게 이 먼 고성 거류면에 있는 벽방산(碧芳山, 650.3m)이란 이름은 생소하겠지만 정상의 전망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한려수도(閑麗水道)도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가까이 보아 아름다운 곳도 있지만, 높이 올라 멀리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산악인의 천혜의 특권이다.
ilman 이 사람이 옹색한 주머니를 투자하여 만나고 온 베트남의 하롱베이, 이탈리아의 나폴리, 시드니 본다이비치, 지중해, 상하이, 뉴욕의 바다도 아름다웠지만, 우리의 다도해나 한려수도(閑麗水道)도 그중에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한려수도(閑麗水道)란 여수시에서 통영의 한산도에 이르는, 해상 경관이 아름답고 어족자원이 풍부하며 이순신의 유적지가 많은 곳을 말한다. 지금 통영에는 동백의 붉은 꽃이 만발하여 있고 비자나무, 치자나무, 유자나무, 춘란, 풍란 등이 꽃망울을 맺고 있다.
당일치기 산행이라서 비록 통영8경을 못 보고 온다 해도 벽방산의 아름다운 8경은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다. 병풍바위처럼 생겼다는 암릉 만리 창벽(萬里蒼壁, 1경), 돌기둥 암봉이 매의 형상이고 건너편 천개산을 꿩의 형상이라서 이름하였다는 2경 옥지 응암(玉池鷹岩), 3경 은봉 성석(隱鳳聖石), 4경 인암 망월(印岩望月), 석가의 제자 가섭암에서의 저녁 종소리라는 5경 가섭 모종(迦葉暮鐘), 1,400년 전 의상이 기도하다가 천공(天功)을 받았다는 칠성 기도처 6경, 의상 선대(義湘禪臺), 계족산[천개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7경 계족 약수(鷄足藥水)도 마셔보고도 싶고, 8경 한산 무송(寒山舞松)으로 봄이 되어 춤을 추는 소나무의 모습도 보고 싶다. 그런데 바닷에 있는 산에 가는 것이니 회(膾) 한 점은 먹고 올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가섭암(迦葉庵) 
 안정사(安精寺)는 하산 길에서 보기로 하고 산행 길에 들어섰더니 주차장서 600m 거리에 신라 29대 무열왕(서기 654년) 때에 원효대사가 지었다는 가섭암(迦葉庵)이 있다.
가섭이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에게 12제자가 있고 그 수제자가 베드로라면, 석가의 십 대 제자 중 수제자로 석가의 사랑을 받던 이가 가섭(迦葉)이다. 인도의 거부의 아들로 비팔라 나무 밑에서 태어나서, 12살에 부모를 잃고 세속에 허무함을 깨닫고 아내와 더불어 출가하여 부처의 제자가 된 분이다. 부처의 제자가 된 8일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에 오른 분이기도 하다. 부처가 열반하시자 부처의 제자 500 나한들을 이끌어가던 영도자가 가섭 존자였다.
우리들은 말 없는 가운데에도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전달되는 경지를 고사성어로 염화미소(염花微笑), 염화시중(염花示衆) , 이심전심(以心傳心) 또는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 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일찍이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제자들과 법화경을 설하던 영산회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는 고사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고려해서 안정사보다 먼저 지었다는 사찰이 가섭암이라 한다.
이 절에서 석양 무렵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벽방산 5경 가섭모종(迦葉暮鐘)이라 하지만 고성(高成)의 인구가 겨우 5만이요, 통영의 인구도 20만을 넘지 못하고 보니 신도가 많겠는가. 그래 그런지 가섭암의 지붕은 무너지고 퇴락하여 썰렁하기만 하다.
절을 뒤로 하고 의상골 따라 오르니 바로 위가 임도였다. 주차장에서 가섭암으로 해서 의상암 밑까지 연결해 주는 아스팔트 길이었다.
그 임도를 무시하고 직진하여 오르다 보니 다시 임도를 만난 곳에 이정표가 있다. 의상암 100m/벽방산 정상 1.1km/안정사 1.3km란 이정표다.
그런데 나무로 된 모든 이정표에 굴수협의 선전문구가 있다. '바다의 우유-굴'.
나도 묻고 싶어 진다. '육지의 굴은 뭐게?'. '육지의 굴- 우유'

*. 의상암 
  의상암은 해발 520m 위치의 축대 위에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 가섭암보다 11년 뒤에 의상대사가 세우고 여기서 기도 중 천공(천공, 하늘의 공양)을 받은 곳으로 암자 좌측에 의상이 참선하던 좌선대가 있다.
그래서 이 암자는 칠성 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칠성이란 '금륜 보계치 성광여래불'로 7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도와주는 부처다. 이 도량에서 기도 정진하면 그 가피력으로 소원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간판이 요란하다.
그래서 문 앞에 '南道第一의 道場"(남도 제일의 도량)이라 하였고 의상암 앞마당의 징검다리 같은 둥근돌이 칠성각으로 곧장 향하고 있나 보다.

*. 벽방산 정상 가는 길
의상암에서 0.2km를 오르니 비로소 사거리 능선이 나타난다. 의상 고개였다.
직진하면 고성의 은월리 가는 길이요, 오른쪽 능선을 타면 의상봉(549m)으로 해서 황리 하는 길이다. 왼쪽 능선 0.7km 거리에 벽방산이 있다.
의상고개 능선을 오르다 보니 연인산에서 보던 엘레지 꽃이 수줍은 듯이 머리를 조아리고 꽃술을 터트리고 있다.


