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만 산행기 ☎

신비의 섬 울릉도/ 해상 관광 편

ilman 2007. 2. 11. 10:47

 

 
**신비의 섬 울릉도/ 해상 관광 편
일만성철용  2003-06-07 07:14:12, 조회 : 418, 추천 : 0

**신비의 섬 울릉도/ 해상 관광 편
<2003. 5.20~23 한뫼산악회 따라서 유림선 일주, 도동-나리분지 육로 일주, 나리분지-성인봉-봉래폭포-저동 등반>


  산악회 따라온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이라, 유람선 섬 일주는 일정에 없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이곳에 머물러 둘러 보고 싶은 곳 두루 보고 갈까 했지만 배표서부터 걸리는 게 많다.
성인봉 등산은 반드시 해야 하겠기에 마음에 무리를 해서라도 선상유람도 하고 싶어서 배표를 미리 끊었다. 유람선은 늦은 4시에 출발한다 했다.
 점심 식사 후 도동 부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약수공원(藥水公園)을 향한다.
일행과 함께 케이불 카를 타고 망향정
(望鄕亭) 독도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은 생략하더라도 독도박물관이나 향토사료관,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를 겉으로나마 보고 유람선을 타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준비를 위해서 디지털 캠코더에 카매라에 녹음기까지 중장비를 해오지 않았는가.
공원 약간 못미쳐 향나무 상점에 들렀다.1985년에 10월 브렌다 태풍으로 인하여 부러진 향나무의 부분을 전시하여 놓은 것을 보기 위해서다.
이 상점 주인이 2,500만원에 입찰했다는 이 희귀한 향나무는 승천(昇天)하는 용의 형상으로 최근 학계의 조사로는 종전까지 알려졌던 2,500년의 수령을 넘어 5,000년을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이 향나무는 바위 틈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자생하여 온 석향(石香)으로 '천년기념물 제1호'이다.

 우리는 도동항에서 시계바늘 방향으로 2시간 코스의 울릉도 해안선 56.5km의 선상유람을 시작한다.
도동은 울릉도의 관문으로 1977년에 교통선이 접안한 후부터 울릉도의 행정, 경제, 교육, 교통의 중심지로 울릉도의 서울이다.
울릉도는 제주도의 1/25 밖에 안되는 72.5㎢의 좁은 섬인데 986.4m의 높은 성인봉이 솟아 있으니 하나의 섬이라기보다는 산이다. 울릉도는 지금으로부터 460만 년에서 250만 년 전에 수심 2,500∼3,500m의 해저에서 생긴 화산섬이니, 2/3는 바다에 잠기고 그 1/3의 산봉우리만이 울릉도란 이름으로 푸른 바다에 머리를 불쑥 내밀고 있는 거대한 산인 것이다.
제주도와 같이, 용암(鎔巖)이 폭발하지 않고 방패(方牌) 모양으로 가파르지 않게 흘러된 순상화산(楯狀火山)이 아니라, 울릉도는 화산이 폭발하여 종모양을 이룬 종상 화산(鐘狀火山)인 것이다.
그래서 경사분포가 평균 45도여서 '도동'이나 '저동' 같이 근대적인 방파제만 아니었다면 울릉도 북서쪽의 비교적 얕은 현포와 같은 곳이 아니면 도저이 배가 접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왜놈들이 도벌을 막기 위해서 조선말 고종19년인 1883년에 공도정책(空島政策)을 버리고 상륙한 개척민 16호 54명 인구가 살던 곳이 도동 저동 반대 편인 '현포', '천부' 쪽이었다.
이처럼 오각형의 이 섬 가파른 해안은 수수만년 해풍에 침식되어 오늘날과 같은 기기묘묘한 절벽의 미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도동을 떠나기 무섭게 우리와 유람을 같이 하는 것은 갈매기였다. 수년 전 센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유람할 때 줄곧 따라붙던 그러한 갈매기 떼였다. 관광객이 던져 주는 과자나 새우깡을 잽싸게 받아 먹기도 하고 하늘을 향하여 쳐들고 있는 것을 채어가기도 한다.
 '도동'을 떠나 처음 만나게 되는 항구가 '사동(沙洞) 마을'이다. 마을 뒷산이 사슴이 누어있는 것 같다하여 '사동'이라고도 하고, 간만의 차이가 없어서 울릉도에는 없는 옥 같은 모래가 이곳에만 누워 있어서 와옥사(臥玉沙)라 하던 것을 모래 沙(사)만 취하여 '사동(沙洞)'이라 하였다 한다. 이 사동은 천연기념물 제237호인 흑비둘기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울릉도에서 가장 아늑한 항구가 '통구미(通九味)'다. 골짜기가 깊고 좁아 홈통처럼 생겼다 해서 통구미라고도 한다지만 그 앞바다에 거북바위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다.
커다란 바위 위의 거북이가 마을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다 하여 통할 '通(통)', 거북 '龜(구)', 꼬리 '尾(미)'라 하던 것을 일인들이 지금처럼 '통구미(通九味)'라 고쳤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 없는 바위 틈에서 자란다는 통구미의 '석향 향나무 자생지'를 지나니 울릉도에서는 가장 따뜻하다는 '남양포구'가 다가온다.
옛날 우산국의 중심지로 우해왕의 슬픈 전설이

