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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泔嶽山) 산행기/적성(積城)

ilman 2007. 2. 11. 10:48

 

감악산(泔嶽山) 산행기/적성(積城)
일만성철용  2003-07-24 19:32:49, 조회 : 670, 추천 : 0


감악산(泔嶽山)  산행기
<2003. 7.23 / 감악산(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범륜사 입구 - 범륜사 - 숯가마터 - 만남의숲 - 임꺽정봉 -안부 - 정상 -까치봉- 만남의 숲- 범륜사>

*. 지명 유래/ 적성 가는 길

그래 경의선으로 문산까지(1,200원할인 600원) 가는 거다. 문산에서 적성 가는 버스(1,450원)를 타고 가서 다시 버스로 감악산 입구(700원)에서 내리는 거다.
장마비가 잠시 북상하였다는 뉴스를 듣고 부랴부랴 준비 없이 떠나는 산행길이라서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였다.
1시간 간격으로 서울역을 출발하는 경의선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와서 40분 넘게 대곡역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했고, 적성 가서 또 92번 버스를 하릴없이 기다리느라 오후 1시가 넘어서야 감악산 법륜사(法輪寺) 입구에 도착하였다.
여행은 기차 여행과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제멋이다. 함께 가는 것보다도 홀로 떠날 때 그 멋은 배(倍)가 된다. 새로운 곳을 만나려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혼자라야 그 고장을 찾아가는 사람이나 그 고장 사람들과 가까이 만나 우리가 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길을 살아가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만나는 사람과 주고받는 이 얘기 저 얘기는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일행과 함께 가서는 만나기 어려운 순수한 우리가 되어 서로를 열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분들에게 대화의 시작을 열게 하여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나의 경우 보온 통에 준비해간 커피다. 멋을 알고자 하는 이 있다면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서울에서 적성 감악산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지명 유래담을 둘려 주고 싶다.

경의선에서 중요한 역 중에 고양시(高陽市) 일산 역이 있다. 왜 고양시라 했을까?
고양시는 크게 일산구와 덕양구로 나눌 수가 있다. 구일산에서 제일 큰산이 고봉산(高峰山)이고, 덕양구 제일 큰산이 덕양산(德陽山)이다. 이 고봉산의 '高(고)'를 따고 덕양산의' 陽(양)'을 따서 고양시(高陽市)라 한 것이다. 이조 태종 때부터였다. 덕양산은 어디에 있는 산인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산을 말한다.

일산에서 세 정거장을 더 가서 있는 금촌(金村)은 왜 금촌이라 했을까?
한일합방(韓日合邦)이 될 무렵인 광무 9년인 1905년 11월5일 경의선(京義線, 499km)이 개통되던 당시였다.
일인들이 지금의 금촌 역(驛)을 지으면서 역명(驛名)을 정하고자 역 건너편인 지금의 팜스프링 아파트 근처에 있던 40여 호가 살고 있는 새마을(新村洞)에 가서 바둑을 두고 있던 노인들에게 이 부락 명을 물었다. 노인들이 '새말이요.'라는 말을 듣고 돌아가서 금촌(金村)이라 역 이름을 정하였다. 한국어에 서투른 일인들이 '새(新)'를'쇠(金)'로 잘못 알고 쇠 '金(금)', 마을 '村(촌)' 금촌(金村)이라고 한 것이다.

경원선 열차가 원릉역에서 서면 거기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타고 동쪽으로 5분 거리에 1,5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형목욕탕 금강랜드랜드가 있다.
지하 1,020m의 암반에서 게르마늄물을 이용한 욕탕으로 피부에 아주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소금탕, 황토탕, 비취탕, 야외탕 등 각종 탕만도 무려 10여개인데 무엇보다도 물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자가용으로 간 사람들에게는 게르마늄물을 식수로 두 통까지 가져 가도록 하여, 먼 서울에서 생수와 목욕을 위해서 찾아 오는데, 평일은 9시까지 요금의 반인 3,000원씩을 받고 있다.

문산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적성을 가다보면 파평을 지나가게 된다. 그 파평은 세조대왕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의 고향이다. 왕비는 파평 윤씨 윤번의 딸이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으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의 고향 파평을 승격시키고 싶어서 종래의 도호부(都護府)를 목(牧)으로 승격시키고 파평(坡平) 윤씨의 '坡(파)' 자에다가 고을 '州'(주) 자를 더하여 파주(坡州)라고 고쳐부르게 하였다.