큰 바위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하더니 전망암에서부터 비로소 한려수도의 찬란한 비경이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작년에 이 산의 북쪽에 있는 거류산에 올랐을 때 보던 170여 개의 희미한 섬 섬 섬들과 해안가의 유조탱크 같은 둥근 구조물이 보인다. 저 건너 어디엔가 재작년에 다녀온 대마도가 있다는데 맑은 날인데도 흐릿해서 보이지 않는다.

이 전망 바위에서는 벽방산의 정상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태극기와 이정표 근처에 선착한 우리들의 일행이 보인다.
벽방산 정상은 남해를 향하여 절벽으로 서 있는 커다란 암반이었다. 저기가 병풍바위처럼 생겼다는 암릉 만리 창벽(萬里蒼壁, 1경)인 모양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벽방산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 ♩”

드디어 정상이다. 시야는 사방으로 탁 트여 있었고, 그 가운데에 모나지 않고 멋있는 누르스름한 정상석이 우람하게 서있다. 그 뒤에 음각한 글이 애써 오른 산꾼을 즐겁게 한다. '碧芳山의 精氣가 온 누리에"
정상 옆에서 우리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산이 650.3m로 낮은데다가 주차장에서 2.3km밖에 안 되는 거리 때문에 몇 번이나 함께 하였으면서도 너무 늦게 가는 산행 속도는 오늘 처음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데, 집행부의 여성 임원들이 친누이처럼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준다.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찬란한 한려수도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잡기 위해서다. 카메라 다리를 준비하여왔으면 360도로 잡을 수 있으련만 하는 부질없는 후회와 함께-.


벽방산에서 안정사로 향한 하산 길은 놓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무다리가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부드러운 감촉 또한 그랬다.
두 개의 돌탑을 지난 후부터 벽방산은 지금까지의 육산을 버리고 하산하기 어려운 돌길이 시작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임도가 나타난다. 안정치(安精峙) 고개였다.
일정대로 우측으로라면 천개산(524.5m)이지만, 바닷가 산을 왔으니 어찌 바다를 보며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들지 않겠는가. 그걸 위해 여기 오는 버스에서 약간의 비용을 거출하였는데-.
그래서 천개산 근처에 있다는 계족 약수(鷄足藥水, 벽방산 7경)도 생략하였고, 사기막골로 내려오는 도중에 0.5m 가면 있다는 7m가 넘는다는 은봉암의 은봉 성석(隱鳳聖石, 벽방산 3경)도 생략하였다.

*. 초파일을 준비하는 안정사(安靜寺)

 사기막골을 가로지른 안정사 해탈교를 건너니 안정사로 향한 층계가 멋지다. 그 층계 위의 오른쪽 건물이 만세루(萬歲樓)(경남도 문화자료 제145호)요, 오른쪽이 종루(鐘樓)인데 1층에는 범종(梵鐘)(경남 유형문화 재재 283호)이고 2층에는 법고(法鼓)를 모셨다. 우리나라 범종은 항아리를 거꾸로 한 형태로 아침에는 33번 저녁에는 28번을 쳐서 온 세상과 땅 속까지 부처님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활짝 편 처마가 유난히 아름다운 안정사 대웅전은(경남유형문하재 제80호) 여느 절보다 웅장하고 화려하며 영조 때 중건한 조선 후기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오래된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 석가모니불을 좌우로 모시고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불상들은 고려 공민왕 때 조성하였다는 이 절의 자랑거리다.
절의 곳곳에 전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속에 스님들이 열심인 것은 한 달 후면 다가올 초파일 연등 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 우리들이 남이가?/ 부둣가에서
벽방산 8경처럼 이 아름다운 미항(美港) 통영에도 통영 8 경이 다음과 같다.
1경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2경 통영 운하 야경. 3경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 4경 달아 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5경 제승당 앞바다. 6경 남망산 공원. 7경 사량도 옥녀봉. 8경 연화도 용머리가 그것들이다.

  이들은 바라보는 경치이지만 그보다 더 운치가 있는 것이 어시장에서 남해의 활어를 사다가 맛보는 일이다. 우리는 횟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욱 호기 있게 부둣가에 한 일자로 신문지를 깔아 식탁으로 삼고 아무렇게나 털벅 주저앉아서 술과 회로 오늘 하루를 노래하고 있다.
어느 흥을 아는 산우가 소주 한 박스를 기꺼이 희사하여, 우리들은 어시장에서 떠온 광어, 우럭, 개불, 멍게 등을 안주하여 바다를 회하고 바다를 마시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우리지" 하면서-.


 

 

 

바다보다 큰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푸른 것이 있다.
바다다.

하늘과 바다가 어우른 부둣가에서
우리 모여 축배를 들자.
이 나라
이 겨레
우리로 태어난 것을.

술잔을 높이 들어라 우리여.
하늘에선 그리움을
바다에선 우정을
산에선 천국을 낚자.

바다를 회하며
하늘을 회하며
우리 함께
간(肝)을 회하는 용왕이 되자.
-통영 부둣가에서
2006-04-07
22: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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