사자바위,

투구바위로 남아 있는 곳이다.
우해왕은 대마도의 풍미인(豊美人)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 미색에 푹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자주 당시 신라의 땅인 뭍에 나가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때가 신라 지증왕 때였다.

이사부 왕명으로 우산국(于山國)을 치러오니
우해왕 두려워하여 투구 벗고 항복했네
트로이
전쟁의 목마가
여기서는 목사자(木獅子)네

이 우산국 우해왕의 전설은 다음의 '비파산(琵琶山)'으로도 이어진다.
우해왕의 사랑하는 왕비 풍미인(豊美人)이 죽자 100일 기도를 드릴 때 12선녀를 시키어 비파를 치며 애도하였다는 곳이 '비파산'이다. 그 바위 모양이 국수가락처럼 수직으로 죽죽 늘어져 있어서 '국수산'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해안가 언덕에 우뚝 서서 바다를 향하고 있는 곰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곰바위가 되었다 해서 '망부석(望夫石)'이라고 부르는 바위다.
 울릉도 해안은 현무암으로 암석이 평탄하게 쪼개지는 절리(節理)로 되어있어서 해식 작용으로 해안에는 크고 작은 굴들이 많았다.
'구암(龜岩) 마을'은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는 곳인데 저기 해안 절벽 위에 공터가 있고 거기가 바로 강릉에서 헬기를 타고 오가는 헬기장이다.
저 핼기는 정원 십오륙명이 타야 운항할 수 있다니, 우리네 같은 서민은 복권이나 당첨되어야 강릉에서 바다를 구름 같이 건너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울릉도를 꿈 꿔볼 수 있겠구나.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또는 그 위치에 따라서 갖가지로 그 모양을 달리한다는 '만물상萬物相)'을 지나니 울릉도의 대표적인 전설이 살아있는 '태하 마을'이 다가온다. '태하'는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 조 세종 때 만호 남호 장군이 순회사로 울릉도 순찰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날 꿈에 백발의 해신(海神)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일행 중 동남동녀(童男童女)한 사람씩 이 섬에 두고 떠나거라' 하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음날 떠나려 하였더니 풍랑이 일어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 간밤의 꿈을 생각하고, 동남동녀에게 '태하리'에 가서 두고온 내 담뱃대를 가져오너라 명하였다. 동남동녀가 간 사이 급히 배를 띄우니 신기하게도 풍랑이 멎어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몇년 후에 순회사가 다시 태하리에 와서 보니 두 남녀가 꼭 껴안고 죽은 백골이 되어 있었다. 이에 그들의 넋을 달래주기 위하여 사당을 지어놓고 '상하신당(聖霞神堂:성황당)'에 동남동녀를 모시어 두었다. 지금도 정월 보름과 매년 삼짓날과 풍년과 해상의 안전과 무사를 비는 풍습이 되었다.
그래서 이 태하 신당에 모신 신은 하얀 수염의 신이 아니라 새파랗게 젊은 남녀 둘이다.
 옛날 범선들이 태풍을 피하였다는 대풍리를 지나니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송곳 '錐(추)',봉우리 '峯(봉)' '추산(錐山)'이다. 봉우리 전체가 바위인데 자세히 보면 정상 안부에 구멍이 몇 개 '펑-' 뚫려있다.
신기하게도 그 앞 바다에 떠있는 바위섬에도 큰 구멍이 뚫려있다. 그래서 구멍 '孔(공)' 바위 '岩(암)' 孔岩(공암)이라고 한다.
구멍으로 보지 말고, 전체적 모양으로 보면 푸른 바다에 떠서 코로 맑은 바닷물을 마시고 있는 코끼리 같다. 그래서 '공암(孔岩)'을 '코끼리바위'라고도 한다.
코끼리바위를 가까이 가서 보면 바위 하나 하나가 시골집에 장작을 쌓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코끼리의 거친 피부 같기도 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여기서는 달리던 배도 멈추어 관광객을 카매라 앞에 세워 여기 온 것을 기념하게 한다.
추산(錐山)에는 이 섬 전체의 전기를 공급하던 국내 유일의 지하수로 발전하는 추산 수력발전소가 있다. 성인봉에 내리는 비나 눈이 땅속에 스며들었다가 용출수(湧出水)가 되어 지하에서 솟아나는 것을 가두어 두었다가 이것을 148m로 다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한 것이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솟아나는 낙동강의 근원인 용출수처럼. 봉래폭포를 이루는 용출수처럼 이런 용출수는 울릉도에는 여러곳에 더 있다. 울릉도가 유명한 관광지가 된 오늘날에는 전력 수요가 늘어 저동에서 내연발전(內燃發電)도 하고 있고, 태하령 고갯길에서 본 것처럼 풍력발전도(風力發電)하고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은 물론 전기도 풍부한 울릉도가 되었다.
 추산, 천부를 지나니 110m의 거대한 기암괴석 바위가 바다 속에 우뚝 서 있는데 배로 가까이 가면서 보니 형제 같은 바위가 둘이다.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바위 하나가 더 있으니 '일선암(一仙岩)'이다.

