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성철용 |
2003-07-02 07:20:33, 조회 : 1,198, 추천 : 10 |
*. 전등사 旅情/ 정족산(鼎足山) 짓궂은 장마 비 그치더니 찬란한 새파란 하늘이 열려있다. 이렇게 청명한 하루를 어떻게 집에서 낭비할까 해서 '내 고장 강화 6월은 밴댕이 한 철인 시절~' 하면서 강화를 향하였다. 마니산을 오르며 언제 한 번 가야지 하고 별러오던 정족산 (鼎足山) 을 가기 위해서다. 산과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곳이 강화도이고, 요즈음은 오뉴월이라.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 회가 한철이기 때문이다. 비 그친 새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고 온 우리 산하 북쪽 하늘로 환상적인 세계를 열고 있었다. 밴댕이는 강화 인천 등지 모래 바닥에서 잡히는 몸길이 15cm 정도의 자연산 고기다. 탕(蕩)과 구이나 젓갈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회로 먹으면 그 맛이 썩어도 준치라는 것보다 낫다지만 냉동으로 먹어서는 안되고 속살이 하얀 때인 1 2 시간 이내에 먹어야 한다. 속살이 붉게 되면 젓갈 감이나 된다는 것이 밴댕이 회다. 옛날에는 횟집에서 횟감의 서비스용으로 나오다가 이제 밴댕이 회는 강화 특산물이 되었으니 밴댕이 입장으로 보면 행복인가 불행인가. 밴댕이의 산란기는 4월부터 오뉴월 경이다. 이때가 가장 기름기가 많고 맛이 좋다. 몰려오는 밴댕이를 강화의 어부들은 발(簾)을 설치하여 잡아서, 옛날에는 나라님 수라 상에도 진상하던 물고기이다. 성질이 너무 급하여 물 밖에 나오면 곧바로 죽고야 말아서 밴댕이를 잡는 어부들마저 살아있는 밴댕이를 본 사람이 없다 할 정도다. 그래서 쉽게 토라지는 사람들을 빗대어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는 전등사가 아니라 정족산(鼎足山)이라서 등산 책을 찾아보았더니 어럽쇼, 정족산 (鼎足山) 은 경남 양산시에 있는 700m의 산이 아닌가. 강화의 정족산은 산꾼에게는 허망하게도 113m밖에 안 되는 전등사로 해서 겨우 이름을 얻은 야산이다. 속리산의 문장대, 문수봉, 비로봉, 입석대, 천황봉들이 법주사를 빙-둘러 있는 것처럼, 전등사를 정족산 세 봉우리가 빙- 둘러 있는 것이 솥 '鼎'(정) 다리 '足'(족) 정족산(鼎足山)이라 하게 된 것이다. 그 솥을 뒤집어 놓은 세 개의 발이 바로 정족산 세 봉우리다. 버스 편을 이용하였는지라 전등사 동문(東門)쪽으로 오르고 있다. 접시꽃이 비온 뒤 싱싱한 녹음 사이사이 피어 있었다. 길가에 할머니들이 버찌보다는 크고 선명하게 붉은 열매를 팔고 있다. 음력 5월쯤이면 이렇게 익는다는 '뽀구스'라는 열매인데 맛이 시고 씨가 컸다. 술을 담으면 그 신맛과 붉은 색깔이 어울려 멋진 가양주(家釀酒)가 된다고 한다. 동문 들어서자마자 정족산 길 우측으로 성터를 끼고 오르고 있다. 누가 전등산 와서 처음부터 성터를 끼고 오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 내가 있다. 절보다 산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빗겨 가는 것이 멋일 때가 있어서다. 저 하늘처럼 새파랗게 젊던 가난한 시절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낭만은 얼마나 그리운 멋이던가. 건강을 위하여 산에 오르는 경지를 벗어나고 보면 산에 오르는 이 유는 따로 있는 법이다. 그것은 산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산에 가면 알 것 같다 왜 내가 산에 오르는가 정상에 서면 알 것 같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산에게 배우고 싶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산에 가면 몽고 군에게 쫓겨 39년 동안이나 고려의 서울이었던 슬픈 역사를 뒤 돌아보게 하는 정족산성을 오른쪽에 끼고 새하얀 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삼랑성(三郞城)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막돌을 맞추어 쌓았다. 성체 안에는 막돌을 그 위에 맞추어 가며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한다.
