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31일/단독/송추 오봉매표소-송추남능선-여성봉-오봉-오봉능선-송추폭포-오봉매표소>
*. 여성봉 (女性峰, 331m)을 찾아서 장난기를 가지고 산을 향하기는 요번이 처음이다. 산을 웃음기 어린 눈으로 무엄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안 될 말이지만 우리 나라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찌 보면 세계인들에게 자랑할 만한 산이기 때문이다. '여성봉(女性峰)'이라면 여근(女根) 바위렷다. 이는 남근(男根) 바위 반대말이 아닌가. 여자의 생식기 여근(女根)을 점잖게 일컫는 말에는 이 외에도 '소문(小門)', '아래', '옥문(玉門)', '음문(陰門)', '하문(下門)'이란 말이 더 있다. 걸불병행(乞不竝行)이라고 여인 만나러 가는 것 또한 함께 가는 것이 아니어서 여성봉에도 나도 혼자 가는 거다. 오늘이라도 남들보다 먼저 만나는 기쁨을 위해서 이른 7시 아무도 없는 등산로를 홀로 오르고 있다. 장마가 막 물러간 뒤라 넉넉한 물의 송추 계곡 따라 얼마를 오르다 보니 우측에 여성봉 입구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여성봉까지는 2.3km로 1시간 30분 길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송추에서 오르는 오봉매표소 직원도 늙수그레한 여인이었다. 오르는 산길도 여성봉 이름을 닮았는가. 부드러운 것이 동네 뒷동산을 오르는 것 같이 편하여서 등산을 한번도 못해본 초보자라도 무난히 오를 수 있는 그런 길이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있는 논둑에 웬 허수아비 군인 하나가 총을 들고 무언가 지키고 서 있다. 이곳은 군 작전 지역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가 최근에 개방된 곳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이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여성봉을 '처녀봉'이라고 하여, 아들 낳기를 소원하는 부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는 곳으로 남성의 출입이 금기(禁忌)로 되었다는 이 곳을 1983년에 15번째로 '북한산국립공원'이 되면서 그 이후 '여성봉'이란 이름을 얻은 것 같다. 송추는 도봉산의 북쪽에 위치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은 주로 고양시 지역 사람들이거나 의정부를 사는 사람들이 자주 오르는 길이다. 막 오름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80 정도의 하얀 노인 한 분이 맨손 체조를 하고 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가 이렇게 산을 매일 오르고서 어느 정도의 건강을 찾았다는 분이다. 그분과 반가이 수인사를 나누는 이는 아까 매표소의 여직원의 남편으로 심장 수술을 하고 매일 아침 건강을 위해 오르는 의정부에 사는 60대 초반의 이관호씨다. 그이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맨발로 산을 오르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맨발로 산을 오르십니까? 자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불효자들이지요." 240년 동안 이 산 아래 동산동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는 이 노인은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생겨 논에서 쓰러졌다가 아울러 허벅지 수술을 받았는데 걷지 못할 정도로 발이 거북하고 계속 저려와서 이렇게 맨발로 걷기 두 달만에 고쳤다는 칠순을 일년 앞둔 지달소라는 노인인데 나보다 두 살이 위라니 나도 이젠 늙기는 정말 늙은 게로구나. 이런 노약자도 오를 수 있는 곳이 여성봉 등반 길이다. 늙음은 여성에게 먼저 오는가. 아내가 50이 넘은 후부터는 성(性)을 잃고 남성으로서의 나를 멀리 하고 산다. 9년 전 신도시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방이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아내는 밤에는 아예 안방을 꼭꼭 걸어 잠그고 혼자 잔다. 자식이 다 출가하기 전에는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민망하게도 큰 소리쳐 자식을 부르는 것으로 나의 접근을 막았다. 