천상에서 세 선녀가 이곳에 멱 감으러 이곳에 내려와서 놀다가 이곳 경치에 팔려 늦장부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이렇게 바위로 변해 버렸다는 전설이 깃든 울릉도 해상 비경 중에도 으뜸으로 치는 삼선암(三仙岩)이었다. 삼선암 중 일선암은 막내 선녀로서 언니들에게 좀더 놀러 가자고 졸라 대는 바람에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을 어겼다고 이 바위에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다.
이 일선암을 자세히 보면 끝이 가위처럼 벌어져 있어 '가위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와 배가 지나가는 흰 포말 위에 갈매기의 날개 위에도 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13년 전 이곳에 찾아와서 그 비경에 놀란 이 사람을 한국의 자연을 노래하고 다니는 시인과 수필가의 길로 인도하여 준 잊지 못할 울릉도의 선경 위에-.
  울릉도 본섬과 연결된 끝 부분이 사람의 목처럼 잘룩하다 하여 '섬목'이라고 부르는 섬목 선착장 앞 100m되는 곳에, 죽도(竹島)다음으로 큰섬 '관음도(觀音島)'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깍새섬'이라고도 부른다.
어느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풍랑을 만나 관음도에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식량이 없어서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였다. 불 지펴놓았더니 깍새가 날아와서 그 새를 잡아먹고 살아나서 그후 개척민들이 깍새를 잡아 허기를 면하였다 하여 이 섬을 깍새섬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이 섬의 절벽에는 파도 침식으로 형성된 해식 큰 동굴이 두 개나 있다.
옛날 해적의 본거지였다고 하는 관음 쌍굴이라고 하는 이 굴은 크기가 높이 14m로 유람선이 들어갈 정도다. 용암으로 이루어진 굴 내부에는 석주와 절벽 천정의 기암들을 보면 울릉도를 다시 한번 찾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고 한다.


울릉도에서 제일 큰 섬이 대섬이라는 '죽도(竹島)'다. 사면이 72m의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려 싸여 있는 천연의 요새다. 그중에 소라형으로 빙빙 돌아 오르는 나사 같은 길이 하나뿐이다.
 섬 위는 평평하고 비옥하여 옥수수, 감자, 더덕, 산나물이 자라고 있다. 소는 송아지 때 엎혀와서 올라와서 죽어서야 내려올 수 있다지만 이 소들은 비옥한이 섬에서 자라는 섬바디(돼지풀) 같은 약초와 산나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그맛이 일품이라서 죽도의 소를 특히 '약소'라고 부르고 있다.
지상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섬에는 불행하게도 샘이 없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천수)를 받아 서 정수시설을 거쳐 지하에 저장하여 사용한다. 지금은 한 가구가 살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시설을 더 넓혀 관광 농원으로 가꾸어 관광객을 유치할 모양이다.
죽도에는 전망대가 있어 여기 오르면 울릉도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바다 속에 떠 있는 '삼선암'과 '공암' 등에 어울린 울릉도 북면의 경치에 넋을 잃게 된다고 한다.