세 아들로 단군께서 성을 쌓게 하시어 먼 훗날 사고(史庫)와 왕조실록(王朝實錄) 지키다 성(城) 모양 솥(鼎) 다리 거꾸로 하여 정족 산성(鼎足山城) 이라 하였다네 -삼랑성(三郞城)
이 삼랑성 (三郞城) 은 북한산성 같이 커다란 돌을 짜마춘 우람한 석성이 아니다.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으로 대구 달성공원의 토성이나 강서구 궁성 같이 도시 성이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것도 성을 중심으로 오르는 곳에서만 보일 뿐 전망이 탁 트이는 곳에 이르면 성가퀴는 사라지고 만다. 그냥 천연의 낭떠러지를 이용하여 성을 쌓았을 뿐이다. 이것이 빙 둘러 2.3km 오솔길로 이어지다가 남문에 이르면 비로소 의젓한 성으로 나타나난다. 성 내부에 해당하는 전등사는 울창한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망이 일품이다. 게다가 비온 뒤 깨끗한 티없는 하늘은 시야를 강화초지대교를 넘고, 김포를 지나 김포대교를 건너 저 멀리 일산의 고봉산의 북한 방송을 막아 준다는 안테나까지 선명 하다. 오랜만에 카메라가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바늘 반대 뱡향으로 돌아가는 길로 봉우리 둘을 넘으니 드디어 정족산 정상이다. 정족산은 강화 남쪽에 있는 산이라서 443m의 진상산과 강화도에서는 최고 산인 469m의 마니산 이 가로막고 있는 그 사이에 바다가 있고 그 건너 섬들이 있다. 마니산의 산줄기가 함허동천으로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개벌 조개 잡이와 수영을 겸할 수 있는 동막해수욕장 백사장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여기서 한참 내려갔다 다시 올라 가다보니 왼쪽으로 오솔길이 있어 보니 바위 끝에 녹음 속에 푹 파묻힌 전등사 전경이 있다. 전등사(傳燈寺)란 381년(소수림왕)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다가, 고려 1282년에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하여 송나라의 대장경과 옥등(玉燈)을 시주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전할 '傳'(전) 등잔 '燈'(등) 전등사(傳燈寺)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깝게도 옥등은 전하지 않는다. 남문으로 내려 거대한 나무 사이로 대웅전을 향하다 보니 여인이 홀딱 벗은 몸체를 들어낸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름다운 배꼽 위로 향한 긴 허리 위로 거기 우리들 남정네가 그리워하는 여인네 가슴이 있고 통통한 젖무덤이 알맞은 간격으로 있는데 자신 있는 젖을 보라는 건가, 아니면 막 옷을 벗으려는가. 두 손을 하늘로 짝- 올렸다. 여인의 젖은 저렇게 사발을 엎어놓은 형상도 아름답지만, 산 능선이 흐르듯 아래를 향하다가 문득 멈추어서 봉곳한 봉오리로 뭉쳐 있는 그 꼭지가 더욱 아름답다. 가만 있자-, 신성한 산사 경내서 지금 내가 무슨 망발을 하고 있는 거지- 주책없이. 예끼-.
신성한 산사(山寺)에 남세스럽다 저 나무 배꼽도 드러내고 젖통도 가리지 않고 두 손을 쩍 벌이고서 무슨 화두(話頭)하시는가. -전등사 배꼽 은행나무 유서 깊은 전등사 유물로는 높이 1m, 높이 1.64m의 보물 393호라는 송나라 때 중국 하남성에서 가져왔다는 '전등사 범종'도 있고, 보물179 전등사 '약사전'과, 국가 비상시 왕이 기거할 수 있는 '가궐(假闕) 터'가 있지만 반드시 보고와야 하는 곳이 보물 178의 고려시대 사찰 전등사 대웅전이다. 그 중에서도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대웅전 네 추녀를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나녀상(裸女像)'이다.
밴댕이 소갈머리 절 아래 주모(主母)가 도목수(都木手) 물건 갖고 줄행랑을 쳤답니다 이렇게 저주가 되어 벌이 될 줄 모르고- -전등사 대웅전 추녀상(醜女像)
가궐(假闕) 터를 지나 나라에서 역대 열성조(列聖朝)의 왕조실록 같은 귀한 책을 보관하여 두던 사고(史庫)에 이르니 어디선가 청아한 판소리 창이 한창이다. 한 젊은 여인 하나 북 앞에 앉아 먹을 것 마실 것 옆에 놓고 판소리 '춘향가'를 열창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듯이 한 목소리를 얻으려고 폭포 밑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산사 사고(史庫) 마루에 있다. 한 젊은이의 꿈을 여는 소리였다. 문외한인 나의 귀에도 그는 어느 경지에 도달한 광대였다. 고찰에 어울린 우리 고유의 판소리 가창이 맑은 하늘로 뒤덮인 산사의 한 구석을 울려 퍼지고 있다. 세상을 향하여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를 보는 것 이상으로 싱그럽고 멋지다. 