*. 감악산(紺嶽山) 법륜사
 감색 '紺(감'), 큰 산 '嶽(악)' '감악산(紺嶽山)'은 감색 색깔의 바위가 많은 큰산이란 뜻이다.
감악산은 옛날에 송악(松岳), 감악(紺岳), 운악(雲岳), 북악(北岳), 관악(冠岳) 경기 오악(五嶽) 중에 하나였다.
일찍이 고려 때 예천 임씨의 시조이며 우리 국문학에서 유명한 가전체인 '공방전', '국순전'을 지은 서하 임춘(林椿)은 감악산을 칠언절구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造物小兒眞好弄(조물소아진호롱)
博沙戱作千峯象(박사희작천봉상)
玆山首尾羌數州(자산수미강수주)
天外廻翔如舞鳳(천외회상여무봉)
                                             -  임춘

조물주도 아이처럼 장난을 좋아했는가
고을 위 저 산봉우리를 모래로 만들었네
그 모습
빙빙 하늘을 나는
봉황 춤과 같구나
                                                   -ilman 시조역


영국군 전적지를 지나서 법륜사 입구(표고130m)에서 내려서 조금 올라가니
절이 보이고 거기 하얀 백옥 관음불상이 보통 차(車)로는 가기 힘든 가파른 길을 오르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옛날에 감악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4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모두 소실된 것을 1970년에 운계사 터에다가 재창건한 사찰이 법륜사(法輪寺)다.
운계폭포 위에 있는 높이 7m의 백옥석 관음상은 한중친선교류로, 중국 하북성 아미산에서 7개월에 걸쳐 만들어 들여온 한국에서는 유일의 백옥석 불상이다.
  해탈교(解脫橋)를 지나 물을 뜨러 샘가에 갔더니 범유각(梵乳閣)이라 이름한 수각(水閣)을 지어 놓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

'93년 가을 어느날 새끼 밴 흑염소 3마리와 수컷 1마리가 법륜사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거기서 고시 준비하던 수험준비생들이 흑염소들의 우리를 지어 주고 길러주었더니 1년 5개월만에 38마리로 늘어났다.
목축업 하는 분이 있어 이를 보고 염소을 인수해 가면서 남기고 간 시주 300만원으로 이렇게 수각(水閣)을 지어 불유각(佛乳閣)이라 한 것이다. 그래서 수각 이름에 젖 乳(유) 자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물을 담는 네모 석함에 동서남북으로 음각한 글 또한 멋을 넘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동(東)은 무어라 썼는지 잊었고, 西方淨刹世界(서방정찰세계), 南方歡喜世界(남방환희세계), 北方無憂世界 (북방무우세계)라든지, 취할 것도 없고(取之無), 쓸 것도 없다(用之無)는 글이 그러하였다.

운계사 3층 석탑이라는 탑을 앞에 두고 특이하게도 아랫층은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이요, 2층이 대웅전(大雄殿)이다. 일층에서부터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를 연상하게 하는 멋진 다리 층계가 오르고 있다.
박진환 시인이 있어 이 절에 이런 시를 남기고 갔다. 그분은 나와 함께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 동인으로 활동을 하는 박사님이시다.


감악산 산자락 말아
감아 또아리 튼
절터는 명당인데
사세(寺勢)는 초라하다.

발원(發源)을 알 수 없는
달디단 감로수 한 잔
목축여 숨고르자
절로 모아지는 합장인데

때맞춰 누렇게 울리는
저녁 늦은 종소리에
감악산 철든 단풍
순금으로 금박된다.


*. 임꺽정봉으로 가는 정상 길
  절 앞 부도 옆 '명상의 숲'을 지나면서부터는 돌길이 시작된다. 유난히 잦았던 요번 장마 비로 돌 사이 흙이 씻겨 내려서 가뜩이나 험한 돌길이 옛날 찾았을 때보다 더욱 팍팍한 오름 길이 되었지만 무성한 숲이 하늘을 가려 한 여름 시원한 그늘을 숲의 터널로 덮어 주고 있다.
한강 잠수교가 잠길 정도로 밤 비 내린 직후라 계곡 물소리는 요란한데 도중 도중 물길이 갈 길을 막기도 하고 길이 그대로 계곡이 되기도 하여 발길을 멈추곤 하였다.
계곡물은 작은 폭포가 되기도 하고 하얀 포말로 바위를 미끌어 흘러내리고 있다.

'숯 가마터' 쉼터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아내가 정성껏 싸주던 감자는 문산 오는 기차에서 친구 만나러 간다는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었고, 지금은 컵 라면을 먹고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좀 부족한 듯하여 비상식으로 항상 준비해 가지고 다니던 미시가루를 남은 국물에 말아먹으니 비로소 먹은 듯 싶다.
  나를 아끼는 친구들은 내 나이를 들어 적극 단독 산행을 말리지만 누구와 함께보다도 혼자가 좋다.
평일에 인적이 드문 산길을 아무런 제약 없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어 혼자 오른다는 것은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대로 준비는 철저히 하고 다닌다. 지도, 나침반, 핸드폰, 지팡이, 판초, 호루라기, 해드 랜턴, 비상식 등에다가 언제나 천천히-다.
50년 이상 운전으로 늙은 기사 할아버지에게 방송기자가 안전 운행이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 대답이 이러 하였다. '규정 속도를 지키는 서행이지요.'
요란한 안골 계곡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막던 숲이 확 티어 푸른 하늘이 보이는 곳이 바로 묵은 밭인데, 잡초의 밭으로 누런 흙이란 한톨도 보이지 않는 잡초만이 비온 뒤끝이라서 싱싱하게 무성하다.