그때의 내 애처로운 심정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성(性)을 잃은 아내에게 성(性)을 내고 달려들면 삽십육계 줄행랑 이순(耳順)의 주책이란다 급습하기도 하고 공갈과 협박에다가 애걸까지 더해도 언제나 불발탄! 하여, 가엾은 몸을 이끌고 해우소(解憂所)에 서면 거울 속에 내가 욕을 한다 예끼놈! -예끼놈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7년도 더 지났으니 점잖을 떨며 살아오던 몸으로 외도(外道)할 엄두도, 여유도 없어서 지금은 아예 포기하고 내 방에 죽부인(竹夫人)을 하나 끼고 잔다. 죽부인(竹夫人:Dutch-wife )이란 더위의 기운을 씻어낸다는 척서(滌署)용품의 하나다. 대오리로 여인의 키만큼, 몸만큼 길고 둥글게 엮은 것을 우리 남정네들이 여름철에 잘 때 품에 품고 자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죽부인은 절대로 아들이 대물림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언제부터인가 젊은 아내와 사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여성봉이 가까워지니 모두가 여성봉 같다. 이거가 그건가? 자꾸만 장난스런 생각이 앞서 간다. 둥그스름한 알맞은 높이에 매어놓은 두 줄의 매듭을 지어 놓은 밧줄을 타고 오르니 마당바위였다. 그 앞에 또 하나의 마당바위가 있고 거기 넘어 상쾌한 오솔길이 다시 시작된다. 이 여성봉 길에서 주의할 점은 충분한 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 길은 계곡을 완전히 벗어난 송추 남능선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 사이 오솔길에서 벗어나니 전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군부대 막사와 운동장들-. 아하! 아까부터 허공을 울리던 총소리는 저 산아래 군부대에서 나는 소리였구나. 유원지 장흥 쪽으로 아파트가 보이고 저 멀리 의정부 쪽에 사패산(賜牌山)이 우람하게 서있다. 사패산을 자세히 보면 성숙한 커다란 남근석(男根石) 같다. 여성봉의 신랑인가? 이 둘이 서로 '여보 당신'하여 낳은 자식들이 여성봉 위에 있는 오봉(五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구파발 쪽에 마주 보이는 바위 절벽에는 둥글둥글한 무늬가 여인의 치마폭처럼 아름답다. 해발 331m 여성봉 이정표앞에 서니 산 높이가 잘못 된 것 같다. 구파발- 송추 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던 찬란한 오봉 앞에 턱- 버티고 서있는 그 우람스러웠던 여성봉이 높이가 겨우 331m밖에 안된다니-. 이정표에서 30m를 더 오르니 드디어 벼르던 여성봉이다. 여인의 허벅지 같은 하야스름한 양쪽 바위가 곡선을 이루어 골짜기를 이루었는데 그 사이 닫혀 있는 긴 문이 있고 그 주위에는 파란 풀이 돋아나 있다. 그 아래 동그스름한 움푹 패인 구멍은 영락없는 항문 모양이다. 그 위에 바위 사이를 비집고 서 있는 살아 있는 노송 한 구루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여인을 두고 떠나지 못하는 남정네의 마음인가. 아니면 아무나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지키게 세워둔 보디가드와 같은 수호수(守護樹)인가. 나는 지금 어느 세계적인 수석가의 정원에 들러 머리를 끄덕이며 찬탄을 되풀이하고 있는 애석가(愛石家)와도 같은 심정이다. 수석을 형식으로 산수경석(山水景石), 물형석(物形石), 무늬석, 추상석, 전래석(傳來石)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여성봉은 그중 물형석(物形石)에 해당된다. 수석 중 명석(名石)이란 누구에게든지 공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돌의 표정이 강한 개성으로 살아 있으며, 만고풍상을 겪어온 세월을 품어 안고 있고, 고요한 태고의 멋이 그윽하게 살아 있는 균형이 잡힌 유연한 선의 흐름이 있는 깨어지지 않은 연마된 돌들이라 하였느니-. 그런데 바위 곳곳에 새겨놓은 못난이들이 천추에 길이 남을 줄도 모르고 자기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 있어 요번에는 감탄 아닌 한탄을 자아내게 한다. 만약에 그들의 후손들이 있어 이곳에 와서 보고 자기 조상인 줄도 모르고 심한 욕설을 하고 간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바위 길이어서 조심 조심 바위를 타고 민망스럽게도(?) 그 옥문을 밟고 위에 오르니 이 바위는 커다란 하나의 바위로 된 50명 이상 쉴 수 있는 널따란 반석이었다. 위에서 본 여성봉은 아래서와 또 다른 멋진 모습이었다. 이런 명승지에 와서 어찌 시 한 수 없을까? 여성봉 위에서이니 남성봉을 노래해 보자.