이래서 세상을 사는 것이 재미있다. 강화 정족산은 죄없는 아내를 집에 묶어 두고 혼자 훌쩍 산으로 떠나는 나와 같은 산꾼들이 아내와 함께 등산과 사찰 탐방을 겸할 수 있는 서울 근교의 최적의 장소이다. 게다가 읍내 버스터미널 옆 풍물시장에서는 인삼막걸리에 계절에 맞추어 저렴한 각종 회가 우리 술꾼을 기다리고 있다. 밴댕이 회에 강화(江華) 순무가 인삼 막걸리 술안주라 전등사 삼랑성 들러 찾아온 길입니다 내일도 오늘 같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단골이라고 반겨주는 손맛 따라 왔습니다. 마음처럼 풍성한 그 정성을 마십니다. 비 끝에 활짝 핀 하늘이 나를 불러 왔답니다. -강화 '풍물식당'에서
▣ 산사랑방 - 선생님의 정족산에 대한 산행기를 읽으니 商道에서 임상옥을 포섭하기 위해 서기로 임상옥 집에 취직했다가 때가 되어 역적에 가담할 것을 우회적으로 주인공 임상옥에게 제의해 왔을 때 솥정(鼎)자 하나로 임상옥은 그 위기를 넘겨 목숨을 구하였지요. 즉 권력 명예 재물을 독식하면 망하게되니 솥의 세 발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뜻이였는데 홍경래가 솥을 보고 임상옥을 포기하고 죽이지도 않고 그냥 갔었지요. 혹시나 선생님이 가신 그곳이 홍경래와 연관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글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 일만성철용 - 동양 사람은 3을 참 좋아합니다.과거 최우등 급제자 세 사람을 鼎甲,鼎談, 鼎立, 삼정승을 鼎席, 鼎足之勢, 鼎座 등이 그런 뜻이지요. 흥미 있는 예를 짚어주시어 고맙습니다. ▣ 코리아.... - 역사의 분기점에서 교훈을 남겼던 그곳 정족산 한해가 가기전 그곳 산성에서 서해로 넘어가는 일몰을 꼬옥 한번 보고싶습니다. ▣ 일만성철용 - 일만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또 좋은 하늘만나면, 낙조 포인트라는 분오리돈대나 마니산을 그리워할 것같아요. ▣ 코리아.... - 역사의 분기점에서 교훈을 남겼던 그곳 정족산 한해가 가기전 그곳 산성에서 서해로 넘어가는 일몰을 꼬옥 한번 보고싶습니다. ▣ 허경숙 -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으시는 깔끔하신 선생님을 어찌 감히 대면 하리요마는 부끄러운 얼굴을 감출 수 있어 그래도 고개 숙이며 몇자 글로나마 알현합니다. 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조금은 슬픈듯한 몸빛을 길게 드리우며 가시는 걸음을 멀찍히 따라 나섭니다. 그 많은 사연들이 왜그리 애잔하게 느껴지는지... 소생하신 생명만큼이나 오래 아끼며 사랑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가까운 길 두고 돌아가는 정서를 가슴 깊히 사모합니다. ▣ 일만성철용 - 오늘도 좌측 개인별 산행기 속의 허경숙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상처받았다 생각마시고 그 멋진 글을 올려 주세요 기다리는 다른 사람도 많으니. 글을 쓰다보면, 글을 쓰기 위해서 산을 찾는 경지로 승화되고 그래서 자기의 글이 후세에 남게 되는 것이거든요.부탁합니다. ▣ 이동준산사랑방 - 선생님! 뺀댕이 회가 뼈하고 같이 먹는가 봅니다. 이곳에선 처음 봅니다. 꼭 전어회 같기도 하구요.. 강화가서 함 먹어봐아 할텐데 걸쭉한 인삼막걸리도 같이요 .. 쩝쩝.....!! ▣ 일만성철용 - 뼈를 빼고 먹어야 하는 거지요. 강화터미널 풍물시장 풍물식당에 가시면 야채 포함 1인분 1만원, 인삼막걸리 5천원 한답니다. ▣ 권종훈 - 산행기 잘 읽어보고 갑니다. 방학을 하면 7월21~23일까지 학생들 데리고 국토순례를 갈려고 하는데 마침 경복궁, 강화도, 석모도, 3땅굴, 독립기념관, 속리산 등을 둘러볼 예정인데 선생님의 글을 보니 꼭 가보고 싶네요. 물론 20여년 전에 강화도는 가 보았습니다만 지금은 강화도도 많이 변했겠지요. 그럼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행하십시요. ▣ 산사랑방 - 선생님의 자세한 안내말씀 고맙습니다.~~^&^ ▣ 청파 윤도균 - 한동안 선생님의 근황이 뜸하셨습니다 선생님 발걸을 가시는곳 흔적마다 우리나라의 명산 명고적지로 기록되는 대 역사가 이십니다 선생님 더 많은 산행가 더 아름다운 글을 잉태하여 출산하시기 위하여선 약주 조금만 아끼세요 선생님의 글을 보면 저도 저절로 군침이 돌며 시원한 탁빼기 한잔 생각이 나게 합니다 그런대 선생님 그림이 모두다 날아가 버리셔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그림파일 점검 한번 해주세요 그리고 늘 건강 하십시요 ▣ 청파 윤도균 - 그림 파일이 다시 귀신처럼 떠 올랐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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