'만남의 숲'은 갈림길로 드디어 본격적인 등산길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왼쪽으로 가면 까치봉으로 가는 1.050km의 능선길이요, 직진하면 감악 약수로 해서 정상에 이르는 길이요, 우측으로 가면 임꺽정봉으로 해서 정상을 가는 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이 등산의 정석(定石)이라서 우측 임꺽정길을 택하였더니 계곡 물소리가 차차 멀어지면서 그냥 오름길만 계속되는 멋없는 길이었다.
시원하게 조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을 지나니 안부가 있고 위험한 돌길이 시작된다.
이정표도 없고 리본의 다소(多小)로써 짐작하여 갈 수밖에 없는 절벽을 접한 능선 길인데 6.25의 격전지임을 말해 주듯이 참호
(塹壕), 교통호가 옛날 고생하던 군대 시절을 생각게 한다.
이 고장을 적성(積城)이라고 하는 것은 쌓을 積(적). 성 城(성) 쌓은 성이 많다는 뜻이다. 임진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삼국시대 국경지대의 요충지라 나당 연합군과 고구려 군과의 격전이 있었던 곳이며, 파주 장단 연천 등과 이어지는 당시로서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이다.
임꺽정봉 가는 길은 사람 하나 만나 볼 수 없는 외진 길이었다.
드디어 능선길에 들어서니 길이 두 갈래로 나 있는 곳이 여럿인데 이정표는 없이 양쪽으로 리본만 있어 어느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곳이 많았다.
  미끄러운 돌길을 오르고 보면 천길 낭떠러지가 오금을 떨게 하는데 아무리 봐도 앞에 리본 하나도 보이지 않아 되내려 오기도 했다. 분명히 사람의 흔적은 보이는데 낙엽 깔린 길이 몇 갈래가 있어 어느 쪽이 내가 가야할 길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비에 젖은 낙엽 길은 구별이 더욱 어려웠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아 대충 동쪽에 있는 감악산 정상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분명 거북바위이련만 안내 설명을 찾을 길이 없었고,
조망 위치에 고인돌 모양의 멋있는 저 모습도 답답하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고릴라 바위'라는 표시는 있는데 바위는 보이지 않으니 내가 달걀귀신에게 씌운 것이나 아닌가 하였다.
집을 나설 때 비온 후 물이 많이 불은 송추폭포를 보러 간다고 하다가 발길을 돌려서 온 길이라서, 감악산 지도는 준비하지 못하였다.
더럭 겁이 나서 포기하고 큰길 찾아 그냥 내려가야지- 했더니, 반가운 이정표가 있다. 정상 150m 아래에 있는 감악산 약수터에서 올라오는 그 안부인 것이다. 이젠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들어보니 임꺽정봉 근처 위험한 바위 지대를 나 홀로 헤매였던 것이다.
드디어 해발 675m의 정상인 헬리콥타장이다. 수많은 세월 속에 글자 한 자 없이 다 지워진 비가 군 초소 옆에 의젓이 서 있다. 나는 10여 년 전에 감악산을 처음 올라와서 마주친 이 옛 비를 본 감격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가버리는 여름 우는 쓰르라미 등산길
너덜겅 끝나는 곳에 비로소 열린 하늘
뜻밖에
빗돌대왕비가
손짓하며 마주선다.
                                      -감악산

  이 설인귀 비를, 어느 사람은 이 고장 출신의 장사의 비라고도 하고, 당나라 장수 비라고도 하고, 한국 무속이 받드는 신령을 기리는 비라고도 하고, 진흥왕 순수비라고도 하는 이 사적비의 단은 높이 170cm, 두께 19cm의 화강암으로 되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을 재산도 없는 사람 같다 하지 않던가. 오랜 세월이 글자 한 자 남기지 않고 마모되어 추측만이 무성한 이 비석 앞에서니 신비감마저 감돈다.
전망은 사방으로 확 트였는데 저 산봉우리에 하얀 마리아의 석상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일까. 강원도 원주 쪽에 있는 감악산은 천주교 성지던데 여기도 그와 연관이 되는가.
내려가는 길은 여기서 450m에 있다는 까치봉(해발 530m) 코스를 택하기로 하였다. 이 코스는 사방을 전망할 수 있는 능선길이었다. 까치봉에서 아까 올라온 법륜사까지는 1,550m의 코스였다.
운무로 가리웠던 하늘이, 그 사이로 우리가 내려가서 살아가야 할 세상의 모습을 열고 있는 늦은 6시 경이었다.


▣ 1100山 김정길 - 함자만 들어오던 존경하는 일만 선생님께 처음으로 인사 올립니다. 만수무강 하시면서 자식 손주같은 후진들에게 힘이 드시겠지만, 실망스러울 때 많으시겠지만,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옵니다. 안산 김절길 올림.

▣ 이현우 - 마리아 석상은 25사단 군종이 사단장에게 건의하여 최근에 군부대에서 설치 한것입니다.
*일만:이현우님, 가르쳐 주시어 감사합니다. 본문에 첨가하게 하여주시어.
                                                          2023. 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