은밀한 속삭임 하고 많은 사연(事緣)들 여의봉(如意棒) 재주로써 영원을 창조하는 것 그리움 하나 되어서 나와 너가 되는 하나. -거시기
아름다움이란 어울려서 조화되어 있을 때 더욱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그 바위 북쪽에는 우리 같은 사람이 오르기 힘든 커다간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코끼리 모양 같기도 하고 바위 양쪽은 멧돼지와 양같은 바위가 선량한 표정으로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데 그 바위를 오르는 여성봉 같은 바위 틈에는 사랑의 화살이 소나무로 콱 깊이 박혀 있다. 여성봉 정상에서 바라보니 도봉산의 절경 중에 절경인 오봉(五峰)이 여기 와서 사진 한 장 찍지 않겠느냐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 도봉(道峰)의 멋쟁이 오봉(五峯) 한자의 女(여)와 男(남)자를 모양으로 보아 이렇게 풀어 보는 사람도 있다. 글자 모양이 '女' 자는 아래가, '男' 자는 위가 크게 생겼다. 그러니까 여자는 엉덩이가 크고, 남자는 어깨가 크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얘기가 아닌가. ㅎㅎㅎ. 하나 더 할까. '계집'의 옛말은 '겨집'이다. '겨시다(在)+집(家)'으로 집에 있는 아이란 말이다. 남에게 자기의 아내를 한자어로 내자(內子)라고 하는 것과도 연관되는 말이다.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의 국어대사전에는 '안해'란 말이 표준말로 나온다. '안(內)+해(太陽)'로 집 안에 있는 태양이 곧 아내라는 주장이다. 여성봉을 본 다음 장마에 물이 한창 불어 있을 송추폭포를 보러 가겠다는 것이 오늘의 일정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오봉을 거쳐야 했다. 오봉까지는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일 것이고 이정표를 보니 여성봉에서 1.2km밖에 안 되는 거리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봉 길에 올랐다. 북한산 전체가 그렇지만 도봉산도 70%가 바위산이다. 멀리 보이는 산들을 바라보면 바위에 소나무들이 붙어 있는 형국이다. 멋없는 육산(肉山)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바위산으로 전국 어디를 가봐도 도봉산 만한 산이 몇이 안 되었다. 삼각산의 웅장함을 도봉산이 따라 잡을 수 없듯이, 도봉산의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은 삼각산이 넘볼 수 없지 않은가. 오봉(五峰)은 안쪽에서 밖으로 나아가면서 제1봉 제2봉 제3봉 제4봉 제5봉으로 나뉘듯이 이어져 있고 거기서 좀 아래로 떨어져 있는 봉은 자기들끼리만 오봉을 이루었다는 것을 시셈이라도 하듯이 앵돌아 앉아 있는 모습이 재미 있다. 660m 오봉은 암벽 구간이라서 지형이 험준하여 추락 위험이 있다고 금하고 있지만 무리를 하여 제2봉까지는 오기를 부렸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다녀오면 멋이 되지만 그 이상이면 어리석은 사람의 만용이 되기 때문이다. 이정표 따라 송추폭포를 향하였다. 태풍으로 큰비 올 때마다 패어 나간 계곡 자리는 쓰러진 나무들과 함께 흉측한데 옛날과 달리 등산로는 잘 다듬어져 있다. 전에 보지 못한 멋진 아치형 다리가 세워져 있었고-. 송추 계곡은 매표소까지 자연휴식제로 일반인들이 못 들어가게 계속 흰 밧줄로 막아놓았는데 유난히 비가 자주 오던 장마 끝이라 이름 없는 폭포가 셋이 더 넘게 열려 있었다. 드디어 송추폭포(松楸瀑布)다. 물줄기가 수려한 바위를 미끌어 내려 삼단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하얀 포말로 더 없이 시원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곳에 전에는 없던 멋진 나무 층계길을 새로 놓아 거기서 내려다 보게 하였다. 한국의 산은 높지 않기 때문에 밀포드 사운드(뉴질랜드)나 노르웨이의 피오리드(Fjord) 같이 수백 m 수천 m의 공중에서 수백개의 폭포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폭포와는 비할 수는 없지만, 송추폭포는 서울 근교에서는 만나볼 수 있는 그래도 큰 측에 속하는 폭포라서 유난히 더위를 참지 못해 하는 이 사람의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열어 주고 있다. 요즈음은 방학 중이고 바캉스 계절이라서, 송추 매표분소 바로 아래부터는 계곡을 팔아먹는 상혼(商魂)이 골짜기마다 진을 치고 있어 붐비는 자가용들이 나 같은 산꾼의 하산 길을 막는다. 인공분수, 인공폭포를 만들고, 계곡에 텐트를 치고, 어른들은 마시고 아이들은 물놀하는 그 요란한 소리가 계곡 물 소리보다 드높다. 지금 서울에서는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서 멀쩡한 고가도로와 집을 부수고 있는데, 우리의 국립공원 북한산에서는 계곡을 뭉개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라니 우리들의 두 개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디쓰다. 2023. 봄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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