  드디어 유람선의 마지막 기착지 도동항 직전의 저동항(苧洞港)이다. 도동보다 먼저 1980년 4월에 완공된 어업전진기지 저동항이다. 30톤급 어선 1,000여 척이 접안할 수 있는 곳으로 촛대바위 너머 수평선 위로 붉은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귀항하는 오징어 잡이배로 아침이 열린다는 저동항이다.
전에 와서 저 촛대 바위와 북저 바위(저동의 북쪽에 있는 바위)가 바라보이는 언덕 달동네서 자고 그 좁은 마당에서 일출을 보던 생각이 난다. 저동에서는 방파제에 밑둥이 가려서 보이더니 바다에서 보니 아름다움이 더하다. 저 방파제 하나 쌓는데만도 13년 걸려 14만명이 90억원을 들여 80년에 준공한 것이니 이것만 봐도 울릉도의 바다 깊이가 어떠한지를 알만하다.
1990년 5월 11일 성인봉을 혼자 오르다가 하두 더워서 관모봉에서 위통을 벗었다가 아예 아래까지 홀랑 벗고 동해 맑은 바람에 풍욕(風浴)하다가 만난 진해의 이상태 사장은 지금도 건강히 살아 산을 해메고 계신지?
진해여좌동808번지로 우리 아내와 함께 쳐들어 가기로 포항에서 물회를 먹으며 약속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 터인데. 그때 성인봉에서 찍어 준 사진의 나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서재에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까지 내 안에서 깊게 잠자던 나의 시심(詩心)을 일깨워 준 고마운 나보다 3살 위의 그 이상태(李相泰 당시 전화055-546-2937/9024) 사장이 그때 이런 시조 내게 한 수를 보내왔는데-.

성인봉 가는 길에 용두봉(龍頭峰)을 만났으니
은용(隱龍)이 경악하여 등천을 못하였네
등천을 못하였으면 어떠랴. 이곳이 천국인데!

울릉도는 동해에 있는 유일의 가장 큰 섬으로 교통이 불편하여 범접하기 어려운 섬이다.
예날에는 맑은 날 범선으로 2일이 걸리던 것을 1963년부터 포항에서 10 시간으로 단축되었더니 1980년도에 와서는 강원도 임원에서 3시간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쾌속선들이 포항217km를 씨플라워호가, 후포150km를 오선플라워호가, 동해161km를 카타마란호가 3시간 내로 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울릉도는 강수량이 150mm로 한국에서 제일 많으며 365일 중 맑은 날이 50일뿐이다. 겨울 3개월 동안은 평균 60여일에 걸쳐 눈이 온다.
그래서 아무리 뱀과 도둑과 거지가 없는 3무(三無), 물과 향나무와 오징어가 풍부한 3풍(三豊), 산이 높고 파도가 높고 물가가 높은 삼고(三高)의 신비의 섬이라 해도 아무나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 울릉도다. 그 울릉도를 두 번씩이나 보고 가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구나.


▣ 노을 - 3무 3풍 3고...신비의섬 울릉도!..님의 기행에 취해서 오늘 울릉도 발걸음 ...고맙습니다. 건강과행복이 가득하시길...........
▣ 청파:윤도균 - 일만 선생님 노익장을 여지없이 과시하시는 선생님의 도전정신에 늘 부러움과 안녕을 빌어드립니다 헌데 선생님 글과 그림을 감상을 하다보면 약간은 편집의 묘를 살리시면 훨씬 더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리라 생각을 하며 감히 충언을 한말씀 주문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글 다음 그림을 넣으실때 앤터를 한칸이나 두칸정도 하시면 글과 그림이 안정감있게 간격을 유지하는 묘를 살리실수가 있는데 선생님의 산행기 작품에 옥에 티라면 글과 그림이 너무 답답한 생각이 들 정도로 붙어 있다는것 입니다 그것을 유념하시어 편집을 하시면 하는 건의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감히 선생님께...알고도 안하셨다면 용서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